신작시|이서린
세상의 끝으로 가는 펭귄 외
이유도 없이
아무런 까닭도 모른 채
끝을 향해 치달리는 생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끝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향하는 거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보는 거
헤어질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건데
텔레비전 속 사방이 온통 백색인
남극의 펭귄도 그랬을 것이다
모두가 먹이 활동을 위해 바다로 향할 때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가
방향을 틀어 혼자 산으로 가는데
쏜살같이 헤엄칠 바다도 없고
물고기도 새우도 어떤 먹이도
가족도 친구도 그 무엇도 없는
그곳은 광활한 남극
거대한 설산만 있다는 것을
필경 죽음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어쩌면
애틋한 무엇이라도 있었을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잠깐 돌아보는데
그러나 다시 몸을 돌려 뒤뚱
확신에 찬 몸짓으로 바다가 아닌
무리의 반대쪽인 산을 향해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분명한 의지로 홀로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을지도 모를 그의 심정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현실이
세상의 끝으로 이끄는 걸까
끝내 어떻게 될 줄 알기는 할까
절망과 허무의 극치에서
마침내 죽음에 다다를 것을
마치 희망처럼 씩씩하게
홀로
산으로 가는 펭귄
아무것도
그 무엇도
살아갈 가능 없는 눈 덮인 얼음 계곡을
도대체, 왜
점점
점점
사라지는
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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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곡선
외딴 마을 산길은
흰 뱀
흰 뱀
한 마리
오르고 있다
구부러진 몸통 허리춤엔
귀퉁이 무너진 돌담과
주름진 지붕
하나
비탈은 볕을 받아
숨이 가쁘고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고요한 산길
태양을 업고
오르는
저 흰,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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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린|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월하지역문학상, 형평지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저녁의 내부』,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