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
♥제목 : 탬버린의 추억♥
松谷. 作.
인사이동이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직원 몇 명이 다른 부서로 이동되었고 새롭게 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이 우리 부서로 전입되어 왔다. 그동안 정들었던 직원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며 회식을 하게 되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교환하며 취기가 오를 무렵 노래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이다. 흥에겨워 신바람이 났는지 직원 한 명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신나게 탬버린을 흔들기 시작했다.
탬버린을 보는 순간,
소백산 줄기 끝자락에서 태어나 파란 동심을 살찌우며 유년을 보내던 아득한 추억과 함께 옛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왔다.
내가 살던 고향은 사방이 병풍처럼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계곡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며 가을에는 온 산을 단풍으로 물들이고 겨울에는 하얀 눈꽃이 동화의 나라를 만드는 전형적인 첩첩산골이다. 5일장이 서는 시장까지 갈려면 걸어서 한 시간 이상 부지런히 가야하고 빠꼼히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인심 후하게 쳐주면 백 여평이나 될까? 하루종일 일을 끝내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무렵 집에 가려고 점심때 새참을 담아 머리에 이고 온 함지박을 번쩍 들었더니 그 밑에 작은 논 떼기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는 전설을 가진 산골마을.
그 시골 작은 학교에도 아담한 도서관과 함께 음악실을 갖추고 있었으며 하모니카, 탬버린, 트라이앵글, 피리, 큰북, 작은북 등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악기들을 비치하고 음악 시간에 활용하고 있었다. 나는 많은 악기중에서도 유난히 하모니카를 좋아했다. 세파에 물들지 않은 풋풋한 동심의 감정이 있었던 것일까?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하모니카 연주 소리는 작고 여린 내 가슴 속을 포근하게 감싸고 상상속 미지의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심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내 가슴의 동심을 살찌워 주던 하모니카를 무던히도 가지고 싶었지만 돈을 주고 살 형편이 못되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강렬한 나의 소유욕을 억제하지 못한체 학교 자료실에서 하모니카를 훔쳐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꼬드겼다.
“야! ○○○. 학교 자료실에 들어가서 하모니카하고 피리 몇 개 훔쳐오자”
나의 도둑질 제안에 썩 내키지는 않은 눈치였지만 친구 두 녀석이 흔쾌히 승낙을 했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조막손을 집어가며 나름의 육갑으로 길일을 선택하여 어느 날 밤 학교로 향했다. 친구 한 녀석이 자료실로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고, 한 친구는 자료실 입구에 대기하며 가져나오는 물건을 넘겨 받고, 나는 멀찍이서 망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전등이 없던 시절이라 자료실에 들어간 친구가 커튼이 드리워진 캄캄한 교실 안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나 보다. 더듬더듬 손에 잡힌 악기는 하모니카가 아니라 탬버린이었다. 탬버린을 들고 교실을 나오는 순간이었다. 멀찍이서 망을 보고 있는 내 주변에서 뚜벅뚜벅 밤의 정적을 깨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른 몸을 숨기고 보니 학교에서 잡무일을 봐주고 있는 동네 아저씨다. 아마도 학교에 순찰을 나오신 모양이다. 아저씨는 우리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라 멀리서 보아도 서로를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사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잔머리를 헤아리며 선택했던 육갑의 길일을 잘못 짚었나 보다. 도둑질하기 좋은 날이라고 선택한 길일이 하필이면 보름달이 휘영청 대낮같이 밝은 날이었다. 아저씨는 훤하게 비추는 보름달 속에서 한눈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녀석들이 자료실에서 무언가를 훔쳐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납짝 엎드려 망을 보고 있던 내가 친구들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칠 틈새도 없이 아저씨는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야~ 이놈들아~”
깜짝 놀란 친구 녀석이 잽싸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친구 손에는 금방 훔쳐 나온 탬버린이 들려 있었다. 휘영청 밝은 고요한 밤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우렁찬 탬버린 소리가 찰랑찰랑 고요한 정적을 깨고 있었다. 같은 동네 앞뒷집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아저씨는 탬버린을 들고 도망가는 녀석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이놈~ ○○ 너 거기 안 서나?”하고 소리치자.
친구 녀석 그냥 열심히 도망이나 가면 될 일이지 끝까지 탬버린을 손에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면서
“나 ○○ 아니에요~~”하고 크게 소리치며 더욱 빠르게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빠른 걸음만큼이나 탬버린 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찰랑찰랑 한밤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야! 이놈아~ 내가 너를 모를까 봐 그러냐?”하고 소리치자 “나 ○○ 아니라니까요~”
매일같이 만나는 앞뒷집 동네 아저씨가 대낮같이 밝은 고요한 밤에 나 ○○아니라고 소리치는 또렷한 그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하겠는가?
벌써 5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갔건만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오늘 노래방에서 흔드는 탬버린 소리가 그옛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던 소리가 되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소리가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