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교회와 안수집사
대한민국!
고난의 역사 속에서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지 않고 눈에 이슬이 맺히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으랴?
일제 강점기를 지나 강대국 사이에서,끊임없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그 결과 한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한 맺힌 산하에 하나님의 사랑과
이 땅에서 삶의 희망과 미래가 교회와 함께 성장 했다.
그러나 엄청난 양적 성장 이면에는 세속화,사유화등 또 다른 그늘들이 생겨 났다.
사랑의 교회!
작금의 사랑의 교회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을 향해 고독한 눈물 흘렸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의 교회 안수집사회는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고유한 직분을 다시 회복하고, 직분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집사를 세우진 분명한 목적과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교회”와 “집사”에 대한 성경적인 조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미 제자훈련을 통해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상고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1. 교회(敎會)의 정의
교회는 크게 “분리”와 “연합”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1)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에클레시아”는 헬라어로 “에크”(ἐκ-밖으로)와 “클레시스”(κλῆσις-부르심)의 합성어이다. 교회를 의미하는 가장 기본적인 헬라어이다.
문자대로 “에클레시아”는 “밖으로 불러낸 모임”, 또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따로 모인 무리”이다.
그래서 애굽에서 광야로 불러낸 “이스라엘”을 “광야에 있던 교회”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8)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에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분리”되어 광야에서 따로 모인 무리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2) 큐리아콘(Κυριακὸν)
헬라어로 “주”(Lord)를 “큐리오스”(κύριος)라고 한다.
“큐리아콘”(고전 11:20)은 “주께 속한”(belong to the Lord)이란 뜻인데 “교회”의 또 다른 용어이다.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많이 들어 보았어도 “큐리아콘”이란 말은 생소할 것이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분리”의 관점에서 사용했다면 “큐리아콘”은 “연합”이란
관점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분리”와 “연합”은 교회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거룩(분리)”과 “사랑(연합)”의 속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분리된 모임”이면서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과 “연합된 모임”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의 어둠의 통치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다면 그는 곧 교회의 지체이다.
그러나 “에클레시아”와 “큐리아콘”은 쓰임새가 다르다.
“큐리아콘”은 보이지 않은 우주적인 교회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면
“에클레시아”는 실질적인 지역교회를 의미할 때 주로 사용한다.
“사랑의 교회”는 주님께 속한 교회이면서 동시에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와 직분과 치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3) 지역 교회의 역사
신약성경의 대부분의 서신서는 지역에서 형성된 교회에게 직접 주신 말씀이다.
그들은 실제로 특정한 지역에 모여서 모임을 형성하였다.
첫 번째 지역교회 -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행 8:1)는 오순절에 120명으로 시작하여, 3000명 가량이 교회의 수에 더해졌으며 그 후에 5000명 가량이 더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가르치고, 주의 만찬을 집행하였다. 또한 그들은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였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이 모이기에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두번째 지역 교회 – 안디옥 교회
“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행 11:26)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행 13:1)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위대한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은 실제로 안디옥 교회의 지체였다.
그는 비록 많은 교회를 개척했지만 그의 신분은 안디옥 교회 사람인 것이다.
수많은 지역 교회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지역교회”이긴 하지만 지역의 범위가 모호한 경우도 있다.
“네 집에 있는 교회”(몬 1: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데살로니가의 교회”(살전 1:1)
교회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교회부터 도시, 또는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고린도 교회라고 해서 그 도시에 단 하나의 모임만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루살렘 교회가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주의 만찬을 집행했던 것은 수 천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행 2:46).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 성도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왜 만드신 것인가?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2. 교회의 존재 목적
1) 진정한 예배를 위해(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1)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2) 몸을 세우기 위해(한 사람은 결코 교회가 될 수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 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3) 전도와 선교를 위해(교회는 계속해서 생명을 낳는 일을 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개혁개정)”“church of the firstborn(KJV)”
라고 표현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4)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교회가 세상 가운데 존재 하는 이유)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 보존하는 기능, 맛을 내는 기능,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 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존재 목적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 5:13)
5) 성도를 양육하기 위해(옥한흠 목사님께서 교회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사랑의교회 제자 훈련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
6)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사랑이 없는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부끄러움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 곧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만들어진 교회가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면 그 교회의 정체성은 의심받아야 한다. 물론 완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요일3:17)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8:4)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행11:2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이처럼 교회를 이땅에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이 질서 속에는 여러 직분이 존재하며 또한 주어진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결코 사람이 훼손해서는 안된다.
3. 교회의 직분
교회의 공식적인 직분은 크게 장로그룹과(감독, 목사, 장로)와 집사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1) 장로그룹(사도, 감독, 목자, 장로)이란?
초대 교회 시대에는 사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안에 존재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을 마지막으로 지상에서는 더 이상 사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약성경에 있는 목사, 감독, 장로를 계급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 같은 직분을 다른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된 이유는 신약교회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삶을 영위하는 세상 만민이 구원받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수 있는 용어를 선택적으로
사용 하였읍니다.
목사(Pastor)
양떼를 돌보는 희생을 강조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유대를 중심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모든 문화권에서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단어였다.
목사라는 말은 목자(shepherd)와 같은 의미 이다. 목자는 히브리어의 라아(רָעָה)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 헬라어로는 포이멘(Ποιμήν)이다. “라아”는 “여호와 이레”에서도 사용되었던 “보다”라는 뜻이다. 항상 돌보는 의미를 강조하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목사는 양치기처럼 양들을 돌보면서 푸른 초장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Bishop)
치리, 감찰(overseer)의 기능을 강조한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면을 강조한 단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감독으로 번역된 “에피스코포스”(ἐπίσκοπος)는 원래 헬라인들의 신전에서
수입지출을 관리 감독했던 행정관이었다.
이 용어의 의미가 그대로 신약성경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bishop)은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 3:2)
장로(Elder)
연장자로서의 책임감과 리더쉽을 강조한 단어이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단어이다.
히브리어의 연장자인 자켄(זָקֵן)을 헬라어로 “프레스부테로스”(πρεσβύτερος)라고 한다. 영어로 장로교회를 “프레스비테리언 처치”(the Presbyterian Church)라고 하는데 바로 장로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온 말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 5:1-2)
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스스로 “장로”라고 호칭하였겠는가?
만약, 사도, 감독, 목사, 장로가 교회 안에서 계급적인 명칭이었다면 어떻게 베드로가 장로가 될 수 있는가?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 장로그룹(감독, 장로, 목사)의 자격
물론 지역교회의 특성상 이 직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분한 경우는 있지만 성경에서 자격은 모두 동일 해야 한다.
첫째: 거룩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holy desire)
“미쁘다 이 말이여,곧 사람이 장로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딤전 3:1)
목회자의 갈망은 모든 사람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또한 누구든지 소망한다고 해서 바른 목회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이며
사람 또한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blamelessness)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 (딤전 3:2)
“책망 받을 것이 없다”는 말이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최소한 도덕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비난 받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셋째: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해야한다
한 아내의 남편(husband of one wife)이어야 한다(딤전3:2)
이 자격은 결혼에 있어서 결격 사유가 없어야 됨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제시하는 감독의 자격은 “남자”이며
정상적으로 결혼한 상태에 있는 사람임을 뜻한다.
넷째: 맑은 정신(sober)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한다.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딤전3:2)
맑은 정신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내리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의미한다.
다섯째: 친화력-손님대접하기(given to hospitality)
“~나그네를 대접하며~”(딤전3:2)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친화력과 형제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섯째: 가르치기를 잘하며(apt to teach)(딤전3:2)
목사는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바른 성경의 교리를 선포하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는 곧 교사(pastors and teachers)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 4:11)
“이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일곱째:자신을 술에 내어주지 아니하며(Not given to wine)(딤전3:3)
세상 향략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않고, 인내하고, 말다툼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덟째: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딤전 3:5)
아홉째: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한다.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간증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올무에 빠지게 된다.
3) 집사(Deacon) 그룹
어원
집사는 “다이코노에오”(διακονέω)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섬기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장로그룹에 속한 사도들은 분명하게 교회의 기능을 양분하였다.
사도들은 모두 말씀사역과 기도에 전념했으며 교회의 재정과 행정은 모두 집사들이 감당하도록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집사에게 주신 직분과 역할을 사람이 훼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역을 훼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행 6:3-4)
집사(Deacon)는 집(house)과 관련된 단어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관리하고 운영하고 분배하는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는 “집사”라는 명칭은 없다.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집사”는 “청지기”와 비슷한 말이다.
청지기를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οἶκος)와 “법”, 또는 “다스림”을 뜻하는 “노모스”(νόμος)의 합성어이다.
“경제”(economy) 또는 “경영”(management)이란 말은 바로 “오이코노모스”(청지기), 그리고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관리)에서 파생된 말이다.
“오이코노미아”를 누가복음에서는 “청지기 직무”(stewardship)로 번역했고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 하지 못하리라 하니”(눅 16:2)
에베소서 1장 9절에서는 “경륜”(dispensation)로 번역했다.
“청지기 직무”과 “경륜”은 헬라어로는 같은 단어이다.
“오이코노미아”나 “오이코노모스”를 이해하게 되면 어려운 한자 단어인
“섭리”나 “경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경륜”은 결국 넓은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역사를 청지기처럼 경영하시고 관리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집”은 단순히 집에만 머물러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 집의 범위가 넓어지면 그 집은 곧 왕국이 된다.
다윗의 고백을 들으면 이 의미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와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서 죽였나이다”(삼상 17:34-35)
그깟 한 마리 양이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하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그 한 마리 양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의 양들이기 때문이었다.
신실한 청지기란 단 한 마리의 양에도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양치기였던 다윗에게 왕국을 맡겼다.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한자어로 우주(宇宙)라는 단어도 “집”이란 단어가 합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은 “교회”도 되고 “왕국”도 되고 “우주”도 되는 것이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우리는 지금까지 “집사”라는 직분을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하여 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하고 무거운 중책을 교회 안에 묻어 놓은 것이다.
집사의 자격
집사의 자격(딤전 3:8-13)은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감독의 자격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집사”와 “장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역할과 기능이 다를 뿐이지 그 직분의 가치나 중요성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서리 집사라는 과정을 두게 한 것은 집사 직분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동안 시험 하는 기간 인것이다.
안수집사는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로 시험해보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드러나면 그는 교회의 공식적인 집사가 되는 것이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전 3:10)
집사의 의무
교회 안에서 집사의 역할은 교회 행정과 재정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것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일만 해야 된다는 명령은 없다.
스데반 집사도, 빌립 집사도 모두 훌륭한 말씀 선포자였다. 말씀선포가 오직 목사에게만 주어진 임무는 아니다. 착각하면 안된다.
목회의 교유한 권한은 목사에게 있지만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선교사도 해야 하고, 집사도 해야 한다. 목사에게 말씀선포가 중요한 일인 것은 다 아는 일이지만 오직 목사만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정의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다만 기능과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사도 행전 6장)
역사적으로 교회는 여러 정치 형태가 존재했다. 그러나 교회 정치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행정의 안전성과 효율성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떤 제도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수님은 아시아 일곱 교회를 책망하실 때 교회정치제도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본질에서 떠나 있음을 책망하셨다.
그러나 “안수집사”(딤전 3:10)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고유한 영역이며 직분이다. 비록 그것이 사소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엄연히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세워진 고유한 영역이다.
이제 “사랑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될 위험성이 크게 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첫댓글 참 정리 잘하셨습니다. 한참 잊혀진 문구들이 새록 합니다.
다행이고 한편 죄송하지만 권사님의 성경적 위치등은 없네요 .사인방 연로하신 분들이 서운하겠습니다.
그런데 깨우치고 알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만 그래서? 어쩌실건지요? 이게 다 인지요? 그냥 궁금들 하셔서요..
사랑의교회 안수 집사님들 사랑합니다.
백색이든 검정 색이든지요,회색만 하지 마세요 뿌였게 있다 색 확정되면 편승하는 회색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오늘 귀한 공부 많이 합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저에게 많은 성경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젠 교회의 본질을 빨리 회복되어 정말 주일날만 되면 빨리 가고픈 그런 교회로 거듭나길 기도합니다. 아멘!!
신앙의 어린이인 제가 덕분에 교회에서의 직분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정립하여주신 좋은 글이네요. 모든 직분이 넓은 의미에서 종적이 아닌 횡적으로 평등하다고 이해하면 되겠네요.물론 수펑적으로 각자 사역의 분야는 다르겠지요.제가 이해 한게 맞나요? 안수집사님들 교회민주화(이런용어가있나?)를 반드시이루어 주세요!
잘 정리해 주셨네요. 대단한 내공입니다.^^
아멘! 매주 수준있는 설교랍시고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영어단어 몇개로 설교를 희화화 하며 유식한체 성경구절 낱말풀이식의 주일 대예배 40~50분짜리 삯꾼설교보단 백배 천배나 유익합니다.
우리교회 안수집사님들께선 '안수집사'란 거룩한 직분을 수많은 성도앞에 다시한번 옷깃을 여미며, 사랑의교회의 회복과 갱신을 향해 몸부림치는 우리 평신도들의 연약한 손을 더욱 더 힘차게 꽉 잡아 이끌어주셔야 할것같습니다. 반드시 그리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안수집사님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미 쓰러진 제자훈련의 초심을 위해 사랑의교회와 당회앞에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그 결단에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