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어느 때에 큰 환난이 시작되나요?
마 24:3 막13:3 2026년 5월 17일 주일 오전 말씀지
언제 세상 종말이 오는가? 는 세상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고 특히 거짓된 이단들이 수없이 나타나 종말이 금방 닥칠 것 같이 말하여 많은 이들을 미혹했습니다. 예수님 때에 제자들은 성령 충만 받기 전이니 예수님을 따르면서 한자리 얻겠지 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화려한 건물 성전을 보고 예수님께 이 성전이 얼마나 화려합니까? 할 때 예수님은 먼저 보이는 건물이 다 무너지리라 하셨고 제자들은 이제 그때가 언제인가? 묻는 것입니다. 영광의 복음인 환난의 양식을 받지 못하면 큰 환난인 첫 삼년반 환난과 대 환난인 후 삼년반 환난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버려둠을 당하고 신부의 믿음으로 단장된 자들은 이제 순교케 하사 데려감을 당하게 됩니다. 마24:40,41-
여태까지 수없이 작은 환난들이 세상에 있었지만 이제는 개국 이래로 없었고 (단12:1) 창세 이후로 없었던 큰 환난이 우리 앞에 가까이 오고 있는데 그때가 언제 시작되는가를 보고 있는 자들은 이제 기름 준비 신부 단장하려 산(환난의 양식인 영광의 복음을 나눠주는 아버지 집)으로 도망합니다. 마24:16-
그 산은 예수님이 올라가신 감람산이요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려 물 한 동이를 이고가는 자를 따라가서 준비케 하신 큰 다락방으로 그곳에서 영광의 복음을 부지런히 받아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겁내지 않고 순교의 자리까지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눅22:10,12-
물 한 동이는 나에게 신령한 영적 기쁨을 주시는 성경 전체요 이제 냉수 한 그릇은 성경 각 권으로 큰 다락방에서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설교하는 예배당이 아니요. 성경 한권을 정하여 한절 한절 영의 양식으로 나눠 영을 자라게 하시는 곳으로 아버지 집이니 이런 곳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해야 하며 이제 찾아야 합니다. 이제 찾게 하셨다면 주시는 말씀마다 마음 문을 열어주사 양식으로 다 받게 하옵소서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알을 구하게 하시고 나를 통해 생명 역사가 있게 하십니다. 눅11:12-
3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막13:3절에는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로 나타내주십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우리나라의 강원도 크기 이며 인구는 1000만 명인데 지금 미국과 함께 세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산맥에 있는 감람산인데 예수님은 주로 이 감람산에 자주 가셨습니다.
1.감람산에는 3봉우리가 있는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대략 903미터입니다. 당시에 올라가기가 편하지 않는 환경이었을 텐데 마가를 통해서는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하시려 (막1:35) 누가로는 습관을 좇아 저녁마다 감람산에 가신 것을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감람나무가 많아 감람산입니다. 눅22:39-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18:1절에 동산이라고만 나타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특징이 기도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박목사도 과거 잘못 배워 열심할 때 동역자들과 산마다 기도원마다 찾아 다니며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고 기도한다고 하였는데 목만 쉬었습니다. 요한복음은 모르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영향만 받은 것입니다.
2.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에 구름이 걸려 비가 내리게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심정이 크면 클수록 은혜로 충만케 하시는데 바로 감람산입니다.
3.마26:36절에 겟세마네 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유대에 가까운 남쪽의 한 기슭에서 기도하시고 잡혀가시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없는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도 진액을 짜듯 새벽마다 세상 것을 달라고 떼거지라도 쓰라고 설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요한은 ‘태초의 말씀으로 계셔서 아들의 영으로 택하여 주셨고 성자의 가죽옷 구원으로 자기 백성 삼으셨고 십자가 구원까지 이뤄주셨고 성령 시대에 영에다가 육신을 입혀 보내셨고 나같은 죄인을 부르사 생명의 빛을 비추사 살리셨고 생명의 떡을 먹여 자라게 하셨으니 오로지 나를 통해 한 생명을 살리시고 자라게 하사 일군되게 하옵소서’구할 뿐입니다. (요14:13)
4.감람나무는 계시록에 두번 나오는데 감람나누가 많은 산으로 감람나무는 열매와 기름이 있고 상처를 치료하는 감람유와 기쁨이 충만한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심으로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자들은 죽이는 역사를 하는 검은 말과 같은 자들에게 해(害)(기쁨을 잃는)를 당치 않게 하십니다. 계6:6-
5.감람산은 환난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24장 25장의 말씀을 감람산 위에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를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마주 보는 감람산이라고 나타내신 것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건물을 자랑하는 대형 예배당들을 볼때에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신부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서에서는 4:8절에 [헤브론 산꼭대기에서 표범산, 사자굴에서 내려다보아라]고 하셨습니다. 내려다보아야 거짓된 자들과 악한 자들이 겁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큰 건물을 가진 예배당 들을 보며 언제 나는 저런 예배당을 지을까? 부러워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올려다 본 것입니다. 지금도 거짓된 자들이 가득한 예배당들을 보며 감람산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올바른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난에 관한 이 말씀을 받을 때에 나도 감람산 위에 올라가 있어야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감람산은 어디입니까?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사 앞으로 일어나는 환난의 징조를 보게 하시고 큰 다락방과 같은 곳에서 환난을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감람산 위에 앉으셨는데 누가는 산에 올라갔다는 말씀은 없고 눅21:1-4절 성전에서 과부가 헌금 넣는 것을 보고 난 뒤 어떤 사람이 성전을 가리켜서 잘 꾸민 것을 말할 때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하셨습니다.
건물은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습니다. 전쟁으로 솔로몬의 성전도 헤롯 성전도 무너졌고 평양의 여러 예배당 건물도 부숴지거나 악한 자들이 자기들의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받지 못했다면 큰 건물을 가진 예배당을 지으려 했을 것이요 열심있는 교인들은 집이라도 팔아 바칩니다. 성전 건물(예배당)과 피값으로 사신 우리 몸인 성전을 구별하여 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성전 건물은 솔로몬 때에 어려울 때에 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왕상8:29-
그런데 그 성전 건물은 나라가 평안할 때 교만과 우상 세움으로 무너지고 맙니다. 건물만 보고 하는 신앙생활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때에 악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하다가 성전 제단 뿔을 붙잡고 살고자 하였으나 끌어낸 후에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 건물 성전과 제단까지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왕상1:31-
그런데도 오늘날도 잘 지어놓은 예배당과 큰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잘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것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분명 기도는 어디서든 항상 할수 있고 심지어는 골방에서 은밀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건물주의로 모인 숫자 자랑으로 하였던 신앙생활은 이제 후 삼 년 반 환난 때에 원망함으로 다 무너집니다. 마6:6-
첫 삼 년 반 환난 전까지 성전 건물을 세우는 데에 정성을 다한 자들은 환난이 시작되면 악한 자들에게 그 건물을 다 빼앗기게 될 뿐 아니라 그 권세가 무서워 우상을 세우는데 앞장 서게 됩니다. 계13:14-
그러면 그들은 대 환난 때 원망만 나올 뿐입니다. 요한복음에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요15:7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구하라] 하신 것만 있어 받은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한 생명이라도 나를 통해 살리시기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마태로는 제자들이고 마가는 4명의 제자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자기는 없습니다. 4명 중 누구에게 들었을까요? 막13:3-
헬라인인 누가도 당시에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눅 21:7절에는 저희가 물어 가로되 하셨는데 그 믿음대로만 성령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그 당시에 있었으나 이 말씀을 요한복음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전 건물이 무너지는 이것보다 순교자의 수가 차는 첫삼년반 환난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요한 계시록에서 환난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모든 성경 중에 결론이요 가장 복된 첫째 부활의 복을 얻게 하시는 참으로 귀한 양식입니다.
종용히 와서 구약에 야곱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부모가 부를 때에 ‘예, 알겠습니다’로 답합니다. (창25:27) 그러나 에서는 부르면 대답도 없이 항상 부모보다 앞섰고 제멋대로 하는 들사람입니다. 오늘도 주시는 양식을 받기보다는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많은데 언제나 순종하는 겸손한 모습이 종용한 자세입니다. 마리아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뒤로 나아오는 것이 종용한 것이며 그런자들에게 한말씀 한말씀을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눅7:38-
예배 때마다 누가 왔느냐? 교인수를 셀 것이 아니라 누가 마리아처럼 겸손히 나와 말씀을 양식으로 제대로 받고 갔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라도 믿어질 수 없으며 (엡2:8)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들을 때 내게 주시는 양식으로 받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롬10:17-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24장의 말씀은 큰 환난인 첫삼년반 환난에 관한 말씀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물어보게 하시고 답해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12:8-
젖 먹을 때가 된 것을 아는 어미는 젖(일용양식)을 미리 줍니다. 그런데도 우는 아이에게는 젖을 더 줍니다. 젖을 충분히 더 먹는 아이의 성장은 빠릅니다. 복음으로 살아난 자의 영을 자라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는 일용양식을 주시고 더 받기 원하는 자들에게 때에 양식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양식을 받고 자라나 아구까지 채워 세워서 때에 양식을 나누게 하신 자들은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복된 자들인데 먼저 첫째 부활의 복을 얻을 자입니다. 마24:45-
복음이 믿어지게 하사 영은 살았는데 일용양식을 받지 않으니 억지로라도 먹는 자리(병, 사건, 실패)에 두시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배고픈 것은? 세상을 좋아하고 육신만 좇아 살다가 주신 것을 다 잃고 주려 죽게 되는 때에 그때서야 탕자처럼 아버지 집에 양식이 풍족한 것을 깨닫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눅15:17-
자라게 하시고 직분을 주셨고 일하라고 은혜와 복까지 주셨는데 환난을 앞두고 신령한 기쁨인 영광의 복음인 꿀을 주신다고 하는데도 안 나오면 스바 여왕에게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12:42-
날마다 때마다 필요한 말씀을 양식으로 주시건만 받지 않는 자들은 43절에 이제 그들은 정욕에 빠져 더러운 짓을 하다가 가정마저 버리는 미친 자들이 되는데 그것이 귀신에 들린 것인데 자기 잘못은 모르고 이제 이전보다 더 악해져 후회와 원망뿐입니다. 마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