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워커는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1947년 그가 10세 되던 해에 온 가족이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로 이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워커는 큰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잘못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워커는 10대의 나이로 절도죄와 불법주거침입으로 전과자가 되었다. 1955년에 또다시 한 차례 주거침입으로 체포되자 지방법원은 워커에게 징역살이와 군복무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 전해에 학교를 그만둔 워커는 해군을 선택했다.
워커의 가족은 워커를 몹쓸 종자라며 무시해버린 지 오래이지만, 그런 워커도 해군에서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꾸준히 진급도 되었다. 그러던 1964년, 그는 생애에 중요한 분기점을 맞았다. 준위로 진급하고 싶었던 그는 일급기밀 취급인가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자격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소년범죄 전과가 있었다. 워커의 전과는 기밀취급 인가를 얻는데 장애가 되었지만 워커가 해군에 입대한 뒤로 업무 수행성적이 좋았고 이는 그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최종 판단한 해군 조사반은 그의 전과기록을 무시하기로 했다. 워커는 기밀취급 인가를 받았고 준위로 진급이 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미국 해군 역사상 매우 치명적인 실수였다.
1967년 결혼해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워커는 해군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전자통신을 전문적으로 맡은 그는 최신 통신체계를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그해 4월 그는 버지니아 주 노퍽에 있는 대서양 함대 본부의 감시장교로 파견되었다. 그곳은 기밀 중에서도 핵심 기밀이 총집합한 세계 기밀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이곳 통신센터를 통해 핵잠수함으로 일급비밀이 타전되었고, 각 함대에 작전명령이 하달되는가 하면, 이곳으로 해군 정보 보고서가 매시간 도착했다.

버지니아 주 노퍽항. 미국 대서양함대와 함대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통신은 국가안전보장국(NSA)이 제공한 일련의 최신 암호작성기를 통해 전송되었다. 이 기계는 단 몇 초만에 메시지를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경이로운 첨단장비였다. 슈퍼컴퓨터가 수학적으로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한 암호를 생성하는 이 첨단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 내부의 적이 기계를 손에 넣지 않는 한 말이다.
워커는 민첩하고 능률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차츰 업무 외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노퍽에 술집을 열었다. 해군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장사가 잘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평생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사업으로 날려버리자 그는 돈이 몹시 궁해졌다.
1967년 12월 22일 밤, 그는 나중에 스스로 고백한 대로 “순전히 일시적 충동에 따라” 일급비밀에 해당되는 암호작성기 KL-47의 사용법을 내부 복사기로 복사했다. 해군이 보유한 암호작성기 가운데 가장 노후한 기종이었다. 그는 복사한 종이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넣고는 무장한 해군 보초의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유유히 걸어나왔다.

KL-47 암호작성기
다음날 그는 워싱턴 D.C,로 차를 몰았다. 그는 전화번호부에서 소련 대사관의 주소를 찾아 택시를 잡아타고 NW16번가를 찾아갔다. 건물 앞에 선 그는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 행여 FBI가 자신을 감시하지는 않는지 두려웠다. 그는 차가 나가도록 대사관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순간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깜짝 놀란 경비에게 “보안 책임자를 만나고 싶소”라고 말했다.
대사관 안으로 안내된 그는 말쑥한 차림의 젊은 남자가 있는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KGB 요원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젊은 소련인은 그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를 소련에 팔 방법이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건네주었다.
소련인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곧 돌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돌아온 그는 워커에게 50달러 지폐 20장이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워커에게 영수증에 사인하라고 했다. 영수증은 첩보술의 기본이었다. 정부의 회계관리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정보요원이 포섭되었다는 증거자료로도 사용되었다. 나중에 더 이상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약속을 부인하는 이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곧이어 건장한 소련인 몇 명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한 사람이 외투와 테가 넓은 모자를 워커에게 건넸다. 워커는 시키는 대로 건네받은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 승용차 뒷자석에 올라탔고, 승용차는 대사관 문을 요란스럽게 빠져나갔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도 외투를 껴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승용차 뒷자리에 앉은 그를 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들은 버지니아로 달렸고, 30분 정도 지나 차를 세우더니 말없이 워커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차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
KGB 특유의 절차를 거친 존 워커는 이로써 소련의 스파이가 되었다. 곧이어 그는 노퍽 근처에서 소련인 한 명을 만났고, 그에게서 소형 스파이 카메라를 받은 뒤에 워싱턴 외곽의 시골에 있는 투하지점에 관해 상세한 지시를 전달받았다. 얼마 안 가서 워커는 미국의 최신 암호작성기인 오레스테스(ORESTES)에 관한 상세한 설명서를 포함해 통신센터에서 빼낸 귀한 자료를 투하지점에 잔뜩 떨어뜨렸다. 워커가 건네준 기계 제작도해서와 작동설명서를 이용해 소련은 소련식 오레스테스를 만들었고, 이로써 미국의 일급 군사통신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KW-7 오레스테스 암호작성기
1968년까지 워커는 KGB에서 매달 4,000달러를 받았다. 한번은 그의 첩보활동이 들통날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기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워커의 아내 바바라는 남편의 책상 맨아래 서랍에 숨겨진 금속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필름이 여러 통에, 시골 도로를 찍은 듯한 사진과 함께 “회전판에 대한 정보 필요”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쪽지 밑에는 “이 쪽지를 폐기하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아내와 마주친 워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난 스파이요” 바바라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당국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가족은 파멸이라는 생각에 결국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긴 워커는 이제 자신의 작전 영역을 넓힐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샌디에고로 자리를 옮겨 해군 무선통신 전문가인 제리 휘트워스(Jerry Whirtworth) 중사와 친분을 맺었다. 그러 다음 조심스럽게 그를 포섭했고, 휘트워스가 돈에 쪼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휘트워스의 친이스라엘 성향을 알았던 워커는 소위 ‘가짜 깃발’ 포섭작전을 이용해 자기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밀자료를 빼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휘트워스가 이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는 해군의 일급 무선통신 체계의 상세한 내용을 넘겨주기 시작했다.

제리 휘트워스 중사. 그는 나중에 워커의 스파이 활동에 동참한 혐의로 체포되어 36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자백을 하고 감형을 받는 플리바긴 제도로 1년만 복역후 출소하였다.
1971년 KGB로부터 더 많은 암호자료를 넘기라는 압력을 받은 워커는 미국 정보수집함 ‘나이애가라 폭포’에 오르겠다고 자원했고, 이어 베트남 근해로 떠났다. 워커가 알다시피 이 함정은 베트남에 주둔한 모든 미군의 주요 통신센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워커는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기밀자료체계 CMS(Classified Meterials System)의 관리자로 임명되었고, 이로써 베트남 주둔 미군과 미국 내의 지휘본부 사이에 오가는 기밀 통신문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얻었다. 또한 매우 중요한 기밀문서를 사이공에 주둔한 미군 본부에 직접 전달하는 특수 연락병의 역할도 이따금씩 맡아했다.

미 해군 정보함 나이아가라 폭포호
워커는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알짜 정보만을 골라, 본국으로 떠나는 휴가기간 중에 KGB에게 떨어뜨렸다. 그러면 KGB는 그 대가로 적잖은 돈을 건넸고, 그도 그럴 것이 워커가 건넨 자료 덕에 소련은 북베트남에 대한 미국 공군과 해군의 공습작전명령과 B-52 폭격기 공습시에 사용되는 암호체계를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북베트남이 미국의 특정 공습목표를 어떻게 미리 알아채는지 그리고 남베트남에 있는 북베트남군은 B-52기가 공습할 예정인 지역을 어떻게 그렇게 용케 알고는 미리 빠져나가는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지만 적이 미국의 신호를 읽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베트남이 그런 능력을 개발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소련이 신호를 읽어 북베트남에게 귀띔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좀더 그럴듯한 방법도 생각해봄직했건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 해군은 소련이 미군의 전함배치르 항상 미리 알아채는 것 같다는 의심이 일기 시작했다. 아무리 비밀리에 훈련을 해도 어느 순간에 알았는지 번번이 소련 군함이 나타났다. 그래도 미국은 암호체계가 유출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핵심 암호체계는 수시로 바뀌었고, NSA 전문가는 소련이 아무리 기를 써도 이번 암호체계만큼은 결코 공격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1985년 인도양에 비밀리에 배치된 미국 해군 특수부대 앞에 갑작스럽게 출연한 소련의 순양함 프룬제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작은 구멍하나가 어마어마한 일이 되어가네요.
.....1명의 스파이가 최강의 미군 정보를...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