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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선생님의 깨달음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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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은, 새겨 삶에 실천해야 마땅하나,
거짓과 부패 그리고 교만의 종교는 없애야 마땅하다!!!"
1. 도올 선생님의 깨달음이 옳습니다. 이 땅의 대중종교들은 사라짐이 옳다. 다만 성현들의 가르침만이 남고, 그 가르침들이 시대적 세계관에 맞는 사상으로 발전하여 생활과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2. 특히 이 땅의 한국개신교, 교회는 그들이 말하는 복음과 정반대 개념의 자본주의의 물질 추구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결합되어 있는 변질된 종교가 되어버린 것은 초창기부터 하이어라키(hierachy)화 되었기 때문이다.
3. 그들은 소위 종교개혁을 불러왔던 베드로 성당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어내던, 그러나 그들 사제의 질좋은 삶을 위해 만들어 낸 중세 카톨릭의 "면죄부 신앙"... 이 ...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 버젓이 '성행하고 있는데도' .. 정작 그들은 예수 가르침을 믿기는 커녕, 따르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4. 그곳의 '목사' 들에게는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없다 ..그들이 바로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임스강)
https://youtu.be/XnAMlvkrp2c
도올 김용옥이 전하는 현실에 대한 철학과 사상
1. 사상이란 정교한 언어의 결구가 아니다. 반드시 그 언어가 위치한 그 시대, 그 사람들과 교감될 때만이(시대적 방편으로서 교류될때) 그것은 사상으로 역사에 남는다.
2. 우주의 궁극적 실재가 무엇인가? 과연 이런 질문이 현재 한국인의 철학이 될 수 있을까? 도올은 그것은 “*오치된 질문의 오류"(화이트헤드A.N Whitehead의 유기체 철학에서 나온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철학적 관심은 무엇일까?
3. 올 대선에서 누가 이길까? 박근혜는 과연 누구인가?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를 과연 이해하고 있는가? 안철수는 누구인가? 손학규, 문재인, 김두관 후보 이들 캐릭터는 과연 우리 역사가 당면한 고난의 역경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이러한 등등의 문제야말로 현재 한국인들의 진정한 철학적 과제상황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우주 · 천지, 그리고 종교 · 역사의 제 문제로부터 근원적으로 파헤쳐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그 총상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이 책은 도올 자신의 언어로 쉽게 아주 기초적인 문제를 일깨우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으며, 매크로하고도 마이크로한 모든 인간상황이 제기되어 있으며, 이 모든 상황에 대하여 철저히 우리의 통념을 뒤엎어 버린다. 이 책은 청춘의 의미, 그리고 섹스, 사랑, 일상적 삶의 방식, 음식에 관하여 매우 자상하게 그 처방을 소개해 준다. 인간이 웅혼한 생명의 존엄성을 깨달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원리를 터득케 해 준다. 오늘 한국의 청춘이라면 누구든지 뜨거운 가슴으로 이 책을 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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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사랑하지 말자>는 도올 김용옥이 젊은이들에게 쓴 철학서이다. 도올은 이 땅의 청춘들에게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설파한다. 후기에 밝혔듯이 도올은 독자를 생각해서 쉽게 쓰려 노력했다. 노력은 했지만,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제5장 '우주'와 제6장 '천지'는 특히 어렵다.
A : 우주란 무엇입니까
도올: 나는 우주를 잘 알지 못한다.
1. 우주 파트의 첫 번째 대화이다. 우주를 모른다는 사람이 우주에 대해, 6장 '천지'까지 포함하면 100페이지나 넘게 쓰셨다. 모르는 사람의 설명 때문인지, 독자는 책을 읽을수록 우주를 더 모르게 되거나, 더 이상 우주를 알고 싶지 않게 된다. 나는 '기가 승하면 리가 발한다'는 부분에서 책을 잠시 덮었다. 우주는 역시 칼 세이건이다. 도올의 우주는 어렵고 잠이 온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이 아니라면 '우주'와 '천지'는 건너뛰어도 좋다.
2. 책은 2012년에 나왔다. 안철수의 인기가 50%를 육박하던 시절이다. 시의성이 있다. 특히 제4장의 '대선'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본다면 지금 읽어도 꽤 유용하다. 도올은 '안철수 현상'을 천심으로 규정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 정치가 그 천심을 담아내지 못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우리들 이면에, 자본을 향한 천박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도 일깨워준다.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다시 회복하고 현실화시키느냐가 우리의 과제가 아닐지.
3.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춘, 역사, 조국, 대선, 우주, 천지, 종교, 사랑, 음식 순이다. 구성은 가상의 학동과 도올이 문답하는 형식이다.<사랑하지 말자>의 밑바탕에 깔린 도올의 사상은 서구라파의 사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우리는 서구의 잘못된 사상에 너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양이 가진 철학적 성찰을 하찮고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서구의 사상을 위대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사대를 타파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4. 서양 철학은 스스로 만든 '신'을 죽이느라 수천 년 동안 지랄한 사상으로 규정한다. 미국 대통령은 아직도 성경책에 손을 얹고 취임을 한다. 동양은 이미 주나라 시절, 신 중심의 왕조를 인간 중심의 질서로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공자도 인간 스스로의 가능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신에게 비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학 역시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라 주장했다. 하느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해야 할 곳은 우주 밖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개개인의 역사 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도올을 통해 깨닫게 된다.
5. 도올은 영화 <더 스토닝>과 <고양의 유령>을 강추한다. 신의 민낯을 이해하는 데 좋은 영화이다. 기독교가 역사 밖에서 천당을 추구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역사의 잔혹함을 엿볼 수 있다. 서구라파가 지향하는 이데아의 구현은 결국 타노스(영화 <어벤저스>의 등장인물, 우주 평화를 위해 우주 인구의 절반을 죽이려 한다)의 인간 학살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6. 역사는 진보한다는 서구의 사상 역시 비판한다. 고대에는 노예제이고 중세에는 봉건제, 근대에는 자본제였다가, 최후에는 공산제로 진보한다는 역사 진보론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두 천박한 서양의 시화적 가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시대의 우연적 산물이 만들어낸 가치들의 총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7. 신이 그러하듯, 역사의 목표 역시 역사 밖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양의 오만한 진보론적 역사와 철학이 이 인류사에 저지른 만행은 얼마나 추악한지. 전 세계가 이상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진보론적 세계관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정당화시켜줬는가. 도올은 과학기술의 발달도, 삶의 양식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미개고 우리는 문명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8. 역사의 진보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서양이 제3국에 저지른 만행을 용인하게 되는 꼴이 된다. 일제의 만행은 철길 놓아준 고마움으로 승화되고, 독재 시절 경제 부흥은 독재에 맞서다 죽은 모든 이들을 개죽음으로 만든다.
9. 도올은 서양이 말하는 '이데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허상에 불과한지 통렬히 비판하면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고찰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역사, 종교, 대선과 사랑, 그리고 음식에 대한 편견을 벗겨준다. 사대를 버리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 내재된 사상과 힘을 믿으라고 설파한다.
10. 도올은 청춘에게 고한다.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청춘은 모험이라며, 모험을 멈추는 순간 청춘은 비극의 해탈로 끝날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오늘날의 모든 청춘들에게 역사의 영웅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청춘은 쪼들리는 것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등록금, 스펙 쌓기, 아르바이트, 취직 등, 먹고사는 문제의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11. 간은 리비도 때문에 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신화를 창조하려는 충동 때문에 꼴리는 것이라 한다. 꼴리는 꿈을 꾸라고 권한다. '신', '대기업', '돈', '아파트'는 일반명사라며, 일반명사는 보편자의 허구성을 지닌 것이라 한다. 그러나 꿈은 명사가 아닌 행위의 과정이라고 한다. 도올의 이 주장은 <사랑하지 말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이 문장을 이해한다면 책의 90%는 이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12. '대기업 월급쟁이 되려고 지랄하지 말'라는 도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철학자, 도올. 대중과 소통하는 도올의 <사랑하지 말자>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13. 시장 한복판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으로 죽는 순간까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스러져간 전태일(1948~1970)의 무아적 행위 속에서 "예수 사건"을 감지했다. 예수는 대상화되어서는 아니 되며 오직 나의 실존 속에서 십자가 사건으로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1. 안병무는 그의 행위 속에서 "예수사건"을 감지했다. 팔레스타인 갈릴리의 지평의 사건이 아닌 오늘 여기 우리의 실존의 지평의 사건으로서 재해석한 것이다. 예수는 대상화되어서는 아니 되며 오직 나의 실존 속에서 십자가사건으로서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21)
2. 만약 노무현이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질 않고,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든가, 그리고 특검 같은 바보짓을 하지 않고, 이라크파병의 조건으로 평화협정이나 휴전선왕래의 모든 이니시어티브를 장악하는 조치를 취했더라면 "자유왕래"는 중국의 양안관계 이상으로, 변질될 수 없는 우리역사의 대세가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그렇게 위대한 기회들을 다 유실하였다. 그까짓 자식 학비 변통한 사소한 일 때문에 자살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 일 년 동안 미국CIA의 권총을 맞을 각오를 하더라도 한번 민족의 주체적 이니시어티브의 염원을 실현했더라면 그는 마하트마 간디나 윈스턴 처칠을 능가하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릇이 작다. 우리가 무엇을 더 개탄하고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 것인가? (44)
3. 역사가 혼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 혼돈에서 너 자신의 새로운 코스모스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너의 역사의 의미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느냐? 왜 역사의 의미를 역사 그 자체에 고정시켜 놓고 굴종적으로 순응하려 하는가? 역사라는 카오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코스모스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앞서 말한 청춘의 모험이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순응하는 사람이지 진정한 청춘의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64)
4. 인생은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은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도전이 없이 젊음은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젊다! (144)
예를 들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때문에 양자역학이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은 개구라에 불과하다. 양자역힉은 이전의 역학적 가설로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성이나 변칙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 내재적 치열한 흐름을 파악하지 아니 하고, 환상적 사유와의 유사성에 의거하여 우주론의 공통성을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대가 진정으로 우주를 알고 싶다면 나 같은 철학자에게 묻지를 말고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이 말하는 대부분의 진리조차도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며, 그 추론의 영역에는 인간의 가치나 시대정신이나 문명의 색깔이 전적으로 배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물리학이 우주에 대한 정합적 사고에 있어서는 철학보다 훨씬 더 면밀하고 포괄적이라고 생각한다. (147)
6. 그러나 나는 앞서 흄의 "인상"을 원자론적으로 분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듯이, "자유"와 "필연"도 결코 칸트가 말하는 것처럼 대적적으로 설정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유는 필연 속에 내재하며, 자유속에 필연이 내재한다. 칸트의 초월철학 내에서 이러한 역설이 가능할 수 없는 것은 필연을 시공의 인과관계의 필연으로 보고, 자유는 그러한 물리학 자연의 인과를 초월하는 시공의 제약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확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공의 제약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진정한 도덕적 존재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의 "성誠"의 철학이 말하는 도덕은 철저히 자연과의 연속성 속에서만 확보되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가 물리적 영역과 함께 도덕적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163)
7. 문제는 A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면, 그 신념의 정당성에 대한 치밀한 이론이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을 현실화시키는 구체적 실천에 헌신하는 치열한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상 치밀한 이론과 치열한 실천이 없으면서 방관자로서 점만 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현실 속에서는 검토되지 않는 대세에 떠밀려 또 다시 역사를 유실케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미래의 운수를 믿지 말고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다. (212)
너의 반론은 적확하다. 우리는 어떠한 사상도 맹목적으로 두둔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사회체제 그 자체와 함께 직조되어 있는 상식이며 가치이며 의례이다. 유교의 타락은 상식의 타락을 의미한다. 조선왕조는 이미 자기 경신을 꾀할 수 있는 자체능력을 상실했다. 정조나 채제공과 같은 상식적 인물이 조금만 더 버티었더라도 기독교는 이 땅에서 보다 건강한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 신유사옥의 폐해는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안정복의 논리적 비판에 대답할 필요도 없이 감정적으로 민중의 심리를 사로잡고, 조선왕조의 몰락에 대한 정의로운 대안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권력이 기독교를 포용하는 정책을 견지했다면 한국기독교도 현재 인구 1% 미만의 기독교신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기독교처럼 의식있는 지식인들의 격조 높은 연구모임이 되었을 수도 있다. (261)
하여튼 기독교는 "개화"라는 문명의 주제와 결부되면서 외세와 결합하는 상층으로 떴고, 동학은 반외세의 민족주의와 반초월신의 인간존엄을 외치면서 풀뿌리 민중으로 가라앉았다. 기독교는 근대적 의료 교육의 주체세력이 되면서 갑오경장이래로 새롭게 개편된 사회질서 속에서 중인 상민 상인 출신의 신상층계급과 확고하게 결탁한다. 뼈대 있는 골수 양반의 자제들은 오히려 척사의 의병운동이나 무장투쟁을 전개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의 개화사상과 결탁한 사람들은 대체로 애매한 "애국계몽"의 길을 걸었다. (264)
그러나 그들이 명료하게 알아야 할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종교가 역사를 리드한다는 착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종교는 역사보다 앞서가면 안된다. 그것은 중세기적 발상이다. 종교는 역사를 뒤따라와야 한다. 역사는 오류도 많고 불행한 사태를 필반한다. 종교는 역사를 뒤따라오면서 겸손하게 그러한 역사 수레바퀴의 잔재를 수습하기만도 버거울 정도로 일이 많은 것이다. (273)
"보편적 사랑Universla Love"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관념으로써만 존재하는 이데아일 뿐이다. ... 누가 과연 전 인류를 사랑해보았는가? 역대 미국의 대통령이 단 일초라도 전 세계 인민을 빼놓지 않고 다 사랑한 적이 있겠는가? ...... 도대체 왜 인류를 사랑해야 하는가? 나는 말한다. 사랑은 하지 않을수록 좋다. 젊은이들이여! 사랑하지 말지어다.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