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코브라의 춤 》
시 58:1~11
〈 1 코브라 효과 〉
오늘 설교 제목이 《 코브라의 춤 》입니다. 코브라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인도에는 맹독성 뱀 코브라가 있습니다. 한 번 물리면 즉사하는 수도 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 영국이 코브라 퇴치를 위한 정책을 폈습니다.
코브라를 잡아 오면 한 마리당 얼마씩, 돈을 지급하는 정책입니다.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면, 코브라 개체 수는 금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데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줄지 않고 날로 늘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인도 사람들이 코브라 농장을 지어 집단으로 사육에 나선 것입니다.
갖다 바치면 돈이 되니, 본격적으로 코브라를 키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코브라를 없애려고 시행한 정책이 역효과를 내어 코브라가 더 늘어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코브라 효과’라고 부릅니다.
☞ 사람들 참 영악스럽습니다. 돈이 된다면 물불을 안 가립니다.
한국에도 수년 전, 교통법규 위반차량 신고포상 제도를 시행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카파라치’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아주 사소한 위반까지 동영상을 찍어 신고하는 통에 오히려 교통의 방해가 되었습니다.
결국은 제도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코브라 효과’입니다.
☞ 돈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속성, 선입니까, 악입니까?
사람들 참 영악합니다. “영악하다!” 선하다는 뜻입니까, 악하다는 뜻입니까?
코브라는 맹독성으로 유명하지만, 목 뒤로 펼쳐지는 후드가 시선을 끕니다.
인도 사람들은 고대시대부터 코브라 춤으로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코브라를 잡아서 바구니에 담아서 이동합니다.
관광객들 앞에서 바구니 뚜껑을 열고 피리를 붑니다. 그러면 코브라가 고개를 내밀지요.
처음에 사람들이 기겁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구경꾼이 됩니다.
이렇게 관광객을 모았습니다. 코브라 춤, 일명 코브라 댄스라고 합니다.
코브라 춤을 연출하는 마술사는 아마도 수천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 독사가 춤을 추게 하는 마술, 시편 58편에 등장합니다.
〈 2 시편의 독특성 〉
시편 58장은 “통치자들아~”로 시작합니다.
모름지기 백성은 통치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합니다.
만일 통치자가 악인이라면 어찌 됩니까, 온 나라가 시끄럽지요.
시편 58장은 ‘악을 행하는 통치자를 꾸짖는 시’입니다.
(1~2절)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2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인류 역사를 보면, 통치자들이 올바르게 통치한 시대가 참으로 드뭅니다.
권세를 거머쥔 통치자들은 백성의 평강보다는 자기 욕심을 먼저 채웠습니다.
언제나 백성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며 살았습니다.
시편 58장은 이러한 통치자의 악행, 시인이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 성경에서 시편이 가지는 독특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익히 아는바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땅으로, ‘탑다운 방식(top-down system)’으로 다가오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아래로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의 책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시편은 ‘바텀 업 방식(bottom-up system)’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탄원하고 기도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아뢰는 내용이 시편입니다.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잘 진단한 다음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시편 58장에서 시인이 하나님께 통치자의 악에 대해서 탄원합니다.
통치자의 악, 다스리는 자의 악행, 이것을 하나님께 고하는데, 시인은 비유법을 씁니다.
☞ 시인은 악행하는 통치자를 ‘춤추는 코브라’에 비유하면서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 3 비유의 이중주 〉
고발할 때, 고발장을 잘 써야 승소합니다. 하나님께도 그렇습니다.
(4~5절)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악을 행하는 통치자, 이들은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이 비유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통치자는 독을 가진 독사’로 은유합니다.
둘째, ‘악을 행하는 통치자는 술객의 요술에 따르지 않는 독사’로 은유합니다.
백성이 왕을 통치자로 세우는 일은, 백성의 생사여탈 권한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왕이 되면 백성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가집니다.
왕은 마치 코브라가 독을 가진 것처럼 백성의 생명박탈권을 가집니다.
그 독을 가지고 선정을 베풀면 성군이 되고, 악정을 베풀면 폭군이 됩니다.
이 이치를 독사가 독을 품은 것에 비견했습니다.
그리고 악행하는 통치자는 마술사의 피리소리를 거역하는 독사로 비유했습니다.
참 놀라운 비유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코브라의 춤 》입니다.
〈 4 코브라의 어금니를 꺾어내소서 〉
시인이 피리소리를 거부하는 통치자를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탄원하는 구체적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독사의 이빨을 뽑아주세요, 어금니를 꺾어주세요!”(6절)
“하나님이여,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옵소서!”(7절)
“하나님이여, 그들의 화살을 꺾어주세요!”(7절)
“오 주여, 땡볕에 녹아버리는 달팽이 같게 하시고,”(8절)
“만삭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8절)”
어떻습니까? 논리가 정연합니다. 그리고 중언부언하지 않습니다.
탄원하는 내용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설득력있습니다.
☞ 하나님도 거부하지 못하실 정도로 시가 짜임새가 있습니다.
〈 5 비유의 삼중주 〉
오늘 설교 제목이 《 코브라의 춤 》입니다.
코브라의 춤, 특히 인도에서 성행합니다.
아득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춤을 추는 코브라, 다행스런 것이 있습니다.
술객들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코브라의 이빨을 미리 뽑아냅니다.
어떤 술사는 코브라의 독을 완전히 제거한 다음 《 코브라의 춤 》을 연출합니다.
시편 58편이 쓰여진 때는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입니다.
그때 이미 독사를 가지고 사람들은 돈벌이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 코브라의 춤 》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현대에도 통치자는 매우 큰 권력을 갖습니다.
21세기 한국의 대통령에게도, 한국인은 꽤 큰 권력을 쥐여줍니다.
대통령은 그 권세를 어떻게 행사해야 합니까?
☞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편 58장에서 세 번째 비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첫 번째 비유는 ‘통치자는 독을 지닌 코브라다’
두 번째 비유는 ‘악행하는 통치자는 피리소리를 거부하는 코브라다!’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세 번째 비유는 ‘독사를 부리는 술객은 누구인가?’입니다.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가진 통치자는 ‘누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가’입니다.
코브라는 춤을 연출하는 마술사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마술사의 ‘피리 소리를 거부하는 코브라’ 마태복음의 말씀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마 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시편 58편에서 세 번째 비유는,
“독사를 부리는 피리소리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시편 58장에서 드러나는 ‘비유의 삼중주’를 정리합니다.
첫째 ‘통치자는 독을 지닌 코브라다’
둘째 ‘악행하는 통치자는 피리소리를 거부한다!’
셋째 ‘피리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 6 시인의 간절한 기도 〉
시편 58장을 제대로 한번 감상했습니다.
독사가 독을 가지고 창조 순리에 맞게 독을 쓰면 약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순리에 어긋나게 독을 뿜어내면 애먼 사람이 죽습니다.
이 이치에 따라 시인은 통치자의 악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통치자의 악행을 하나님께 고발합니다.
길지 않은 한 편의 시로써 어쩌면 이렇게 짜임새 있게 드러낼 수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감탄하게 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통치자의 악행으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통치자가 술사의 피리소리를 거부하고 독을 내뿜어 인명을 살상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죄없는 백성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 코브라의 춤 》을 떠올리면서, 3가지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통치자는 독을 지닌 코브라다’
둘째 ‘악행하는 통치자는 피리 소리를 거부한다’
셋째 ‘피리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막강한 권세를 지닌 통치자의 속성을 누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까?
시편의 시인이 아니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시인은 왜 이렇게 비유의 시를 써서 하나님께 탄원합니까?
시인이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11절)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이보다 더 간절한 기도가 어디에 또 있습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은 시인의 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함께 간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