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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대군은 1420년(세종2) 음1월 6일 - 1469년(예종1) 음1월 21일이다. 휘는 구, 자는 헌지이며, 시호는 정간이다. 부왕은 조선왕조 제4대 세종대왕이며 모후는 영의정 심온의 따님 소헌왕후 청송심씨이다. 첫번째 배위는 좌의정 남지의 따님 의령남씨인데 (정신질환)으로 이혼하였고 두번째 배위는 우의정 최승령의 따님 제안부부인 전주최씨이며 1남 오산군 준, 2남 구성군 준, 3남 정양군 순, 4남 팔계군 정, 5남 흠성군 징과 2녀를 낳았고 세번째 배위는 부부인 안동안씨이며 6남 영양군 함, 7남 단계부정 인, 8남 수산군 탁, 9남 옥천군 옥 등 5녀를 두셨다. 구성군, 팔계군, 흠성군은 무후하고 6명의 후손은 6만을 헤아리며 5백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전주최씨 소생 따님 (중모현주)는 영의정 신승선에게 시집을 가 좌의정 신수근 3형제와 연산주 비 거창신씨를 두었다. 세종10년(1428) 대광보국 임영대군에 봉해지고 세종12년(1430)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442년(세종24) 원윤 조선초기에 종실의 대군 혹은 군의 양첩 장자에게 주던 작호가 되었다. 1445년(세종27)에는 부왕의 명을 받아 총통을 제작 감독하였는데 종전의 화살은 2-3백보 날아간 반면 그가 제작한 화살은 천여보 안팎까지 날아가 대군을 병기와 군사에 관한 지보라고 불렸다. 또한 종성지방의 경재소 일을 관장하였고 문종 즉위년(1450)에는 화차를 제작하였다. 대군은 천성이 활달하였고 무예와 의론에 뛰어났으며 사람들을 대하는데 교만하지 않았다. 단종대왕의 선위전후 (수양대군)은 여러 아우들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챈 대군은 경기도 광주 의곡(현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으로 은신하여 초가에 불상을 모시고 종묘사직과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 대군은 영월을 바라보고 (망배)하며 전왕을 흠모하였으며 산 이름을 (낙양)을 사모하는 산이란 뜻으로 (모락산)이라고 불렀다. 망배하던 바위를 (사인암)이라 명칭하고 주변의 마을을 의곡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469년(예종1) 1월 21일 향년 50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는데 자손들에게 유훈을 남기기를 (왕자 왕손간에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이었다. 또한 자손들을 불러 모으고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친히 (사후에 조가의 예장을 받지 말고 신도비를 세우지 말라)고 쓰고 이어나는 본디 안평형님과 금성아우와 함께 절의에 죽고자 하였다. 하고 붓을 놓고서 숨을 거두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유지를 참작하여 간단하게 장례를 치르고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다. 후세에 묘비만을 세우고 행장은 진산군 (강희맹)이 지어 석함에 담아 상석 밑에 묻었다고 한다. 임영대군 묘와 사당을 찾아 가려면은 백운저수지, 과천 의왕간 도로에서 (안내표시판)에 따라 우측 능안길로 접어들어 고속화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임영대군) 묘소재지가 나온다. 원래 사당은 마을쪽에 있었으나 조선후기쯤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한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3칸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가운데 방에는 대군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양쪽방에는 제기와 제복 등이 보관되어 있다. 사당은 크지는 않지만 건물의 짜임새나 균형이 잘 맞추어져 있다. 묘비는 (조선개국 533년) 1924년에 중건되었다. 시호는 정간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98호
묘소재지는 경기도 의왕기 내손동 산154-1
일시 :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11시 30분
장소 : 임영대군 사당묘정
주관 : 임영대군파 종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익양군파 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