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은 우리가 빠져들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감정 중 하나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자신의 진실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물론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에 압도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은 편두통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괴롭히는 자기 의심과 무가치하다는 느낌의 구름에 둘러싸이게 되고, 삶이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전혀 볼 수 없게 된다.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더 사랑하고, 더 깨어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 더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벌할 때, 우리는 절망과 희망 없음의 악순환에 갇힐 수 있다. 그러면 자기 자신과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힘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당신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전적으로 괜찮다. 그리고 때때로 길을 벗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저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며,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활용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바로 지금은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 잊혀진다. 성취하려는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당신은 지금 자신이 있는 낙원과의 접촉을 잃는다.
이것은 가장 자유롭게 해주는 접근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지금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죄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성스러움에 대한 모든 것도 잊어라. 둘 다 어리석다. 이 둘은 함께 인류의 모든 기쁨을 파괴해왔다.
죄인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의 기쁨은 사라진다.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교회에 가서 이것을 잘못했고 저것을 잘못했다고 고백한다면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겠는가? 잘못, 잘못, 또 잘못…… 당신의 삶 전체가 죄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당신은 무거워지고 짐을 짊어진다. 죄책감은 바위처럼 가슴 위에 내려앉아 당신을 짓누른다. 그것은 당신이 춤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떻게 춤출 수 있겠는가? 죄책감이 어떻게 춤출 수 있겠는가? 죄책감이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는가? 죄책감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죄책감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짐을 짊어진 채,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 된다. 그는 이미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통찰의 자리가 빛이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든 끌어내리고 검댕을 묻혀서 빛나지않게 하려는 거...그 흐리게 만든 표면 아래에마저 여전히 빛은 존재한다는것을 잊지만 않으면 된다.
the 는 늘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결과완 상관없이 그저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