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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시 128: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잘하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우리 가정을 행복되게 만듭니까?” 돈입니까? 환경입니까? 좋은 교육입니까? 오늘 시편 기자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이 있는 가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출발점은 환경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복은 관계를 통해서 주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경외'란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 앞에 거룩한 떨림과 존경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 길을 믿음으로 걷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성취하실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따라 걷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것은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의 건강한 모습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 가정의 구성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1.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입니다(1-2절).
1-2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성경은 복된 가정의 시작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버지'로부터 찾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경외'란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내 삶의 주권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 앞에 떨며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것이 제사장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세상 풍조가 어떠하든, 나와 우리 집은 여호와를 믿고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이 아버지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단순히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영적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족을 대표하고, 가족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 가정에는 영적인 질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가 수고한 대로 먹는다는 말은 그의 계획과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아내와 자녀들이 다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복받은 가정의 모습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담당하는 가장의 역할에는 아내와 자녀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하고 채워주는 현실적인 것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어 온 가족이 바르게 살아가도록 지지해주는 정신적인 기둥과 같은 역할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이라고 할 때, 세상 사람들에게는 세상적인 도덕관이나 가치관을 교육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교육은 가정에서 가장이 제사장직을 잘 수행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이 제사장직을 가정의 남편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이 남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가치이자 정체성입니다. 그런데 이 권위는 가정에서 온 가족과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데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5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성전안에 있는 4가지 기구를 생각하면 됩니다. 1)번제단- 성전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번제단입니다. 제사장은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 예배생활입니다. 앞장서야 합니다.
2)물두멍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전에 먼저 손과 발을 닦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사이에 막힌 담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결입니다.
성소안에 들어가면 세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3)분향단입니다. 중앙에 있습니다. 향을 피워 향연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의미합니다. 쉬지않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4)촛대입니다. 촛대는 어두운 성소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가 되도록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떡상입니다. 떡은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신선한 떡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떡을 새것으로 갈아줍니다. 말씀의 떡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 인격이 되고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배생활, 기도생활, 빛된 삶, 말씀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사장적 권위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은 단순히 땀흘려 노동하고 수고하여 먹을 것을 공급해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가사에 보탬이 되도록 수입을 올리는 일은 경우에 따라 여자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제사장직은 그 가정의 가장에게 주신 영적인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가장은 무슨 일을 결정할 때는 먼저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언제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닫고 그 뜻을 선택하고 결정함으로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다는 사실을 온 가족 구성원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의 제단에서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영적인 권위를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가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또한 가정 제단의 제사장으로서의 영적 권위를 지킬 수 있도록 힘써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2. 어머니는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3절).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아내나 어머니를 '결실한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포도나무는 스스로 서지 못하고 지지대를 의지하며 자라지만, 그 어떤 나무보다 풍성하고 달콤한 열매를 맺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여름 과일을 대표하는 작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내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가운데 가나안 땅의 비옥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세 종류의 여름 과일을 가지고 왔습니다.
민 13: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열매였습니다. 그 중에 포도송이는 얼마나 컸던지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올 정도로 컸습니다. 오늘날도 요르단에 가면 10kg이 넘는 포도송이가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엄청난 열매를 얻은 것입니다. 현명한 아내로 인해 이러한 결실을 맺는다고 할 때 얼마나 귀한 아내로 여겨지겠습니까?
성경은 포도주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시 104:15)이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남편의 몫인 곡식으로 만든 빵과 대비되는 음료로서의 포도주 역할을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주가 지닌 의미처럼 가정 안에서 즐거움을 제공하는 원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포도주는 풍성함, 넉넉함, 향기로움과 더불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의 두 번째 모습은 아내, 즉 어머니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리용어로 안방주인입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만드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어머니는 말씀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듣기보다 삶을 봅니다.
1)믿음은 삶으로 전수됩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믿음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바로 한나입니다. 한나는 눈물의 기도 끝에 아들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녀를 내 소유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살리는 영적 지도자가 됩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한 시대를 살린 것입니다.
2)어머니의 신앙은 자녀의 영혼에 뿌리내립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를 보며 그의 믿음의 뿌리를 언급합니다. (딤후 1:5)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유니게는 환난 중에서도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 여인이었습니다. 그 실천적인 믿음이 아들 디모데를 위대한 전도자로 키워냈습니다. 어머니의 '실천'은 백 마디 말보다 강한 교육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삶 속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집에서 드리는 가정예배, 식사 전 감사기도, 눈물의 중보기도, 그 모든 것이 자녀의 영혼에 새겨집니다.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들이 방황하며 교회를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아들의 방 문고리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몇 년 뒤 그 아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왔고, 지금은 교회 충실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여러분, 가정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잔소리가 아니라 말씀의 본입니다. 자녀는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보고 하나님을 배웁니다.
오늘도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어머니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의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가난 속에서도 9남매를 오직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닳고 닳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말씀을 실천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정의 심장이며, 말씀을 삶의 맛으로 변환하는 요리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인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펴서 읽고 묵상하며 말씀이 삶이 되어야 말씀이 나의 생각이 되고 내 말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투데이는 ‘강력한 성경읽기습관을 기르기 위한 3가지 방법’을 발표하였습니다. 1)읽을 시간을 정해 놓고 성경을 읽으라. 2)계속해서 읽으라. 3)읽고 깨달은 것을 실천해보라.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우리에게 깨우쳐주시고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말씀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읽어야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여성은 어머니이면서 또 한 남편의 아내입니다. (엡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성경에서 복종은 맹목적인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자발적인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억지로의 복종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헌신과 순종으로 남편을 세우고 자녀를 세워 거룩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 3:1-2)에서도 “아내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예수를 알지 못하는 남편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영웅심이 강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인정을 받기 원하던 남자들은 결혼해서는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온세상이 칭찬을 해 주어도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기를 펴지 못합니다. 체면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속으로 은근히 아내로부터 칭찬받고 격려받고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남편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와주는 것이 아내의 역할인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어머니는 농사를 짓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카루소는 성악가가 되고 싶었으나 그의 주변의 어떤 사람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어머니만이 그의 유일한 후원자였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할 수 있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 그 가르침이 세계적인 성악가로 카루소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는 남편과 아이들의 삶을 세워주고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위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음으로 깨닫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어머니요 아내가 되신다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아래 경건한 가정으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남편과 자녀들을 밖에 보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를 구하며 기도하는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는 가정은 결실한 포도열매가 있는 풍요와 안식이 있어 새힘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있는 가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3. 자녀는 믿음의 계보를 이어갑니다(3절).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자녀를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한 것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는 성장이 매우 더딥니다. 하지만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수백 년, 수천 년을 살며 귀한 기름을 공급합니다. 감람나무는 아무리 수령이 오래되어도 항상 새로운 가지가 나와서 신구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천 년이 된 고목감람나무인데도 새싹의 어린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자녀를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부모들이 지켜온 신앙을 대대로 이어가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도 곧 자라고 결실하여 감람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감람유”를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힘있고 건강하게 자라는 자녀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되는 '미래의 주역'입니다.
오늘 부모의 식탁에서 말씀을 먹고 자란 자녀들이 내일의 교회를 세우고 믿음의 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계보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셨지만, 그의 복이 이삭과 야곱에게로 흐르길 원하셨습니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모로 세우신 목적은 명확합니다. 우리 대에서 신앙이 끊기지 않고, 감람나무처럼 무성하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의 자녀들은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복을 받기 위해서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명예나 재물이 아닙니다. 물질이나 명예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녀들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물질은 그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일으키고 세워준 것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사랑의 기억이었습니다.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아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주 좋지 않았다면 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았을뿐더러 생각이 났어도 아버지께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에게 심어준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와 올바른 삶의 자세였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우리의 다음세대가 사사시대처럼 세상에 푹 빠져 자기가 우상이 되는 불신의 세대인 다른 세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서 더 깊은 데로 나아가는 신앙의 다음세대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우리 다음세대가 믿음의 3대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다음세대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가정에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합니까?
①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마십시오 - 격려란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분발시키다' '자극하다'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충동시키다'는 뜻입니다.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는 아들을 위해 같이 뛰며 "조금만 더 뛰어 다 왔다"고 말해주는 아빠와 같은 것입니다.
②축복하십시오 - 가정은 축복의 장소입니다. 매일 아침 부모가 자녀를 축복할 때, 그 가정은 금방 천국이 됩니다. 더구나 축복한 대로 자녀의 미래가 열립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지극히 편애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이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화려한 옷을 입고 살게 되는 비전제시가 된 것입니다.
③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녀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반드시 세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④본을 보여 주십시오 - 자녀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말도 행동도 가치관도 그대로 닮습니다. 아이들이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은 항상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드리는 모습, 교회에서 헌신하는 모습,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모습,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의 장래는 부모의 삶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시편 128편의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영적 제사장의 영적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 꿇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가정에서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안에 녹아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을 풍성한 포도나무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을 귀히 여기고 믿음의 계보를 잇는 든든한 감람나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있는 가정,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되셔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있는 가정으로 세워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우리 가정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또 부족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2. 부모 혹은 가족의 믿음의 모습 가운데 지금까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입니까?
3. 이번 한 주 동안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결단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