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옛날 시집살이를 이겨온 솜씨와 맵시 어려서 옷을 입으면 왜 그렇게 잘 떨어지고 찢어지는지 어머니는 그 옷을 꿰매는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집온 새색시에게 동네 사람들이 몇 가지 솜씨를 부리는 일을 시켜 봐서 새댁을 잘 얻었는지 잘못 얻었는지 알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부러 아주 난처한 문제를 내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는지 살펴보기도 하였답니다. 그 중에 음식 솜씨, 바느질 솜씨, 길쌈 솜씨, 말공대 법, 옷 입은 맵시, 옷고름 맵시 등등 많이 있었지만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떨어지거나 찢어진 옷을 꿰매는 솜씨를 많이 눈 여겨 보았던 것 같습니다. 한복을 꿰매 입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복, 내복, 이불이나 요, 버선이나 양말, 심지어는 운동화나 신발까지도 엄마들은 일일이 꿰매서 입히고 대령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옷을 꿰매 입는 것은 미덕이었습니다. 옷을 꿰매 입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다만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단정하기만 하면 좋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옷을 꿰매 입고 다닌다면 멋을 부린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또는 그것이 디자인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예술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생활이었고, 엄마들의 정성이었습니다. 양복을 꿰매려면 ‘짜깁기’라는 것을 해야 했습니다. 천의 씨줄과 날줄을 잘 찾아서 코바늘로 감쪽같이 꿰매야 했습니다. 그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꿰매는 천과 실과 색깔이 아주 잘 맞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새 천과 헌 천을 잘 구별해야 했습니다. 엄마들은 그런 감각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느질도 못했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바느질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들을 수 있었고, 고된 시집살이가 조금 부드럽게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시집의 법도와 가풍과 솜씨를 따라잡을 수 있고 시집에 적응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혜로울 수 있고, 또 가풍과 가문에 따라서 그런 솜씨들을 살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음식 솜씨도 참 어려운 관문이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 각종 젓갈, 심지어는 식초 담고, 술 빚고, 밥 짓기, 각종 떡 하기, 나물 무치기, 전 부치기, 각종 요리까지도 전부 잘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할 때 쌀 씻는 소리가 방에 계신 어른들에게 들리면 안 된다고 쌀 씻는 바가지나 함지박을 짚불 재위에 올려놓고 씻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런 전통으로 자녀들을 키운다면 아마 날마다 자식들에게 심한 구박을 들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사람도 없고 가전제품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살면 엄청나게 미련하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래된 단식 율법 보다는 새로운 율법 ‘사랑하는 법’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옷을 꿰매고, 음식이나 술을 빚고 저장하는 방법도 옛날과 다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에서 율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도 구별이 있음을 상기시키십니다. 구약의 법을 짜깁기하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율법을 지키려면 당연히 새 율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도 말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과 우리의 삶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법이 중요한 것인지, 하느님이 만들어 주시는 법이 중요한 것인지 말입니다. 어떤 것을 경중을 가려 지켜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냥 습관적이고 형식적이며 타성에 젖어 지키고 살았던 모든 법에서 다시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옛 것이나 새 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을 고루 알아야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약과 신약의 조화로운 적용은 언제나 우리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제 온갖 솜씨를 발휘해서 하느님의 법과 인간의 법을 조화롭게 만들어 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