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빛 속 유랑자
생텍쥐페리.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조금 양보하여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대표 저서 『어린 왕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유명하죠. 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대지』가 그다음으로 유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야기할 텍스트는 그 유명한 『어린 왕자』도 『인간의 대지』도 아닙니다. 생텍쥐페리의 두 번째 소설. 바로 『야간 비행』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생애에 조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시겠지요.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었습니다. 1920년 징병으로 공군에 입대했던 생텍쥐페리는 1922년 면허를 따고 이후 많은 비행을 했죠. 1926년부터는 정기 우편 비행에 종사하기도 하였고, 이후 그의 데뷔작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고 이어 『야간 비행』까지 집필하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비행은 1944년이었습니다. 그해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기지를 출발한 생텍쥐페리는 이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도 많은 논란이 오가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생텍쥐페리의 비행 경력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의 비행 경험이 『야간 비행』에 많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보면 항공 일정을 조정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와 야간 비행을 하고 있는 파비앵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파비앵은 야간 비행 중 폭풍우를 만나게 되죠. 지금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간 비행이 특별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지요.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는 일에 이미 익숙하고 또한 그 시각이 낯이건 저녁이건 큰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야간 비행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비행이었습니다. 항로가 완벽하게 개척되지 않았고, 악천후에 대비할 여력도 없었지요. 빠르게 우편을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당시엔 그만큼 비행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리비에르도 파비앵도 다른 모든 이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죠.
하지만 평화란 없다. 어쩌면 승리도 없을지 모른다. 모든 우편기가 최종적으로 도착하게 되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의 경험이 이야기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야간 비행을 하는 파비앵의 이야기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지요. 야간 비행을 하는 조종사가 느끼는 감정들과, 폭풍우를 만나는 순간의 생각, 그리고 생사를 넘는 순간의 이야기까지요. 야간 비행의 모습은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밤은 어두운 연기처럼 피어올라 벌써 계곡을 메웠다. 계곡과 평야는 이제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마을은 벌써 불을 밝혀 별자리처럼 반짝임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도 손가락을 튕겨 날개 등을 깜박이며 마을에 화답했다.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을 밝히듯 집들이 저마다 광대한 밤을 향해 자신의 별을 밝히자, 대지는 반짝이는 호출 신호가 점점이 박힌 듯 펼쳐졌다.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밤으로 들어서는 것이 마치 배가 정박지로 들어서듯 느리고 아름다워 파비앵은 이를 감탄하며 감상했다.
야간에 지상에서 바라본 비행기의 모습은 별을 배경으로 마치 비행기가 별에 쌓여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파비앵의 시선도 비슷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대지는 이미 구분이 가지 않는 하나의 어두운 덩어리가 되고, 점점이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마치 하늘에 박힌 별들처럼 반짝이죠. 비록 정반대에 있지만 하늘의 파비앵과 지상의 우리는 같은 것을 보는 것일까요? 하늘과 대지에서 반짝이는 별들을요.
한번 궤도에 오른 비행은 평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비행기가 떠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밤이 비행기를 붙잡아 고정시키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마치 어둠에 착륙한 것처럼 밤하늘 속에 단단하게 안착되어 있다고 파비앵은 느낍니다. 그 말대로라면 밤이 적당히 비행기를 붙잡아 두었다가 시간이 되면 놓아주는 것이라고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폭풍우를 만난 파비앵과 무선사는 당혹스럽지만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뇌우로 무선은 좀처럼 연결되지 않고, 그저 무사히 폭풍우를 뚫고 지나갈 수 있기만을 비는 것밖에 할 수 없죠. 극도의 공포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한 상황이지만, 파비앵은 언제나 그런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히 체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는 포위당했다고 생각했다. 좋든 나쁘든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는 때때로 동트는 모습을 볼 때 병의 회복기로 들어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해 뜨는 동쪽을 뚫어져라 바라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와 해 사이에 너무도 깊은 밤이 가로놓여 다시는 그 밤의 심연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것 같으니.
지상에 있는 리비에르 역시 크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고, 동시에 계속 무전을 확인할 뿐이지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소식에 불안한 파비앵의 아내가 찾아와도 리비에르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말뿐 다른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신이 왔다.
‘내륙 전반에 걸쳐 폭풍우. 연료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삼십 분.’
이 전보를 마지막으로 파비앵의 소식은 더 들을 수 없습니다. 파비앵 역시 전보가 닿지 않음을 잘 알고 있겠죠.
파비앵은 찬란하게 빛나는 밤의 구름바다 위를 헤매고 있지만 저 아래에 놓인 것은 영원이다. 그는 자기만 홀로 거주하는 별자리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여전히 두 손으로 세상을 붙든 채 자기 가슴에 대고 균형을 잡는다. 그는 핸들 속에 무거운 인간의 부(富)를 가득 채운 채 절망에 빠져 이 별에서 저 별로 보물을 가지고 다닌다. 곧 돌려주어야 할 그 쓸모없는 보물을.
시간은 흐릅니다. 더 이상 파비앵이 날고 있을 확률은 없을 만큼 시간이 흐릅니다. 애초에 연료는 한정되어 있으니 선고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겠죠. 파비앵의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야간 비행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니, 멈출 수 없습니다. 파비앵의 안타까운 비행과 별개로 여전히 배송되어야 할 우편들이 있기 때문이죠. 리비에르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멈출 수 없고, 예정된 비행을 명령하죠. 이야기의 마지막 리비에르의 묘사가 그날의 일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리비에르는 느린 걸음으로, 자신의 엄격한 시선 아래 몸을 움츠린 사무원들 사이를 지나 자기 사무실로 돌아간다. 위대한 리비에르, 승리자 리비에르가 무거운 승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길지 않은 꿈 같은 현실 이야기. 아름다운 묘사. 절제된 감정. 생생한 경험.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은 분명 낯선 작품입니다. 그가 썼던 『어린 왕자』만을 읽어본 독자에게라면 더욱요. 하지만 읽어보면 이야기 곳곳에 생텍쥐페리가 짙게 묻어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비행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야간 비행』을 읽으면 새삼 인간 생텍쥐페리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관심이 생긴다면, 그리고 약간의 시간도 생긴다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점점이 박힌 별빛 속을 유영하는 야간 비행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