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설 명절이 다가오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설날에는 오랜만에 새 옷과 새 양말을 신고 평상시에 먹지 못하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차려입은 설빔에 한껏 들떠 친척 형들과 어울려 집안의 어른들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 세배하고 세뱃돈을 몇 푼 받으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일가친척들을 만나 웃을 수 있는 설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 다가오는 설을 어린이도 아닌 할머니가 된 아내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설 명절에 가족이 다 모이면, 한 나이 더 먹기 전에 젊을 때 가족사진을 기념으로 찍자.”며 아내는 한 달 전부터 몇 번 이야기했다. 사실 폰으로 간단하게 사진을 찍기는 쉽지만 흩어져 사는 가족과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일은 번거롭고 사전에 연락을 하고 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한다.
나는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나이 더 젊을 때란 말에 동의했다. 우리 가족의 첫 가족사진은 삼십여 년 전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딸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 기념으로 찍었다. 그 당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 큰 행사인지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우리 부부도 정장 차림으로 예약된 사진관으로 갔다. 그때는 번거로웠지만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거실에 귀중품처럼 걸려있다. 가끔 사진을 보며 저 때만 해도 젊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그리워한다. 이 사진을 사진관 쇼윈도우에 여러 해 동안 샘플로 걸어놓았다. 몇 년 지난 뒤에도 아는 지인분이 그 길을 지나다 우리 사진을 보았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그때엔 나의 허락도 없이 사진관에서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웃어넘겼다.
설날, 예약된 시간에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사진관으로 갔다. 입구에는 ‘***가족전문스튜디오’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시설과 규모가 크고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준다는 전문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세월과 시대에 따라 사진관이라는 명칭 대신에 스튜디오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분장실로 들어가니 벽거울과 갖가지 소품들이 장식대 위에 널려 있었다. 결혼식 때 이후로 처음 메이크업을 했다. 어색하였지만 아티스트는 화장하는 동안 부드럽고 살가운 목소리로 친절을 베풀었다. “아버님이 화장을 하니 멋있다.”고 하니 추켜세우는 줄은 알지만 그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화장이 끝나자 흰 셔츠와 청바지를 아이 어른 모두의 치수에 맞춰주며, 에나멜 반짝이는 구두까지 제공해 주었다. 멋진 배경에 맞춰 긴 소파에 앉고, 서고, 자유롭게 포즈를 취하며 수십 차례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를 온전히 받았다. 아내가 머리숱이 적은 나에게 모자 쓸 것을 주문하자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거의가 모자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순서의 어린 손자와 남자들은 흰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로 치장하였고 여자들은 웨딩드레스로 예쁘게 단장을 하였다. 옷이 날개라더니 딸과 며느리는 젊고 예쁘게 보였지만, 아내는 곱게 화장을 해도 세월의 답례품인지 예전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후덕厚德하고 인자함이 남아 있었다.
눈부신 조명이 비치고 촬영이 시작되자 억지로 웃기도 하고 가끔씩 진정으로 웃음과 미소를 짓기도 하고 사진기사는 수십 차례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자세와 표정들을 꼼꼼히 지적했다. 8명이나 되니 사진기사도 힘들었을 것이다. 촬영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현상할 사진을 선택해야 했다. 편집실 대형 모니터에 수많은 사진이 하나하나 넘어가는 중에 잘 찍힌 하나를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중 몇 점을 선택하여 차후 사진을 받아보고 잘 나오지 않은 부분은 그때 알려주면 포토샵으로 편집을 하겠다고 하여 마무리 되었다.
며칠 후 핸드폰으로 3장의 사진이 전송되어왔다. 가족 카톡방에 사진을 올린 후 수정 하고픈 곳을 구체적으로 적어서 올리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모두들 아우성이었다. 그날 스튜디오의 큰 모니터에서 볼 때는 모두가 근사하게 잘 나온 것 같았는데, 핸드폰으로 보는 사진은 그것보다 못한 것 같았다. 보정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들은 “살이 너무 쪄 보인다, 어깨와 턱선 좀 줄여 주시고 머리숱 좀 많게 해주세요.” 심지어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을 보내 주며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다는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딸과 며느리도 “팔뚝 살 좀 날씬하게 해주세요, 턱선을 갸름하게 다듬어 주세요, 콧대도 오뚝하게 해주시고, 그이 목살도 줄여 주시고, 눈도 좀 크게 해주시고”… 자신들의 원판은 까마득하게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손자 녀석은 잘 나와 수정하지 않아도 모델 같았다.
아내는 “이참에 모두 다 성형하는 건 어때요?”라며 웃는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성형할 요량으로 스튜디오에 찾아갔다. 현대의 놀라운 포토샵 기술로 얼굴은 그런대로 보기 좋게 편집하였지만 표정만은 편집할 수 없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굴 전체를 아무리 성형해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표정이 그대로이니 각자의 얼굴 특징이 남아 있었다.
아내에게 왜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했는지 물어보았다. “사진을 거실에 걸어두고 자녀들이나 손자가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보려고요. 지금이 제일 예쁠 때잖아요.”라고 한다. “먼 훗날 자녀들이 부모님이 그리울 때 추억하면서 보라고 하는 것도 포함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바쁜 시국에 애들이 자기들 사진 보기도 바쁜데 언제 우리 사진을 보겠어요?”
거침없는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혔다. 그럼, 우리를 가끔 그리워하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저들은 우리에게 전부인데…. 까닭 없이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살아온 길이 보인다.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이 책꽂이 옆에 자리한 지 30여 년, 진정으로 어머니의 은혜恩惠와 모정母情을 그리워하며 사모思慕해 본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묵상黙想해 보았다. 미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조용히 참회懺悔하는 심정으로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어느 날 아내는, 어머니 생전 마당에서 무언가를 불에 태우시기에 가보니 사진들을 태우고 계셨단다. 깜짝 놀라 “어머니 왜 사진을 태우세요?” 했더니 “야야, 다 지나간 세월이다.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할 때다. 여기 누구도 죽고 아무개도 갔다.” 하시며 30대에 별세하신 한 장뿐인 아버님 사진마저도 함께 태워 버렸다고 했다. 사진은 삶의 흔적과 추억을 남기는 것인데, 그때는 정말 왜 저러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어머니는 다음 해 초여름에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의 사진에 대해서 나는 내심 놀라워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했다. 일찍 사고사로 가신 아버지의 사진마저 태워 버렸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김성훈의 『사진은 무엇을 사유하는가』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사진의 속성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진의 속성을 역설적으로 한꺼번에 보여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사진 속에서 ‘오늘은 남은 날의 제일 젊은 날인 것.’을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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