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씨
차가운 젤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몸이 잘게 움츠러든다. 어두운 진료실 안, 유일하게 빛나는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흑백의 점들이 무수히 얽혀 있는 그곳을 지켜보는 의사의 눈과 손이 바삐 움직인다. 멈추어 찍고 저장하기를 여러 번, 이윽고 한 화면 위로 붉은 디지털 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검은 그림자의 가장자리를 따라 선명한 외곽선을 그린다.
모양이 영 좋지 않아 보인다는 말도,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보아야겠다는 설명도 귀를 스쳐 지나갈 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의사의 목소리는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웅웅거리며 아득히 멀어질 뿐이다. 나는 그저 붉은 선이 단단하게 감싼 모니터 속의 검은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래, 저것은 분명 터덜터덜 과육이 붙어 있는 복숭아씨다. 달콤한 살들이 하나씩 베여 나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거칠고 단단한 덩어리.
그 순간 내 가슴 위로 복숭아 하나가 겹쳐진다. 둥글고 여린 과육의 가장 깊은 곳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복숭아 속에는 생명을 품은 씨앗이 있고, 내 가슴속에는 도려내야 할 종양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왜 하필 복숭아씨였을까. 의사가 가리킨 차갑고 낯선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왜 가장 익숙하고 달콤한 여름 과일 하나가 떠올랐는지 알 수 없다. 가슴에 검은 흔적을 하나 얹은 채, 나는 그 질문 하나를 무겁게 품고 병원 문을 나선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여름 볕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홀린 듯 과일가게 앞에 멈춰 선다. 빨갛고 노란 빛깔을 뽐내며 진열된 복숭아 한 봉지를 산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제철 과일을 맛보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가슴속에 들어앉았다는 그 기묘한 형상을,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봉지를 든 손끝에 솜털의 보슬보슬한 감촉이 닿는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던져두고 복숭아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물기를 닦아내고 도마 위에 올린 뒤 과도를 쥐어 든다. 칼끝이 얇은 껍질을 뚫고 들어가자, 잘 익은 과육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특유의 달큰하고 진한 향을 온 주방에 퍼뜨린다. 조각내지 않고 덩이째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달콤한 과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잘 익은 여름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찬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달콤함에 취해 감탄했을 맛이다.
하지만 오늘은 자꾸만 과육 안쪽으로 시선이 간다. 이빨로 베어 물며 과육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 마침내 손바닥 위에는 살점이 터덜터덜 붙은 알맹이 하나가 남는다. 흐르는 물에 씻어내도 붉은 과육의 흔적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한 채 오래도록 바라본다.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억센 결. 깊고 불규칙하게 패인 골. 군데군데 엉겨 붙은 붉은 과육의 흔적들. 검지로 그 딱딱한 표면의 결을 따라 천천히 문질러 본다. 손가락으로 힘주어 눌러보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살면서 복숭아를 수없이 깎아 먹고 삼켜왔으면서도, 정작 이 씨를 이렇게 눈앞에 두고 오래 바라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아니, 본 적은 있었다. 단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그것은 늘 마지막에 덩그러니 남았고, 아무렇지 않게 검은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혀끝을 자극하던 달콤한 과육의 기억만 붙들고 살았을 뿐, 그 모든 맛이 사라진 뒤 마지막에 남는 단단한 씨에는 한 번도 오래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 복숭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씨앗이, 내 가슴의 가장 깊은 곳에는 종양이 있다.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는 생명을 품고 있고, 하나는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일에 익숙했다.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을 차례로 해치웠다. 학생들을 마주하기 위해 밤을 새워 강의안을 만들었고, 이른 아침이면 아이의 밥상과 옷가지를 챙겼다. 주변 사람들과 얽힌 수많은 약속과 책임들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 체크 표시를 해나가는 것이 곧 잘 사는 삶이라 믿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버릇처럼 ‘괜찮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힘에 부쳐도 그만두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채우고 살아내는 동안, 정작 모든 역할을 벗고 난 뒤의 나는 무엇으로 버티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물론 내 가슴속에 자리 잡은 이 검은 종양을 이대로 남겨 둘 수는 없다. 복숭아는 씨앗을 품어야 살아가지만, 나는 종양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메스로 도려내야 할 병이다. 수술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종양이지만, 두려움보다 오래 남은 것은 복숭아씨 하나였다. 내 삶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밤,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 홀로 앉아서야 나는 내 안에 무엇이 끝까지 남는지 묻게 되었다.
머지않아 수술대 위에 오르고 나면 가슴속의 종양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메스가 지난 자리에는 한동안 붉은 흉터가 남겠지만, 그 또한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서서히 옅어지며 무뎌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복숭아를 예전처럼 바라볼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여름이 오고 복숭아를 먹을 때면, 나는 입안에 고이는 달콤한 과육보다 칼끝에 서걱거리며 부딪칠 씨앗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과육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
어쩌면 그날 차가운 초음파 화면에 남은 것은 검은 종양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