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奧斯定若鐘 性直而志專 詳密過人 嘗有學仙長生之志 誤信天地改闢之說 歎曰 天地変改時 神仙亦不免消融 終非長生之道 不足學也 及聞聖敎 篤信而力行之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758~1801, 신유박해 순교)는 성품이 강직하고 뜻이 전일(專一: 마음과 뜻을 오로지 한 곳에만 씀)하고 상세하고 치밀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습니다. 일찍이 신선(神仙)을 배워 오래 살고자 하였으나 ‘천지개벽’의 설을 잘못 믿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천지가 변하여 바뀔 때 신선 또한 녹아 사라짐을 면하지 못하니 끝내 장생지도(長生之道)는 아니니 배우기에 족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천주교를 듣기에 이르러 성실하게 믿고 힘써 행했습니다.
辛亥之窘 兄弟親友 少有全者 而獨不撓動 拙於俗論 而最喜講論道理 雖當疾病飢乏之時 若不知其苦者然 或不明一端道理 則寢食無味 全心全力而思之 必至融通而後已
신해년(1791, 진산사건 관련) 박해 때 형제와 친구들은 온전하게 있는 자가 드물었으나 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속세를 논함에는 서툴렀으나 천주교의 도리를 강론하기는 제일 좋아하였습니다. 비록 병이 들거나 먹을 것이 없을 때를 당하여도 그 고통스러움을 알지 못한 듯 하였습니다. 간혹 한 가지라도 천주교의 교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곧 먹고 자는 것에 맛을 몰랐고 온 마음과 온 힘으로 생각하여서 반드시 막힘이 없는 이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雖在馬上舟中 總不斷黙想之工 見有愚蒙者 盡力訓誨之 至於舌疲喉痛 而少無厭倦之意 雖甚愚鹵者 鮮有不明
비록 말 위나 배 안에서도 단속하여 묵상하는 일을 끊지 않았으며 어리석고 몽매한 자를 보면 힘을 다하여 가르치고 깨우치게 함에 혀가 병들고 목구멍이 고통스러움에 이르러도 조금도 싫어하고 게으른 뜻이 없었습니다. 비록 아주 어리석은 자라도 불명(不明: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하게 있음이 드물었습니다.
嘗爲敎中愚者 以東國諺文 述主敎要旨二券 博採聖敎諸書 參以己見 務極明白 愚婦幼童 亦能開卷了然 無一疑晦處 緊於本國 更勝於蒭蕘神父准行之
일찍이 교우 가운데 어리석은 자를 위하여 조선의 언문(한글)으로 ‘주교요지主敎要旨(정약종이 지은 천주교 교리 해설서)’를 저술함에 천주교의 모든 책을 널리 모으고 자기의 의견을 넣어 지극히 밝게 드러남에 힘쓰니 어리석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 또한 능히 책을 열기만 하면, 의심가고 어두운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교요지가) 조선에 긴요함이 ‘성세추요聖世蒭蕘: 꼴과 나무를 베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 천주교 교리서’보다도 뛰어나니 신부가 본받아서 행하게 하였습니다.
積年宿學 習與性成 每見交友 寒暄之外 卽陳講論 終日娓娓 無暇旁及他談 或得自己所未通者一二端 則滿心歡喜 積讚不已 或有冷淡糊塗者 不肯聽講 則不勝缺然悶然之意
여러 해를 깊이 공부하여 습관과 성품이 이루어지니 매번 교우들을 보면 계절 안부 인사 이외에는 곧 강론(講論)을 펼쳐 하루를 마칠 때까지 힘쓰니 다른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배우는 자 가운데) 간혹 자기가 통하지 못한 바의 것을 한두 가지 알게 되면 곧 마음 가득 기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간혹 관심이 없거나 흐지부지하는 것이 있어 강론 듣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곧 서운하고 가여운 생각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人問各端道理 如探囊取物 不煩思索而滔滔不竭 反覆辨難 未嘗少窮 所言皆排比次序 無或錯亂 而精奇超妙 詳細的確 固人之信 熾人之愛
사람들이 갖가지 천주교의 이치를 물어도 주머니를 찾아 물건을 골라내듯이 번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물이 가득하여 마르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복해서 어렵게 물어도 일찍이 조금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말한 바가 모두 차례의 순서로 배열하니 조금의 착오와 섞임이 없어서 정밀하고 기이하며 오묘함을 초월하고, 자세하고 정확하니 사람들의 믿음이 굳세어지고 사람들의 사랑이 타올랐습니다.
雖德望不及冠泉 明理過之 又以爲天主諸德 及各種道理 本來浩汗 而散在諸書 無一全論 讀之者難於領會 將欲鈔集各書 分門別類 彙爲一部 名曰聖敎全書
비록 덕망은 관천(冠泉, 최창현 요한)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천주교의 이치를 밝힘은 낫습니다. 또한 천주님의 모든 덕과 각종 천주교 교리는 본래 크고 넓으며 여러 책에 흩어져 있어서, 온전히 논(論)한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읽는 자가 짐작하기에 어려웠습니다. 장차 각종 서적을 모아 베끼고 부문을 구분하고 유형을 나누어 한 책으로 모으니 이름하여 말하길 ‘성교전서聖敎全書’입니다.
以贈後學 起草未半 而被難不能成 被捕入獄 官以王命責問 奧斯定直陳聖敎眞實之理 明其不當禁之意 官大怒以爲辨駁王命 論以大逆不道
(성교전서를 만들어서) 후학(後學)에게 보내려 했는데 초고(草稿)가 반도 안 되어 어려움을 입으니 능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체포되어 옥에 들어가니 관리가 왕명으로써 죄를 물었습니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천주교의 참된 이치를 금지하는 의도가 부당함을 밝혀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관리가 크게 화를 내며 왕명을 반박한다고 하며 대역부도(大逆不道)로써 논죄(論罪)하였습니다.
出獄上車 將就法場 卽高聲謂人曰 你等勿笑吾儕 人生於世爲天主死 卽當行之事耳 大審判時 吾儕之涕泣 変而爲眞樂 你等之喜笑 変而爲眞痛 你等必勿相笑
감옥에서 나와 수레에 올라 장차 형장으로 나아감에, 곧 높은 소리로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우리를 비웃지 마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천주를 위하여 죽음은 곧 마땅한 일을 행하는 것이니라. 큰 심판 때에 우리들의 울음과 눈물은 변하여 참 즐거움이 될 것이고 너희들의 기쁨과 비웃음은 변하여 참 고통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반드시 서로 웃지 말지라.”
臨刑顧謂觀者曰 你等勿怕 此時當行之事 你等必毋俱怕 此後效而行之 一斫之後 頭頸半截 蹶然起坐 大開手畵聖號 從容復伏
처형에 임박하여 돌아보며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두려워 마라. 이때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다. 너희들은 반드시 두려워 말고 이후에 본받아서 행하여라.”하였다. 한번 베니 머리와 목이 둘로 끊겼는데 벌떡 일어나 앉아 크게 손을 벌려 성호(聖號)를 긋고 조용히 다시 엎어졌습니다.
與崔多黙同斬 時年四十二歲 崔多黙年老多病 獄中久已委頓 登車不省人事 將近法場 始顯歎容 首先被斬 時年五十六歲
최필공 토마스(1744~1801, 중인 출신 의원, 신유박해 순교)와 더불어 동시에 참형을 당했는데, 이때 나이 42세였습니다. 최필공 토마스는 늙고 병이 많아 옥중에서 이미 쇠약함이 오래되어 수레에 오를 때에도 돌아가는 일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장차 형장 가까이에서야 비로소 탄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일 먼저 참형을 당했는데, 이때 나이 56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