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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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14:14,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24-12-22
카톨릭 신자들은 기독교신자보다 더 사회참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이유는 그들이 믿는 바, 연옥 사상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즉시 천국이나 지옥에 가기도 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연옥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죽은 사람들이 제발 천국에 갔으면 싶은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그 연옥에 가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면서, 신자들의 공력(공의)로 그 영혼들을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합니다. 사실 누가 지옥에 가며, 누가 연옥에 가는 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는데, 지옥이나 연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어서 혹시 연옥에 가 있는 친척이나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공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자기의 공력으로 의롭게 되는 것,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행위를 강조하다 보니까, 믿음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력이 필요하고, 그 공력이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게 되면, 그 남은 공력을 죽은 자들의 영혼들을 위해서 사용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력밖에 없습니다. 단지 신자들이 공력을 쌓는 것이 그것이 공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가 공력을, 의롭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화의 과정(서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런 ‘자기의 공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의 공의가 필요한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자기의 공의’가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의 공의는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합니다. 성경은 죄가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선포합니다. 그 죄가 하나님의 영광, 곧 천국에 갈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죗값을 십자가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용서받습니다.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불리어집니다. 모든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을 믿어야만 의롭게 됩니다. 이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구원받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 거룩한 삶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 곧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력입니다. 단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뿐이지, 인간의 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고 선포되어지고, 그래서 살게 되고,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겔 14:13,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여기서 ‘자기의 공의’와 함께 다루어지는 것이, ‘불법, 범죄’입니다. 그 불법과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21절. 기근, 칼, 전염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자기의 공의’는 행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공의롭게 살게 만듭니다. 공의대로 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이 임합니다. 모든 신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행함(함께,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해짐).
약 2:21–22,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둘째. 자기의 공의는 믿음으로 거듭난 행동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생명과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곧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된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구원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다룹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느냐의 문제를 다룹니다.
요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저절로 의롭게 살게 됩니다.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집니다. 가령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롭게 살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숙한 것입니다. 그 미숙한 믿음이 구원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의롭게 살기에는 연약하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그런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혈통(하이마, 피, 혈(육)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믿기 때문에 자녀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델레마토스 사르코스 안드로스 델레파토스), ‘델레마토스’(뜻, 의지, 선호하는 태도)입니다. ‘몸의 뜻이나 인간의 뜻’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나 몸이 선호하는 것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은 내 욕구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셋째, 누구든지 자기의 공의로 자기만 구원받습니다.
누가 구원받습니까? 누구든지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혈통으로나 누군가가 간절히 원한 것을 얻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고 죽은 조상이 비록 연옥이 없지만 그럴 곳이 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의 공력으로 나도 구원받고 남은 그 공력이 연옥의 있는 죽은 자를 천국으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일은, 성경의 3대 의인이라고 불리는 노아, 다니엘, 욥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의 공력으로 남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신자의 공의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력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래서 ‘칭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됐다, 의인이라’고 불리어진다고 말입니다. 네 가지 중한 벌(21,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이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졌습니다.
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6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14:18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누구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죄를 범한 자기 부인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신자는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신자가 됐다는 고백은 의롭게 살기 시작했다는 선포입니다. ‘자기의 공의’(세다카), ‘올바름, 곧음, 공동체적 충성’입니다. 신자라 하면서도 하나님께 범죄하면 전쟁의 칼이나 굶주림의 기근이나 공포스런 전염병이 한꺼번에 닥치게 될 것입니다(21).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고수하고 구현하는 행동을 하면서 살아야 축복을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