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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 잠시 호텔을 돌아본다. 객실 밖으로 나오니 아침 해를 받은 복도는 핑크빛으로 화사하기만 하다. 호텔 바깥을 장식하고 있는 붉은 아크릴을 투과한 햇빛이 복도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단지 미술 작품만 걸어놓고나 놓아두고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건물 자체도 예술적으로 꾸며놓았다. 중국인 사업가 3사람이 이 호텔을 지을 때부터 갤러리 호텔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라더니... 이런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호텔 밖으로도 나와보니 호텔 바로 앞은 운동장이다. 호텔은 운동장 영역 안에 지은 것이다. 그래서 어제 차로 호텔에 들어올 때에 차가 운동장 앞 광장을 가로 지르기에 이상하다 했었지.
북경에 왔으면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시간 맞춰 찾아온 가이드가 모는 차를 타고 북경에서 80km로 제일 가까이에 있다는 팔달령에 있는 만리장성으로 향한다. 북경을 벗어나 조금 더 북쪽으로 전진하니 평평하기만 하던 지형이 오르막으로 변하고 저 앞으로 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산으로 다가가니 드디어 산허리를 두르고 있는 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개를 올라 장성 앞에 도착하였다. 장성을 찾은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인 관광객들이다.
넓은 땅덩어리에 사는 중국인들로서도 평생에 한번 북경에 와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하지 않는가? 13억 인구의 중국인들이 다 한 번씩 이곳을 찾으려면 아직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에 와야겠구나. 중국인들이 여행을 즐길 만큼 여유가 생기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지. 내가 작년 2월 네팔 안나푸르나를 찾았을 때에도 그 전에 랑탕을 찾을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중국인 트레커들을 많이 보게 되며 새삼 놀랐었지. 그러나 이 만리장성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한국인 관광객들도 빠질 수는 없지. 그렇게 한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니 이곳 식당가에서도 ‘경복궁’이라는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 가욕관(嘉峪關)까지 총 2,700km -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6천여 km - 나 된다는 만리장성. 원래 장성의 발단은 춘추전국 시대 현재 산동 지방에서 일어난 제나라가 중원에 있는 각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그러니까 처음 시작은 공격하고 막고 하는 쪽이 지금과는 방향이 반대였네. 지금 내가 올라가려고 하는 장성은 이 길고 긴 만리장성 중 어느 부분일까? 한족은 북방 민족을 두려워하여 이 거대한 벽 - 만리장성을 영어로 The Great Wall이라 부른다 - 을 쌓았다지만, 결국 중국 역사상 한족이 오랑캐라 부르는 이민족이 지배한 시간은 그 얼마나 되나? 원, 청, 요, 금나라, 그리고 5호 16국 시대 북중국을 지배한 여러 민족 등등. 한고조 유방은 친히 흉노를 정벌하러 나섰다가 거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가 막대한 뇌물을 주고 겨우 빠져나왔고, 그 후에도 이들을 달래기 위하여 막대한 물품을 바쳐야 했지. 그 유명한 미인 왕소군도 흉노족에 바쳐진 여인들 중의 한 여인 아니었던가?
이제 장성을 올라가보자. 처음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저 위의 장성으로 오르려 했으나, 우리 앞에서 매표를 중단한다. 바람이 거세어져서 케이블카 운항을 중단한단다. 어쩐지 위로 오르던 케이블카들이 흔들흔들 하더니... 그래, 이왕이면 장성을 걸어서 올라가야지, 케이블카를 타고 훌쩍 올라갈 수는 없지. 드디어 장성으로 올라섰다. 왼쪽으로 갈까? 왼쪽은 여판길, 오른쪽은 남판길. 오른쪽 길이 경사가 더 있어서 남판길이라 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따라 남판길로 올라간다. 중국의 성답게 성벽의 여장이 우리나라 성에서는 잘 쓰지 않는 벽돌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벽돌들을 보니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낙서를 잔뜩 해놓았다. 이런 세계적인 문화재에 이렇게 낙서하도록 방치하여도 되나?
그리고 여장에 뚫어놓은 구멍이 뭔가 체계적이지는 않은 것 같고, 치성도 잘 볼 수 없다. 원래 성을 잘 방어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한 적과 멀리 있는 적을 두루 발견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여장에 원총안(遠銃眼), 근총안(近銃眼)을 체계적으로 두어야 하고, 또 적을 잘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는 성벽을 돌출시킨 치성(雉城)을 두어야 한다. 이를 잘 실천한 것이 수원 화성이다. 그런데 이곳 만리장성에서는 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걸 보니 만리장성 축조는 진시황제의 평화적인 정책을 흉노족에게 보이기 위한 의도로 건설되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 휩싸여 장성을 올라간다. 오르면서 눈을 위로 드니 장성은 저 앞의 산마루를 넘어 끝없이 전진한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출발한 곳은 저 밑에 있고, 장성은 그곳을 지나 반대편 여판길로 산을 올라가 계속하여 굽이굽이 넘어 가고 있다. 장성은 이렇게 계속하여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할까? 마음만은 계속하여 전진하고 싶으나, 오늘의 일정도 있고 하니 여기서 내려가야겠다.
다시 내려가서 장성을 떠나기 전에 장성 박물관에 잠깐 들러본다. 박물관에서는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곳의 장성 모습을 이모조모 사진으로 보여주고, 또한 장성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장성 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도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장성을 수축할 때의 인부들의 노동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옛날 만리장성을 수축할 당시 이를 만들기 위해 동원된 민초들의 눈물과 한은 그 얼마나 많을 것인가? 문득 신영복 선생이 번역한 시경(詩經)에 나오는 시 ‘산에 올라’가 생각난다.
산에 올라 아버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아들아. 밤낮으로 쉴 새도 없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머물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에 올라 어머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어머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우리 막내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버림받지 말고 돌아오너라.
산에 올라 형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형님 말씀이 들리는 듯.
오! 내 동생아. 밤이나 낮이나 집단행동하겠지.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집단행동이란 강제노역의 한 조에 편성되어 노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일 텐데, 나에게는 ‘집단행동’하면 데모나 노동쟁의가 먼저 생각나 좀 거슬리긴 하다. 그러나 만리장성 수축의 애환이 시에서 잘 우러나오고, 또 그러니 유교의 한 경전인 시경에까지 들어갔을 게다.
박물관을 도는데 만리장성의 길이가 8851.8km라고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렇게 길지는 않을 텐데?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해관인데, 중국은 최근에 단동에 있는 호산산성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며 여기까지 길이가 8851.8km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산산성은 고구려의 박작성이다. 이를 중국이 박작성 터에 중국식 장성을 쌓고는 이를 만리장성의 동쪽 끝으로 바꿔치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중국식 역사 왜곡인 동북공정의 한 면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작년에 텔레비전 프로인 ‘런닝맨’이 ‘북경 레이스’편을 방영하면서 이런 것도 모르고 만리장성 길이를 8851.8km라고 하였다가 비난을 받았지. 이런 중국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우리보다 땅덩어리로 보나 인구로 보나 비교가 안 되게 큰 대국인 중국이시여! 꼭 그렇게 작은 나라 것까지 뺏어먹어야 시원하시겠습니까?” 박물관에는 또 이곳을 찾은 닉슨, 다나까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의 사진도 전시해놓았다.
팔달령에서 내려온 우리는 점심을 먹고 용경협(龍慶峽)으로 향한다. 평원 지대를 가다보니 저 앞에 산들이 또 하나의 장성처럼 평원을 가로막고 있다. 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니 산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 좁디좁은 협곡이 산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용경협에는 1973년 그 협곡에 댐을 막아 호수를 만들어놓았다. 댐 앞으로 가니 지난겨울에 만들었던 얼음 조각들이 아직도 그 시신을 완전히 녹이지 못하고 서있다. 겨울에 여기서 빙등(氷燈) 축제를 한단다. 그리고 이곳은 여름에도 북경 시내보다는 온도가 6.4도나 더 낮아 북경지역 최고의 피서지 중의 하나라고 하고...
70m 높이의 댐 위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에스컬레이터 외부는 용으로 덮어 밖에서 보면 마치 용 한 마리가 몸을 틀면서 댐 위의 호수에서 내려오는 듯하다.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겨우 위로 올라가니 이 좁은 협곡을 따라 호수가 펼쳐지고 있고, 호수 위에는 아직도 다 녹지 못한 유빙(遊氷)들이 떠다니고 있다. 머리 위로는 신선원(神仙院)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는데, 손님이 없는지 케이블카는 공중에서 멈추어 흔들흔들 하고 있다. 우리는 협곡을 따라가며 펼쳐지는 좌우 절경을 만끽하기 위하여 유람선으로 올라탄다. 유람선은 얼음 때문에 겨울 내내 겨울잠을 자다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한지 불과 며칠이 안 된다고 한다.
배가 출발한다. 나는 좌우로 펼쳐지는 절경에 정신없이 사진기 셔터를 눌러댄다. 저 절벽에 매달린 바위 얼굴은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그런데 저 얼굴은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바위의 이름은 진산여래(鎭山如來)였다. 이런! 어떻게 중생을 구제할까 걱정하며 수심에 찬 얼굴을 나는 님을 그리워하는 필부(匹夫)로 착각하였군. 한 굽이를 돌아가는데 왼쪽 절벽에 봉관조(鳳冠鳥)라고 붉은 글씨로 새겨놓았다. 봉황의 머리를 한 새라... 그럼 봉황새라는 얘기 아닌가?
‘봉관조’ 글자 옆의 절벽은 움푹 파여 있다. 그 언젠가 예전 시간 저 절벽 부분이 오랜 세월 지속된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으리라. 봉관조가 튀어나온 만큼 반대편은 만처럼 움푹 들어갔는데, 그 들어간 끝 부분에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는 종을 엎어놓은 듯. 그래서 이름도 종산(鍾山)이다. 계속 상류로 올라갈수록 유빙은 크기를 더하고, 유람선은 그 옆을 조심스레 헤쳐 나간다. 유빙의 옆을 지나가며 맑은 물을 통해 들여다보니 수면 위로는 얇은 베니어판을 띄어놓은 것 같은 유빙이 물 밑으로는 둔중한 몸체를 감추고 있다. 그렇지 유빙이란 수면 위로는 자기 몸체의 겨우 일부분만 내밀고 있는 것이지.
종산이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하니 이에 따라 종산 맞은편 절벽은 앞으로 튀어나왔고, 유람선은 이를 돌아간다. 돌아가니 또다시 안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배 접안시설이 되어 있으나, 배는 이를 지나쳐 다음에 튀어나온 절벽을 돌아가려 한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이드 말로는 돌아간 곳에서 배를 내려 능선을 넘어 내려와 저곳에서 배를 탄다고 하였지. 그리고 능선을 넘을 때 금강사라는 절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였고...
튀어나온 절벽의 맞은 편 절벽에는 봉우리 하나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절벽에 빨간 글씨로 새긴 것은 신필봉(神筆峰)이다. 저 뾰족한 봉우리를 붓으로 생각했겠고, 이런 곳에 붓이라면 당연히 신이 이를 휘어잡고 써야겠지. 그럼 선계(仙界)의 신선이 이곳에 오면 저 신필봉을 뽑아 들어 이 호수의 물로 저 하늘에 천상의 글씨를 쓰는 것인가? 가이드가 용경협 가자고 할 때만 하여도 여기에 이런 비경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북경 시민들이 밋밋한 평원 위에서 단조롭게 생활한다고, 북경 가까이에 이런 비경을 숨겨놓은 것인가?
절벽을 돌아가니 협곡을 가로질러 줄이 매달려 있고, 그 줄 위에서 한 사람이 자전거 곡예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줄이 오른쪽으로 매달려 있는 절벽 쪽에는 번지 점프 시설도 있고, 그 옆으로 배도 댈 수 있게 되어 있다. 나는 배에서 내려 저 서커스를 찬찬히 감상하고 능선을 오를 꿈을 꾸는데, 어랍쇼? 배가 후진한다. 유빙이 더욱 많아져 배를 댈 수가 없단다. 글쎄... 잘만 배를 조종하면 유빙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하늘에서 곡예한다고 물 위에서 관광객들 붙잡고 곡예할 수는 없겠지.
그래! 그건 좋다. 그러면 아까 지나친 접안 시설에는 배를 대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 그곳에서 거꾸로 금강사로 오를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이거 중국말이 안 되니 뭐라고 항의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상륙을 못하고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면서 아까 놓친 경치는 없는지 다시금 좌우 절벽을 복습한다. 그 중 한 절벽 중간에 동굴이 있다. 저 동굴은 그 뒤 어디로 통해있을까? 중국에 와서 저런 절벽을 보노라니 문득 무협지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느 무협지에서인가 주인공이 동굴에서 적에게 쫒기다가 저렇게 절벽으로 노출된 동굴 끝에서 어찌할까 고민하던 그런 장면... 아! 서양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도망자’ 영화에서 주인공 킴블도 저런 동굴 끝에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절벽 밑의 물 위로 몸을 던졌었지.
그런데 유람선은 아까 우리가 배를 탄 곳에 대지 않고 그 건너편에 우리를 내려준다. 케이블카 관광을 더 하라는 얘기인 줄 알았으나, 이곳에서 백화동(百花洞) 동굴을 통하여 내려가란다. 이곳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을 보니 케이블카는 용경협의 최고봉인 희봉 옆의 협곡을 따라 오른다. 케이블카는 아득히 저 위로 오르는 것이 마치 하늘문을 향하여 오르는 것 같은데, 설명에도 케이블 길이가 이곳 백화동 입구에서 천문(天門)까지 460m라며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곳을 하늘문(天門)이라 하고 있다.
백화동은 인공으로 뚫어놓은 동굴이었다. 백화동을 통해 내려가는데 맞은편에서 화물차가 올라온다. 그리 크지도 않은 동굴에서 차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였는데... 옆으로 바짝 붙어서 차를 피한다. 백화동을 벗어 나와 다시 위를 쳐다본다. 어허! 저 협곡 뒤에 생각지도 못한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왔을 때 비경을 보는 기쁨은 배가되는 법. 우리는 용경협의 비경을 보았다는 뿌듯함을 안고 북경 시내로 돌어간다.
북경 시내로 들어가 우리가 들른 곳은 따산즈 798 지역이다. 한 구역이 통째로 예술 구역이 된 곳으로 예전에는 공장 지대였단다. 그런데 공장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싼 임대료를 보고 이곳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창작 활동을 하고, 화랑도 들어오고 상점이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이를 보러 사람들이 찾아오며 따산즈는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예술 특구가 되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예술가들도, 화랑들도 입주하여 있다고 한다. 전에 뉴욕 맨하튼 소호 지역에 갔을 때 소호도 대공황 이후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공장 지대에 예술가들이 찾아오면서 형성된 예술 지역임을 알게 되었는데, 중국도 그와 비슷하게 생긴 예술 지역이 생겼구나. 차에서 내려 따산즈 이곳 저곳을 거닐며 화랑 안에도 들어가본다.
공장들이 철수하였다지만 이곳에 입주하는 예술가들은 과거의 공장들을 그대로 살려서 리모델링하였다. 그래서 거리에는 과거 공장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배관 파이프들이 그대로 거리를 따라 지나가기도 하고, 화랑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 공장의 기계가 그대로 놓여있기도 하다. 과거를 철저히 부정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적 토대를 만드는 예술가들의 힘. 이렇게 과거의 공장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화랑으로 들어가니 벌거벗은 키 큰 여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들어오는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래도 양말은 신었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의 음부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아무래도 작품의 의도나 재질, 작품 모양 등으로 볼 때 어제 아트 페어에서 본 남자 조각상을 만든 조각가가 이 여인 조각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거~~ 옛날 홍위병들이 보았으면 당장 퇴폐적인 작품이라고 때려 부수지 않았을까?” 하여튼 중국이 빠르게 개방화 되다보니 과거 폐쇄적 공산국가 시절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작품들도 많이 창작되는군.
이렇게 예술이 샘솟는 특구이다 보니 한쪽에선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야외 촬영을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선 사진 동아리 회원들이 몰려들어 모델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길을 가다보니 페르난도 보떼로의 뚱뚱한 작품을 닮은 청동 남자 조각 작품도 있다. 그런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 남자는 거시기만 반들반들 하다. 후후! 말 안 해도 왜 그런지 알겠지? 뉴욕 맨하튼의 타임워너 센터에서 본 보떼로의 작품도 거시기가 반질반질 하였고,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 내 소마미술관 앞의 가디에프 작품 ‘달리는 남자’의 거시기도 반질반질 하였는데... 하여튼 사람들은 이런 작품들의 거시기를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구먼.
따산즈 789 특구를 빠져나온 우리는 아직 저녁 만찬에는 시간이 남아 마지막으로 북경의 테마파크인 환락곡(歡樂谷) 내의 극장에서 하는 ‘금면왕조(金面王朝)’라는 쇼를 보러 간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인지 자막은 중국어, 영어 다음으로 한글이 나오는데, 일본어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선 일본어는 천대받는군. 쇼는 한 소녀가 동화책을 읽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동화책에 나오는 환상의 세상이 펼쳐지는 모양인데, 워커힐의 쇼 ‘꽃의 전설’과 비슷하게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고 ‘금면왕조’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볼거리가 쇼로서 펼쳐지는 것이다.
화려한 볼거리에 나도 사람들을 따라 사진기를 꺼내 무대를 향하는데 웬 레이저 광선이 자꾸 나에게 와서 흔들흔들 한다. 뒤를 돌아본다. ‘아하! 사진 찍지 말라는 얘기이구나. 이런! 조명을 터뜨리지 않고 찍는데 뭐가 어때서?’ 다른 곳에서는 사진 찍어도 아무 말도 안 하던데... 그래도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찍고, 레이저 광선도 따라서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고... 나도 이에 굴하지 않고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에서는 사진기가 보이지 않게 하여 몰래 찰칵! 금면 왕조 쇼에서 볼만한 것은 홍수가 나는 장면이다. 무대를 경사지게 하더니 위에서부터 엄청난 물을 쏟아 붓는데, 실내 무대에서 이렇게 많은 물을 흘려보내는 쇼는 처음 본다. 무대 앞에 물이 빠져나가도록 해놓긴 하였는데, 저 정도 물을 흘려보내려면 물을 엄청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극장을 빠져 나와 호텔로 돌아간다. 아트 페어에 참가한 작가들과 화랑 관계자들이 갤러리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포도주를 곁들인 만찬을 하는 것이다. 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북경의 건물들을 바라본다. 노을에 물 들은 건물에 나는 어느새 차 유리를 열고 또 카메라를 들이댄다. 우리나라 SK 특유의 나비 도형을 달고 있는 빌딩, LG 마크를 달고 있는 빌딩도 눈에 띄니 더욱 반갑다.
중국 CCTV 방송 건물도 보인다. 이 건물은 북경 올림픽을 통하여 세계인의 눈에 많이 알려졌는데, 직접 눈앞에서 보니 더욱 특이하다. 기둥처럼 올라간 두 개의 빌딩이 꼭대기에서 ‘ㄴ’자 통로로 연결되고 있는데, ‘ㄴ’자로 꺾이는 곳은 그냥 허공에 떠있는 것이 불안해 보인다. 어떤 공법을 썼기에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저렇게 공중에 떠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만찬은 시작되었다. 박회장과 나도 얼른 접시를 들고 음식을 담기 시작한다. 어제는 이관장이 바빠 별 얘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오늘은 옆자리에 앉아 미술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더욱이 이관장이 내 대학동기 이변호사의 동생이라고 하니 더욱 친근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관장을 통하여 이이남 작가와도 인사를 하였다. 이작가의 미디어 아트는 한국에서부터 좋아했고, 이번 아트 페어에서도 이작가의 작품을 보며 좋아했는데, 직접 작가와 대화도 나누게 되니 금상첨화! 만찬이 어느 정도 끝나가면서 우리는 객실로 올라간다. 적당한 알콜이 들어가니 침대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잠으로 빠져든다. 오늘의 행복한 여정을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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