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무용담
손 원
남자들은 제대 후 오래도록 자신의 군 생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앞다투어 자신의 경험담을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한다. 특히 남자들만 모이면 그렇다. 상대방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말에 공감해 주기 때문이다. 병영생활의 일상사인데도 그렇다. 같은 또래가 모여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어찌 보면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다. 제대한지 오래 되어도 그때의 추억을 영웅담처럼 포장한다. 더글러스 맥아더(1880 ~1964)장군은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군 생활의 무료함을 갖가지 방법으로 극복한다. 사격훈련을 가면 적중률이 좋은 이는 나무 그늘에서 동료와 희희덕거리고 쉴 수가 있지만, 적중률이 저조한 이는 대가를 치른다. 언덕배기 소나무를 돌아오라며 선착순을 시킨다. 선착순 한 번 하고 재사격을 한다. 그래도 점수가 낮으면 다시 선착순, 이렇게 몇 번을 되풀이하고 나면 기진맥진한다. 하지만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한 나절간 얼차려도 견뎌낸다. 어쩌다 운 좋은 날은 첫 사격에서 합격점을 받아 명사수라며 칭찬을 받기도 한다. 물론 그날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늘나무 아래서 희희덕거리는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군인정신 함양이라며 여름 소낙비 때 연병장에서 축구 시합을 한다. 팬티만 입고 사력을 다하여 뛰다 보면 비 맞고 힘들다는 생각을 잊기도 한다. 군대가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뿐이랴 팬티만 입고 비 맞고 구보도 한다. 한겨울 이른 아침 점호시간에는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병장에서 냉수마찰을 하고, 일과시간에는 야외로 나가 냇가 물속을 풍덩 들어가기도 한다. 군인정신으로 무장 된 젊은 혈기이기에 가능하다. 평시의 땀 한 방울은 전시의 피 한 방울과 같다고 한다. 극기 훈련을 통하여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는 정신 무장인 셈이다.
군 생활을 잘하는 팁이 있다면, 두 가지를 잘 해야 한다. 사격과 구보다. 이 둘만 잘해도 타의 부러움을 산다. 가끔 사격대회, 구보대회도 있어 성적이 좋으면 포상 휴가도 갈 수가 있다. 힘들고 긴장하는 탓에 생각보다 잘되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잘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군 생활에 활력을 얻기도 한다. 군대는 개인의 출중함보다는 단체의 성적을 중시한다.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군단 사격 검정에 앞서 자신의 소속 부대서 자체 측정을 했다고 한다. 측정 시 성적이 좋으면 포상 휴가를 보내 준다기에 모두가 긴장했다고 한다. 그때 친구는 거의 최하위 성적으로 부대에 부담이 될 정도였다고 했다. 부대원 전원의 사격 능력을 측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측정 하루 전에 자신이 휴가를 가게 된다고 하기에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사격 못하는 사람 몇몇을 빼내어 휴가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의도치 않게 포상 휴가 못지않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 대한민국 육군에 감사하며 3박 4일을 신나게 보냈다고 한다.
누구나 수류탄을 투척했다고 한다. 수류탄 핀을 뽑고 물속에 던지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고 구덩이에 던지면 큰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수 미터로 솟구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런 수류탄 투척은 훈련소 경험 정도이고 자대 복무 시에는 대부분이 경험이 없다. 그런데도 수시로 투척을 했다며 허풍을 떤다. 실제 대부분은 모형 수류탄으로 던지기 연습만 실컷 한 정도다.
유격훈련도 화젯거리다. 산등성이서 외줄 도르래에 매달려 수십 미터를 날아서 호수 속으로 떨어지는 멋진 경험을 했다고 앞다투어 자랑한다. 독가스실에서 10분 견디기 훈련에서 중도 탈락자가 상당수 있지만 탈락했다고 실토하는 자는 여태껏 없었다.
군 생활에서의 주특기도 중요하다. 군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수십 개로 분류되는 주특기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가장 흔한 주특기는 보병 소총수다. 그들은 우승 고지에 태극기를 세우는 최후의 승자임에도 사회로 치면 기피 업종쯤의 레벨이다. 그래서 보병 소총수였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소총수는 일벌과 일개미쯤으로 군의 버팀목임에도 역할이 비천하다고 여긴다. 설사 소총수였을지라도 자신은 1종 보급병을 했다며 허풍을 뜬다. 군 급식을 담당하는 막강한 역할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다.
군 생활 중 행정병도 선망의 대상이다. 그들은 사무직으로 고된 훈련 대신 사무실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소총수일지라도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다소 편안한 군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대신에 주특기가 행정병인 경우도 줄곧 사역만 하다가 제대하기도 한다. 군부대가 산자락에 있는 경우가 많아 진지 보수 등 사역을 많이 한다. 겨울이면 벽난로를 달구는 페치카 사역도 한다. 하루 종일 탄가루를 반죽하여 태우기에 온몸이 시커멓다. 이들은 많은 고생을 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 자청해야 하는 사역이기에 희생정신이 있는 의로운 이로 여겨진다. 취사병도 힘든 분야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식을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위한 그들의 노력도 높이 살 만하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일개미와 같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분야에 많은 사람이 투입되기에 힘든 분야와 덜 힘든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분야 든지 소임을 다하는 일개미인 것이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소임을 다하는 삶도 훌륭하다. 자신의 삶 이야기가 영웅담이 아닐까? "누구나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2023.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