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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시이불견(視而不見)-2
긴 탁자를 중심으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한치의 미동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북룡각주가 들어올 때까지...
"각주님을 배알합니다."
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북룡각주에게 허리를 숙였다. 북룡각주는 일말의 대꾸도
없이 상석에 앉았다.
"착석."
"예."
스물네 명의 복창은 나지막했지만 강한 억양이 내포돼 있었다. 북룡각주는 자리에 앉은 스
물네 명을 서늘한 시선으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내가 그대들을 소집한 것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갈 방도를 찾기 위해서다.
그대들도 알고 있다시피 본 방은 창 방이래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했다."
"저희는 오직 방주님과 각주님의 명령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어리석은 저희들에게 길을 알
려 주십시오."
스물네 명은 북룡각의 중추적인 인물들이었다.
"좋아. 좋아. 방주님께서 이 모든 위기를 단번에 타파하고 전세를 역전시킬 묘수를 찾아내셨
다. 그런데 그 방법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산재해 있다."
"방주님께서 위업을 달성하는데 저희들의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북룡각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충성스럽지만 경직돼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북룡각주의 눈
동자에 섬뜩한 빛이 흘렀다. 흐릿한 살의를 품은 싸늘한 빛.
"훌륭하다. 너희들의 충성과 용맹을 방주님께서 보신다면 매우 흡족해 하실 거다."
"저희는 오직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너희들의 충성심을 치하하는 뜻으로 술을 돌리겠다."
술병과 술잔을 든 시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비들은 다소곳한 자태로 북룡각의 정예
스물네 명 앞에 술잔을 내려놓고 술을 따랐다. 북룡각주에게 마지막 술을 따르고 시비들은
밖으로 나갔다.
"자. 다들 술잔을 들어라."
"네. 알겠습니다."
북룡각주가 술잔을 들고 일어서자 스물네 명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주님과 북해방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북룡각주가 술을 마시자 스물네 명도 일제히 따라 마셨다. 실내는 비장함이 감돌며 침묵
속에 빠졌다.
쨍그랑.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서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허억!"
"크윽..."
연이어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는 북룡각의 정예 스물네 명의 입에서 나왔다.
"도, 독이다."
"가, 각주... 이게 어떻게 된 일..."
피를 토해내며 차례로 쓰러지는 북룡각의 정예들. 북룡각주는 그들을 싸늘하게 노려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배, 배신자!"
북룡각주의 좌우에 서있던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공격했다. 그러나 중독돼 숨조차 쉬기 힘
든 그들의 공격은 무력했다. 북룡각주는 공격을 한다며 허우적대는 두 사람의 이마를 잡아
챘다.
"어리석군."
퍽!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두개골이 터져 나갔다. 탁자와 바닥은 두 사
람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피와 뇌수, 골편이 흘렀다. 붉게 물들은 북룡각주의 손에서 핏방
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머리를 잃은 시체 두 구가 쓰러졌다. 그리고 신음 소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스물네 명,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짝. 짝. 짝.
악중악이 박수를 치면서 들어왔다.
"훌륭했소. 모용 형."
"남은 놈들은 어떻게 됐소."
"북혈각의 자객들이 모두 처치했소. 방주를 호위할 인원을 제외하면 북룡각은 전멸한 셈이
오."
"나중에 그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소."
악중악은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포섭해 두었소."
"그렇다면 이 시신들만 정리하면 끝이군."
"그건 내가 할 테니 모용 형은 북해방주를 호위할 준비나 하시오. 북룡각주가 호위를 해야
북해방주가 움직이지 않겠소."
악중악 입가에 떠오른 비웃음은 섬뜩한 기운이 흘렀다.
사례태감 고신과 오군도독 한우령은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영(花影)을 몰살
시킨 일은 벌써 그들의 뇌리에선 사라진 뒤였고, 또한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정말 좋은 차구려. 한 도독."
"운남에서 가져온 차입니다. 매우 뛰어난 차지요."
"그렇구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하는구려."
"따로 준비를 해두었으니 가실 때 가져 가시요."
"고맙소이다. 한 도독."
겉으로는 정겨운 얼굴로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두 사람은
절대 속내를 밝힐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둘 다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이원을 정리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속내의 일부를 드러내야 했다.
"감시자들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편하겠소이다."
"화영을 정리해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외다."
"하하. 고 태감같은 충신을 감시하는 무도한 자들을 없애는 일은 군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아직 화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올시다."
"그렇소이다. 화영의 상층부인 이원이 남아 있으니 불씨는 꺼진 것이 아니지요."
그들의 대화는 이원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선대의 폐하께서 무슨 의도로 그런 무도한 조직을 만들었는지는 무식한 군인인 저는 모르
겠습니다. 하지만 충신들을 암살하는 그런 조직은 이제 없어져야 하지 않겠소."
"옳소이다. 폐하께서 죽음을 원한다면 신하는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이원이란 암살조직
을 사용해 신하를 처단할 필요는 없지요."
"당대의 폐하께선 희대의 성군이시니 능히 이원을 없애려고 하실 겁니다. 그러나 선대의 폐
하께서 만든 조직을 없애는 것이 불효라 생각하셔서 고뇌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폐하의 심기를 파악하고 고민하고 계셨구려. 과연 한 도독은 충신이외다. 사실 본 인도 그
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소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가증스러웠다.
"고 태감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구려."
"폐하의 심려를 해결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가 아니겠소."
"그렇다면 이원을 없애기로 합시다."
고신과 한우령은 음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원을 없애려면 상당한 희생이 필요하오. 이원의 세력은 만만치가 않소이다."
"경사삼대영을 모조리 동원한다면 이원을 멸망시킬 수 있지만 많은 희생과 함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외다."
"혹시 좋은 계책이라도 있으시오?"
"차도살인(借刀殺人)."
한우령의 짧은 대답은 병법36계의 하나였다. 남의 힘을 빌어 적을 친다는 차도살인은 응용
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고단수의 모략에 해당한다.
"이원을 상대할 세력이 강호에 있다는 것이오? 도대체 그건 또 무슨 세력이오?"
"계략은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효과가 크오."
"음... 알겠소. 그럼 이원은 한 도독께서 정리하는 것으로 믿고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겠
소."
"걱정 마시구려. 두 번 다시 고 태감의 귀에 이원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조덕환이 문제인데... 빨리 체포해야 하지 않겠소."
조덕환이 거론되자 고신은 뜻밖에도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걱정할 필요 없소. 조덕환은 자기가 키운 자에게 모든 것을 잃을 것이오."
"고 태감. 조덕환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구려."
"그렇소. 하지만 말해드릴 수는 없소."
"알겠소이다. 조덕환은 고태감이 책임진 것으로 알겠소."
한우령과 고신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집무실에서 고신이 나가자 한우령의 얼굴에 냉
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참는다... 하지만 언젠가 너도 조덕환의 뒤를 따를 것이다."
한우령은 고신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도독 각하. 좌군영의 섭만생입니다."
"들어오시게."
짙은 검은 수염과 송충이 같은 눈썹을 가진 삼십대 중반의 장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섭만생이 도독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잘 왔네. 자, 어서 앉게나."
"알겠습니다."
섭만생이 자리에 앉자 한우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신과 있을 때 짓던 가식적인
미소와는 전혀 달랐다.
"그를 만났는가?"
"네, 도독 각하."
"그와 대면한 기분이 어떤가?"
"음... 금면탈로 얼굴을 가리고 이름마저 숨긴 자와 대화를 한다는 좋은 경험을 치렀습니다."
섭만생의 얼굴에 불쾌함이 흘렀다.
"하하하... 알겠네. 알겠어. 어째서 그런 인물과 교섭을 하는 자리에 보냈냐는 불만이 얼굴에
써져 있네."
"그건 아닙니다..."
"뼈 속까지 군인인 자네에게 그런 임무를 맡겼으니 내 실수였네. 하지만 자네말고는 그 일
을 할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그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네."
"알고 있습니다. 그 금면탈의 괴인의 움직이면 많은 병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섭만생은 금면객과 있었던 교섭을 떠올렸다. 은연중에 피어나는 기묘한 살기와 박력에 눌
려 한우령이 알려준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던 자신의 모습이 기억난 섭만생은 얼굴을 찌
푸렸다.
"그만 얼굴 찡그리게나."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보다 자네에게 또 다른 임무를 맡겨야겠네."
"하명하십시오."
"서문종 노장군을 알고 있겠지."
갑자기 한우령이 서문종을 언급하자 섭만생은 표정이 굳어졌다. 군부에 몸을 담고 있는 장
군들은 대부분 서문종을 잘 알고 있었고 존경하고 있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표적 중에 하나인 이원에 몸을 담고 계신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걸세."
"네. 알고 있습니다."
"이원이 붕괴될 때까지 자네가 그분을 맡아야겠네."
섭만생은 한우령의 명령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을 도출하게 할 만큼 명령이 애매했던 것이다.
"제 능력으로 어떻게 서문 노장군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못난 제게 하교바랍니다."
"지금 서문 노장군은 조덕환을 추적하고 계시네. 역적 조덕환은 북해방이라는 불법단체를
이용해 은밀하게 숨어있네. 자네는 북해방에 대한 정보를 서문 노장군에게 흘려 이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만들면 되네."
"알겠습니다."
섭만생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혹시나 서문종을 해치라는 명령이 나올까봐
걱정하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안도하던 섭만생은 북해방의 정보를 얻을 방도가 없다
는 현실이 떠오르자 암담해졌다.
"도독 각하. 소장에겐 북해방의 정보를 얻을 방도가 없습니다. 게다가 서문 노장군께 소식을
전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북해방에 관한 정보는 내가 수시로 알려주겠네. 그리고 서문 노장군께 북해방의 정보를 전
달하는 수단도 내가 준비해 두겠네."
"알겠습니다. 도독 각하."
"자네만 믿겠네. 그럼 수고하게."
"예. 그럼 소장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섭만생이 나가자 한우령은 깊게 탄식했다.
"금면객이 신녀를 제거한 뒤에 이원을 청소할 부대를 찾아야겠군. 아무래도 좌군영을 쓰기
는 힘들 것 같군..."
한우령의 독백에는 깊은 시름이 깔려 있었다.
"도독께선 쓸데없이 고민을 하시는군요."
갑자기 등뒤에 누군가 나타나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우령은 눈썹 한올 흔들리지 않았다.
"내 집무실에 마음대로 들어오라는 허락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네."
"그 점은 제가 도독께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도둑의 우두머리인 제가 도
독을 배알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 없지 않습니까."
"흥! 진주언가만 세워지면 언제든지 공령문을 버릴 사람이 도둑의 두목이라 칭하다니 우습
구먼."
한우령의 집무실에 나타난 인물은 언봉운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 신분은 공령문주입니다."
"오행맹의 다섯 주인 중에 하나인 을목도주이기도 하지."
"도독께선 저에 대해 너무 많이 아십니다."
"협력자의 정체를 알아야하는 것은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렇군요."
언봉운의 말투 속에 빈정거리는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한우령은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등
뒤에 언봉운이 있는데도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를 고수했다.
"자네는 이원과 고신에 대한 정보를 내게 넘기면 끝이네. 모든 일이 해결되면 진주언가의
재건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내가 할 일도 끝이지."
"잊지 않으셨군요. 그 약속은 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언봉운의 두 눈동자에 음산한 광채가 번뜩였다. 그런데 오군도독 한우령은 싸늘한 비웃음
을 짓고 있었다.
동창을 향해 걸어가던 고신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신의 시선이 성곽의 벽체에 고
정됐다. 잘 다듬어진 바윗돌로 축성된 성벽은 자금성의 외곽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평범했다. 고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거나 시선을 끌만한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나오너라."
"놀랍습니다."
성벽의 일부가 일그러지더니 연적심이 나타났다.
"무엇이 놀랍다는 거지?"
"무공도 없는 고 태감께서 제가 은신한 것을 눈치채시지 않았습니까."
"흥. 자네가 사용한 천에 그려져 있는 성벽의 모습은 실제 성벽과 똑같이 그렸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허실(虛實)의 차이."
고신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연적심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무공을 모르는 늙은 환관에게 은신술
을 발각 당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놀랍군요. 그런 맹점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고 태감 같은 분께 걸리면 끝장이군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어서 본론을 말해라."
한우령이 언봉운과 밀약을 체결했듯이 고신은 연적심과 비밀리에 손을 잡고 있었다.
"조덕환이 곧 움직일 겁니다."
"어디로 가는가?"
"푸른 늑대조각이 있는 곳입니다."
"음... 드디어 움직이는군."
북해방주의 움직임은 고신의 눈과 귀에 포착돼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직은 나둬야지. 천장별부를 열 때까지는 말이야."
"이제 곧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를 고 태감께서 무엇이 부족하다고 천장별부에 욕심을 내
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황금 때문이지... 폐하께서 천장별부의 황금을 원하시니 어쩔 수가 없어..."
조덕환에 관한 일을 책임지겠다고 한우령에게 말한 이유가 천장별부의 황금을 노리는 황제
때문이었다.
"저는 황금에는 별 흥미가 없지만 무공은 다릅니다."
"그런 종이 쪼가리는 관심도 없네. 하지만 그 종이 쪼가리를 얻으려면 자네가 할 일을 충분
히 해내야 할걸세."
"잘 알고 있습니다. 고 태감 어른."
"좋아. 그런데 악가 애송이의 움직임은 어떤가?"
고신은 북해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건 마치 매미를 잡으려는 사마
귀 뒤를 참새가 노리는 격이었다.
"북해방을 암중으로 장악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조덕환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
다."
"음... 애송이 놈이 생각보다 무섭군."
고신은 치밀한 악중악의 행보가 마음에 걸렸다.
"조덕환이 푸른 늑대조각을 얻은 뒤에 악중악은 움직일 겁니다. 북해방 세력도 차지하고 천
장별부마저 얻을 생각이겠지요."
"북해방 따위야 누구에게 넘어가던 상관없지만 천장별부에 있는 황금과 보화는 넘길 수 없
지."
"걱정 마십시오. 푸른 늑대조각은 세 개가 모이지 않으면 단순한 옥조각에 불과합니다."
연적심의 얼굴에 빈정대는 기색이 역력했다.
"흥, 방심하다가 실패한 자들을 많이 봐왔지. 자네도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네."
"충고는 고맙게 봤겠습니다."
"깊이 새겨두게. 그리고 천장별부의 지도를 내 눈앞에 가지고 오게. 천장별부의 황금과 보화
를 얻는다면 자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해주지."
"알겠습니다. 그럼 푸른 늑대조각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연적심은 고신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연적심이 흔
적도 없이 사라지자 고신은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동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새로 동창
의 수반이 된 자는 고신의 심복이었다. 동창은 고신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흥. 그 누구도 믿지 않아야 궁중생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법이지. 그런데 강호에서 가장
비천한 구류방의 수괴 따위를 내가 믿을 수는 없지. 게다가 배신까지 한 놈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한 번 배신한 자는 언제든지 두 번째 배신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고신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연적심은 이원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이원의 멸망을 원하고 있었다. 그 점이
연적심을 더욱 신용할 수 없게 했다.
"아무래도 동창을 움직여 천장별부와 관련된 것을 내가 직접 챙겨야겠어."
고신은 천장별부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양의 황금과 보화를 꿈꾸며 희희낙락했다. 황제에
게 그 엄청난 보화를 받치고 얻을 권력과 신임을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희열에 폭소를 터
트렸다. 동창을 향하는 고신의 발걸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볍기만 했다.
하북성에 도착한 악삼은 푸른 늑대조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누가 소문이라도 퍼뜨리는
지 뇌붕의 움직임을 낱낱이 퍼져 있었기에 악삼은 별 수고 없이 수소문을 끝낼 수 있었다.
악삼은 전력을 다해 뇌붕의 행로를 쫓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붕을 추적하는 강
호인들을 발견한 악삼은 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했다.
"이건 문제가 심각하군."
창칼로 무장한 강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수가 몇 천을 넘었던 것이다. 강호에서 칼밥을
먹었다는 건달부터 거대 문파의 인물들까지 무리별로 모여 있었다.
"일단 푸른 늑대조각을 가진 자부터 찾아내야겠군."
악삼은 일단 뇌붕의 종적부터 찾기로 했다.
뇌붕의 정신은 지쳐있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화기는 모두 사용해 남은 것은 벽력화정
단 한 알이었다. 단 한 알의 벽력화정이 마지막 생명의 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벽력화정
한 알로는 자신을 뒤쫓고 있는 수천의 강호인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뇌붕에게 남은 것
은 젖먹던 힘마저 끌어내 달리는 것뿐이 없었다.
"저기다."
"뇌붕이 저기에 있다."
"잡아라!"
뇌붕의 종적이 일단의 강호인들 눈에 발견됐다. 순식간에 꿀을 본 벌떼처럼 강호인들이 달
려들었다. 뇌붕은 창백한 얼굴로 거친 숨을 쉬며 몰려오는 강호인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
다.
"저 도적들이... 내 보물을 뺏으려고 오는구나."
푸른 늑대조각은 내 것이다. 뇌붕은 너희들에게 줄 수가 없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가족마
저 버리고 꿈을 찾아서 뛰쳐나왔다며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이 승냥이 떼라는 것을
뇌붕은 잘 알고 있었다.
"뇌붕이 도주한다."
뇌붕을 쫓는 거친 목소리. 탐욕과 광기에 빠져 있는 강호인들은 뇌붕이라 불리는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와 다를 봐 없었다. 뇌붕은 언제 지쳐있었느냐는 듯이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그러나 강호인들의 추적을 끊을 수는 없었다.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강호인들의 물결에
뇌붕은 쫓기는 사슴처럼 정신 없이 달렸다.
뇌붕은 앞에 나타난 언덕을 거친 숨을 내쉬며 넘어갔다. 언덕 너머에는 거대한 장원이 뇌
붕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원 앞에서 백여명에 달하는 무인들이 칼을 들고 포진해 있었다.
"저, 저기는..."
장원의 현판에 웅장한 전자체로 하북팽가라고 가문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어, 어째서 내가 이곳에..."
정신 없이 쫓기다보면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뇌붕은 오랜 시간동안 쫓겨다녀 동서남
북은 물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란 것이다.
"하필이면..."
팽가의 인물들이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뇌붕은 그들을 노려보며 뒷걸음을 쳤다."
"저기다."
"뇌붕이 저곳에 있다."
강호인들이 언덕을 넘어 내려왔다. 몇 백이 넘는 강호인들이 몰려오자 팽가의 무인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뇌붕을 중심으로 팽가와 강호인들이 팽팽한 대치상황을 이루었다. 숨
막히는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본 가의 권역이다. 본 가와 시비를 따지려는 자들이 아니면 물러가라."
"흥! 털도 안 뽑고 날로 먹으려고 하느냐!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해 뇌붕을 쫓았는데
이젠 그냥 돌아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팽가의 협박에도 강호인들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판단이 섰
기 때문이다.
"옳소. 지금까지 고생하며 뇌붕을 추적했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소."
"물러서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백 여명이 넘는 팽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칼을 뽑자 가공할 기세가 풍겨났다. 강호인들은
팽가의 무인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눌려 뒷걸음쳤다.
"강호의 동도들. 우리가 힘을 합하면 팽가도 막을 수 없소. 팽가의 칼이 무서워 이대로 꽁무
니를 뺄 생각이오?"
강호인들 속에 있던 짙은 구레나룻의 사십대 중반의 털보가 칼을 뽑으며 외쳤다.
"그럴 수는 없지. 지금까지 한 고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없어."
"그렇소. 우리 팽가의 욕심을 막읍시다."
강호인들은 일제히 병기를 뽑더니 팽가의 무인들을 향해 돌진했다.
와~. 와~. 와~.
강호인들이 돌진해오자 팽가의 무인들은 당황했다.
"모두 저들을 쳐라. 본 가의 문전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두 쳐라."
"네, 알겠습니다."
팽가오호 중에 하나인 팽가형의 명령이 떨어지자 팽가의 무인들은 강호인들을 향해 돌진했
다. 팽가형은 팽가적이 사해방을 치기 위해 팽가섭과 팽가중을 데리고 떠난 뒤부터 팽가를
책임지고 있었다.
"큰 형님이 오실 때까지 본 가를 지켜야 한다. 무슨 수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팽가형은 강호인들을 향해 돌진하는 팽가 무인들을 바라보며 독백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
로 푸른 늑대조각을 독점해 팽가천하를 이루겠다는 야심도 꿈꾸었다. 뇌붕이 어떻게 하북
팽가의 본거지까지 몰렸는지 생각도 않고...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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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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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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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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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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