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7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자비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자비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비는 자(慈)와 비(悲) 두 낱말의 합성어입니다. 자는 애념(愛念: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樂)을 주는 것입니다. 한자의 자(慈)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형상에서 이뤄진 글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비는 민념(愍念: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의 고통(苦)을 없애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만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비심을 갖는다는 것은 철저한 무아사상(無我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고 사람들의 고통을 제거하여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어 주는 지극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자비에는 중생연(衆生緣) · 법연(法緣) · 무연(無緣)의 삼연자비(三緣慈悲)가 있다고 합니다. 중생연 자비는 친한 사람이나 친분이 없는 사람 모두를 친한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베푸는 자비를 말합니다. 이것은 범부 또는 도(道)에 뜻을 두면서도 아직 번뇌를 끊어버리지 못한 이가 일으키는 자비를 지칭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비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서 가졌던 자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연자비는 일체의 법(法)이 5온(蘊)의 거짓된 화합임을 알고, 대상과 마음의 본체가 아무 것도 아닌 공허(空)한 줄을 깨달은 성자(聖者)들이 일으키는 자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5온은 오음(五陰)이라고도 번역되는 불교용어인데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는 '5개의 집합', 즉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말합니다. 즉 이 다섯 가지의 집합의 구성이 거짓된 화합임을 알고, 마음으로 모든 것을 비우고 오직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도를 통한 성자들이 일으키는 자비의 경지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병환자와 같이 동침하면서 그를 돌보아 준 것과 같은 자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연자비는 온갖 차별된 견해를 여의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아는 하느님에게만 있는 자비라는 것입니다. 이미 대상과 마음 등 모든 현상의 헛된 모습을 알 뿐만 아니라, 인연에 따라 동요됨이 없는 하느님께서 저절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려는 힘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셔서 모든 인간에게 빈틈없이 은총을 베푸셔서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자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모든 사람들이 자비심을 가져야 하는 중생연 자비심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용서를 청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할 때 그 자비로움에 대한 것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보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손해를 보고 약간은 고통이 따르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데 어찌 망설이거나 주저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우리를 기쁘게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자비는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할 때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즐겁게 매일을 사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자비심이 더하여 질 것입니다.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축일3월 17일 성 요셉 (Joseph)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활동 지역 : 아리마태아(Arimathea)
활동 연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네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아리마태아 사람 성 요셉(Josephus)은 의회 의원이었으나 유대 당국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예수를 따라 다닌 제자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다가 예수님이 운명하자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고운 베로 싸서 바위 무덤에 모셨다(마르 15,43-46; 마태 27,57-60; 루카 23,50-53; 요한 19,38-42).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한 일이 없고,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여 가는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 사도를 수행하였고, 잉글랜드(England)로 파견되는 12명의 선교단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잉글랜드 왕이 하사한 땅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아마도 이곳에서 서거한 듯 보인다. 또 성 요셉은 최후 만찬에 사용된 성작을 물려받은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연령회와 장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동방교회에서는 7월 3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축일3월 17일 성녀 제르트루다 (Gertrude)
신분 : 수녀원장
활동 지역 : 니벨레스(Nivelles)
활동 연도 : 626-659년
같은 이름 : 거트루드, 게르투르다, 게르투르데스, 게르투르디스, 게르트루다, 제르뜨루다, 제르뜨루디스, 제르트루디스, 젤뚜르다, 젤뜨루다, 젤투르다, 젤트루다
복자 페핀(Pepin, 2월 21일)과 성녀 이다(Ida, 5월 8일)의 딸로 태어난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는 란덴(Lande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경건한 생활을 본받았으므로 스스로 수도생활에 헌신하고자 노력하였다. 639년 복자 페핀이 사망하자 성녀 이다는 니벨레스에 수도원을 세우고 딸과 함께 입회하였는데, 딸인 성녀 제르트루다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656년에 원장직을 사임한 그녀는 성서 연구와 고행하는데 몰두하였다. 환시의 은혜를 받은 것이 특기할 만하다. 성녀 제르트루다는 여행자와 정원사의 수호성인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요셉 (Joseph) 형제들과 제르트루다 (Gertrude) 자매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