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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도 생전에 자식을 잃는 아픔이 있었다. 장남인 몽필씨는 교통사고로 4남인 몽우씨는 자살로 생을 마쳤다. 생전에 정 회장은 장남과 4남의 자식인 손녀와 손자를 끔찍이 아꼈다는 얘기가 있다. 정 회장이 타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남인 몽헌 회장도 계동 현대사옥에서 떨어져 이승과 하직하고 말았다.
재벌가들의 비보는 비단 국내 뿐만 아니다.가끔 억만장자의 후손이 어디에서 객사했다라는 보도가 나와 일반인들을 의아케 한다.
재벌가에 대한 비운은 미국 시카고의 ‘세계 제일 가는 9부자 이야기’가 잘 말해준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워터비치 호텔에서 당시 최고의 부자 9명이 회합을 가진 적이 있다. 막강한 부를 축적한 철강회사와 전기회사 음료회사들이었다.당대에 성공한 이들은 25년 후 다시 만나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20년 쯤 되었을 때 이들의 후일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의 사장이었던 찰스 샵은 5년전에 파산하여 빚쟁이를 피해 다니다가 병사하였고, 전기회사 사장이었던 샤뮤엘 인셀은 재산을 모두 탕진해 외국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가스회사 사장이었던 하워드 홀슨은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고, 증권회사 사장이었던 리처드 휘프니는 범죄혐의로 교도소에 들락거릴 정도로 전과자가 되었다가 병사하고 말았다.
맥주회사 사장이었던 제스 비브모어와 레온 프레이저라는 은행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30년도 안돼 세계 최고 갑부라는 이들의 말로가 평범한 사람보다 못했다는 시카고의 9부자 얘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재벌이라고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이 증명해 주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가에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얼마 살지 못하고 이혼한 A씨를 몇년전 인터뷰 한적이 있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숨이 막혀 살기가 힘들었다는 하소연이었다. 마치 새장속에 갇힌 새처럼 자신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였다. 도박도 해보고 쇼핑 중독에까지 이르렀지만 상태가 나아지지않아 우울증까지 찾아오자 이혼이라는 극단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물질은 비록 풍족하지 않을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주장한 A씨의 생생한 목소리가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돈=행복’이라는 등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다.
특히 모친 이선애 여사는 창업주인 이임용 회장과 함께 공장을 돌리고 직원들을 챙긴 여걸로 소문난 분이었다. 태광산업은 한때 주식시장에서 주당 가격이 가장 비싼 ‘황제주’로 인정 받을 만큼 탄탄한 회사였다. 이호진 회장은 이러한 제조업 위주의 사업을 미디어 그룹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장 조카와의 불화와 임직원들 통솔 부재 등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폐쇄적인 경영과 하도급 업체에 대한 횡포 등으로 재계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모자가 구속되고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는데도 동정 여론이 일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 회장의 폐쇄적인 경영과도 관련이 있다고 업계에선 지적하고 있다.
동양 현재현(65) 회장도 최근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동양 현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맏사위로 그룹을 물려받아 한 때 잘나가는 사위 총수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조부가 고려대 총장, 부친은 이화여대 교수을 지낸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자신 역시 서울법대 3학년 때 사법 시험에 패스한 수재였다. 현직 검사 시절인 1976년 이 회장의 장녀인 혜경씨와 백년 가약을 맺고 동양그룹 맏사위가 됐다. 결혼 이듬해 검사직을 사임하고 ‘황금의 제국’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하고 귀국, 장인 밑에서 착실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장인이 타계하자 시멘트를 비롯한 모기업은 맏사위인 현 회장이 맡고, 제과업은 둘째 사위가 맡는 것으로 지분 정리를 끝내고 각기 경영에 돌입했다.
그룹 회장이었지만 현 회장의 주식은 아내보다 적었다. 그래서 2005년 동양레저를 세워 지주회사로 만들고 자신이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때부터 주변에 처가쪽과의 불화설이 불거져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그룹 경영이 나빠지면서 무리하게 전환사채(CB)등을 발행,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사기성 기업어음(CP)등을 발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양 그룹은 한때 재계 10위권을 맴돌 정도로 시멘트·건설·금융 등 사세가 막강했었다.
현 회장은 재벌가와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검사로서도 인정 받고 상위 1%의 삶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재벌가 딸과의 결혼으로 인생 말년에 망신살을 당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재벌들의 수난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국내 유명 재벌총수들 중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특히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수사 때는 주요그룹 총수 전원이 검찰에 불려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현명관 삼성그룹 비서실장(현 마사회 회장)은 필자에게 “자신이 비서실장 재직중에 가장 치욕적인 일이 이건희 회장을 검찰에 불려가도록 한 일”이라며 “앞으로는 절대 그런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10여년 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이 회장은 다시 한번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최근 STX 고위 임원을 지낸 C씨를 만났다. C씨는 “강덕수 회장은 역대 재벌총수 중 가장 ‘비참한’ 수형 생활을 할 것 같다”면서 “그룹 핵심임원이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총수와 달리 기업군을 일군 지 얼마 안돼 조직(기업)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심지어 변호사 비용 마저 마련할 형편이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이 모두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모든 비용은 자신이 마련하고 있는데 개인 돈이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재벌 춘몽’이 15년 만에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강덕수’ 하면 샐러리맨의 신화로 얼마전까지 칭송받던 STX 그룹 회장이다. 강 회장은 2조원대의 회계 분식과 약 5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IMF가 한창일 때인 2000년 강 회장은 매물로 나온 쌍용중공업을 사재를 털어 인수하는 모험을 강행한다. 이듬해 STX로 개명, 본격적인 사세 확장과 사업 다각화를 모색했다. 기업은 순풍을 달았다. 조선과 해운이라는 영역에 치중, 한 때 국내 재계 랭킹 11위까지 오르면서 셀러리맨의 신화로 떠올랐다.
다른 창업주와 달리 강 회장은 평범한 셀러리맨에서 재벌 반열에 들어선 면이 돋보였다. 대부분의 제조업 창업주는 현장에서 차근 차근 영역을 넓혀 가며 수십년 동안에 기업군을 일궈냈다. 그래서 주변에선 IMF는 강 회장을 위해서 있었던 것 같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강 회장의 영화는 15년만에 막을 내렸다. 기업 경영 기간이 일천해 다른 몰락한 총수와 달리 재산을 제대로 숨겨두지도 못했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1973년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 CFO까지 올랐던 그가 ‘재벌 흉내’만 안냈으면 구치소 신세까지는 면하지 않았을까.
SK그룹 최태원 최재원 회장 형제는 지금 나란히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 태광 그룹 총수 모자가 재판을 받고 있는 것처럼 이들은 형제가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월 수백원대의 회삿돈 횡령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4년 형을 확정 받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최 회장은 예전에도 8개월 동안 철장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구속돼 2번째 수형 생활이다. 다른 총수들과 달리 아직은 교도소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룹 핵심 임원들이 매일 교대로 면회를 가는 등 모든 역량은 회장 옥중 뒷바라지에 메달려 있다. 그룹의 중 장기 플랜은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나 다름없다. 아무리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되었다고 하지만 중요 결정은 오너가 아니면 내리기 힘든것이 우리 기업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 중 가장 형을 오래 산 사람은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이다. 10년 넘게 교도소에서 있었다. 대구 광명주택의 이수왕 회장은 형을 살다가 교도소에서 화병으로 타계한 케이스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그룹이 해체될 때 해외를 떠돌다가 몇년만에 귀국, 한 때의 영화를 곱씹어야 했다.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지금도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파라다이스 전낙원 회장(2014년 작고)은 문민정부 시절 내내 해외에 도피했다가 암 말기 진단을 받고 귀국했었다. 도피 기간중 아들의 결혼과 부인의 사망에도 참석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첫댓글 재벌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가정에서는 비운이 있고 회사로서는 횡령의 고초를 꺾는다.
재벌총수로 교도소의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들을 너무 부러워할 처지도 못된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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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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