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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이원지멸(梨園之滅)-1
송자헌 일가와 희 노인은 하남성 북부에 위치한 안양에 도착했다. 안양은 안양하(安陽河)가
위하를 거쳐 천진을 관통해 교통이 원활해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송자헌 일가는 안양하
근처에 있는 객잔에 여장을 풀었다.
"한적하군."
"전세를 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말이야. 작은 객잔이라도 통째로 전세를 내려면 돈
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는가? 내 종자돈이 몽땅 날아갔다네."
송자헌이 텅 빈 객잔 안을 보면서 푸념하자 밖에 나갔던 희 노인이 들어오면서 어이없어 했
다. 송씨 일가를 위해 일부로 객잔을 전세를 냈건만 송자헌은 너무 조용하다고 불만을 토
로해 희 노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야 도자기나 구우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신세지만 자네는 한 문파의 종사가 아닌가? 고
작 객잔 하나 전세냈다고 주머니에 먼지뿐이라며 촌로(村老)처럼 굴지 말게."
"내참... 이거야 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보다 무슨 일로 나갔단 온 건가?"
"소식을 좀 알아볼 게 있어서 나갔다 왔네.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 있는가?"
희 노인은 대충 대답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밖에 있네."
송자헌이 안양하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자 희 노인은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단란한 일가의 모습이군."
안양하를 지나가는 작은 배를 보며 즐거워하는 송채린 옆에 송철방이 듬직하게 서 있었고,
송자영은 어린 젖먹이를 안고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채린이는 여행이 처음이다 보니 매우 들떠 있다네."
"그렇구먼. 매우 즐거워하고 있군."
"자 그만 애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이리 앉게나."
송자헌은 희 노인이 착석하자 죽엽청 한 잔을 따랐다.
"대낮부터 웬 술인가?"
"마시기나 하게."
송자헌이 잔을 들자 희 노인도 잔을 들었다. 두 노인은 아무런 말없이 술잔을 몇 순배(巡
杯)나 돌렸다. 순도가 높은 죽엽청은 두 노인의 볼을 붉게 만들었다.
"알아본 소식이 뭔가?"
송자헌의 기습질문을 받은 희 노인은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들다가 멈칫했다. 희 노인은
안주를 내려놓고 송자헌를 보면서 말했다.
"팽씨 일족이 이번에 난을 당했네."
"하북팽가말인가?"
"그렇다네. 푸른 늑대조각으로 인해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네. 최소한 몇십년 안에 회
복하기 힘들 걸세."
"능력도 안 되는 놈들이 욕심을 부렸으니 당연하지. 그보다 다른 소식이나 어서 풀게나."
송자헌과 희 노인에게 있어 하북팽가는 일말의 가치도 없었다. 두 노인은 한 가문의 불행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리고 육합자가 사망했네."
"육합자는 폐관수련 중이지 않았나?."
"몇달 전에 폐관을 마치고 나왔네. 푸른 늑대조각을 추적하다가 변을 당했네."
"허! 믿을 수가 없군. 내가 아는 육합자는 진정한 무인이었네. 결코 보물 따위에 현혹될 인
물이 아닌데..."
송자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정한 무인으로 알고 있던 육합자가 변했다고 생각하자 언
짢아졌던 것이다.
"사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네. 그러다가 그만 혈모니 연화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
지."
"그런가..."
희 노인이 연화를 담담한 말투로 언급했지만 섬뜩한 살기가 내포한 안광이 잠시 번뜩였다.
연화의 손에 희생된 살막의 자객들을 희 노인은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군. 육합자는 어쩌다 혈모니와 만나게 되었을까? 이상한 일이군."
송자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했다. 희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하북팽가에서 벌어진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북해방주가 문제였군."
"그렇다네. 하지만 문제는 연화가 육합자를 죽일 때 무형살인강을 사용했다는 것이네."
송자헌의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형살인강을 사용했다면 연화는 자신과 별 차
이가 없는 고수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연화가 그 정도의 고수였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군. 가만 그렇다면 푸른 늑대조각은 연화
가 가져갔겠군."
"아니네. 푸른 늑대조각은 악삼이 가져갔네."
"악삼! 설마 악삼이 나타나 연화와 싸웠단 말인가?"
"그렇다네. 단 한 번의 승부로 이겼다네."
객잔은 고요한 시간 속에 묻혀 버렸다.
"한 번이라... 그렇다면 두 사람의 무공은 거의 비등한 셈이군. 게다가 나와 별 차이가 없다
는 뜻인데..."
"악삼과 연화와 어깨를 겨룰 자는 자네와 임백령뿐이네. 일양자나 일묘는 반 수 정도 처지
네."
"임백령이라면 쉽게 이기네... 그리고 두 사람과 어깨를 겨눌 자라면 나말고도 고 파파와 칠
리산당의 노 당주가 있네. 그리고 자네가 있지.."
송자헌은 손가락으로 희 노인을 가리켰다.
"으하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 무공의 경지에 대해서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
가."
희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물론 무공으로는 안 돼지. 하지만 자네의 특기는 살인이 아닌가. 자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 않은가."
송자헌이 정색하며 말하자 희 노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허허... 그렇지 않다네. 나는 임백령을 죽이려다 패하고
목숨까지 구걸 받았지."
"자네도 패했구먼..."
"그렇다네... 300년이래 최강의 고수와 같은 시간대에 산다는 건 무인에게는 행운이면서 불
행이지만 나 같은 자객에겐 참혹한 악몽이라네."
희 노인의 안색은 어두웠다. 송자헌도 희 노인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만 하세. 내일이면 장 방주가 도착할 걸세. 이런 얼굴로 사돈을 반길 수는 없지 않겠는
가."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꼈는지 희 노인은 너스레를 떨더니 술잔을 높이 들었다. 송자헌
도 술잔을 높이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희 노인는 송자헌과 달리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내는 전혀 달랐다.
딸과 사위의 원한을 갚기 위해 북해방주와 비밀리에 손을 잡았지만, 동시에 살막의 영향력
확대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해방주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해버렸기에 희 노인의 가슴은 시릴 수밖에 없었다.
금면객과 백혼은 이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객잔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객잔이 이원의 초소입니다. 저곳을 신속하게 파괴해야 합니다."
"알았네. 을목도주."
을목도의 주인은 언봉운이다. 공령문주인 언봉운도 금면객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의 행적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단 한 명도 놓치지 마라."
"알겠습니다."
백혼은 작지만 힘이 넘치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좌조와 우조는 객잔을 포위하게. 혹시 전서구나 도망자가 나오면 처리해주게나. 공격은 선
조(先組)가 하겠네."
"알았네. 그렇게 하지."
좌조와 우조의 조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조(後組)는 이원의 입구에 매복을 서게."
선조 조장의 의견을 동의한 후조 조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혼의 네 조장의 회의
는 간단하게 끝났다.
"그럼 시작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 조장은 각자의 조원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후조가 이원을 향하자
좌조와 우조는 객잔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쳤다. 포위망이 완성되자 선조는 객잔을 향해 돌
진했다.
"크아악!"
"으악~."
선조가 객잔에 쳐들어가기 무섭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객잔 안에서 병장기가 맞부딪칠 때
나오는 날카로운 소음이 연이어 흘러나와 비명 소리를 잠재웠다.
"곧 정리되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네."
"백혼의 힘이라면 목적을 쉽게 달성할 겁니다. 게다가 오귀조와 사신대의 대부분을 이원의
좌, 우장인 두 노괴물이 끌고 나갔고 진룡거사도 외부에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이원을 떠나 있는 것은 자네가 수고한 덕분이라는 걸 아네. 그동안 고생 많았네."
금면객이 치하하자 언봉운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이 떠난 것은 우연일 뿐입니다."
"무토도주와 자네, 그리고 구류방주가 손을 잡고 이번 일을 성사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네."
"알고 계셨습니까?"
언봉운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버렸다. 척신명과 연적하,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던 밀
약을 금면객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또한 금면객이 알아냈다면 다른 사
람들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 말게. 자네들이 밀약을 체결한 것을 알아낼 사람은 없네. 그리고 나 또한 정확하게 모
르고 있네."
"음... 오해가 없도록 밀약에 대해 자세히 말해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우리의 밀약을 어떻게
아신 건지 밝혀 주시겠습니까?"
"나는 오행맹의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네. 다만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할 뿐이네. 물론
남은 네 사람도 같은 생각일 것이네."
언봉운의 안색은 한 치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심 금면객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 자신도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있으며 언젠가 누군가 배신할 거라고 염두에 새겨 두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오행맹의 네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네."
언봉운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버렸다. 감시를 당하고 있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것에 경악한 것이다. 게다가 경공과 신법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
마저 일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오직 잠입과 은신, 신법, 변장술만 익힌 자들이 백혼에 있다네."
"결국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우리 세 사람은 회동을 한 셈이군요."
"그렇다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를 감시하는 자는 아직도 임무를 수행하는 중입니까?"
금면객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언봉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감시자
의 은신 능력에 감탄했고, 금면객의 철두철미함에 질려버린 것이다.
"공령문은 은신과 신법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계수도주께서는 어느 문파의 어
른인지 갈수록 궁금해지는군요."
"모르는 것이 좋네... 자네는 눈을 아는가?"
"무슨 말씀인지..."
"나와 백혼은 한겨울의 눈과 같네. 봄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들이지. 눈이 녹은 물
은 봄볕에 사라져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지. 우린 그런 존재이네."
금면객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공령문주인 제 눈을 속이고 있는 은신과 신법은 알고 싶
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게 움직이는 자는 도둑말고 또 있네. 그들은 자객이지."
"공령문의 신법과 은신술을 능가하는 자객은 없습니다."
"문파와 한 사람, 둘이나 있네. 한 사람은 원대의 자객인 홍매이고, 세력은 살막이라는 자객
집단이네."
금면객은 살막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본 문에 살막과 홍매의 자료가 보관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법이 본 문을 능가한다
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언봉운은 살막과 홍매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특히 살막의 역량과 역사, 그 정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살막은 두려운 곳이네. 세상에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가장 무서운 네 가문 중에 하나로 어
둠의 제왕이네."
"네 가문? 그건 또 뭡니까?"
"그 가문들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한 정보가 없네."
금면객이 언급한 네 가문은 한림사가였다. 언봉운은 금면객이 언급한 가문들에 대해 호기
심이 생겼지만,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감시하는 자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저를 감시하는 자가 배운 것은 살막의 신법입니까? 아니면 홍매의 것
입니까?"
"그들은 홍매의 자객술을 익혔네."
홍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언봉운의 두뇌가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홍매는 화산파 출신이다. 그렇다면 암향표가 변형된 신법이겠군. 그런데 은신법을 어떤 것
을 사용하는지 모르겠군. 어디에서 날 감시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어.'
언봉운의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빠르게 돌고 귀가 쫑긋거렸다. 감시자의 종적을 찾으려는
생각이 깊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금면객은 슬쩍 고개를 돌려 언봉운을 힐끗 노려보았
다.
"그들은 모두 다섯 명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 유령과 같네. 찾으려고 노력해봐야 아무
런 소용없네.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 그들은 은신과 잠입, 신법을 중점으로 익혔을 뿐이네."
금면객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객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백혼의 선조가 살육을 끝내고 객
잔에서 나오고 있었다. 언봉운은 금면객의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신법과 은신술만 익혔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웃기는 말이군. 하여간 금면객은 오행맹의 인
물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자다. 정체조차 모르고 있으니... 그만큼 위험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대처할 방법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얼굴조차 모르는 인물과 협력
을 하고 있는데다가 그 인물에게 감시까지 당하고 있다면...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는 듯한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한 것과 같다.
"을목도주. 이만 가세."
"알겠습니다."
금면객이 이원을 가리키자 언봉운은 객잔에서 나오고 있는 백혼을 보면서 대답했다. 백혼의
선조 조원들이 걸치고 있던 백포는 붉은 꽃이 섬연하게 피어있었다. 붉은 꽃송이는 진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전원 이원을 향해 출발하라."
"네!"
백혼은 짧게 대답했다. 금면객이 앞장서서 이원을 향해 움직이자 백혼은 일제히 그 뒤를 따
랐다.
"얼마후면 이원도 저 꼴이 되겠군."
언봉운은 금면객과 백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죽음의 향기가 감도는 객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객잔은 고요한 침묵 속에 빠진 채 진한 피비린내만 풍기고 있었다. 언봉운은 시선
을 다시 백혼에게 돌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반 시진이 지나자 그들은 이원이 보이는 작은
협곡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진한 피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피비린내는 협곡의 으슥한 곳에 나오고 있었다.
그곳에는 수십여구에 달하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들은 이원의 주민으로 후조의 공격
을 받아 몰살을 당한 것이다. 금면객은 시체들을 슬쩍 훑어보더니 작은 숲을 향해 말했다.
"특별한 변화는 없었느냐?"
"없습니다."
작은 숲 속에서 후조 조장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 그럼 곧바로 돌진한다. 우리의 목표는 신녀의 사당이다. 반항하는 자들은 사정을 볼
필요없다."
"알겠습니다."
"전원 돌격하라!"
금면객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혼은 일제히 이원을 향해 돌진했다. 이원의 입구에 있
는 망루에서 경비를 보던 적귀조와 백호대의 대원 두 명은 돌격해 오는 백혼을 보고 경악했
다.
"기습이다!"
"어서 종을 쳐!"
백호대 대원 한 사람이 급하게 종을 때렸다.
땡. 땡. 땡...
세차게 울리는 타종 소리는 이원에 울려 퍼졌다. 어린 아이와 부녀자들은 집안으로 숨었고
남자들은 병장기를 들고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특히 백호대와 오귀조는 단 일 각만에 무
장을 갖추고 입구에 집결했다.
"저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백호대주가 망루를 향해 질문했다.
"모르겠습니다."
망을 서고 있던 백호대 대원이 다급한 어조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좌우장 두 어른이 안 계실 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백호대주. 일단 저들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소."
적귀조장이 백혼을 가리키며 말하자 백호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두 어른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원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그렇소. 일단 백호대가 이곳을 맡으시오. 우리 적귀조가 저들과 맞서겠소."
적귀조장은 백호대주의 대답도 듣지 않고 돌진했다.
"와아아~."
적귀조 조원들은 적귀조장의 뒤를 따라 일제히 백혼을 향해 돌진했다. 백호대주는 돌격하
는 적귀조를 쳐다보다가 집결해 있는 백호대 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방어진을 쳐라."
"예. 알겠습니다."
백호대 대원들은 사열종대로 재집결했다. 선두 열은 대형 방패를 세워 진열 앞을 막았고,
두 번째 열은 장창을 세웠다. 세 번째 열과 네 번째 열은 활을 들었다.
"저놈들은 누군지 모르겠군."
백호대주는 진을 치고 나자 여유가 생겼는지 백혼은 찬찬히 노려보았다.
"적귀조와 격돌하고 여기까지 올 자들이 몇이나 될까..."
백호대주는 백혼이 적귀조와 격돌하면 몰살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적귀조의 조직력과 역
량은 강호 전체를 통 털어 최상급에 들어가 있었다.
"공격하라."
"저놈들을 쳐라!"
적귀조 조원들은 장도를 뽑아들고 백혼과 충돌했다.
챙. 챙...
백혼은 적귀조 조원들이 휘두르는 칼을 등뒤에 매고 있던 칼을 뽑아 간단하게 막은 뒤 곧바
로 역공을 가했다. 적귀조 조원들은 백혼의 칼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으아악~."
"크악!"
승부는 쉽게 났다. 현란하게 춤추는 백혼의 칼 앞에서 적귀조는 그 이름 그대로 붉은 귀신
이 되어 황천으로 직행했다. 백혼은 적귀조 조원들의 시체들을 뒤로하고 백호대를 향해 돌
격했다. 백호대주는 백혼이 쇄도하자 백호대 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쏴라."
쓩. 슈쓩...
진의 삼열과 사열이 번갈아 가면서 화살을 쏘아 올렸다. 비록 50명이 화살을 쏘았지만 세
상이 온통 화살로 가득했다. 백호대 대원들은 속사로 쏴대고 있었지만 각 화살마다 한 아
름이 넘는 나무도 관통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백혼에게 화살은 산들바람과 같
았다.
"빌어먹을... 모두 활을 치우고 삼합진(三合陣)을 펼쳐라."
백호대주는 현재의 진형으로 백혼과 격돌한다면 백호대가 몰살당할 것이라고 예측해 새로운
진형을 펼치도록 명령했다. 백호대는 일제히 방패와 활을 버리고 창을 들고는 빠르게 움직
였다. 세 열로 모여 삼각형으로 포진했고 가운데 빈 공간은 백호대주가 두 자루의 단창을
들고 백혼을 기다렸다.
채챙. 챙. 챙...
새하얀 해일처럼 밀려오던 백혼이 백호대가 준비한 삼합진의 앞부분을 짚어 삼키자 병장기
가 격돌했다.
푹.
"크억!"
스각.
"으아악~."
창칼과 칼의 격돌은 피와 죽음을 불렀다. 참혹한 싸움은 순식간에 전면의 산 형태의 진이
백혼의 돌격에 무너지면서 극에 달했다.
"막아라!"
전면이 깨져 나가자 백호대주는 후방에 일렬로 서 있는 대원들에게 명령하고는 쌍 창을 휘
두르며 돌진했다. 백호대주는 눈가에 진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전방에 있던 동료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백혼의 돌격을 잠시나마 막아줘서 그 기세가 한 풀 꺾였던 것이다.
우웅. 웅~.
사신대 최고의 고수인 백호대주가 휘두르는 두 자루의 단창은 강대한 힘이 실려 있었다.
퍽.
"으악~."
백호대주의 단창은 적들의 두개골을 꿰뚫어버렸다. 순식간에 네 다섯 사람이 백호대주의
단창에 희생됐다.
"대단하군. 그러나 이만 가줘야겠다."
캬오오~.
귀곡도를 펼치면 나타나는 악마의 소혼성(消魂聲).
"커억... 아, 아직도 적들이 남아 있는데..."
백호대주의 이마에서 선명하게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하더니 얼굴과 가슴을 지나 복부까지
붉은 선이 나타났다.
퍼억.
백호대주는 들고 있던 단창과 함께 두 조각이 나버렸다.
"아깝군..."
좌조 조장은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칼을 든 채 두 동강난 백호대주의 시체를 바라보며 안타
까워했다. 자신이 직접 죽였지만 백호대주가 아까웠다. 좌조 조장은 백호대주가 흘리던 눈
물에서 진한 동료애와 무인의 기백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 있을 만큼 좌조
조장은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는 전장을 향해 뛰어들었다.
백호대는 지휘관을 잃었지만 단 한 명도 도주하지 않고 백혼과 끝까지 싸웠다. 전원 피로
물들은 전장에 드러누울 때까지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백호대가 전멸하자 백혼은 이원 내
부로 쳐들어갔다. 이원의 골목마다 수십여명 씩 주민들이 병장기를 들고 포진하고 있었다.
"으악~."
"아악~."
백혼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원 주민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마을 전체가 도살장으로
변해버렸다. 근 천 여명에 달하는 남자들이 모두 병장기를 들고 덤벼들었지만 백혼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온통 피바다로 변해버렸다. 백혼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신녀가 기거하고 있는 사당
을 향해 돌진했다.
"빌어먹을..."
사당 앞에 도착한 좌조 조장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그만 상소리를 내고 말았다. 사당 앞
에 300여명에 달하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백혼을 가로막고 있었다. 백혼은 사당을 가로막
은 인의 장막에 주춤거렸다.
"오늘 신녀를 처단하지 못하면 다음엔 기회가 없다. 이원의 전력 대부분이 빠져나간 이때를
놓칠 수는 없는 거다. 앞으로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모두 쳐라."
금면객이 싸늘한 목소리로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백혼은 다들 주춤거릴 뿐 나서는 사람
은 없었다. 그때 조자조 조장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해 있었고 볼에
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죽어라!"
한 여자가 좌조 조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좌조 조장의 칼이 순간적으로 뻔뜩였다.
"아악~."
여자의 비명소리가 길게 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히 좌조
조장을 향해 덤벼들었다. 좌조 조장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칼을 휘둘렀다. 백혼은 좌
조 조장의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도 더 이상 구경만 할 수 없었는지
일제히 칼을 들고 여자와 아이들에게 돌진했다.
"나는 죽으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금면객은 참혹한 도살의 현장을 보며 낮은 음성으로 독백했다. 시간이 지나 도살이 끝났을
때 사방은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의 주검으로 가득했고 피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살육을 저질러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백혼은 참혹하게 변해버린 현장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우리가 이런 죄악을 범하면서도 찾아야 할 목표가 저기에 있다. 들어 가자."
금면객이 사당을 가리키며 말하자 백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을 노려보는 백혼의 눈동
자는 분노와 광기로 인해 흉악하게 변해버렸다. 힘없는 어린아이와 여자들로 인의 장막을
치고 숨어 있는 신녀가 증오스러웠던 것이다. 사당을 향해 걸어가는 백혼의 발걸음은 무시
무시한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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