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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moonshapedpool.tistory.com/m/92?category=710507
원 출처: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ami0cd/my_name_is_lily_madwhip_and_i_saw_the_angel_of/
(릴리 매드윕 시리즈 5탄)
내 이름은 릴리 매드윕인데 나는 죽음의 천사를 봤어.
“어제 목욕은 했니, 릴리?”
저 사람은 죽음의 천사가 아냐. 우리 엄마지. 가끔 엄마도 죽음의 천사처럼 행동하긴 해. 아누비스처럼 행동할 때가 더 많지만. 아누비스는 이집트 전설에 나오는 신이야. 작년에 도서관에서 이집트 전설에 대한 커다란 책을 읽었어. 그 책은 정말 크고 컬러 일러스트도 있었어. 나는 컬러 일러스트가 너무 좋아. 나도 크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될지도 몰라.
아누비스는 머리 대신 개가 달려 있어. 개 한 마리가 완전히 달려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개 머리만 달려 있어. 머리만. 아누비스는 죽은 사람들을 데려가서 그 사람들 심장의 무게를 깃털이랑 같이 저울에 재.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천국 같은 데에 가나 봐. 그런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건강 수업 시간에 포여 선생님이 그랬는데 우리 심장은 주먹을 쥔 크기랑 비슷하고, 무게는 거의 1파운드 (450그램) 정도라고 했어. 깃털은 아마 그 정도로 무겁진 않을 거야. 고대 이집트에도 타조가 있었을지 궁금해졌어.
“네, 어젯밤에 목욕했어요. 엄마가 머리도 빗어 줬잖아요. 기억나요?”
엄마는 턱에 손을 짚는 습관이 있어. 그렇게 하면 뇌를 갑자기 발동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야. “아 이제 기억나네. 그런데 너 목욕한 것 같은 냄새는 안 난다.”
나는 내 냄새를 맡아 봐. “이건 옷 냄새예요. 옷들은 목욕 안 했잖아요.”
“나 참, 릴리! 가서 얼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이런 냄새 나면 안 되지. 오늘 쇼핑몰 가기로 했잖아.”
우와! 난 쇼핑몰이 너무 좋아. 거기 있는 푸드코트에는 회전목마가 있는데 1달러만 내면 5분 정도 탈 수 있거든. 물론 회전목마에 탄 동안에는 1분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지만, 타려고 기다릴 때는 확실히 5분인 걸 알 수 있어. 그리고 거기 있는 장난감 가게 바로 옆에는 누가 사탕 가게를 세워 놨어. 그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월급을 올려 줘야 돼.
나는 팔짝 뛰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계단을 뛰어올라가. “애완동물 가게도 가면 안 돼요?” 엄마한테 물어 봐.
로저가 다진 고기가 된 후로, 엄마는 전보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게 봐 주는 편이야. 계속 조르면 새 햄스터를 사 줄 거야. 아님 거북이. 아직 안 쓴 닌자터틀 이름이 두 개나 남았어. 뱀은 안 될 거야. 엄마가 그러는데 뱀을 데려오면 뱀이랑 같이 살으라고 밖으로 쫓아낼 거래.
엄마가 한숨을 쉬어. “구경만 해야 돼. 애완동물 더 안 사줄 거야. 저번 것도 일주일을 못 갔잖아.”
“그건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래, 맨날 네 잘못은 아니라지.” 엄마가 혼잣말을 하는 게 들려. 엄마가 진짜 내 말을 믿는지 궁금해. 사실 가끔은 나 자신도 내 말을 믿는지 궁금해.
깨끗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파스찰은 언제나처럼 멋지게 내 팔에 껴 있어. 아빠는 신발이랑 코트를 입다가 날 쳐다봐.
“인형 두고 와라, 릴리.”
나는 파스찰을 안아. “네? 안 돼요!” 파스찰을 두고 갈 순 없어. 파스찰은 내 천사인걸. 파스찰을 두고 간다는 건 스팀피 없는 렌이나 스키퍼 없는 길리건과 같아.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마치 악어한테 물리지 않으려는 악어 사냥꾼처럼 내 손에서 파스찰을 천천히 뺏어가. 나는 엄마를 문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난 겨우 여섯 살이었는데도 엄마는 절대 그 일을 잊어버리지 않아. 사람들을 무는 이유는 그런 것 같아.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고. 아무튼, 엄마를 당장 물지는 않을 거야. “우리 둘만 가면 좋겠는데. 모녀간의 시간을 가져 보자. 어때?”
“아빠는요?”
아빠가 일어나. “난 할 일이 많다. 뒷마당에 씨부터 뿌려야지.”
아빠가 애완동물 묘지를 전부 파내 버렸다니 믿기지가 않아. 아빠는 내 닌자 거북이 라파엘과 도나텔로한테서 남은 등껍질을 가지게 해 줬지만, 식기세척기에 먼저 돌리고 나서 줬어. 나는 등껍질들을 내 방 화장대에 올려놓고 도나텔로한테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봉으로 쓰라고 같이 놔뒀어. 라파엘의 사이스 칼처럼 생긴 나뭇가지는 아직 못 찾았어. 사이스 칼은 작은 삼지창처럼 생긴 거야. 그냥 둘이 봉을 나눠 쓰면 될 거야.
파스찰을 두고 가기는 싫은데, 엄마랑 아빠가 둘 다 파스찰을 데려가는 걸 반대해. 둘 표정은 딱 부모들이 애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면 서로한테 맡길 준비를 하는 그런 표정이야.
“알겠어요.” 내가 웅얼대. “그래도 파스찰한테 얘기부터 하게 해 주세요.” 둘 다 날 미쳤다는 듯이 쳐다보는 건 알지만, 신경 안 써.
파스찰은 나보고 괜찮을 거라고 해.
나는 파스찰이 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알 수 있도록 식탁 내 자리 위에 문을 마주보게 올려놔. 물론, 그렇게 안 해도 항상 알 수 있겠지만 말야. 파스찰은 원래 그러니까. 모든 걸 다 알아.
엄마가 쇼핑몰까지는 20분이 걸릴 거라고 해. 파스찰과 대화할 수 없다면 한 시간처럼 느껴질 거야. 내 손한테 말을 걸어 보려고 하는데 엄마가 거울로 날 쳐다보는게 느껴지고, 엄마가 날 미쳤다고 생각하는 데에 더 보태주고 싶진 않아서 그냥 포기해. 대신 창 밖을 쳐다봐. 개를 산책시키는 중인 남자가 있어. 나도 개가 갖고 싶아. 하지만 갑자기 그 개가 똥을 싸고 남자가 손에 봉지를 싼 채로 그걸 줍는 걸 봐 버려서, 개가 갖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어. 고양이들이 더 깨끗해. 아빠는 고양이한테 알러지가 있긴 하지만 말야. 고양이들은 스스로를 핥고 그 침이 비듬이 되는데 사람들이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그 비듬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그걸 들이마시게 돼. 그리고 아빠같은 경우엔 그걸 들이마시면 코가 막혀서 계속 재채기를 하게 돼. 헤이즐 이모는 고양이가 열두 마리나 있어. 우리가 이모를 보러 갈 때면 아빠는 따라오지 않아. 어차피 이모는 오클라호마에 살아서 너무 멀어.
쇼핑몰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엄청 많아. 메이시 쇼핑몰 주변 주차장을 돌고 돌면서 엄마는 주차할 자리를 찾아 봐. 왜 그냥 멀리 떨어진 빈 자리들에 주차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우리랑 똑같이 돌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어른들이 하기 좋아하는 게임 같은 건가 봐. 의자 뺏기 게임인데 의자 대신 주차장 자리를 노리는 거지.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며?” 드디어 쇼핑몰에 걸어들어가면서 엄마가 말해.
“아마도요.” 메러디스에 대해 얘기하기 싫어. 걔가 사람들을 태운다는 거나 녹은 바비 나다니엘을 데리고 다닌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잖아. 가끔 나는 별 생각 없이 말을 해 버리는데 나중에 보면 말했으면 안 되는 것들이야. 로저가 죽을 거라는 말을 안 했다면 로저가 안 죽었을지도 모르잖아.
“교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논쟁 때문에 교장실로 불려갔다고 하더라.”
“그게 뭔지도 몰라요.” 논에 쓰는 쟁기를 말하는 거처럼 들려.
“리사 웰치랑 싸웠니?”
“아뇨, 그냥 가라고만 했는데 리사가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얼굴을 땅에 부딪힌 거예요. 근데 걔 친구들이 제가 그런 거라고 했어요.” 내가 리사보고 이빨을 깰 거라고 했는데 진짜 이빨을 깼다는 부분은 빼고 얘기해. 특히 내가 그냥 지어낸 말인데 진짜 일어나 버렸다는 부분은 절대 얘기 안 해.”
“리사한테 손도 안 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래서 지금 쇼핑몰 온 거예요? 여기 저 버리고 갈 거에요?”
엄마가 웃어.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가끔 어떤 부모들은 진짜 그렇게 해. 자기 애들을 멀리 데리고 가서 어디다 혼자 내버려두고 집에 가 버려. 누가 자기 개한테 그러는 만화를 본 적도 있어. 그 사람은 개랑 산책을 가는 척 하고는 막대기를 멀리 던져서 물어오라고 한 다음 개가 막대기를 찾으러 갔을 때 물건들을 전부 챙겨서 차를 타고 떠나 버렸어.
“새 옷 좀 사 주려고 온 게 다야. 지금 있는 옷들은 이제 네가 너무 커서 못 입을 거니까.”
그건 사실이 아냐. 나는 전혀 자라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부엌 문 안쪽에 엄마아빠가 로저랑 나를 세워놓고 연필로 키를 표시한 다음 이름이랑 나이를 써 둔 게 있어. 일 년이 넘게 내 표식은 1cm도 안 움직인 것 같아. 로저가 마지막으로 잰 건 8월이었어. 가끔 아빠는 거기 서서 엄청 슬퍼하는데, 그러다가 그냥 장송곡을 쓰러 가.
우리는 푸드 코트 옆을 지나가. 회전목마를 타려고 기다리는 애들이 백 명은 되는 것 같아. 우리가 돌아왔을 땐 다들 가 있었으면 좋겠어. 왜냐면 나는 회전목마에 타고 또 줄을 서고 또 타고 타고 엄마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타고 싶거든. 지금까지 제일 오래 탄 기록은 30분이야. 나한텐 5달러밖에 없었는데 회전목마에서 일하는 언니가 나보고 착한 손님이라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했어.
아 이런, 오기 전에 돼지저금통 안 털었다.
“돈 안 가지고 왔어요!” 엄마한테 말해.
“걱정 말렴, 이따가 회전목마 타고 싶으면 엄마한테 돈 있으니까.”
엄마가 너무 관대해서 의심스러워. 보통은 내가 돈을 까먹고 안 가져오면 엄마는 나보고 운도 오질나게 없다고 해. 나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지금은 혼자 생각하는 거니까 괜찮아.
어떤 아줌마가 지나가는데 애들 네 명이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와중에 음식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가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넘어져서 돈주고 산 음식을 죄다 애 한 명한테 쏟을 거야. 조금만 있으면. 아, 가서 저 분을 도와줘야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달려가서 아줌마가 놀라가지고 넘어져서 음식을 쏟으면 어떡해? 그럼 아줌마 애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 되잖아. 혼나기는 싫어. 누가 심각하게 다칠 것도 아니잖아. 그냥 좀 시끄럽다가 소리지르고 우는 소리가 들릴 거야. 가끔은 일어날 일을 미리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빨리 가요!” 나는 엄마 소매를 잡고 그 소란이 벌어지기 전에 얼른 푸드코트를 나가려고 해.
“갑자기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엄마가 물어. 그러더니 뒤에서 아줌마가 넘어지고 엄마는 뒤를 돌아보고 쟁반은 바닥을 치며 떨어지고 애 머리에 음료수가 쏟아지고 애는 울고 아줌마는 놀라서 소리지르고 사람들은 멈춰서 쳐다봐. 나만 빼고. 난 이미 다 봤으니까. 엄마는 내가 서두르려는 거랑 저 아줌마가 음식을 쏟은 걸 연결지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잘못된 결론을 내려 버려.
“릴리, 네가 저렇게 만든 거니?” 엄마는 공포와 걱정이 섞인 눈빛으로 날 쳐다봐. 다행히도 화는 안 났어.
“아니요. 무슨 말이에요?”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고 자신을 설득시키는 것 같아. “아니야. 그냥…. 신경쓰지 마.”
아줌마가 소리지르고 애가 우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하지만 우리가 멀리 걸어나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가 라디오 볼륨을 줄인 것 같은 느낌이야. 어깨 너머로 돌아봤는데 아줌마가 냅킨 한 뭉치를 집어서 애를 닦고 있고 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지만 뭔가 이 모든 게 TV에 나오는 장면 같고 누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느껴져.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다른 사람들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어. 어떤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데인 것처럼 핸드폰을 휙 들어서 쳐다보더니 넥타이를 고쳐매고 기침을 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서 남자는 커다랗게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되게 조그마한 고함소리처럼 들려. 소리가 어딜 간 거지?
엄마는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아서 엄마를 불러 봐. “엄마?” 하지만 아무 소리도 안 나와. “엄마, 제 목소리 들려요?” 엄마가 고개를 돌려서 날 쳐다보길래 순간 내 말을 들은 줄 알았는데 그냥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혹시 내가 귀머거리가 되고 있는 건가? 왜 아무것도 안 들리지?
핸드폰 케이스를 파는 매대를 지나가고 나니까 갑자기 소리가 돌아왔어. 방음이 철저한 상자 안에 갇혀 있다가 뚜껑을 열고 나왔더니 파티가 열려 있는 느낌이야. 엄마가 내 손을 잡은 채로 멈추더니 날 쳐다봐.
“이상하네. 갑자기 시끄러워진 건가?” 엄마가 말해.
나는 고개를 끄덕여. “저 말이 안 나왔어요.”
엄마는 내 말을 무시해. “별일이네.” 엄마는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지어낼 거야. 항상 그러거든. 내가 정신력으로 엄마 차를 녹여버려도 엄마는 그냥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다던가 하고 말할 거야. 내가 실제로 정신력으로 차를 녹일 수 있는 건 아니야. 팝콘도 못 튀기는걸. 푸드코트에 돌아가면 팝콘을 좀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은 푸드코트로 돌아가긴 싫지만 말야. 저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
강아지들이다! 애완동물 가게가 보여. 저기서는 밖에서 잘 보이는 유리장 안에 사람들보고 구경하라고 강아지랑 고양이들을 놔둬. 어떤 사람이 그랬는데 저런 가게에서는 “강아지 공장”에서 데려온 강아지들을 팔기 때문에 저런 데서 동물을 사면 안 된대. 나는 공장에서는 곡식을 갈거나 그런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책에서 읽었어. 강아지 공장이면 강아지를 갈아버리는 거 아니야? 불쌍한 강아지들. 어쩌면 갈아버리지 말라고 구해온 걸지도 몰라. 강아지 가루를 어디다 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나라들에서는 동물들 여기저기를 갈아서 약으로 쓴대. 엄마는 그런 걸 보고 야만적이라고 해.
“쇼핑하기 전에 애완동물 보러 가면 안 돼요?” 내가 빌어. “제발요오오?”
엄마는 건너편에 있는 화장품 가게를 쳐다봐. “이렇게 하자. 난 세포라에 갈 테니까 너는 동물들 구경해도 돼. 대신 만지는 건 안 돼. 엄마가 일 다 보고 나면 네 옷 사러 가자. 알겠지?”
“장난감 가게도 가도 돼요?” 내가 물어. 사실 이건 내가 쓰는 수법이야. 내가 엄마를 장난감 가게에 데려가면, 엄마는 자기한테 선물을 주려고 사탕 가게에 들를 거야.
“옷 다 사고 나서 몇 시인지 보고.”
엄마도 똑똑하네.
이제 뭐부터 할지 정해야 돼. 고양이가 귀여우니까 걔들부터 볼까? 아님 엄마가 내가 뱀을 보는 걸 목격한다면 새 애완동물을 살 기회는 아예 사라질 것 같으니까 뱀부터 얼른 볼까? 뱀을 꼭 봐야 하는 건 아냐. 작을 땐 귀엽지만 크면 날 잡아먹을 수도 있거든. 가터뱀이 얼만큼까지 자라는지는 몰라. 누가 뱀을 변기에 넣고 내렸는데 배수관만큼 커졌다는 얘기는 들었던 것 같아. 아나콘다인가 하는 영화도 나왔고.
뒤에 있는 거북이들부터 보러 가야겠어. 새 애완동물을 살 수 있다면 걔들을 살 수 있는 확률이 가장 크거든. 내가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안 된다고 할 거고, 그럼 내가 거북이를 보여주는 거지. 이미 무슨 거북이를 갖고 싶은지도 골라두고. 그럼 엄마는 강아지만 아니면 되니까 그냥 사 줄 거야. 저기 있는 큰 거북이는 레오나르도라고 이름짓기 딱 좋아 보인다. 도나텔로랑 라파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게 하면 안 돼. 그럼 나랑 살기 싫어할 테니까.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일인지 궁금해. 고양이랑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니까 의료대원 두 명이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을 옮길 때 쓰는 들것을 끌고 지나가. 안 돼, 누가 다친 건가? 저 사람들 푸드코트 쪽으로 가고 있어! 그 아줌마나 애들 중 한 명이 아까 그 쟁반 사고에서 다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의료대원이 무전기같은 기계에 대고 말하는게 들려.
“우선순위 1으로 업그레이드해. 다른 대원들도 보내고. 현장에 우선순위 2 존재 가능.”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급해 보여. 대원들이 쇼핑몰 안을 달리고 사람들은 다 비켜 줘. 그 대원의 통신 장치에서 알아듣기 힘든 대답이 나왔고 둘 다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려. 애완동물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무슨 일인지 아냐고 동시에 물어봐. 나는 건너편 세포라 입구에 있는 엄마를 봤는데 엄마가 날 쳐다보더니 대원들이 달려간 곳을 돌아보고 다시 날 쳐다봐. 그리곤 나한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뭔가 나쁜 것이 오고 있어. 느껴져. 평소처럼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하고 화가 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어. 이런 기분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어서 무서워. 나는 애완동물 가게로 다시 들어가다가 강아지 간식들 봉지들에 부딪혀. 이제 내가 다 다시 주워야 돼. 항상 난 스스로 치워야 하니까. 바보같은 강아지 간식들.
아 맞다. 나쁜 게 오고 있지, 까먹을 뻔했네. 이제 보인다. 나쁜 게 보인다는 게 아니라, 애완동물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근데 다들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어. 다들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봐.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난 그냥 강아지 간식들을 넘어트렸을 뿐이라고. 아, 그것 때문이 아니네. 이건 현재가 아니야. 곧 일어날 일을 보고 있는 거야.
“제가 그런 게 아녜요.” 내가 속삭여. 왜 다들 날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왜 이 동물들이 다 누워 있는 거지? 왜 저 뱀은 나뭇가지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거지? 왜 강아지들이 움직이질 않는 거야? 강아지들이 한 마리도 안 움직여. 내 잘못이야. 다 내 탓이야. 다 –
쇼핑몰이 전부 어두워졌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 불이 꺼진 게 아니라, 검은색 안개가 낀 것 같아. 안개가 문어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쇼핑몰 안을 채워오고 있어. 무서워. 파스찰이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파스찰은 이게 뭔지 알 텐데. 파스찰은 나한테 도망가라고 할 거야.
도망쳐, 릴리, 뛰어.
나는 통로로 나가서 선글라스로 가득 찬 매대 쪽으로 가. 내 다리랑 신발을 감싸서 발이 안 보이도록 하는 검은 안개를 쳐다봐. 매대에 아저씨 한 명이 있어. 아저씨는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있고 셔츠 주머니에는 스크류드라이버랑 망치 같은 게 들어 있어. 아저씨는 내가 발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나보고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갑자기 라디오 소리가 또 줄어든 것처럼 말소리가 작아져.
모든 게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다들 서서 지나간 EMT가 말하던 거에 대해 얘기하는데, 들리지가 않아. 마치 벽 너머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모든 게 조용해지니까 사람들도 천천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기 시작해.
그리고 한 여자가 보여. 여자는 통로를 따라 나한테 다가오는데, 날 쳐다보는 게 아니라 나랑 비슷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주변을 쳐다보고 있어. 검은 안개는 여자의 발치를 가장 두껍게 감싸고 있어. 여자의 하체는 잘 보이지도 않아. 여자는 검고 긴 머리와 어두운 피부를 가지고 있어. 오래된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커다랗고 검은 코트도 입고 있어. 예전에 몰래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거실 의자 밑에 숨은 다음에 엄마아빠가 보던 영화를 훔쳐본 적이 있거든.
여자가 발 쪽을, 아니 발이 있어야 할 쪽을 쳐다봐. 그리곤 고개를 들어서 자길 쳐다보는 날 발견해. 혼란스러우면서도 의심으로 가득 찬 표정이야. 그 여자가 보는 걸 나도 볼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 여자가 나한테로 다가오기 시작해.
나쁜 말 저금통에 넣어야 할 동전들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어. 매대에 있던 아저씨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서 나는 깜짝 놀라가지고 몸을 내뺐어. 날 쳐다보는 여자를 쳐다보면서 천천히 애완동물 가게로 뒷걸음질쳐. 여자는 나한테로 똑바로 걸어오고 있어. 서로의 말을 들으려고 소리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서. 나 빼고 아무도 저 여자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아. 제발 가까이 오지 마, 제발.
그리곤 목소리가 들려. 속삭이는 듯 부드러워.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들려. 파스찰이 나한테 얘기할 때처럼. 목소리는 여자의 입이 아니라 위쪽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어.
아이야, 어서 뛰렴. 난 저 여자를 막을 수 없어. 날 이해하지 못해.
“대체 누구세요?!” 내가 소리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나는 두마란다. 우린 널 데리러 온 게 아니야. 어서 달리렴. 우리가 가까워져선 안 돼. 도망가렴.
여자는 점점 내 쪽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어. 저 여자는 듣지 못해. 목소리가 안 들리나 봐. 여자는 내가 소리지르려고 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오는 걸 보고 나한테 다가와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아. 어쩌면 날 도와준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라. 내 생각엔 저 여자가 날 죽이려는 것 같아. 여자는 한 발자국 거리까지 왔어. 매대 아저씨는 갑자기 어지러워진 듯하더니 팔을 잡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쳐.
나는 뒤돌아서 뛰어. 가게에 들어갈 수는 없어. 가게들은 다 막혀 있으니까. 세포라로 갈 수도 없어. 혹시 저 여자가 들어와서 우리 엄마랑 만나면 어떡해?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진 않지만, 그냥 검정 여자랑 반대쪽으로 무작정 뛰어.
애완동물 가게의 동물들은 전부 움직이지 않아. 사람들이 다 동물들을 가리키고 있어서 직원들이 사람들을 뚫고 무슨 일인지 보러 와.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아. 무성 영화처럼 아무 소리도 안 나. 어떤 아줌마가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강아지는 아줌마 팔 안에서 조용히 늘어져 있어. 아줌마는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는데 내 생각엔 걔가 죽은 걸 모르시는 걸 같아. 전부 다 죽었어.
엄마가 마침 화장품 가게에서 나와서 뛰어가고 있는 날 봐. 나는 엄마가 내가 무서워하는 걸 보고 왜 내가 뛰고 있는지에 대해 눈치를 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와. 엄마는 애완동물 가게에 난리가 난 걸 쳐다봐.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뛰고 뛰어. 그저 사람들을 밀치면서 내 발과 다리를 감싼 검은 안개로부터 도망가기만 해.
돌아보니까 검은 여자는 애완동물 앞에 멈춰 서 있어. 여자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데 더 이상 쫓아오지는 않아. 죽은 강아지랑 고양이들로 가득 찬 유리장을 쳐다보더니 다시 날 쳐다보곤 천천히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나는 위험을 감수하긴 싫어서 계속 달려. 시어스 옆 에스컬레이터에 다다를 때까지 달렸더니 너무 뛰어서 그런지 다리가 너무 피곤하고 숨이 안 쉬어져. 그 여자랑 검은 안개랑 두마인가 뭔가 그 여자한테서 나오던 목소리한테서부터 멀어졌을 때부터 내 훌쩍임을 들을 수가 있었어.
“릴리?” 십 분 후에 우리 엄마가 날 찾았어. 엄마는 하이힐을 신고 있기도 하고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싫어하는 걸 알아서 그쯤에서 멈추겠지 하고 뛰어오지는 않았어. 난 항상 발이 기계 속에 끼어 버릴까봐 너무 무서워. 진짜 그런 사고가 생긴 적이 있대. 중국에 사는 어떤 아줌마는 에스컬레이터에 빨려들어가서 갈려 버렸대. 왜 사람들이 그냥 계단을 사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무슨 일이니, 아가?” 엄마가 부드럽게 물어. 보통 엄마는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한 적이 없었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해.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요. 까만 옷을 입고 까만 안개가 그 여자를 감싸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여자를 볼 줄 알아서 그 여자가 절 따라왔어요. 근데 그 여자가 가까이 오니까 강아지랑 고양이들이 다 죽어서 그냥 뛰어왔어요.”
엄마가 날 안아주는데 아무 말도 안 해. 엄마가 울기 시작하면서 날 꼭 끌어안는 게 느껴져. 엄마가 날 진짜 믿어주는지는 모르겠어. “동물들 제가 죽인 거 아니예요. 맹세해요. 저 아니예요. 제가 안 그랬어요.” 나도 울면서 엄마를 안아. 그런데 나도 속으로는 내 자신을 안 믿는 것 같아. 내가 거기 없었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두마가 그랬잖아. 우린 서로 가까이 있으면 안 된다고.
불쌍한 레오나르도, 아직 이름도 안 불러줬는데.
엄마는 날 데리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가. 입구에 구급차들이 엄청 많아. 몇몇 사람들이 서성이고 구경하면서 쑥덕거려. 아줌마들 둘이서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손녀 회전목마 타는 걸 지켜보다가 심장마비가 왔대. 다른 사고들도 있는데 자세히는 안 들리고, 그냥 여러 사람들이 “의료 사고”라는 말을 하는 것만 들려. 우린 고속도로로 빠지려고 하는데 구급차들이 사이렌을 켜고 급하게 지나가. 난 오늘 여기 왔으면 안 됐나 봐.
“우리 그냥 인터넷에서 옷 주문하자, 어때?” 빨간불을 무시하고 달리는 구급차들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해.
“제가 안 그랬어요.” 난 이 말만 해.
“네가 안 그런 거 알아, 릴리.” 엄마가 말해.
집에 오니까 파스찰이 식탁에 없어. 혹시 아빠가 파스찰을 내 침대로 옮겨 놓았나 하고 올라가 봤는데 거기도 없어. 아빠는 밖에서 엄마 정원의 잡초랑 단델리온들을 뽑고 있어. 나는 나가서 아빠가 잠시 쉴 때까지 기다려. 아빠는 자기가 뭐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말 시키면 싫어하거든.
“아빠가 파스찰 옮겼어요?” 아빠한테 물어.
아빠는 화나 보이진 않지만 몇 주 동안 안 잔 사람처럼 피곤해 보여. 아빠 얼굴을 똑바로 마주한 건 오랜만인 것 같아. 로저 장례식 이후로는 말야. 아빠가 추도문을 읽을 때는 계속 나만 쳐다봤던 게 기억나.
“네 인형은 일단 치워두기로 했단다.” 아빠가 말해. “대신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빠가 정원 정리하는 거 도와주겠니?”
“파스찰이랑 할 얘기가 있어요.” 정말 파스찰한테 말해야 해. 난 두마가 누군지 몰라. 너무 무서운데 엄마아빠가 알게 해서는 안 돼.
“나한테 얘기하면 되잖니, 아가.”
그럴 순 없어. 난 고개를 저어. 아빠는 나한테 파스찰을 돌려주지 않을 거야. 확실해. 내가 계속 파스찰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빠가 화가 나서 나한테 소리를 지를 게 벌써부터 보여. 그래서 난 그냥 방으로 뛰어올라가서 침대에 눕고 울어. 파스찰, 어디 있는 거야? 여기 있을 거라고 했잖아!
첫댓글 학헉 너무 재미써ㅜㅜ 다음폄 주시요,,
헉
요새 이것만 기다린다 넘 재밌어ㅠㅠ
몰입감 장난아니다 ㅠㅠ여시덕네 넘 잘보고있어!!!
너무 재밌다 ㅠㅠㅠㅠ 진짜 내 삶의 낙이야..
진짜완전재밌다
존잼ㅠㅠㅠ 술술읽힌다 담편 헉헉
파스찰 돌려줘요ㅜㅜ 넘 재밌어
릴리는 착한애같은데 ㅠㅜㅜㅜㅜㅜㅜㅠㅠ파스찰 돌려줘요 애비야 ㅠㅠㅠ
ㅠㅜㅜ
아 너무 재밌다
릴리 매드윕 시리즈 넘 재밌다 다음편 너무 기대돼ㅠㅠㅠㅠ
릴리 잘못아닌데!!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