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 자매님...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사람의 정서상, 이 호칭은 비슷한 동년배이거나 자기보다 아랫사람의 경우에 쓰입니다. 미국 사람들이야 어른들도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지만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를 형제, 자매처럼 소중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처럼 나이가 많으신 분에게 "형제님"이라는 것보다 "아버님"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연로한 남자를...아버지에게 하듯하고..."(딤전5:1)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머님처럼 나이가 많으신 분에게 "자매님"하는 것보다 "어머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연로한 여자들은 어머니에게 하듯하고...."(딤전5:2)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젊은 남들은 형제에게 하듯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에게는 자매에게 하듯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남자들은(the younger men) 형제에게 하듯하며..."(딤전5:1)
"젊은 여자들은(the younger)....자매에게 하듯하라"(딤전5:2)
이 두 구절에 사용된 "젊은(younger)"이라는 말은 나보다 아래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보다 연하의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하기보다는 형제처럼, 혹은 자매처럼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형제"나 "자매"처럼 대한다는 것은 내 가까운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귀하게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익숙치 않다면, 아버님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고 형제님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면 "성도님"이라는 호칭을 쓰십시오. 일반교회에서야 성도는 제일 아래 단계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거룩함을 얻은 무리"라는 뜻으로 "구원받은 자"를 지칭하는 아주 훌륭한 단어입니다. 사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말은 죽은 사람에게만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그의 선행이 드러났을 경우 그를 높여 부르는 의미로 성도에 해당하는 "성자" 또는 "성인"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많은 선행이 요구됨으로 얻는 것이 아님을 알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2.대우
연로한 남자나 여자를 꾸짖는다는 것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꾸짖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나이 드신 분들이 잘못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권면해야 합니다. 꾸짖다는 말은 원어상으로 "비난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이구, 잘났어 정말." 설마 이렇게 자기 부모님께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로한 사람을 향해서 빈정거리거나 무시한 것은 모두 죄입니다. 연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만(딛2:6) 연로한 사람을 그렇게 대우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권면이란 말은 "위로하며 요청하는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흰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주니라."(레19:32)
흰머리는 나이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이든 사람이 어떤 모임에 들어올 때, 모른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못 본 척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꼭 인사를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는데 배를 바닥에 깔고 인사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주십시오. 기도를 한다든지, 찬양을 드린다든지 할 때야 못할 수 있고 가볍게 눈으로만 아는 척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남을 더 낫게 여기는 태도인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빌2:3)
젊은 여자들에게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특별한 수식어가 붙습니다. "온전히 순결하게"(with all purity.)라는 말입니다. 이성적인 음탕함이나 불순한 동기들을 가지고 대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그러한 자세로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 마귀가 틈타면 우리도 모르게 마음에 음욕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자매님들은 옷을 주의해서 입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는 아주 깨끗한 태도로 모든 젊은 여자들을 대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기 이웃의 아내에게 들어가는 자도 그와 같으리라. 누구든지 그녀에게 손을 대는 자는 무죄하지 아니하리라."(잠6:29)
치료를 받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되겠지만, 내 아내 이외에는 만질 생각을 마십시오. 아예, 놀이도 그런 놀이는 하지 마십시오. 남녀가 섞여서 "꼬리잡기"를 하는 것,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것"(부부면 상관없지만), "신체적 접촉을 통해 풍선을 터뜨리는 것" 이런 것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아닙니다. 텔레비젼이나 쇼프로, 세상에서의 오락에서나 있을 수 있는 놀이입니다. 물론 미국의 독립침례교회에서도 남녀가 서로 인사하면서 포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보편화된 것은 아니고 남부지방에서나 행해지는 것이며 또한 나이든 여자가 젊은 사람들을 안아주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마귀가 틈탈 기회를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3.참과부
참과부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참과부입니까? 그 참과부는 육십세 이상이어야 합니다(딤전5:9). 그리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를 말합니다(딤전5:9). 두 번 결혼한 사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한 남편이 죽은 후로 그 남편만을 생각하며 그와의 사이에서 얻어진 자녀를 양육하느라 남은 생애를 보낸 분을 말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여성도님이 우리 교회 안에 있다면 참과부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분은 육십세가 넘으셨습니다. 또 32살 되셨을 때, 남편과 사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6남매를 키우는데 홀로 사셨습니다. 과연 그러다 보니 가족과 교회를 돌아보는 일, 기도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오셨습니다. 말이 32이지 그때부터 혼자서 남은 여섯 자녀를 키우매 지내오셨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참과부는 이런 특별함과 함께, 선한 일로 인하여 좋은 평판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분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단체로부터 받은 "선한 어머니상" 표창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잘 양육해야 했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사는 집, 아래에는 아이를 낳고 도망간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백혈병인데 이랑이보다도 한 살 어린데 머리는 대머리입니다. 약이 독해서이지요. 또 이번에 처가댁에 다녀왔지만 많은 아이들이 엄마가 도망가는 바람에 시골에 와서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지낸다고 했습니다. 자녀를 잘 양육한 사실이 있어야 참과부입니다. 또 나그네들을 묵게 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 고난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선한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
참과부는 외로운 여자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밤낮으로 간구와 기도를 합니다(딤전5:5).
젊은 과부는 참과부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슬러 방탕해지면 결혼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딱히 사정이 어려워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재혼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탐욕에다가 자유롭다는 이유로 남자들을 상대하게 되면 그것은 "향락에 빠지는 것"(딤전5:6)이며 "방탕해지는 것"(딤전5:11)이고 "그리스도를 거tm르는 것"(딤전5:11)입니다. 또한 처음 믿음을 저버린 것과 같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방탕한 방식의 삶이 아니라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가정을 지키고 대적, 곧 마귀에게 비방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참과부는 존경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순결성을 입증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참과부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멀리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든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분만을 받들고 가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참과부입니다. 그래서 참과부는 그리스도를 향한 처음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성도들의 예표입니다. 그 참과부는 존경받아야 합니다.
4.구제
나오미와 룻이 남편이 없던 시절, 그들을 돌아볼 책임이 보아스에게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약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이런 점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그는 불신자보다 더 못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전5:8).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한 형제와 자매로 가족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부유함을 누리는 자가 생겨난다면 그는 여기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볼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모든 것은 그 홀로 먹고 배 부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할지니라"(갈6:10)
가족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가정이 있다면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친족이나 가족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또 어려움만 만들어서 남들을 그 자리로 끌어들이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참과부를 구제해야 합니다. 참과부는 모든 성도들의 본입니다. 참과부는 노후에 국민연금을 주듯이 교회가 생활비를 대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과부는 생계의 걱정없이 지속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로 하여금 참 과부를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딤전5:16)
결론적으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자세로 대하여야 하며 서로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각별히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태도로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을 배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살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