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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이원지멸(梨園之滅)-3
신녀의 손이 움직이자 은빛 사슬이 춤을 추었다.
서거걱.
은빛 사슬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백혼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악!"
"으악~."
은빛 사슬의 끝에 달려 있는 얇고 날카로운 추는 한꺼번에 7명의 백혼 이마를 꿰뚫어 버렸
다. 일곱 사람은 마치 굴비가 엮긴 것처럼 은빛 사슬에 관통돼 있었다.
퍼벅. 퍽.
은빛 사슬에서 강기가 발생하자 일곱 사람의 두개골이 폭발했다. 신녀가 갑자기 강기를 사
용할 정도로 역량이 급증하자 다들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기! 어째서..."
선조 조장은 머리가 폭발한 뒤 땅바닥에 쓰러지는 일곱 구의 참혹한 시체를 바라보면서 넋
두리를 했다.
"어서 공격해라."
좌조 조장이 외치자 백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일제히 신녀를 향해 돌진했다.
카오오~.
20여 자루의 칼이 춤추자 귀곡호가 터져 나왔다. 귀곡호의 합창은 바위를 가르고 거목을
뿌리 채 뽑아낼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신녀는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혈문 철가의 잠재능
력이 폭발하면서 내공이 4배나 급증해 소녀잔양공의 한계를 초월한 신녀에겐 2단계의 귀곡
호는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팍.
신녀가 갑자기 종적을 감추더니 백혼이 모여 있던 중앙부에 나타났다.
위잉~.
신녀는 백혼을 향해 가차없이 은빛 사슬을 휘둘렀다. 은빛 사슬은 10여명의 허리를 잘라
버렸다.
"으아악~."
"아악!"
비명과 함께 두 동강난 시체 10여 구가 붉은 선혈을 폭포수처럼 뿜어내며 한꺼번에 땅바닥
에 쏟아졌다. 누런 황토는 붉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흘러나온 내장에서 새하얀 김이 모락
모락 흘러나왔다.
"모두 흩어져라."
좌조 조장의 비명 같은 고함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백혼은 원숭이 떼처럼 흩어졌다. 그러
나 신녀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공령의 제1단계인 망량과 겨루어
도 별 차이가 없는 속도였다.
퍼퍽.
도망가도 소용없었다. 은빛 사슬에 맺힌 강기가 새하얗게 타오르며 백혼을 향해 돌진했다.
강기에 직격을 당한 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폭음을 대신하며 산산조각 나버렸다.
신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양떼들을 쫓는 늑대처럼 백혼을 추적해 참혹한 죽음을 선사했다.
"이, 이렇게 무력하다니..."
좌조 조장은 동료들의 죽음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분노는 좌조 조장의 이성을 송
두리째 날려 버렸다.
"죽어라!"
좌조 조장은 신녀를 향해 돌진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동이었
다. 그런데 좌조 조장의 신체에 작은 변화가 발생했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분노가 귀곡도
의 내력을 급격하게 강화시킨 것이다.
만심진광과 부동심결로 두텁게 막고 있던 3단계 벽이 일순간에 허물어지고 4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좌조 조장의 칼에 흐르던 검은 도무가 압축되더니 도강을 형성했다. 칼 전체가 검
은 광택이 빛나는 얇은 막으로 씌워져 있었다. 좌조 조장은 도강의 초입 단계에 진입했다.
꽝.
은빛 사슬과 좌조 조장의 칼이 격돌하자 폭음이 발생했다. 강기와 강기의 격돌은 강력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크윽..."
좌조 조장의 칠규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단 한 번의 격돌에서 좌조 조장은 내장이 뒤흔들
리는 충격과 함께 심한 내상을 당했다. 그러나 좌조 조장은 불굴의 의지로 버텼다. 은빛
사슬이 자신의 칼을 감싼 덕분에 동료들이 더 이상 죽어 나가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죽어라."
예상지도 못한 좌조 조장의 선전에 고무된 선조 조장은 신녀의 어깨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퍽.
선조 조장의 칼은 신녀의 어깨에 박혀버렸다. 그러나 신녀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냉소를
지으며 선조 조장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피해!"
후조 조장이 신녀를 향해 뛰어가면서 선조 조장에게 외쳤다. 신녀의 냉소에서 불길함을 느
낀 우조 조장의 외침은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퍽.
신녀의 왼손이 움직인다고 느껴지는 순간 선조 조장의 두개골은 박살나버렸다. 소녀잔양공
에 포함된 장법인 명옥수(冥玉手)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선조 조장
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죽어버려~."
두개골이 터져 즉사한 선조 조장의 참혹한 모습에 후조 조장은 신녀를 향해 돌진했다.
쿠오오~.
후조 조장의 증오와 분노가 담긴 귀곡호였다. 그러나 3단계의 귀곡도는 신녀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신녀는 교묘하게 손을 비틀어 좌조 조장의 칼에 엉켜 있던 은빛 사슬을 풀
었다. 은빛 사슬이 풀리자 좌조 조장은 땅바닥에 주저 않았다. 좌조 조장은 땅에 박힌 칼
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지만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우욱~."
좌조 조장의 내상은 심각했다. 그런데 신녀는 좌조 조장은 나두고 후조 조장을 노렸다. 후
조 조장이 근접거리에 도달하자 신녀는 은빛 사슬을 휘둘렀다. 은빛 사슬은 소용돌이를 그
리며 날아가 후조 조장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덟 겹으로 감아버렸다.
"크윽~."
은빛 사슬이 살을 베며 몸 안으로 파고 들어오자 후조 조장은 신음성을 흘렸다. 은빛 사
슬은 풀려고 움직일수록 오히려 깊숙이 파고들었다. 후조 조장은 피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신녀는 참혹하게 변한 후조 조장을 보자 매우 즐거운 듯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서걱.
"으아악~."
섬뜩한 절단음 뒤에 후조 조장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신녀가 은빛 사슬에 내력을
넣어 후조 조장을 아홉 토막으로 절단해 버린 것이다.
후두득.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후조 조장의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마, 마녀다... 저, 저건 인간이 아니야!"
백혼의 생존자 30여명은 신녀를 가리키며 전율했다.
퍼버벅.
신녀가 은빛 사슬을 휘두르며 춤추자 다섯 목숨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백혼은 도살장에 들
어간 돼지처럼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다. 더 이상 신녀를 막아낼 능력도 의지도 없
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증오를 가득 담은 눈동자로 신녀를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그런
데 그동안 구경만 하고 있던 언봉운이 갑자기 신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죽어라!"
언봉운의 소매 속에서 한 대의 화살이 발사됐다. 반 자 길이의 화살은 신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콰쾅.
화살은 폭약이 장전된 화기였다.
"흥. 어떤 고수도 폭약 앞에서는 살아날 수 없지."
언봉운은 소매 속에 숨겨둔 수전(袖箭)을 꺼내들고 희희낙락했다. 그런데 폭발한 곳을 뒤엎
은 먼지와 연기가 사라지자 언봉운의 얼굴은 굳어져 버렸다. 뜻밖에도 신녀는 살아있었다.
폭발의 여파로 옷이 누더기가 됐고 심한 화상과 상처를 당했지만 신녀는 꼿꼿하게 서있었
다.
언봉운은 이를 악물고 신녀를 향해 다섯 발의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여섯 개의 금속
제 관이 합쳐진 매화수전(梅花袖箭)에서 발사된 화살들은 육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쾌속했다. 그러나 집중력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신녀의 눈에는 굼벵이가 기어오는 정도
에 불과했다. 은빛 사슬이 신녀의 교묘한 손놀림에 이끌려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콰쾅. 쾅.
폭약이 장전된 다섯 대의 화살들이 공중폭발했다.
"오호호~."
신녀가 폭발하는 화살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웃음소리였지만 언봉
운과 백혼에겐 나찰의 웃음으로 들렸다. 게다가 화상과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는
신녀의 모습은 그들 눈에 인간이 아닌 괴물을 연상시켰다. 언봉운과 백혼은 더 이상 신녀
를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마녀여.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좌조 조장은 달랐다. 언봉운과 백혼이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비해 좌
조 조장은 포기하지 않고 신녀를 향해 돌진했다. 좌조 조장이 들고 있는 칼에는 검은색 도
강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쾅.
신녀가 휘두른 은빛 사슬과 좌조 조장의 칼이 격돌하자 거대한 폭음을 발생했다.
"크으윽..."
좌조 조장은 신음소리를 내며 뒤로 밀렸다. 단 한 번의 격돌로 우열이 판가름났다. 용기와
열정만으로는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신녀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좌조 조장. 어서 피해!"
신녀가 좌조 조장을 향해 뛰어가자 우조 조장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러나 좌조 조장은 등
을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진정시킨 내상이 단 한번의 격돌로 악화된 좌조 조장은 피를 토
하며 비틀거렸지만 신녀를 향해 겨눈 칼을 거두지 않았다.
"캬오오~."
좌조 조장의 죽음을 예감한 백혼은 두 눈을 감았다가 갑자기 등뒤에서 터져 나온 포효소리
에 등을 돌렸다.
"가, 가주님..."
포효소리는 금면객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금면객의 두 눈은 광기에 젖어 번쩍이고 있었다.
"결국... 결국 귀곡도에 지셨습니까."
우조 조장의 눈가에 굵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금면객은 포효성이 터지자마자 움직임을 멈
춘 신녀를 향해 날아갔다. 신녀는 백옥수로 좌조 조장의 목숨을 취하려다 금면객의 포효소
리에 실려있는 살기와 광기에 반응해 멈추고 있었다. 좌조 조장은 염라국의 문턱까지 갔다
가 살아난 셈이다. 그러나 좌조 조장의 안색은 절망으로 인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윙. 윙. 윙...
신녀를 향해 달려가던 금면객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줍자 벌떼가 우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5단계 귀곡도에 도달한 자의 손에 들린 칼은 진동(振動)을 일으킨다. 진동하는 칼
은 금강석을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절삭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쿼어어~.
금면객이 신녀를 향해 칼을 휘두르자 지금까지 나타났던 귀곡호와는 수준이 다른 음파가 터
져 나왔다. 귀곡도 5단계의 진정한 위력이 금면객의 손에서 발휘됐다. 그러나 혈문 철가의
핏줄에게 전승되는 괴력 앞에선 큰 효과가 없었다.
파박.
채챙.
금면객과 신녀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공방을 치렀다. 그들이 격돌할 때
마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졌다. 팔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
록 뼈가 부셔지고 전신이 심한 상처가 곳곳에 생겼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격투를 멈추지 않
았다.
"전원 공격에 가담해라."
좌조 조장이 어느새 절망에서 헤어났는지 신녀를 향해 돌격하며 외쳤다. 백혼의 남은 생존
자와 언봉운은 좌조 조장의 뒤를 따랐다.
파박.
"으아악."
신녀는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피와 죽음의 축제가 끝없이 진행됐
다. 신녀는 피와 죽음의 축제를 주재하는 무녀처럼 미친 듯이 춤추며 은빛사슬을 휘둘렀다.
온통 피바다로 변해버린 사당은 산산이 갈라진 시체들의 파편으로 쌓여버렸다.
"캬아아~."
신녀가 죽음을 불사하고 덤벼드는 백혼에 잠시 정신이 팔린 순간 금면객의 치명적인 한 수
가 펼쳐졌다.
서걱.
신녀의 왼팔이 절단돼 버렸다. 그러나 신녀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오
히려 잔혹한 미소를 짓더니 은빛 사슬을 돌려 회오리로 만들었다. 회오리처럼 돌아가는 은
빛 사슬은 금면객을 감싸버렸다.
"안 돼!"
고깃덩이로 변해 죽었던 후조 조장이 뇌리에 떠오른 좌조 조장은 이성을 잃었는지 방어를
포기하고 오직 공격의 의지를 담은 일 도를 펼쳤다.
푹.
좌조 조장의 칼이 신녀의 등을 뚫고 들어가 복부에 그 일부가 튀어 나왔다. 만약 도강이
씌워져 있었다면 신녀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좌조 조장은 내상으로 인해
내력이 절반도 남지 않아 도강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다.
"갈!"
신녀가 기합소리를 터트리자 칼을 잡고 있던 좌조 조장의 두 손이 박살나버렸다. 소녀잔양
공의 반탄지력은 좌조 조장의 손을 박살낸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는지 내장을 파열시켰다.
게다가 신녀의 등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충격파는 좌조 조장을 10여장이나 날려버렸다.
"공격해라. 이때를 놓치지 마라."
언봉운이 울대가 빠져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상처가 나면 곧바로 복원되던 신녀의
신체에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잘려진 팔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어느새
신녀의 피부에서 솟아나던 붉은 기류가 사라졌던 것이다.
신녀가 약해졌다는 것을 직감한 언봉운은 강호에서 사용이 금지된 악독한 열 가지 암기를
한꺼번에 사용했다. 한 번 온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 할 수 있는 모
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퍼버벅.
신녀의 몸에 흉악하게 생긴 암기들이 박혀버렸다.
"으윽..."
신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은빛 사슬에 묶여 있던 금면객은
팽이처럼 돌았다. 은빛 사슬에서 빠져나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신녀는 금면객을 쉽게
나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크악~."
신녀는 은빛 사슬을 세차게 당겨버렸다. 반쯤 은빛 사슬에서 벗어났던 금면객은 살이 갈라
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금면객을 괴롭힌 것은 은빛 사슬의 예리함보다 남성에
게 치명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소녀잔양공의 내력이었다.
그런데 신녀가 금면객에게 주의를 돌린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금면객을 죽일 생
각에 빠져 우조 조장이 등뒤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우조 조장은 가차없이
칼을 휘둘렀다.
쩌억.
등과 척추가 동시에 갈라지자 진홍으로 빛나던 신녀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시
에 내공의 증폭현상과 경이적인 회복력도 사라져 버렸다. 신녀는 갑자기 밀려온 격렬한 고
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타아!"
신녀가 움직이지 못하자 언봉운은 기합소리를 내며 일 권을 날렸다. 언봉운의 일 권은 아
무런 변화도 없는 단순한 정권 찌르기이었지만 경이적일 정도로 빨랐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주먹이 신녀의 명치에 박혀버렸다.
빠박. 빠가각.
"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리자 신녀는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게다가 신녀는 언봉운
의 일 권에 퉁겨 불바다로 변한 사당으로 날아가 버렸다. 타오르는 사당에서 신녀의 비명
소리가 연속적으로 흘러 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비명은 사라져버렸다. 비명이 사라지
자 신녀가 죽었다고 결론을 내린 언봉운은 긴장이 풀리면서 점차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퍽.
언봉운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긴장이 풀리자 패권(覇拳)을 사용한 후에 나타나는 후유증으
로 인해 의식을 잃은 것이다. 패권은 단 일 격에 모든 내공과 정신, 체력을 소모해 실전에
쓰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은 그런 단점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패권의 위력은 단 일 격에 신녀의 두개골부터 시작해 족근골까지 신체의 모든 뼈를 박살내
버렸다. 게다가 근육을 뒤틀어버리고 내장과 혈맥도 파열시켰다. 일단 패권에 격중당하면
살 생각을 포기해야 했다.
"가주님~."
좌조 조장과 백혼은 금면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쓰러진 언봉운에게는 신
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직 금면객만이 그들의 신경과 시선을 잡고 있었다. 금면객은 살과
근육이 갈라져 뼈가 드러난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특히 신녀가 패권에 맞아 날아가면서도 은빛 사슬을 놓지 않아 금면객에게 치명적인 절상
(折傷)을 당했다. 은빛 사슬이 사당으로 날아가면서 금면객의 뼈마저 갈라버린 것이다. 게
다가 더 큰 문제는 소녀잔양공의 내력이 금면객의 신체 내부를 돌아다니며 계속 손상을 입
히는 것이었다.
"우, 우조 조장... 가주님은 괜찮으신가?"
어느새 의식을 찾은 좌조 조장이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금면객에게 다가가며 질문했다.
"외상이 심각하고 의식을 잃으셨네."
"내상은 어, 어떠하신가?"
"잘 모르겠네. 지금 가주님의 몸 속에 이상한 공력이 움직이고 있는데... 이 괴상한 공력이
귀곡도의 내력을 갉아먹고 있네."
우조 조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좌조 조장의 안색은 오히려 밝게 변했다. 금면
객이 귀곡도 5단계에 돌입해 광인이 됐다고 생각하던 좌조 조장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던 것
이다.
"어, 어서 가주님을 모시고 소불사로 가야하네."
"소불사?"
"만심진광과 부동심결은 소불사의 주지인 일각 대사께서 주셨지 않은가. 그분이라면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네."
우조 조장은 좌조 조장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럼 어서 가세나."
두 조장이 의견을 일치하자 백혼은 곧바로 사당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은 먼저 고기 조
각으로 변한 동료들의 시신을 모아 화장(火葬)을 했다. 시신을 수습할 여력과 시간이 없었
던 것이다.
좌조 조장은 화염 속에서 타오르는 동료들의 넋을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금면객과 우조 조장, 13명의 백혼, 아직도 의식을 회복 못한 언봉운이 좌조 조장의
눈에 차례로 나타났다. 생존자는 모두 합해 17인에 불과했다.
"악몽 같은 하루였다..."
좌조 조장의 넋두리는 힘이 없었다. 목표인 신녀를 제거했지만 희생이 너무도 컸던 것이다.
동료들의 희생이 좌조 조장의 가슴을 멍들게 했다. 그러나 만약 동문보와 서문종, 송자헌
과 고 파파가 이원에 있었다면 그들은 신녀를 대면하기도 전에 몰살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
다.
백혼의 생존자는 좌우 두 조장의 지휘를 받으며 신속하게 이원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의식
을 잃은 금면객과 언봉운을 업고 산동에 있는 소불사를 향했다.
하남의 신양현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평온했다. 오히려 강호인들이 천장별부나 장강대수전
등으로 떠난 덕분에 양민들은 평화롭게 일상에 매진하고 있었다. 신양현에 평화로운 분위
기는 개방 분타도 마찬가지였다.
거지들은 하릴없이 돌아다니며 구걸하거나 평안하게 한 낮의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다만
감법장령인 단석동이 머무는 덕분에 신양분타의 분타주만 죽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신양 분타의 분타주는 이름없는 작은 동산 위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오
수를 즐기고 있는 단석동을 찾았다. 분타주가 머리맡에 왔는데도 단석동은 하염없이 잠만
자고 있었다.
"장령 어른 손님이 오셨습니다."
분타주가 흔들며 말하자 단석동은 눈을 반쯤 떴다.
"에... 뭐라고..."
"손님이 오셨습니다."
"나중에 오라고 해라... 지금 졸려서 말하기도 힘들다."
단석동은 눈을 감아 버리고 몸을 돌리더니 잠꼬대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대리에서 온 단궁우라고 말하면 아신다고 했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는가."
단궁우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단석동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났다.
"대리에서 온 단궁우라고..."
"데려오게."
"네!"
단석동이 중간에 말을 자르고 정색하며 말하자 분타주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자 혼자만 올라오도록 하게. 그리고 주위에 날파리가 끼지 않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시
게."
"알았습니다."
분타주가 동산에 내려간 뒤 반각이 지나자 단궁우가 올라왔다.
"웬일인가? 모양새를 보아하니 부귀공명을 버리고 나처럼 자연인이 되려는 거 같구먼."
단궁우의 의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고 곳곳에 피가 굳은 검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게
다가 지저분한 얼굴과 산발한 머리카락은 안 그래도 남루해 보이는 단궁우를 더욱 비참하게
보이게 했다.
"형님... 본가는 멸문지화를 당했소."
"자네 꼴을 보고 짐작했네. 하지만 어째서 나를 찾아 온 것인가?"
"아버님이 형님께 죄를 진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형님밖에 없었소. 복수를 할 사람이 형님
밖에 없단 말이오."
단석동의 부친과 서해방주는 육촌 형제였다. 서해방주가 대리국의 부활을 꿈꾸었지만 단석
동의 부친은 달랐다. 혼란과 전쟁으로 인해 세상이 피에 젖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던 것이
다. 두 사람의 불화는 당연했다.
게다가 서해방주는 단석동을 납치해 10년 동안이나 가두었다. 단가의 무공을 전수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단석동의 부친을 협박하려는 목적을 안고 있었다. 단석동의 부친은 아들의
안위를 위해 재산의 대부분을 서해방주에게 넘겼다. 서해방주는 그 엄청난 자금을 대리국
재건에 쏟아 부었다.
사천 제일의 거부였던 단석동의 부친은 아들이 돌아오자 다시 상업에 전념했다. 몇 년만에
사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를 다시 모았지만 단석동의 마음은 달랐다. 자신
때문에 부친이 고생한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서해방주가 언젠가는 자신을 이용해
부친을 협박할 거라고 추측해 집을 떠나 개방에 투신한 것이다.
"잘난 자네 형님도 있고 훌륭하신 당숙도 계신데 뭔 말인가? 어서 돌아가게."
단석동의 쌀쌀한 말투에도 단궁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형님. 제발..."
단궁우는 무릎을 끓고 애원했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단석동의 얼굴은 풀릴 기색이 보
이지 않았다. 단석동은 단궁우를 외면했다. 작은 동산에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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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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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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