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창문을 열다.
입춘 한파가 뼈가 시리도록 혹한이 지난 후 아직도 찬 기운은 있지만, 촉감은 싫지는 않다.
호정골 야산에서 품어 나오는 맑은 공기는 영혼의 청량제처럼 온 몸을 전율케 한다.
새벽 얼굴에 스치는 신선한 공기처럼 저의 온 몸과 온 마음에 온 영에 성령이 부어지길 원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70년의 세월 속에 세상을 살면서 내 생각과 경험과 지식으로 살아오곤 했다.
이것으로 능히 自我를 이겨 낼 지혜가 있는 줄 생각했다.
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장벽과 장애, 갈등과 불화, 차이로 인한 서로 반목, 번민과 걱정이 더해지면서 생의 파열음을 내면서
때로는 가족을 원만하고 비난하고 나와 다르다는 것으로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분노하고 심지어 정죄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곤 했다.
그러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를 반성하고 하나님과 가족에게 회개와 용서를 구한 적이 반복됨이 기억되다.
더 이상 동일한 잘못과 무지를 범하지 않길 소망 했지만 육신의 생각이 동일하게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빈번히 무참히 무너지는 자아를 보게 되었다.
나의 결심과 의지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한지 썩은 새끼줄과 같음을 절박하게 느끼고 깨달았다.
이제는 나를 믿고 나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다 내려놓고 오직 말씀따라 오직 성령으로 살겠노라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전적으로 굴복하여
나의 의지가 아닌 성령께 모든 것을 내 맡겨 갈라디아서 2장 20~21절이 나의 모든 말과 행동과 삶을 드리기를 결심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간 나의 생각과 뜻이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얼마나 나약하고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를 지금까지 나의 삶을 절실하게 경험한 지난 수많은 시간이였습니다.
그간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 라는 자기 기만과 허상에서 살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멜로디 메이슨이 쓴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담대하게 살아라 (DARING TO LIVE BY EVERY WORD)'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 백성으로 삼기 위한 계획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든지 까다로운 룸메이트가 있든지 또는 결점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면 다음 사항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만일 우리가 바라는 모든 사람의 조건들을 항상 충족시켜주는 사람과 산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우리를 결코 실망 시키지 않고, 함께 살기가 결코 어렵지 않고 우리에게 결코 죄 짓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데 결코
더디지 않은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비와 인내와 오래 참음과 깊은 동정심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항상 그 같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면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남편이나 아내가 자녀나 룸메이트나 혹은 가족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정말 희생을 많이 할 필요가 전혀 없을 때 예수님을 가장 닮게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필요할 때, 자비가 필요할 때,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한 힘든 시기에 우리가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게 됩니까?
여러분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 과정에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서로 다른 개성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 하나가 되도록 의도하신 것을 아시겠습니까?"
나는 몰랐습니다.
나도 너도 우리도 罪性을 가진 피조물로 불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뿌리 깊고 민감한 죄는 교만의 죄 즉 자부심과 자존심과 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죄를
한 평생 나와 함께 동거함을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속에 당연한 것으로 대우 받아야 할 "자부심과 자만심"에 손상을 입었을 때 나의 정당성이라 생각하고 얼마나 격분하고 상대를 비난한 것이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 이였다.
그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을 멈추고 "결국 나의 天敵은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아주 다른 가족과 교제하는 중에 사람을 두셔서 그로 말미암아 하늘 품성을 연마하게 되고 이것으로
자신의 숨겨진 죄를 알아서 이 죄를 회개하고 천성(天性)으로 매일 나아가게 하심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나의 앞 생애의 모든 여정과 계획을 송두리채 한 울도 남김없이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그 뜻을 따르렵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품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온한 것처럼 그렇게 갓난아이처럼 하나님 품속에서 살렵니다.
새날 잠에서 깨어난 새벽마다 작은 생명으로, 저녁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작은 죽음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죽음과 탄생을 경험하면서 주님 앞에 잠 자는 날을 예비하련다.
순간마다 날마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따라 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반응하고자 한다.
날마다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날마다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 보렵니다.
속절없는 방백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렵니다.
저의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을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복종'에 담아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불쌓하고 연약하고 가련한 이 죄인을 받아 주옵소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삶을 소중하게! 단순하게! 즐겁게!
1%만 바뀌도 인생이 달라진다!
청주에서, 삼육대학교 재단 정종병드림/ 時兆社;敎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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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향기방]을 밝혀주시는군요.
그옛날부터 장로님의 글을 좋아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