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씨는 올해 초 고려아연에서 일할 때 안전 발판 없이 파이프를 밟고 일했다. 용접과 배관 일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안전발판 설치가 안 돼 ‘불티 비산 방지막’은 설치할 수 없었다.
허씨는 지난 2010년 남구 석유화학동단 내 모 회사에서 인화성 원료가 들어 있는 배관을 커팅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배관 안에 인화성 원료가 들어 있으면 이를 세척하고 절단작업을 해야 용접불꽃으로부터 화재와 폭발을 막을 수 있다. 허씨는 업체 관리자에게 위험한 작업이라고 말했지만 “괜찮으니 그냥 진행하라”는 답을 들었다.
원청 안전담당자는 위험 작업을 감시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작업을 거부해야 하지만 허씨는 일했다. 못하겠다고 하면 업체는 일당을 쳐주고 집에 가라고 한다. 다른 업체를 불러 일을 시키고 허씨 팀은 그 업체로부터 일감을 받기 어렵다.
허씨에게 산재 당한 동료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허씨는 플랜트 노동자 특성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계속 일을 받으려면 위험에 침묵하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렌트 노동자는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 노동력을 업체에게 인정받아 일힌다.
허씨는 “나는 건강하고, 일 잘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이미지를 업체한테 심어줘야죠. 잘못 소문 나면 일거리가 없어져요. 외국계 회사가 한국 회사보다 안전한 환경임은 인정하지만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플랜트 노동자는 늘 불안할 뿐”이라고 했다.
허씨는 산재사고 은폐를 막기 위해 모든 사업장에 자체 응급구조 외에 119 응급상황실로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는 규정을 법제화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작업거부권과 작업중지권 보장된 외국계 회사
한국 솔베이 박현철 상무 인터뷰
2003년 공장장 구속 뒤 안전 강화
울주군 온산공단에 있는 (주)한국솔베이 회사 안에서는 계단을 오를 때 안전난간대를 잡아야 하고, 화단 앞이라도 전면주차를 금지, 뛰면 안 되고, 모든 임직원에게 작업중지권, 모든 작업자에게 작업거부권이 주어진다.
플랜트 노동자들 사이에 남구 석유화학공단에 있는 (주)한국듀폰과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주)한국솔베이는 비교적 안전작업이 잘 이뤄진다고 평가된다.
2003년 직전에 한국솔베이는 환경법을 위반하고 공장장(한국인)이 구속, 안전사고로 안전팀장이 구속됐다. 2003년 프랑스 사람이 공장장으로 부임하면서 박현철 상무는 타 회사에서 일하다가 한국솔베이 안전관리팀장을 맡아 일했다. 한국솔베이는 한불화학으로 알려진 회사로 100% 벨기에 솔베이그룹에서 투자한 석유화학업체다.
2003년 새로 부임한 프랑스 공장장은 “한국 사람들은 사고가 나면 왜 보고하지 않고 숨기느냐”며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했다. 인센티브 제도는 안전사고를 신고한 건수가 많은 부서에 고과점수를 높게 주는 방식이다. 관리자에게만 시행하던 인센티브 제도는 2005년에는 최준호 공장장이 부임하면서 전 직원으로 확대됐다. 작업자가 불안정한(위험한) 상태로 일하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고, 작업자가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해도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작업거부권이 시행됐다. 처음에는 안전난간대를 잡지 않는 행위, 안전보호구 미착용 등이 신고되더니 안전설비를 강화해야 하는 것까지 파악됐다.
한국솔베이는 제조업, 화학업체에 필요한 115개 안전작업 규정을 마련해 솔베이 소속 직원과 임시협력업체에게도 적용한다. 안전과 관련된 문제점과 개선점을 많이 제출하면 상하반기에 각각 본봉의 100%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2003년 응급처치가 가능한 사고가 발생한 건수는 2건으로 파악, 신고제를 운영한 뒤 2004년 28건, 2005년 20건, 2006년 25건, 2007년 35건, 2008년 31건, 2009년 30건이었다. 6년 가량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한 결과 2010년 23건, 2012년 9건, 2013년 11건으로 줄었다. 안전규정, 안전보호구, 안전설비에 걸쳐 작은 사고를 예방한 결과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협력업체와는 안전교육과 안전 감사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실시한다. 한국솔베이에서는 약 270명이 일하고 그 가운데 정규직이 170여 명, 협력업체가 100여 명이다. 협력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은폐하는 사례가 없는지에 대해 박 상무는 협력업체에도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되 응급조치 사고 신고에는 상을, 대형 사고에는 벌을 주는 규정이 있다고 했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은 2013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안전문화 교육 사례를 시행한 뒤 울산 기업체 안전관련 부서에 100여 명이 신규채용됐다고 밝혔다.
정부도 낙찰제 개선책 내놔
울산노동지청 건설현장 보호구 점검
정부도 대형 관급공사에서 최저가 낙찰제도의 문제점을 잘 알고 개선책을 마련 중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최저낙찰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종합심사 낙찰제’를 토지주택공사 등 7개 공공기관 발주현장에서 시범실시키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종합심사낙찰제에 사회적 책임지수로 가점 1점을 반영한다. 사회적 책임지수는 고용 0.4점, 안전 0.4점, 공정거래 0.2점 등 모두 1점으로 구성된다. 종합심사 낙찰제는 낙찰가격, 공사수행능력, 사회적 책임 등을 반영해 업체를 선정한다.
건설노동자들은 올해 대정부 안전 관련 요구안으로 △산재사망처벌과 원청책임 강화 법제화 △산업단지 노후설비 조기교체 △최저낙찰제 폐지와 적정임금제 실시 △화물덤프 불법 개조 단속과 처벌 강화 △전기 배전 국가 자격증 전환·의무고용인원 법제화 △적정 공사기간 보장·건설현장 주말휴무제 등을 요구했다.
한편 울산고용노동지청은 지난 1일부터 올 연말까지 건설현장과 사업장의 보호구 지급과 착용을 집중점검한다. 울산 노동지청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보호구를 지급했는지와 보호구를 지급했는데도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를 단속한다.
점검 대상은 노동지청이 감독하는 건설현장과 그동안 보호구 착용이 미흡했던 개인 발주 소규모 공사현장이다.
노동지청은 사업주가 지급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를 적발하면 과태료 5만원를 부과하고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안전보건교육을 한다.
울산지역 건설업 재해자 수는 2012년 607명(사망 13명)에서 2013년 671명(사망 27명)으로 늘었다. 특히 사망자수가 크게 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물체가 떨어지거나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보호구를 지급하도록 하고, 근로자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도록 규정했다.
덧붙이는 글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