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왔다. 4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인이 축구에 열광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번에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대회는 6월 14일부터 7월 15일까지 모스크바를 비롯한 11개 도시, 12개 경기장에서 진행된다.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답게, 개최도시 중 가장 동쪽에 있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칼리닌그라드까지는 3천㎞가 넘으며, 시차도 3시간이나 된다. 대회는 본선에 올라온 32개국이 4개국씩 8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인 뒤, 각 조별 상위 2개 팀이 본선에서 토너먼트로 경기를 진행하여 최종 순위를 가린다. 조 추첨을 통해 독일‧멕시코‧스웨덴과 함께 F조에 편성된 우리나라(FIFA 랭킹 61위)는 6월 18일 스웨덴(23위), 6월 24일 멕시코(15위), 6월 27일 독일(1위)과 차례로 예선리그를 치른다. 여기서 적어도 2등 이내에 들어야 16강이 겨루는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우리보다 FIFA 랭킹이 낮은 나라는 주최국 러시아(66위)와 아시아지역 대표 사우디아라비아(67위)뿐인데, 이 두 팀이 6월 14일 개막전을 치른다.
월드컵대회는 순전히 쥘 리메(1873~1956)라고 하는 걸출한 축구인 한 사람의 노력으로 창설되었다. 1928년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쥘 리메는 1932년 여름올림픽 개최국인 미국이 올림픽 경기에서 축구를 배제하자 각국 축구지도자들을 설득하여 월드컵대회를 창설했다. FIFA 창설자이기도 한 쥘 리메는 1921년부터 1954년까지 무려 33년 동안 FIFA 회장을 역임한 최장수 기록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국민들이 축구에 관심이 없어 축구를 배제했는데, 지금도 미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종목은 미식축구‧아이스하키‧농구‧야구다. 그러나 1985년 20개 팀으로 창단된 미국의 프로축구 리그는 국민적 관심이 점점 고조되면서 현재 FIFA 랭킹 24위까지 올라와 있다. 비록 이번 러시아 월드컵대회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일을 낼 팀이다.
제1회 월드컵대회는 1928년 암스테르담 여름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LA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30년에 대회를 개최한 뒤 매 4년마다 실시하여 여름올림픽과 겹치지 않도록 했다. 미주대륙에서는 남미의 볼리비아‧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칠레‧파라과이‧페루 등 7개국과 북미의 멕시코‧미국 등 2개국을 합해 총 9개국이 참가하기로 했지만, 유럽 각국은 참가 희망국이 없었다. 쥘 리메는 자비를 들여 각국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루마니아‧벨기에‧유고슬라비아‧프랑스 등 4개국이 참가하기로 했다. 영국은 축구 종주국이랍시고 1950년 브라질 대회 때 가서야 처음으로 출전했는데, 그나마 FIFA의 ‘1국 1협회’ 원칙을 무시하고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4개 협회가 따로따로 대회에 참가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대회 때마다 우승국에게 주는 현재의 트로피(왼쪽)와 영영 볼 수 없게 된 줄리메컵
쥘 리메는 제1회 월드컵대회를 기념하여 자비로 우승 트로피를 제작, 기증했다. 은과 청금석으로 제작하여 순금으로 도금한 높이 35㎝, 무게 3.8㎏의 트로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신상(神像)을 채택했으며, 쥘리메컵이라고 명명되었다. 대회 우승국은 4년 동안 쥘리메컵을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 우승국에 넘겨주기로 했는데, 최초로 3회 우승을 달성한 팀이 영구보존하기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 규정에 따라 1970년 최초로 3회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에게 쥘리메컵 영구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1983년 3명의 도둑이 브라질축구협회 본부에 전시되어 있던 쥘리메컵을 훔쳐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상굿도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나라에서 세계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라에 예산이 없어 단복조차 외상으로 해 입은 선수단은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간 뒤 미군수송기를 얻어 타고 왜국에 내렸다. 그러나 항공권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2~3일씩 기다리다가 1진 13명은 대회 개최 이틀 전에, 2진 9명은 하루 전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스위스에 도착했다. 첫 상대인 헝가리는 당시 세계 최강이었는데, 예상대로 0:9로 참패를 당했다. 이어 열린 터키와의 예선리그 2차전에서도 0:7로 대패하면서 첫 출전 대회를 마쳤다. 그러나 선수단을 비난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지역예선에서 왜국을 이기고 아시아에 단 한 장 주어진 본선진출권을 따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대회부터 이번 러시아대회까지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성적은 별로서여, 1998년 프랑스 월드컵대회까지 거둔 성적은 4무 8패로 한 번도 승리가 없었다.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대회는 유치 자체가 기적이었다. 다들 일본 단독개최를 점치는 가운데, 그 동안 이룩한 경제성장과 스포츠 외교력을 바탕으로 공동개최를 일궈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예선리그에서 2승 1무로 결선에 오른 뒤, 파죽지세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꺾고 당당하게 4강에 올랐다. 4강전에서 독일에, 3‧4위전에서 터키에 패하기는 했지만 국민들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또 하나, 우리는 ‘붉은 악마’가 이끈 길거리 응원으로 단합과 질서와 청결을 과시하여 세계 축구史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축구문화를 창출했다.
러시아 월드컵대회 조 추첨이 끝난 뒤, 각 언론의 축구담당 기자들은 ‘죽음의 조’라고 엄살을 떨며 자신들이 먼저 주눅이 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우리 대표팀의 예선리그 성적을 3전 전패로 예상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공은 둥글다’는 말은 어느 팀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있으며, 모든 경기는 끝나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FIFA 랭킹이 높은 팀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대회에서 이미 우리보다 랭킹이 높은 나라들을 차례로 꺾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번 예선리그에서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한 독일‧멕시코‧스웨덴은 모든 조건에서 우리보다 강국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고도 분하다고 우는 선수는 한국인뿐이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 가운데 동메달을 받고도 좋아서 펄펄 뛰는 타국 선수와, 은메달을 받고도 시무룩하게 풀이 죽은 우리 선수의 모습이 대비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실력이든 운이든 메달의 색깔이 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너무 승리에 집착하다 보면 출전한 선수나 응원하는 국민들이나 정서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맨땅에서 축구를 배운다. 각종 대회 결승에 오르거나 프로팀에 입단해야 비로소 마음껏 잔디구장을 밟아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천연잔디구장에서만 축구를 해온 축구 선진국들을 이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208개 FIFA 회원국 중 9회 연속 본선에 진출한 실적만 해도 선수들의 몫은 다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대회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기면서 선수단에 응원을 보내자.
첫댓글 월드컵 역사를 자세하게 올려줘 많은것을 알게 되었네
우리나라는 그래도 잘하네
무조건 일본놈들은 이겨야 직성이 풀리지
나도 다라 가즈아!
월드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