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톨스토이는 러우전쟁 지지자와 반대자 양편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푸틴과 그의 지지자는 톨스토이를 앞세워 전쟁의 권위를 세우려 하고, 비판자는 톨스토이를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을 허문다. <전쟁과 평화>가 침략자의 최애 소설인 동시에 반전의 확고부동한 기호로 함께 쓰인다. 전쟁 지지와 반대로 갈라진 톨스토이의 후손들은 저마다 '톨스토이의 유산'을 근거로 내민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비밀은 다시 한번 '두 톨스토이'에 있다.
톨스토이 속에는 여러 차원에 걸쳐 많은 '두 톨스토이'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당연히 작가 톨스토이와 평화사상가 톨스토이고, 평화사상가 톨스토이 속에는 성자 톨스토이와 전사 톨스토이가 존재한다
한편, 작가 톨스토이 속에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쓴 톨스토이와, 자신의 두 걸작을 포함해 선에 봉사하지 않는 모든 예술을 '쓰레기'라 경멸한, <부활>의 작가 톨스토이가 있다
또 카르카즈 전투, 크림전쟁에 직접 참여하며 조국 러시아를 위해 몸 바쳤던 톨스토이와, 러일전쟁 당시 조국을 휩쓴 애국적 광기를 질타한 톨스토이가 있다. 민중의 자연적 본성을 믿었던 톨스토이와, 신앙조차 이성의 지배아래 두고자 했던 톨스토이가 있다. 술과 담배, 고기를 멀리하며 금욕과 절제에 헌신했던 톨스토이와, 60세에 13번째 아이를 얻은 톨스토이가 있다.
톨스토이는 브라만교,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불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참된 종교는 외적 형식은 다양할지라도, 근본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가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선택한 이유는 오직 예수만이 사랑을 '최고'의 법칙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두 톨스토이의 대결과 공존은 사랑, 무저항, 비폭력 등의 도덕적 원칙과, 국가 철폐, 착취 질서 근절, 전쟁 반대와 같은 사회 개혁적 강령을 긴밀하게 결합시킨다. 톨스토이의 평화사상 속에서 기독교적 사랑을 조건 없이 실천하는 종교적 행위는 그 실현을 가로막는 폭력의 구조를 없애고 대안적 질서를 모색하는 사회적 행위와 분리되지 않는다. 사랑과 형제애라는 윤리적 기반 위에 병역 거부, 납세 거부, 준법 거부, 전쟁 반대, 절대적 비폭력 등의 급진적인 행동강령이 놓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