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탕에 비가 내린다. 밤새내린 비는 높은 산에서 눈으로 변한다. 로만탕을 둘러싼 산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에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눈을 열어 신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경이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세상의 욕심과 자아로 가득 찬 사람에게 자연은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그들은 아무런 감격이나 감사도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기에 파묻혀 세상의 신비가 보이지 않는다. 눈은 떴으나 영혼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귀는 가졌으나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떠오르고 우리는 태양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로만탕 성의 뒤쪽에는 남길 평원이 펼쳐져 있다.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리는 냇물로 인해 평원은 기름진 곡창지대가 된다. 여기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로만탕 사람들이 살아간다. 이 평원이 있기 때문에 로만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부터 한 나라의 도읍지는 그 성의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창지대가 있어야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 바람에 넘실대며 춤을 춘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양식을 생산하는 가장 귀한 산업이다. 그러나 오늘날 농사는 가장 천대받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앞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식량이 없으면 사람들은 살아갈 수가 없다. 식량은 이제 무기가 되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농업을 천시하는 나라는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며 굶주리게 될 것이다. 남길 평원에 아름다운 들꽃들이 피어있다. 노란 저고리를 입은 꽃들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히말라야 백합꽃이 강인한 봉오리를 드러내고 있다. 하늘을 닮은 짙은 남색 꽃이 선명한 빛깔을 자랑한다. 땅에 붙은 가시떨기에 붉은 열매가 탐스럽게 맺혀 있다. 맑고 차가운 냇물이 흐르는 곳마다 습지를 형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저기에서 농부들은 추수를 하고 있고 소와 말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제각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기가 바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낙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를 깨뜨리고 낙원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야생 오렌지의 신맛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래도 여기가 해발 3,800m라서 조금만 무리를 하면 숨이 가빠온다. 팅갈까지 진입하여 왕의 여름궁전을 찾는다. 그러나 묻은 굳게 닫혀 있고 궁전 주위로 오래된 마을이 펼쳐져 있다. 한 여인이 반기며 우리를 들어오라고 초청한다. 장작 난로 위의 따뜻한 버터티를 우리에게 따라준다. 짭짜름한 버터티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흐른다. 여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버터티를 따라준다. 아무런 바람도 기대도 없이 그저 친절과 호의로 우리를 대접한다. 나눔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남길 평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는데 과연 이들이 거두게 될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