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가 한국 영화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인조의 아들로 차기 왕권 1순위였던 소현세자는 사도세자 만큼이나 여러 논란의 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병자호란 때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귀국 3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학질(말라리아)’로 사망했다.
그를 둘러싼 첫 번째 논란은 그의 독살여부다. 재일(在日) 역사학자 강재언은 1990년 발행된 ‘조선의 서학사(朝鮮의 西學史, 대우학술총서)’에서 소현세자의 독살을 단정짓는다.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세력은 청나라에 대해 부정적이었던데 비해 소현세자가 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인조의 주도하에 그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살의 하수인으로 어의 이형익을 특정한다.
소현세자 독살설을 학계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김용덕이다. 당시 중앙대 교수이던 그는 ‘소현세자연구’라는 1977년의 논문에서 소현세자 독살설을 처음으로 학계에 알렸다.
현재 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같은 고대사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이덕일이 독살설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강단사학에서는 독살설에 반론을 제기하는 편이다.
소현세자를 둘러싼 두번 째 논쟁은 그가 청에서 만난 천주교 선교사로부터 서구의 각종 진기한 물건을 접한 데서 시작한다. 만약 그가 왕위를 이어 받았으면 천주교를 통해 조선의 근대화가 조금 당겨지고 18세기 천주교 박해로 인한 인재의 소실도 없지 않았겠느냐는 이론이다.
소현세자가 청에 와 있던 선교사 아담 샬과 교류한 것은 맞다. 아담 샬은 소현세자가 조선으로 귀국할 때 천문학, 수학, 천주교리에 대한 책과 함께 지구본과 천주상(天主像)을 선물했다. 야마구치 마사유키의 '조선서교사(朝鮮西敎史)'에 따르면 소현세자는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천주상을 아담 샬에게 돌려 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천주교를 아는 자가 없기 때문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단사교(異端邪敎)라고 지목되어 천주의 존엄을 더럽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천주상을 귀하에게 돌려보내어 과실이 없게 하려는 이유다
조선생활 3개월 남짓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소현세자에게 천주교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귀국한 궁에서는 여전히 북벌론이 인조 주변을 둘러 싸고 있었다. 영화 '올빼미'에서도 인조가 병자호란때 당했던 삼전도(지금의 송파)의 굴욕 즉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무릎 1번 꿇을 때마다 3번 조아려서 총 9번)의 수치를 못 잊어 괴로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문에 소현세자의 청사진에는 천주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유럽도 산업혁명 이전이었으므로 그들로부터 들여올 문명이라는 것도 별로 없을 때였다. 영화에서는 확대경(돋보기)과 지구본 정도가 서구 문명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논쟁은 ‘독살논쟁’처럼 진실이 유예된 것이 아니라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올빼미’는 독살설 편에 선다. 영화정보에는 원작이나 각본을 쓴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법인데 여기는 없다. 안태진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데 그가 쓴 것으로 보이는 시나리오가 상당히 탄탄하다.
아픈 동생과 함께 사는 맹인 침술사 천경수(류준열분)가 우연한 기회에 궁궐 내의원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의원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경수는 마침내 어의 이형익의 세자 치료에 함께 한다. 내의원 규칙상 최소 2명이 함께 치료에 참여해야 하는데 앞을 못보는 경수는 무슨 일을 꾸미려는 이형익에게는 가장 좋은 파트너다. 밝은 곳에서는 전혀 못보지만 올빼미처럼 어두운 곳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는 소현세자에게 독침을 놓는 이형익을 목격한다. 올빼미 같은 특이한 시력을 가진 경수의 비밀을 몰랐던 이형익은 완전범죄라 안심했지만 경수에 의해 전모가 밝혀진다.
(여기서 부터는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올빼미’를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인조(유해진 분)가 배후라는 사실을 인지한 경수는 그때부터 자신의 안위와 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진실편에 섰지만 이번에는 진실을 규명하려는 세력의 정점에 있던 최대감과 인조의 협잡으로 사건은 덮인다. 최대감(조성하 분)의 이름은 극중에서 거론되지 않지만 최명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선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간언하던 주화파(主和派)이병헌이 연기한 멋진 최명길이 아니라 기회주의자 최명길이다. 사료에 따르면 실제 최명길은 이병헌보다 ‘올빼미’의 조성하에 더 가깝다.
인조 반정의 동기가 청과 명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에 대한 서인 세력의 반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화파 최명길은 인조 반정에도 함께 했다. 영화에서도 최대감은 인조를 향해 “내가 당신을 왕으로 세웠다”라고 말한다.
소현세자가 가고 난 4년 뒤 인조도 소현세자와 같은 학질로 죽는다. 사료는 이형익의 시침으로 기록하지만 영화에서는 경수가 등장한다.
상업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사실 보다는 흥미와 감동에 집중해야 한다. 유독 한국 관객과 평단은 고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고증이 중요하다면 역사책을 읽으면 될 터, 영화는 설 자리는 없다.
고증을 무시했지만 흥미와 감동을 준 최고의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9년 작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erds)’이다. 영화에서는 건달(bastards)의 철자도 모르는 비주류들이 모여 나치에 대항해서 히틀러를 처단한다. 히틀러 같은 악인을 1945년 베를린에서 ‘곱게’ 자살로 마감시킨 역사는 너무 허무하다. 타란티노는 1944년 프랑스 파리의 극장에서 히틀러를 폭사시켜 버린다.
이런 짓(?)에 자신이 없는 한국 영화계는 고증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슈룹’처럼 가상의 왕을 내세운다.
경수가 인조의 정수리에 침을 꽂아버리는 형태의 ‘왜곡’을 한국 영화에서는 안태진 감독이 처음 시도했을 것이다. 그래서 통쾌하다. 영화에서 인조의 총애를 받으며 독살에 가담했던 후궁 소용 조씨는 훗날 효종의 재위때 사약을 받는다.
영화에는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갔던 봉림대군(효종)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1649년 조선 17대 국왕으로 즉위한 봉림대군은 10년만에 갑작스런 병으로 39세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효종실록에는 스스로를 거사(居士)로 일컫는 어떤 노인이 5월에 큰 화가 있을 것이니 어서 초가집을 짓고 왕이 그리로 옮겨가 굿을 하라고 외쳤다는 내용이 있다. 효종은 그해 6월에 목숨을 거뒀다.
혹시 늙어버린 경수가 그 노인 거사가 아닐까?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다녀온 봉림대군은 왕이 되어서도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빈 강빈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경수가 마지막 복수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객적은 소리를 해봤다. 올빼미 경수는 당연히 가공인물이다.
아무튼 소현세자의 독살을 소재 삼아 어둠 속에서 희미한 진리를 보는 민중 경수가 주인공인 동시에 영화의 주제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있으면(특히 판검사들) 그것을 자신의 안위와 출세의 토대로 삼으려고 진실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는 경수의 눈은 진실의 눈이다. 이 눈은 밝은 곳에서조차 진실을 못보는 언론과 대비된다.
라캉의 실재계는 틈새사이로 힐끔힐끔 보이는 진리의 세계다. 각막의 틈새로 보이는 작은 진실에도 목숨을 거는 경수는 진실이 무너지는 세상을 너무나 밝고 확실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는 듯하다.
첫댓글 올빼미라는 영화가 이런 내용이군요.
본문에 강한 스포일러가 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