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물
요즈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자주납니다.
그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겠지요.
어릴 때 고향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고향집을 그려보았습니다.
부활은 죽어야만 올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도 언젠가는 반납을 하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잠시 빌려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 돈, 명예도 모두 반납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조건없이 받은 생명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반납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반납하고 가야 할 것들에 집착하게 되니,
아는 것을 몸으로 옮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12살 때인 장마 때
갑작스런 사고로 하느님을 모른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아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회의에 그친 회의였지만....
초등학교입학 하기 전부터
당시 동네에 집집마다 처음 설치되었던 스피커 형태의 라디오에서
5시 쯤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아버지께서 켜놓으신 라디오에서
‘명심보감’,’채근담’ 에 나오는 구절과
'세계 명사들의 글'을 낭송하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방송된 내용을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
'명상의 시간'과 '마음의 샘터'란 책입니다.
어렵게 찾아 최근에 구입을 했습니다.
성서구절을 매일 읽고 묵상하듯이
어쩔 수 없이 이불 속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 5시만 되면 눈이 뜨입니다.
아침 새벽에 눈을 뜨고 일어나 행동을 하게 되면
새벽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활동하는 분 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맑은 머리로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새벽의 부지런한 사람들, 새벽 공기, 동이 트는 아름다움 등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문득
한 동안 제 기억 속에서 멀어져 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함께
저에게 주신 선물이 있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을 갖었습니다.
새벽을 매일 볼 수 있도록 해 주신 일,
그리고 일찍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신 일 등..
아버지 감사합니다.
비록 주님을 알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지만
이제부터는 자비로우신 주님께
아버지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특별한 생일선물
우리 어머니는 한 마디로 여장부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41세에 낳으셔서 종종 막내인 나보고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태어났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위의 형과 10살이나 터울이 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형제는 3남 4녀 였는데
누나 1명과 나보다 7살 많은 형이 어릴 때 돌아가셔서
2남 3녀 5형제가 되었습니다.
누나들의 기억이나 바로 위의 형과는
거의 같이 생활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엔
늙으신 부모님(50대)과 함께 외롭게 생활했기에
형제들이 함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요.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엄마 젖을 빨았다고 하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잘 때는 엄마 젖을 만지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일 어머니는 밭에 나가 사셨는데,
아버지 몸이 허약하셔서 남자가 하는 일까지 하셨습니다.
지게도 지시고 심지어 똥장군도 지셨습니다.
논에 물 대는 물꼬 싸움도
아버지를 대신해 하실 정도로 억척스러우셨습니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숙제라든가 기성회비 같은 돈을 가져오라고 하면
그 날로 해결 해야하는 성격입니다.
한 번은 기성회비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텃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엄마, 내일 기성회비 가져오래~ ' 하고 말하자
어머니는 "알았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일하고 계신 어머니에게 달려가 당장 달라고 하였고
어머니는 "알았으니 이따가 집에 가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따가는 잊어버릴 수 있으니 당장 달라고 보채자,
화가 난 어머니가 나를 끌고 집에 있는 나무 광에 밀어 넣으시고는
“알았다는데 왜 이렇게 보채” 하시며,
어머니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즉 빗자루, 나뭇가지로 한참을 맞은 것이 기억납니다.
서울에 이사오신 후 하느님을 알아
안나로 새로 태어나시고
가족들을 차례로 영세를 받게 하셨습니다.
누이 두 분, 형, 형수, 친척에게 한글도 모르시는 분이
열심히 전교하시려고 노력하셨고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항상 새벽미사 가시기 전에 나에게
오늘 복음말씀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셔서
찾아드리곤 하였습니다.
한글도 모르시는 분이 우리 가족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몇 번 성당에 갔지만
결혼 전까지는 끝내 어머니의 말씀에 부응하지 못하고
영세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한글 실력으로
성서말씀을 적은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독학으로 한글 공부를 하신 듯 합니다.
결혼 2년 반 만에 딸이 태어났고
어머니는 손녀 보러 온다고 자주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장위동에서 역곡까지 먼 길을 버스와 지하철로….
딸 유스티나의 백일이 지나고 그 해 겨울 내 생일날,
하루 전 저희 집에 오셔서 아내와 함께 생일 준비를 거들어 주시고
다음 날인 내 생일날 새벽미사 다녀오시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별 준비도 없이 돌아가시자
어머니께 죄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내 생일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그 후 내 생일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는 습관
즉 아침형 인간을 만들어 주셨다면
어머니는 우리가족을 하느님께 인도하시고
나에게도 복음을 전하신 분입니다.
결국 성공은 하지 못하셨지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부산에서,
결혼약속 조건으로 영세를 받으라고 하신 장모님을 통해서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화룡점정을 찍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음력으로 동짓달 열 이레(11월 17일)날
생일을 차려주셨지만 호적에는 양력으로
12월 26일이 생일로 되어있어 스테파노 축일과 같아서
세례명을 스테파노로 정한 것입니다.
마지막 생일날 돌아가셨기에 그 이후론 생일을 차리지 않고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축일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육적으로 태어난 날을 잊고
주님의 자녀로 태어난 날을 기리라고....
돌아가시면서까지 나의 신앙을 챙기신 어머니!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제 신앙을 챙겨주신
두 분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찬미와 찬양받으소서!
아멘!
첫댓글
오랫만에 잠이 깨어 한 밤중에 들어왔습니다.
아침형 인간이라 느끼지 못하던 감정이 드네요.
새벽보다는 감성적이 된다고 할까요..
젊었을 때 연애편지 쓸 때가 생각납니다.
한 밤중에 멋진 표현이라고 쓰고, 아침에 읽으면 왜 그리 촌스럽던지 ^^
소록소록
맘에 남아있는
부모님 생각,,,~
어버이날이자 부처님오신날
행복하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자매님때문에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니 결혼을 정말로 잘 하셨네요 양쪽 부모님과 주위분들의 많은 기도도
있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