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 사회적응 도와야
홍성군 '느린학습자 평생교육 지원 조례' 제정…"자신의 속도로 교육받을 권리"
보통의 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의 지능을 가진 사람을 느린학습자라고 한다. 느린학습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에는 경계선 지능인으로 불렸다.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굿모닝충청=김갑수 기자)
[김세원 대전과기대 교수] “저는 엄마가 계모라고 생각했어요.”
“희아가 피아노를 칠 수 없다면 다른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한 손 손가락이 두 개고, 다리가 짧은,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이야기다. 6세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그녀는 너무도 느린 학습자였다. 나비야를 치는데 거의 1년이 걸렸고, 하루 10시간씩 5년을 연습한 끝에 제대로 된 클래식 한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세상의 고정관념과도 싸워야 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모녀는 피아노와 함께 울기를 반복했다.
주변에서는 “피아노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반복적인 연습과 초인적인 인내로 쇼팽 베토벤 요한 파헬벨 등을 연주하게 된 그녀는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에게 감동과 경탄,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감성의 연주자,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연주자가 된 그녀의 이면에는 ‘느린 학습’이라는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고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에 익숙하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금방 끓인 라면을 빨리 먹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찬 물에 행궈 먹는 것도 용인이 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조금 굼뜨거나 어설픈 행동은 비난과 질책, 비아냥과 마주하기 십상이다. 곧바로 “한 번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왜 이렇게 굼뜬 거야!”, “내 말 흘려듣지 마라! 너 일부러 그러지”, “복장 터지네 정말!”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상황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질책이나 관심으로 심신이 긴장했을 때 누구나 반응이 더뎌진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나온다. 부모님처럼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져주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다. 눈치 빠르고, 행동도 민첩하며, 새로운 지식과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 ‘부인’되어 왔다. 학창시절 ‘모자라다’는 말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의 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의 지능을 가진 사람을 느린학습자라고 한다. 느린학습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에는 경계선 지능인으로 불렸다. 교육현장에서는 경계선 지적기능 아동이나 학습부진 (지진) 아동에 대한 학습방법 부재가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처럼 느린학습자가 여러 가지 용어로 혼용되고 있었던 것은 여러 측면에서 구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학습능력을 기준으로 정의하자면, 표준화 학력 검사 점수 40% 이하의 사람이다. 교육계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학습 지진(부진), 기초학습부진, 기본학습부진 등의 특징을 보이는 아동이라고 했다.
학습부진과 학습장애는 다르다. 학습부진은 평범한 지능을 가지고도 환경, 습관, 정서 등 외적 요인에 의해 학습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다. 반면 학습장애는 지능은 정상 범주이나 읽기, 쓰기, 수학과 같은 특정 영역에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를 말한다. 이 학습부진과 학습장애는 당연히 경계선 지능과는 구분된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Ⅳ에서는 표준화 기능검사 결과 IQ 71~84를 경계선 지적지능이라고 정의했지만, DSM-5에서는 이를 수치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외국에서는 지능지수 76-89를 ‘Slow learner’라고 하며 분리 배치가 필요한 느린학습자와 일반학급에서 통합수업이 가능한 아동 두 유형으로 구분했다(Chauhan). 경계선 지적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은 지능지수(IQ)가 70~85 사이에 적응 능력 일부에 손상이 있으나 그 정도가 지적장애 수준만큼 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교육부(2020)는 정의한다.
2015년 느린학습자 지원법 발의(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제24조의 2)로 이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마련됐다.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느린학습자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대상 아동의 발굴 및 프로그램 구축 등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는 기틀이 마련됐다.
2021년 서울 구로구, 경기도 고양시, 2022년 부산광역시 연제구, 충남 홍성군, 경기도 오산시, 서울 성북구, 서울 양천구, 2023년 인천광역시 남동구, 경기도 하남시, 서울시 금천구 등에서 느린학습자들을 지원하는 조례를 각각 제정했다.
김세원 대전과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재 느린학습자들에 대한 지원은 읽기, 쓰기 등의 학습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느린학습자들이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인지기능 증진 못지않게 정서적 개입과 사회적응력 향상이 중요하다. 이들 요인은 성인이 되어 취업이나 고용유지 등 사회적응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앞에는 느린학습자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놓여있다. 나이가 들면서 혹은 장애를 갖게 되면 누구나 느린 학습자가 될 수 있다. 새 집에 들어가거나 자동차를 새로 구입했을 때, 새로운 장치나 방법을 습득하는데 애를 먹는다.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주변에는 여러 분야에서 느린학습자들이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해왔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속도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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