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라의 미켈란젤로, 양지는 누구인가?~

[이재선]

통일 신라 시대의 기념비적인 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

거대한 절의 규모만큼이나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끌어온 것은
섬세하고 역동적인 녹유(綠釉)소조상이었다.

지금까지는 조각편들로만 전해졌었던 녹유소조상편(片),
최근 진행된 발굴을 통해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13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조각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1.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

                      양지의 녹유소조상을 만나다!~

파편으로 발견된 섬세한 조각상.

흩어진 조각상의 퍼즐을 맞추고 섬세하고 절제된 통일 신라의 예술을 만난다!

"여러분께선 이탈리아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연 천재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죠.

그렇다면 신라의 조각가 양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낯선 이름이겠지요.

여기 신라의 조각가 양지가 흙으로 빚은 조각입니다.

자세히 보면 표정이며 손톱, 발톱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생하고 뛰어난 작품은 일찌기 없었던 듯 싶은데요,

이 천재 예술가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 작업으로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요.

먼저 그 발굴 현장인 사천왕사지로 가 보겠습니다."

경주 낭산의 남쪽 자락.

통일 신라의 주요 사찰인 사천왕사의 발굴이 한참이다.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진 사천왕사는 2006년부터 시작된 발굴로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천왕사 발굴의 큰 관심은 일찌기 본 적이 없었던 뛰어난 조각품에서 비롯되었다. 

흙으로 빚어 유약을 바른 녹유소조상.

조각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7세기 후반의 작품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다.

기록에 따르면 이 조각가는 신라의 예술가 양지,

신라의 고대 예술품 중 작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7세기 후반 679년에 그렇게 사실적이고 잘 만든 조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전과 완전히 구별되는 그야말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영애 교수, 경주대 문화재학부

사천왕사지는 일제 시대 철도를 놓기 위해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각의 파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 속에 담겨진 생생한 표현과 세련된 신체의 표현은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통일 신라 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예술 세계가 보이는데

그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에요.

우리나라 조각사 중에서 고도의 차원을 보여주는 걸작품입니다."

                                                                                 - 강우방,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장

지금까지는 파편들만 발견되어 조각상의 원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배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발굴로 조각상들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원래 위치에 있었던 조각상들의 파편이 다수 발견된 것이다.

1,300여 년이 지나 드러났지만 여전히 섬세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번 발굴을 통해서 녹유소조상(綠釉塑造像)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그 위치가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녹유소조상은 탑의 기단 하부에 벽전을 대신하는 형태로 나타났었다는 것이

현재 조사 발굴 결과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 지병목 소장,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세월의 무게로 상반신이 부서진 소조상들.

이들은 모두 탑의 하부 기단의 벽에 장식되어 있었다.

"계단의 양쪽으로 녹유소조상들이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문양전이 층을 이루어 쌓이고, 그 옆에 녹유소조상이 들어가고, 다시 문양전이 쌓여있습니다."

                                                                                                                - 지병목 소장

녹유소조상들은 넝쿨 무늬의 화려한 문양과 함께 양쪽을 합해 여섯 개, 한면에 세 개씩 배치되었다.

한 탑의 둘레에 조각상이 무려 스물 네 개 조각되어 있는 형태다.

"지금까지는 탑 기단부에 이렇게 많은 수의 조각이 나온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숫자로 놀랄만한 일이었죠.

한 면에 6개씩, 한 탑에 24개, 두 탑에 48개라는 숫자는 정말 놀랄만하죠.

여태까지는 많아봐야 보통 탑 기단부에 12지상을 두니까, 탑 기단부에 많아봐야 12구였거든요.

이 경우는 한 탑에 24구니까 굉장히 많은 숫자죠."

                                                                                                  - 임영애 교수, 경주대 문화재학부 

그렇다면 녹유소조상의 종류는 모두 몇가지 종류일까?

지금까지는 주로 하반신만 발굴돼 녹유상의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었다.

기존의 발굴된 유물로는 두가지 이상의 모양이 있었음을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새롭게 추가한 편을 통해서 과연 소조상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까? 

실제 맞춰보기 앞서 기존의 발굴된 편들과 새롭게 발굴된 편 중 2백여 점을 3차원으로 스캔 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가상의 공간에서 조각품을 맞춰봤다.

"개별 부재들을 3차원 레이저 스캔 하고

그 스캔된 것을 같은 평면에 배치 시켜서 하나의 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가장 중요했던 부분들은

부조물의 형상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를 복원시키기 위한 기준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 최원호, 다인디지컬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잡은 결과 녹유상은 모두 세가지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종류당 16개씩, 모두 48개의 소조상이 있었던 것이다.

국립 경주 박물관.

그렇다면 실제 파편으로도 원래 모습을 맞춰볼 수 있을까?

여러 박물관에 분산되어 있었던 기존 편들과 새롭게 발굴한 편들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았다.

같은 얼굴과 손들이 여러 편 있기 때문에 상을 복원하는 것은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더디게 진행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편들과 최근 발굴한 편들이 빈틈없이 맞아들어갔다.

"주로 국립 중앙 박물관과 국립 경주 박물관에 있던 녹유소조상(綠釉塑造像)들은 주로 하반신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발굴에서 나온 상반신을 합치게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그리고 그동안 미지에 가려졌던 상들이 거의 완벽하게 복원 되었습니다."  

                                                                                                    - 진정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특히 새롭게 발굴된 조각들로 이루어진 세번째 상이 처음으로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사천왕사 녹유소조상에 대해서는 동서남북을 방위하는 사천왕의 네가지 모습인지,

아니면 기록에 남아있는 팔부신중의 여덟가지 모양인지 오랫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었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깨고 세가지 모양이란 것이 실제로 확인됐다. 

최근 발굴로부터 90년만에 복원된 조각상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지금 전시중인 것 중 하나는 1910년대 발견이 돼서

실로 90여 년만에 새로 발굴된 전(塼)과 합치되는 점이 특이할만 합니다."

                                                                                     - 이영훈 관장, 국립경주박물관 

시간과 공간을 너머 완벽하게 맞춰진 퍼즐. 

신라의 천재 조각가 양지의 녹유소조상이 실로 1,300여 년만에 다시 세상 앞에 드러났다. 

2. 천재 예술가의 뛰어난 기술(거푸집 기법)과

                     당을 물리치고자 하는 '호국'의 염원을 담아!~

 "삼국유사에는

'양지가 천왕사 아래에 팔부신중상을 만들었다(天王寺塔下八部神將)'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천왕사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사천왕의 네가지 모습일지,

아니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팔부신중의 여덟가지 모습일지 그동안 논란이 많았는데,

발굴 결과는 기존의 학계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양지의 녹유소조상은 천왕이 오른쪽을 바라보며 왼손에 칼을 거머쥐고 있는 첫번째 상과

정면을 바라보고 칼과 화살을 거머쥐고 있는 두번째 상,

그리고 왼쪽을 바라보며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는 세번째 상,

이렇게 세가지 모습이었습니다. 

 

                     ▲ 이번에 공개된 녹유소조상 중 A상(좌), B상(우)

                        ▲ 녹유소조상 중 C상과 아래 부분의 악귀상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한 탑에 24개의 소조상이 조각되어 있으니 두 탑에 모두 48개인데 이것은 대단히 많은 숫자입니다.

과연 양지는 이렇게 많은 소조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만들었을까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녹유소조상.

통일 신라 사천왕사의 두 탑에는 이렇게 세가지 모습의 소조상들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며 기단을 장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탑에 24개씩, 두 탑 모두를 장식한 48개의 조각상.

갑옷을 입은 제왕이 악귀들을 물리치는 장면이 생동감 넘치게 재현되어 있다.

양지는 이렇게 섬세한 소조상들을 한 모양에 무려 16개씩이나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이렇게 사실적인 조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기법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거푸집을 미리 만들어서 흙을 반죽해서 꾹꾹 눌러내면 어떤 조각보다도 탄력감 있는 표면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 독특한 거푸집으로 떠내는 기법이 생동감 있는 조각을 만드는 기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임영애 교수

 양지의 작품에는 세밀함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입체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거푸집 기법으로 양지는 얼굴의 입체감을 어떻게 나타냈을까?

 "제가 직접 머리 부분부터 조각해보니

녹유소조상은 고부조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얼굴방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굴에서 고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각도가 바로 이 각도입니다." 

                                                                                            - 이종수 조각가

흙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이러한 생동감이 가능한 것일까?

   <녹유소조상 제작 과정 재현하는 과정 진흙 대신 거푸집에 석고를 부었다.>

발굴된 녹유소조상을 바탕으로 해서 실리콘으로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석고를 부어 문화재 복원에 참고할 석고상을 만들기로 했다.

진흙보다 빨리 마르는 석고를 사용하면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효과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틀에서 빠져나온 석고 복제상이다.

발굴 현장에서 나온 소조상과 비교해보면 석고상은 날카로운 입체감이 떨어져 보인다.

진흙 반죽이 거푸집에서 빠져나와 형상이 만들어진 지 1,300여 년!

어떻게 오늘날까지 그 선명함이 남을 수 있을까?

" 제가 보기에는 처음 틀을 만들 때는 찍힌 상이 잘 빠지게 조각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틀에서 흙을 빼낸 다음에는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 다시 흙을 깎아 낸 거예요.

이런 작업은 많은 경험이 없으면 힘듭니다.

이게 요즘 말로 하면 처음부터 설계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그런 형태로 되어있어요."

                                                                                                   - 이종수 조각가

국립 경주 문화재 연구소.

발굴된 소조상은 정리 및 보존 과정을 거친다.

붓으로 흙을 털자 녹색이 흐릿하게 나타난다.

양지의 녹유소조상은 곳곳에 녹색의 유약 흔적이 나타난다.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출토된 부연화.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꽃모양의 전돌에도 녹색의 유약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가마의 앞뒤를 막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열기를 투입했던 파편들이 녹유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거든요.

만일 가마를 막지 않고 구웠다면 뻘겋게 됐을 겁니다 산화가 되니까."

                                                                                     - 유효웅, 도자기 명장 

조각승 양지가 당대 최고의 기술로 깊은 정성을 들여 사천왕사 녹유소조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7세기 중반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수많은 전쟁을 통해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사천왕사는 당나라 세력마저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선덕여왕이 신성시 여겨 스스로 묻히기를 바랐다는 경주 낭산.

사천왕사는 그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나의 금당과 두 기의 탑, 이른바 1금당 2탑을 갖춘 최초의 사찰이다.

통일 시대를 여는 기념비적인 사찰인만큼

사천왕사에는 그 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주춧돌 밑은 다른 곳보다 견고하게 다듬어져 있고

사찰의 중심이 되는 금당지 주변에는 연꽃 모양이 섬세하게 조각된 전돌이 장식되어 있다.

정성을 들여 지은 새로운 사천왕사의 모습을 가름해볼 수 있다.

탑의 기단은 흙과 돌을 반복적으로 쌓아서 거대한 탑을 든든히 받치게 만들었다.

통일 초기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는 당나라 군대는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신라 왕실은 이곳에 사천왕사를 조성하고 국가의 안위를 빌었다.

그 중심 탑에 있었던 조각상은 어떤 의미일까?

"녹유상에 있는 것이 신장(神將)이든 사천왕이든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사천왕사 녹유전 도상은 사천왕사 설립의 목적이던 호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깊다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 임남수 교수, 영남대 미술학부

그렇다면 악귀를 쫓는 형상을 무려 마흔 여덟 개나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기단에 그렇게 많은 조각을 붙였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역시 사천왕사라는 호국 사찰에서 기단에 그렇게 많은 조각을 배치함으로써

호국의 역할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임영애 교수

1,300여 년만에 우리 앞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양지의 녹유소조상.

그것은 천재 예술가의 뛰어난 기술과 삼국 통일이라는 시대 정신(호국 정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3.  “기예에 통달한 신묘한 스님” 
                        삼국유사 속의 양지(良志)는 누구인가?

"사천왕사는 문무왕이 통일 시대를 열면서 기념비적으로 만든 통일 신라의 중요한 사찰이었습니다. 

이런 이곳에 조각을 한 양지는 분명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을 겁니다.

<삼국유사>에는 '양지사석(良志使錫)'이란 말이 전합니다.

양지사석이란 '양지가 지팡이를 부린다'는 뜻인데요,

승려인 양지가 지팡이 끝에 포대를 걸어두면

지팡이가 스스로 날아가서 시주를 해온다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전합니다.

조상과 고향을 알 수 없고, 단지 선덕여왕 때 나타났다는 양지 .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알려질 수 있었을까요?"

▲ 석장사터에 남아있는 건축의 흔적과 석장사에서 출토된 조각틀 유물

양지가 지팡이로 요술을 부리며 살았었다는 경주 석장동 석장사터.

<삼국유사>는 양지가 '기예에 능하며 신묘함이 비할 데 없었다'고 전하지만, 지금 그의 자취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인적이 드물고 수풀이 무성한 이곳엔 간간히 발견되는 석재들만이 과거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석장사의 위치는 '석장(錫杖)'이라고 씌여진 조선 시대 묵서 자기가 발견되면서 확인됐다.

"양지 스님이 석장사에 계시면서 '석장사 탑에 3천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86년과 92년 두 차례에 걸쳐서 발굴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건물의 유구, 규모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양지 스님이 제작했다고 보여지는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 김길웅 교수, 동국대 미술사학과 92년 석장사지 발굴

석장사에서 출토된 소조틀.

흙으로 만든 이 틀에 진흙 반죽을 넣은 후 빼내면 생생한 발의 모양이 찍혀 나온다.

기와를 만든 양지의 제작 기법을 알 수 있다.

석장사지 발굴로 탑과 불상이 새겨진 전돌이 다량으로 수습되었다.

6센치 높이의 '탑상문전(塔像紋塼)'엔 세련된 모양의 탑과 불상이 번갈아 가면서 새겨져 있다.

'탑상문전'은 전탑(벽돌탑)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3천 불상을 만들어 탑에 모셨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 한다.

"당시 불교 사상을 잘 이해해서,

그것을 자기 절 탑상문전에다가 대승불교의 요체 사상을 나타냈다는 것은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라 예술가를 넘어선 성자적인 모습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양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작품엔 서역적인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

탑상문전에서 가슴에 갈비뼈가 새겨진 불상이 발견됐다.

부처상이라고 하면 있어야 할 연화좌가 없는 고행상이다.

앉은 자리에 연꽃이 없는 모습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석가의 모습이다.

"고행상은 석가가 6년 동안 고행을 겪고 난 이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 고행상입니다.

고행상은 인도에서는 간혹 보고 되지만 중국에서도 그 수량이 많지 않고

우리나라의 유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 한정호, 동국대 박물관 전임연구원

불경이 새겨진 '연기법송명 탑상문전'.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것은 인도에서 유명하던 것이다.

부처와 탑을 각각 열 개씩 새겨놓은 전돌엔

탑과 탑 사이에 희미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성, 소멸한다'는 연기법전은

전탑 안에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존재는 연으로부터 일어난다.

여래께서는 이 인연을 설하시노라.

그 모든 존재의 인연의 소멸에 관한 것도 대사문의 말씀이로다"

"이러한 예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석장사의 유물은 인도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양지 법사가 활약했던 선덕여왕부터 문무왕대 사이

신라 왕실 또는 사찰을 살펴보면 인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따라서 석장사 유물에서 보이는 인도적인 요소들은

신라가 적극적으로 인도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임남수 교수

신라승 양지가 어떻게 서역의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양지의 시기 신라의 국토는 확장되고 있었다.

합일치 시키는 국가 이념이 필요했고, 이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스스로를 불국토라 여기며 인도와 동일시 했던 신라.

그 시대 양지는 서역의 문화를 이해했던 예술가였을 것이다.

경주 인근의 감은사.

이 사찰 역시 문무왕의 호국 의지가 깃들여 있다.

  

           ▲ 양지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감은사지 사리함

이 절 3층 석탑 속에서 발견된 사리함은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표현이 섬세하고 치밀해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사리함의 네 면엔 동서남북을 방위하는 사천왕이 새겨져 있다.

굳은 표정의 수염난 얼굴은 서역인의 용모다.

사천왕이 입고 있는 갑옷 역시 기원은 서역에 두고 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출토된 신강 천왕상과

통일 신라 감은사 사리함 사천왕상은 유사점이 많다. 

"악귀를 밟고 있는 것도 똑같고, 당나라 갑옷의 형태도 똑같고,

그래서 4년 전에 만들어진 당나라 조각과 흡사하거든요 도상도 그렇고 양식도 그렇고.

아마 당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의 유입을 양지 스님이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사천왕사지 소조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 임영애 교수 

흙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했던 양지.

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천왕상과 신장상을 만들었다.

아직 그의 신분과 탄생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시대의 흐름에 통찰해 자기화화 인물이었던 것이다.

4. 고구려, 백제 문화를 흡수!~

   개방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통일 신라!~

"지금 보시는 이것은 선덕여왕대의 것으로 추정이 되는 삼화령 삼존입니다.

7세기 신라의 대표적 불상이지요.

머리는 다소 크게,  몸은 둥글고 작게 만들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지는 같은 시대 인물이었는데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양지의 작품을 보면 인체의 표현이 매우 정교하구요, 

옷과 장신구의 표현도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양지의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은 나중에 통일 신라의 예술의 초석이 되어 석굴암 본존불까지도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7세기 후반 양지는 어떻게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양지의 녹유소조상은

인도에서 시작돼 당나라를 통해 전해진 사실적인 표현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사실적인 양식은 당에서도 7세기 중반에 시작하는데

거의 같은 시기 신라의 양지는 이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마카라라는 존재가 있거든요.

마카라는 인도에서 성립된 상상의 동물인데 중국의 용의존재와 대응 됩니다.

그래서 사천왕사 녹유소조상 위, 아래를 보면

위에서는 용의 입에서 기둥이 나오고

아래에서는 마카라 입에서 나와 틀이 형성 되거든요.

그런 틀이라는 공간 안에서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런 것은 우리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강우방,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장

표현된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 졸병이 짓고 있는 표현이 기괴하면서도 웃음기가 가득한,

한국 사람들이 즐겨 만들던 해학미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정교하고 세련되고 사실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신라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은 신라가 매우 개방적인 나라였음을 보여준다.

그 교류의 폭은 서아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신장 위구르에 위치한 후차.

고구려 장군 고선지가 활약했던 지역이다.

이곳에서 유행한 악기는

인도에서 유래되어 동쪽으로 고구려까지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작은 장구 모양의 악기인 요고.

이는 서역과 고구려가 공유한 악기로 일본까지 전해진다.

그런데 서역에서부터 유래된 이런 악기들이 감은사 사리내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라가 가지고 있던 개방성은 삼국 통일을 이루면서 더욱 증폭된다.

고구려와 백제 문화까지 융합하게 된 것이다.

5세기에 조성된 고구려의 장천1호분.

이 무덤엔 당시 생활상을 생생히 그려낸 벽화가 있다.

이 벽화엔 코가 다소 크게 그려진 서역인이 다수 등장한다.

서역에서부터 전래된 오현 비파의 모습도 눈에 띈다.

벽화는 고구려인과 서역인을 명확히 구분해 그려내고 있다.

놀이와 춤, 서커스와 같은 당시의 놀이 문화도 그려져 있는데 하늘 높이 공을 던져 올리고 있고,

바퀴와 같은 것을 공중에서 굴리는 묘기는 그 기원을 페르시아에 두고 있다.

▲ 고구려 장천1호분 벽화 중 서커스 장면
서역인들이 고구려에 직접 왔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같은 경우도 당나라 시기까지는 계속해서 서역으로부터 서커스 단원이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활동했다는 것이 중국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고구려까지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전덕재 교수, 경주대 교양과정학부

우즈베키스탄 아프로시아프 역사 박물관.

고구려는 당을 거치지 않고 직접 서역과 교류하기도 했다.

사마르칸트 채색 벽화는 왕을 만나기 위해 온 고구려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두 사람은 고구려의 대표들이죠.

이 사람들은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있고, 손에는 호랑이 가죽을 들고 있습니다.

이 호랑이 가죽은 선물로 가져온 것입니다." 

7세기 후반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공략하자

고구려는 멀리 사마르칸트까지 조우관을 쓴 사신을 파견할만큼

서역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른 문화적인 요소들,

서역의 문화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고구려에 들어왔지 않았을까 보입니다.

특히 고구려와 서역과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구려의 문화 속에 서역의 문화가 깊이 용해되고,

신라가 676년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고구려, 백제, 신라 문화를 융합해서

삼국을 통일한 후에 나름대로 우리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할 때

고구려 문화 속 서역의 문화가 신라에 전해져서

신라에서도 서역에 대한 이미지, 문화가 상당히 많이 포용 돼서 유행되지 않았나 보입니다."

                                                                                       - 전덕재 교수, 경주대 교양과정학부

서로 다른 문화를 발전시키던 삼국 시대.

통일은 그 모든 문화의 용광로를 이루었다.

국립 전주 박물관엔 최근 익산 제석사지 폐기장에서 출토된 소조악귀상이 전시 중이다.

튀어나온 눈의 이 악귀상은 사천왕사지 녹유소조상과 많이 닮아있다.

          ▲ 백제의 제석사지 출토 유물 중 소조 악귀상

"제석사지는 기록에 의하면 639년에 화재가 났습니다.

이 화재가 난 후에 폐기물을 버린 곳이 폐기장이고, 거기서 악귀상이 나왔기 때문에

이 악귀상은 639년 이전,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봅니다."

                                                                       - 김선기, 원광대 박물관 학예연구사

백제 지역에서는 소조악귀상 뿐만 아니라 신라보다 앞선 녹유물도 다수 출토되어

백제의 기술이 신라로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통일의 업적을 이룩하며 새로운 건축을 조성했던 문무왕 시대.

멸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기술자가 신라로 급속히 흡수돼 새로운 예술로 승화되었을 것이다.

"건축이나 회화 이런 것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새로운 예술이 반드시 꽃 핍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을 예술 작품으로 열어 보이는 것이죠 시각적으로."

                                                                                                           - 강우방 원장

양지가 만들어내 통일 신라의 혁신적인 예술 세계.

그것은 한 천재 조각가에 의해 삼국 통일이라는 시대가 이루어지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오다. 오다.

오다. 슬픔 많아라.

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

공덕 닦으러 오다." 

"전쟁에서 숨진 넋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영묘사에서

양지가 흙으로 불상을 빚을 때 많은 신라 사람들이 스스로 흙을 나르며 불렀다는 향가입니다.

양지 스님이 당대 모든 사람들이 따랐던 큰 어른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삼국 통일기 많은 사람들은 지속된 전쟁의 혼란으로 큰 어려움 속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상과 고향을 알 수 없었던 양지가 위대한 조각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천재 예술가 양지가 변화기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국적인 예술 세계를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지쳐 평화를 갈구하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 한상권의 역사추적을 보고 (늘 편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