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좋아하는 신부의 동티모르 선교 이야기
이형우 루카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8월의 폭염이 드디어 조금씩 괜찮아질 무렵 한 달간의 한국 여정을 마치고 다시 동티모르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동티모르로 가기 위해 경유지인 발리에서 함께 식사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물어봤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였고 끝내 아이들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저 아이들이 돌아가기 아주 아쉽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한 달의 여정 동안 아이들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신기해하며 빛나는 서울의 야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올리브영에서 샘플을 통해 공짜로(?) 예뻐질 수 있는 것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폭염경보에도 꼭 입겠다며 예쁜 한복을 입고 경복궁의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틱톡에서만 접하던 별마당 도서관을 보고 펄쩍 뛰며 좋아했고 롯데월드에서 한국 교복을 입으며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들과 똑같이 깔깔대며 놀이 기구를 탔고, 처음 맛보는 한국 음식에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분명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은 눈부신 도시의 풍경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안동과 수원의 신자 분들 댁에서 머물렀던 아주 짧았던 홈스테이의 시간과 일정을 동반해 준 신부님들과, 수녀님 그리고 많은 신자 분들의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안동교구 점촌동 성당 신자분들과 수원교구 상현동 신자분들과 헤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차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창문에 얼굴을 댄 채 진짜 가족과 헤어지는 아이들처럼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느새 이들이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던 것입니다.
어색하게 마주 앉았던 첫날의 밥상, 말은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던 서툰 시간들, 그리고 야식으로 함께 치킨을 먹으며 춤과 노래를 부르며 서먹함의 경계가 허물어지던 따스한 밤들. 신자분들은 아이들을 그저 손님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먼 길을 온 당신들의 손주이자 자녀로 온 마음을 다해 품어주셨습니다. 동티모르에서 아이들이 한 끼 정도 밖에 못먹어서 적은 식사량에 한 입이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과 샤워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머리도 감겨주시고 한 번도 미용실을 가보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도 해주고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 어떤 언어로도 번역할 수 없는 따뜻한 사랑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문화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가르치려 했지만, 신자분들은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 주셨습니다. 지식이나 문화만을 전달하려 했던 저의 딱딱한 ‘문화 체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화 피정’이 되어 진정한 문화와 정서의 교류는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우리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직접 당신들이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