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명소 순례여행
(부여-김제-전주 하이라이트)
연은 더러운 개흙에서 수려하고 고결(高潔)한 꽃을 피웁니다. 군자(君子)의 꽃이자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꽃입니다. 처한 곳이 더러워도 항상 깨끗하게 살아라 이릅니다. 연꽃은 한여름을 화사하게 수놓는 꽃입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고한 자태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듭니다.
연꽃을 보면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 운(芸)이 생각납니다. 19세기 초 청나라 심복(沈復)은 동갑 아내 운과 23년을 살다 병으로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그가 쓴 '부생육기(浮生六記)' 중 절반이 사부곡(思婦曲)입니다. 운은 문장을 잘 짓고 자수와 바느질에 뛰어났으며 살림도 알뜰했습니다. 차를 주머니에 싸 저녁 연꽃이 오므라들기 전 화심(花心)에 놓아뒀습니다. 이튿날 꽃잎이 벌어질 무렵 꺼내 남편에게 끓여줬습니다. 은은한 연꽃 향과 아내의 진한 사랑 밴 화심차가 얼마나 향기로웠을까요.
연꽃은 대개 6월에서 8월까지 피고지기를 계속하는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연꽃은 홍련입니다. 간간이 백련이나 가시연꽃이 눈에 띈다면 향수의 바다위에 핀 한 송이 큰 연꽃이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7-8월 한여름,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전국 곳곳에 펼쳐집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연꽃 명소들을 찾아 떠나 봅니다.
부여 궁남지(宮南池) 서동연꽃축제
서동요로 잘 알려진 부여 궁남지는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인공연못입니다. <삼국사기> 무왕 35년(634)조에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왕 39년 조에는 “봄 3월에 왕과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고 하였습니다.
한편『삼국유사』기이 제2 무왕조에는 “무왕의 이름은 장(璋)으로, 그의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南池) 주변에 집을 짓고 살던 중, 그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고 아명(兒名)을 서동(薯童)이라 하였는데, 그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라고 하였습니다. 건축 당시 연못의 조경이 워낙 뛰어나 훗날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고, 통일신라 때는 이를 본떠 안압지도 조성했다고 전합니다.
지금의 연못은 1965년 본래 규모의 3분의 1 가량을 복원한 것으로 연못 한가운데 조그마한 섬이 있고 그 위에 용을 품었다는 포룡정이 있어 목조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연꽃이 주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도 간직한 궁남지는 매년 7월 서동연꽃축제 기간 동안 10만여 평의 연못 중에서 1만평 정도에 홍련, 백련, 수련, 가시연 등 10여 종의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릅니다. 아울러 연못 주변의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못에 그림자를 드리워 고즈넉한 분위기와 고풍미를 더합니다.
서동연꽃축제는 2015~2018 4년 연속 대한민국 문화관광 “우수 축제”로 선정되었습니다. 궁남지가 으뜸가는 연꽃 명소가 된 데엔 이계영이라는 말단 공무원이 있습니다. 문화재를 발굴하고 공사판처럼 버려진 습지에 그가 2001년 연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유월 빗속에 홍수련 300촉을 한 촉 한 촉 꽂았습니다. 궁남지에 살다시피 하며 매달린 끝에 2003년 첫 축제를 열었습니다.
정성이 통했던지 뜻밖에 반응이 좋았습니다. 10여년 꼬박 갖가지 연을 구해다 심어 최고 연꽃 축제를 일궈냈습니다. 쉰 가지 넘는 연꽃을 크고 작은 연못에 나눠 심고 둑길을 걸어 다니게 했습니다. 못 안으로도 두렁길을 내 코앞에서 꽃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쉴 곳도 세심하게 만들어 천만 송이 연밭을 다 돌도록 지루한 줄 모릅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세련되고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백제석탑이 목탑의 번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주고 있는 백제탑 형식 중 전형적인 석탑이자 석탑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석탑은 각부의 양식 수법이 특이하고 본격적인 석탑으로 정착하고 있는 전이적인 규범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 석탑의 계보를 정립시키는 데 귀중한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국보 제9호)
정림사지에는 5층석탑도 있지만 박물관도 있습니다. 이 탑은 아름다움 이면에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으로 참전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평제탑(平濟塔)’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수모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
푸른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청하산(靑蝦山) 기슭에 하얀 연꽃이 곱게 피어난 연밭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습니다. 새우 하(蝦) 자와 늪 소(沼) 자의 하소백련지(蝦沼白蓮池).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해진다는 청하포란형(靑蝦抱卵形)의 이곳 길지에서 해마다 7월이면 백련(白蓮)을 앞세운 축제가 열려 마음의 여유와 청정함을 되찾게 해줍니다. 2만여 평의 하소백련지는 연못들이 여러 개 연접하고 있는데, 다랭이논과 같이 위에서부터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른 곳에 있는 백련과는 달리 순수하게 청백색만을 나타내는 백련으로써 소문이 나 있습니다. 특히 백련은 청아한 자태뿐만 아니라 독성이 없고 향과 맛이 그윽합니다. 불교 태고종 사찰인 청운사의 주지 도원 스님이 1995년 충남 아산의 인취사에서 백련 여덟 뿌리를 가져와 지금의 연못자리에 심었습니다. 해마다 연밭 면적을 넓혀 가면서 연자반(연잎밥), 연칼국수, 연잎차, 백련떡갈비, 백련연자죽, 백련칼국수, 백련부침은 물론 백련수육, 백련동동주까지 연달아 개발해 축제 행사에서 별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선 말기 승려 보천이 계룡산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서광이 비치는 김제 일원을 찾다가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수도했습니다. 1927년 승려 월인이 초가집을 허물고 절을 중창했는데, 대웅전은 만경현 동헌을 옮겨와 만들었습니다. 중국 남송의 고승 보각국사가 40여 년간 설법을 모아 발간한 대해보각선사서가 유명합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연꽃 한 송이를 도원스님께 드리자 연못에서 백련들이 피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2만여 평에 연꽃이 피어나 장관을 이룹니다.
전주 덕진공원 연꽃축제
전주 8경 가운데 하나이며 연꽃 자생지인 덕진공원은 고려시대 때 자연적으로 형성됐으며, 전주를 대표하는 도시 호수공원입니다. 연꽃이 자생하는 규모는 무안 백련지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 연못 가운데로 놓인 아치형 현수교는 경관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명물입니다. 현수교를 중심으로 남쪽 3분의 2가 연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나머지 북쪽은 오리보트를 타는 공간입니다. 연꽃길을 걷다보면 100만여 송이의 연꽃이 4만3000㎡의 호수를 선홍빛 물결로 수놓아 장관을 이루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온 연꽃 향기는 코끝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다리를 건너면 호수 가운데에 ‘연화정’이란 정자가 섬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휴게매점이 있는 3층 건물의 정자에 올라서면 덕진공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도심공원답게 하루 4차례 음악분수도 가동됩니다. 공원 내에는 동물원, 수영장, 테니스코트 등 각종 위락시설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 이한 선생의 조경단과 취향전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석정 시비, 김해강 시비, 전봉준 장군상 등 9개의 석조기념물이 조성되어 있고 인공폭포와 목교를 설치하여 자연과 친화된 문화공간으로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