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12 우승팀 인터뷰 ②] 성남 U-15팀 유성우 감독, “덕장의 매력?”

[아부지]

성남 U-15팀의 유성우 감독 ⓒKFA 홍석균

사람들은 성남 U-15팀(풍생중)의 유성우 감독을 ‘왕중왕전의 사나이’라 말한다. 다른 대회에서는 줄곧 예선에서 탈락하더라도, 왕중왕전만 오면 파죽지세다. 유 감독은 지난 4번의 왕중왕전에서 3번이나 결승전에 올랐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정상을 차지했다.

성남 U-15팀은 지난달 10일 열린 ‘2012 대교눈높이 전국 중등리그’ 왕중왕전 결승에서 경기 백암중에 4-3 승리를 거뒀다. 전반전에 3골을 넣으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고, 상대의 추격전이 거세던 후반전에는 수비수 홍길동이 쐐기골을 넣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우승 직후 유성우 감독은 눈물을 훔치며 감격에 젖었다.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덕장의 미덕’을 경험했다.

성남 U-15팀 선수들은 득점 후 유성우 감독에게 안기며 기쁨을 즐겼다 ⓒKFA 홍석균

참을 수 없는 기쁨의 눈물

이번 결승전은 무엇보다 간절했다.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부모님께 간곡한 기도도 올렸다. 4번의 왕중왕전 중 3번의 결승전. 게다가 2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그에게는 ‘만년 코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잃는 것이 결승전의 두 얼굴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아빠가 한 달 사이에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결승전을 치르러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 한 번만 도와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도 하늘에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저에게 오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경기 끝나고 나서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죠.”

“풍생고(성남 U-18팀, 2008~2010) 감독을 하면서 준우승까지 했는데, 중학교로 내려가게 돼서 좌천된다는 생각에 화도 많이 났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응어리 진 것을 11월 10일 날 딱 풀어서 너무 좋았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남들은 한번이라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서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유 감독은 벌써 세 번이나 이 경기장에 섰다. 그러나 유 감독에게는 좋은 기억이 아니다.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2009년에는 당시 고교 최강이라 불리던 전남 U-18팀(광양제철고)과 맞붙었다. 당시 전남 U-18팀에는 지동원(선덜랜드), 이종호, 김영욱(이상 전남) 등 초고교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성남 U-18팀은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3으로 석패했다.

두 번째 결승전은 성남 U-15으로 자리를 옮긴 2011년이다. 이번에도 중등 최강자로 손꼽히던 포항 U-15팀(포철중)이 상대였다. 연장전까지 0-0 승부를 펼쳤지만 승부차기에서 1-3으로 패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2연패. 그에게 붙었던 ‘만년 코치’라는 꼬리표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우승을 확정한 직후 눈물을 흘리는 유성우 감독 ⓒ박성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주위에 좋은 팀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우리 선수들이 타 유소년 클럽에 비해서 아주 뛰어난 선수는 아니거든요. 결승전에 세 번이나 올라간 것은 정말 행운이었죠.”

“1998년도에 풍생고에 부임해서 2007년까지 코치를 하다가, 2008년부터 감독을 맡았습니다. 2년간 감독을 했는데 준우승만 했지 우승을 한번도 못했어요. 주위에서는 ‘너는 어쩔 수 없이 만년 코치구나, 감독으로서 극복을 못하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중학교로 내려가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많이 힘들었죠.”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감독이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바른 생각을 하고,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말을 많이 했죠. 전에는 하프타임이 되면 아이들에게 살벌하게 어필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는 마사지까지 해줄 정도니까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먼저 저를 따라오는 거죠. 저에게 올 수 있도록 손을 뻗으니까 아이들이 잡더라고요.”

경기 백암중을 4-3으로 누르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한을 풀던 날, 유성우 감독은 기쁨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성남 U-15팀과 백암중의 치열한 접전 ⓒKFA 홍석균

모래알 풍생중을 압박의 달인으로

결승전에서 맞붙은 백암중은 인연이 깊은 팀이다. 올 시즌 경기남부 권역에 함께 속한 탓에 두 번이나 맞대결을 펼쳤기 때문. 상대전적은 1승 1무로 성남 U-15팀이 앞서 있었다. 유성우 감독은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미디어데이를 하잖아요. 제가 세 번째 미디어데이를 하다 보니까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더라고요. 건방져 보이게…(웃음) 그런데 조(남의) 감독님(백암중)은 긴장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작년에 포철중 김동영 감독님과 미디어데이를 하면서 제가 그런 걸 느꼈거든요. ‘워낙 선수들이 좋으니까 동영이 형은 여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딘가 모르게 제가 밀리는 듯한 영감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여서 미디어데이 끝나고 교장 선생님께 ‘무조건 이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어요.(웃음)”

결승전의 경기력도 마음에 들었다. 경기 시작 10분만에 김민석이 첫 골을 넣더니, 김정연, 김성주가 연속골을 넣으며 3-0을 만들었다. 전반전 40분만에 사실상 승부가 끝난 듯 보였다.

“전반전은 100%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죠. 아이들이 그렇게 쉽게 할 줄 몰랐어요.(웃음)”

“백암중의 방예찬과 박한빈 선수가 파워가 좋더라고요. 힘이나 킥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측면 수비수들을 보니까 (이)승재와 (김)성주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측면을 이용하려고 했죠. 중앙 수비수 한 명을 사이드로 유인하는 전략으로 갔죠.”

“첫 골은 승재가, 세 번째 골은 성주가 사이드를 돌파해서 났어요. (홍)길동이가 골 넣은 것 외에는 원하는 대로 다 맞아 떨어졌죠.”

“두 번째 골도 (김)정연이가 원래 헤딩을 못해요. 결승전 들어가기 전에 코치가 ‘정연아, 오늘 분명히 한 골 올 거니까 한 골만 넣어줘’라고 말했어요. 그 녀석이 골을 넣는 순간 이길 줄 알았어요.(웃음)”

여유 있는 파넨카킥으로 상대를 농락한 김성주 ⓒ이상헌

유성우 감독은 성남 U-15팀의 2년 연속 결승행을 운이라 말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유 감독은 모래알 군단이던 성남 U-15팀에 압박 축구를 더해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는 수원 U-15팀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는 색깔이 없던 성남 U-15팀에 확실한 색깔을 부여했다.

“다들 초등학교 때 10번을 달고 온 애들이라 자존심이 강했어요. 올해 첫 경기를 하는데 어떤 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좋아하지를 않더라고요. 그때 ‘이 녀석들은 자기가 골을 넣어야 좋아하는 구나, 자기가 게임을 못 뛰어서 이기면 열 받는 것이고…’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도 짧은 패스를 상당히 원합니다. 그런데 강한 팀을 만나면 너무 움츠려 들어요. 매탄중(수원 U-15팀, 8강전)과의 경기는 정말 전략적으로 이긴 것 같아요.”

“매탄중 경기를 보면 상대 팀들이 모두 하프라인 밑에서 수비만 하는 거에요. 결국은 공 쫓아 다니다가 몇 골씩 먹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킥오프부터 앞에서부터 싸우자고 했는데, 결국 그게 매탄중 선수들과 주승진 감독의 생각을 완전히 붕괴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경기를 안 해봤기 때문에 우리가 나가서 압박을 하면 분명히 실수를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사실 저희가 분명한 색깔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무조건 압박으로 가자고 했어요. 우리 선수들도 분명히 기술이 있기 때문에 압박해서 볼만 뺏어내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상대가 중학생이니까 실수도 많이 할 거고요.”

유 감독은 우승의 주역들을 한 명씩 안아줬다 ⓒ이상헌

덕장의 매력

중등 최고의 팀들을 무너트린 성남 U-15팀의 압박. 그들은 그라운드의 어디에서도 쉴새 없이 압박을 가했다. 분명 우승의 키워드는 ‘압박’이다.

하지만 모래알 군단에 ‘압박’을 심어 놓기까지 유성우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제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가르친 것 같아요. 애들이 운동을 열심히 안 해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잘못을 해도 혼내지 않았어요. 그 전에는 정말 엄하게 혼냈거든요. 이번에는 마지막 대회니까 정감 있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노력을 했어요. 몸 풀기 전에 팔씨름도 하고, 아이들과 씨름도 하고, 최대한 칭찬도 했어요. 이전에 하지 않았던 스타일로 한 것 같아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 동안 선생님이 우리를 생각해서 혼내셨구나’라고 부모님께 말을 하더래요. 왜 혼냈는지 마음에 와 닿는다는 거에요.”

이번 왕중왕전에서도 유 감독은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좀처럼 벤치에서도 일어서지 않았다. 평소 일어서서 큰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 ‘덕장의 매력’을 정말 많이 느꼈습니다.”

두 번째 도전에서 결국 우승을 차지한 성남 U-15팀 ⓒKFA 홍석균

특별한 지도 방식의 도입도 신선하다.

“’도대체 저 운동을 왜 하는 걸까?’하는 훈련이었어요. 선수 둘이 서로 마주보고 공을 띄워서 떨어트리지 않게 주고 받으면서 운동장을 도는 거에요. 제가 아는 일본인 지도자를 통해서 처음으로 도입한 건데요. 처음에는 외국인 선생님이 가르쳐 주니까 아이들도 신기해서 따라 했는데, 선생님을 보내고 우리끼리 하니까 완전 장난이 되는 거에요.”

“그래도 계속 시키라고 해서 아침마다 시켰어요. 아마 다른 선생님들이 보면서 ‘지도가 형편 없구나’ 하셨을 거에요. 우승을 하고 나서 그 일본인 선생님에게 ‘왜 이걸 시켰냐’고 물으니 이게 기본기 훈련이 아니라 볼에 집중하는 훈련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지도력도 키워 나가는 거고요.”

유 감독은 이 일본인 지도자에게 덕을 많아 봤다고 말한다. 성남 U-15팀의 우승 키워드가 된 ‘압박’도 이런 집중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2013년은 유성우 감독의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되는 해다 ⓒ손춘근

내년부터가 진짜 나의 축구

경기장에서 윽박지르던 혈기 왕성한 젊은 감독. 10년간의 코치 생활, 그리고 5년 간의 감독 경험을 통해 유성우 감독은 지도자로서 서서히 농익는 과정에 있다.

“전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은 숙소에서 자요. 왜 코치일까지 감독이 하냐고 말을 하는데, 전 안 그렇거든요. 제가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여요. 코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몸에 베어서…(웃음)”

“선수 시절에는 수비수였어요. 선수로서는 내세울 것이 없지만, 운동을 그만 두더라도 절대 후회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남 모르게 땀 흘렸던 것들이 지금 운으로 돌아오지 않나 생각해요.”

“처음에 풍생중에 왔을 때는 다른 분들이 ‘너는 운동장에서 완전 와일드하고 선수들 때려부수는 스타일인데, 어떻게 가르치는 건 패스 잘하는 선수만 뽑아서 경기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지도자를 하면서 축구에 눈을 많이 뜬 것 같아요.”

“저는 공을 예쁘게 차는 애들을 정말 좋아해요. 제가 운동했던 스타일과 가르치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거죠.”

골이 터질때마다 한데 뭉쳐 환호한 성남 U-15팀 선수들 ⓒ이상헌

내년이면 성남 U-15팀을 맡은 지 3년째다. 지난 2년간 결승에 진출했으니, 내년에 거는 기대도 크다. 게다가 내년은 유 감독이 직접 선발한 선수들이 3학년에 올라선다. 유 감독이 기대하는 축구가 발현되는 시점인 셈이다.

“우승은 못해도 상위권에는 들어가야 되요. 풍생중을 상위팀으로 한 단계 발전시켜야 되는 해죠. 지금 2학년 애들은 제가 직접 뽑은 애들이라 걱정도 되고, 신경도 많이 쓰여요. 내년은 감독으로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해가 될 거에요.”

“올해도 작은 애들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더 작은 애들이 많아요. 올해는 (홍)길동이나 (김)정연이처럼 힘 있는 애들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없어요. 아이들이 연습 경기를 하면 ‘너희가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패스 밖에 없다’고 말을 해요. 주위에서 잘 찬다는 이야기는 듣는데 힘이 너무 없어요. 성적은 조금 욕심이 나지만 동계훈련에서 힘이 안 붙고, 신장이 커주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본격적인 ‘패싱 축구’의 토대를 마련한 유성우 감독. 그는 내심 3년 연속 왕중왕전 결승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년 코치’의 꼬리표를 뗀 그가 성남 U-15팀에 새로운 축구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초보 감독으로서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그의 2013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손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