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화) 서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서천읍성을 찾아가기로 약속하고서.
09시 44분 무궁화호 편으로
서대전역사는 새로 지어졌지만 역시 세월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나봅니다.
증기기관차 시절이 아닌 전기기관차에 KTX 같은 고속열차 같은 새로운 최신 기차와 철로 노선이 생기자
서대전역은 번화하기가 옛날만 못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2층 대합실에서 일행을 기다립니다.
전광판에는 09:44분 목포행 무궁화호로 안내되어 나타납니다.
익산에 가서 다시 갈아타야 합니다.
제시각에 도착한 열차를 타고 떠납니다.
지난 주에 왔던 계룡시도 지납니다. 지난 날 찍었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바깥거리>밖거리>팥거리> 한자 훈차로 두마(팥갈이:豆磨)가 지금은 계룡역으로 바뀐 곳임을 다시 떠올립니다.
지금은 군사도시가 되어버린 곳, 계룡산 정상을 먼 발치로 바라만 봅니다.
답사 시절의 추억이 감돕니다.
계룡시 양정고개를 지나고 개태사도 지나고, 연산도 지나자 일망무제로 확 펼쳐지는 들판, 그야말로 지평선입니다.
들판 저 멀리 낮은 야산이 이따금씩 보이는 곳, 붉은 점 표시는 모정(茅亭)으로 보이는 건물입니다.
수천년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마을회관의 오늘날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익산, 얼마전 까지도 이리라고 불렸던 곳, '이리갈까, 저리갈까', 이리와 전주를 빗대서 부르던 민요같은 말, 삼례역에서 서쪽으로 난 도시. 1977년에는 이리역 폭팔사고로 유명했던 곳, 그곳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기도 하였고.
그곳에서 장항선으로 이어 달리는 용산행 기차로 바꿔탑니다.
넓은 벌의 뜻을 가진 대야(大野)면을 지나서 군산에 다가갑니다.
오른쪽으로 산 꼭대기에 하얀 돔 건물이 보입니다. 무슨 군사기지인가? 기상관측시설이랍니다.
오성산 산 이름이 독특합니다. 별 다섯의 오성(五星)인가 했더니, 산지기가 아니랍니다.
다섯 성인(聖人)의 산이라고, 나 빼놓고 간 곳이니 난들 뒤늦게 알게 됩니다.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가 백제 침공시 사비 방향 길을 묻자 잘 일러주지 않았다가
목베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된 5섯 명의 거룩함을 기리는 산이름이랍니다.
또 하나 배웁니다. 백제인의 얼을.
군산역 구내에서 오성산을 자세히 봅니다.
봉우리가 다섯개인듯 싶습니다. 봉분처럼 보입니다.
군산역을 지나자 금강을 가로막은 하구언이 나타납니다.
하구언이 있기전에는 군산- 장항간을 배로 다니던 시절, 옛추억이 떠오릅니다....
더 먼 옛날 660년 사비부여가 소정방의 당나라, 신라연합군에게 멸망당하고,
끌려가던 의자왕과 일행들의 나라잃은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리니.
산유화 노래 곡조만 떠오릅니다. 떠나보내고 떠나가고... 눈물바다, ..
금강을 따라 전설과 슬픈 일화가 가득한 곳입니다.
지금은 철새 도래지로. 신성리갈대밭 관광지로...
성지기가 쓴 책 속에서 펼쳐지는 백제군과의 최후 결전도도 들여다 봅니다.
장항역에 다다르자 오른쪽으로 생태학습관 같은 곳이 보입니다.
최재천 교수가 관장이었던 곳 같기도 한데...
장항역도 지나고 드디어 서천역에 도착합니다.
12시 22분경, 쌀쌀했던 아침 날씨는 이제는 제법 누그러졌습니다.
예전 역사를 옮겨 새로 지은 서천역사를 빠져 나옵니다.
역사 입구 오른편에 서천군 관광안내도에서 금강 주변을 살핍니다.
역사 앞에는 택시들이 잔뜩하지만, 무심하게 우리는 그냥 걸어서 서천읍성으로 향합니다.
토박이인 성지기가 앞장을 서고,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
홍살문이 보이고 남향받이 향교 건물들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향시에 합격하면 생원, 진사가 되고,
한양에 가서 대과에 합격해야 비로소 금의환향하는 꿈을 키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과 33명, 무과 28명에 들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성문을 여닫는 것도 인정에 33번, 파루에 28번 치는 것과도 같은 숫자입니다.
서천 향교를 그냥 지나칩니다. 사진 몇 장 증명 사진으로 찍습니다.
향교 바로 위쪽으로 새로 세운 서천읍성 동문이 보입니다.
성문 모퉁이에 보이는 모서리 돌의 크기에 압도당합니다. 한산읍성에서도 그랬는데.
어찌 저런 큰 돌을 운반해서 성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사람 키보다 더 큰 성돌, 이 근처 산성의 성돌이 보통 다 이런 정도입니다.
예전의 우리 조상님들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한 두개도 아니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짚신 신고,,, 먹는 것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갑자기(전남) 화순 팽매 고인돌도 생각납니다..
어마무지한 고인돌,,, 보일 시 示자도.
성문 입구에 있는 서천읍성 안내도도 봅니다.
드론으로 찍었는지 항공사진으로 찍은 서천읍성 사진입니다.
그리스어 알파 글자 모양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남문이 있는 곳만 열려 있고,
성안에는 군청이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 지어서 나가버렸고, 뒤에 조금 보이는서천여중.고만 남았답니다.
얼마나 왜구들 위협이 심했으면 앞의 남산성에 있던 구읍을 이곳으로 옮겼을까?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군들의 저항, 특히 그 후 고려말, 조선초에 극심했던 왜구들의 등쌀에 황폐화 되었던 곳입니다.
드디어 서천읍성 동문에 다다릅니다.
지금은 이렇게 위엄있게 서있지만, 다시 복원해 놓은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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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되기 전의 동문 터를 찍은 사진을 찾아봅니다.
유승광 박사의 책에서 . 예전 서천문화원에서 받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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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6월 14일 서천읍성 답사시 사진 몇 장을 비교 차원에서 올립니다.)
동문지 입구입니다.
문지 옛성돌 왼쪽 3개는 현재와 그냥 똑 같네요.
동문지 돌쩌귀 받침돌 구멍이 보입니다. 돌확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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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문지 입구에 있던 읍성 안내판을 자세히 봅니다.
동문 누다락에 올라 성밖 모습을 멀리 바라봅니다. .
성지기는 저 건너가 길산 시장이 있는 곳이라고 가리킵니다. 배가 드나들던 곳.
시장도 서고. 30리 길을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다는 성지기의 옛날을 짐작이나 할까요..
성안 동네로 가는 길, 멀리 오른쪽으로 서천여자중고등학교 건물 한 켠이 보일락말락 합니다.
때마침 점심 시간에 산책나온 여학생들과 마주칩니다.
성지기가 손녀뻘 쯤되는 학생들에게 고향 역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기 보이는 곳이 남산성, 구읍성이라고 가리키면서...
이곳으로 읍성이 옮겨 오게 된 까닭도 말했겠지요.
우리 일행들은 그 사이 목도 축이고.. 성벽도 보고.
귀 기울여 듣는 학생들의 태도가 기특하고 대견해보입니다.
서천여자중고등학교 건물이 조금 더 잘 보입니다.
복원한 남벽에는 앞으로 툭 나온 치(雉)부분이 잘 보입니다.
우리나라 성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적을 공격하기 쉽게,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특징적인 성 모습입니다.
미치 독처럼 생겼다해서 얻어진 이름 옹성(甕城) 특히 수원 화성의 옹성이 유명하지요.
특강(?)이 끝난 성지기랑 함께 읍성 주변을 돌아봅니다.
읍성 남벽에서 바라본 구 군청 건물도 보입니다.
옛날에는 관아의 권세가 대단했을 터인데...
바로 앞으로 남문이 있고, 저자거리가 펼쳐집니다.
남문 가까이서 성밖으로 움푹 파인 도랑 모양의 지대가 나타납니다.
띠가 둘러쳐진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발굴지였던 것 같습니다
성밖의 해자(垓字)터 , 성지기는 황(隍)이라고, 물이 없으니 황(隍)이라고..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려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봅니다.
성벽, 치에서는 활로 쏘고, 치고 받고 목숨바쳐 싸우던 곳 ...
남문 밖 이제는 썰렁해진 옛 군청앞 시가지를 지나,
화재가 나서 새로 세운 서천 특화시장으로 찾아갑니다.
시장끼도 들고,
바닷가라서인지 해산물이 풍부합니다.
물메기탕으로 점심을 합니다. 박대구이도 나오고,
밴댕이 속 같다는 박대.
박대조림에 물메기탕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기차시간에 맞춰 역으로 걸어갑니다.
택시 대신 두 다리로 걷습니다
서천역사가 머지 않은 곳 로타리 중앙에 웬 동상 하나가 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이랍니다.
(로타리) 길을 건너 가까이 가서 뵙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 동상입니다.
옛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언듯 납니다. 얼마나 심지가 대쪽같았던지.
세수 할 때면 꼿꼿하게 서서 세수를 하셨다고, 두 소매 끝이 세숫물에 다 젖을지언정,
이유인즉슨 '대야 같은 하찮은 미물에 존귀한 내머리를 숙일 수는 없다' 하시면서..
참 대단한 결기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곳에서 뵙다니..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을 읽습니다.
동상 뒷면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서천역에서 연착한 기차를 타고 군산을 거쳐 익산으로 갑니다.
( 익산에 가서는 환승해야 한답니다.)
다시 금강 하구둑을 건넙니다. 기벌포가 이쯤 되리라고 짐작하면서.
다시 익산역에서 환승할 열차를 기다립니다.
무궁화호가 아닌 조금은 고급스런 열차인데 어쩐일인지 두 대가 서로 독킹한 다음에야 출발합니다.
기차여행의 색다른 장면을 봅니다.
- 두 대의 Itex 기차의 연결 모습에 원초적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
웃음속에 이렇게 하루는 저물어 갔습니다.
그렇게 금년도 마지막 답사 여행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새해 2025년에는 또 어떤 만남이 이어질지.
제법 어두워진 서대전역 대합실에서 제 갈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 집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대전) 보문산성의 해맞이를 기대해봅니다.
( 2024.12.30(월) 카페지기 자부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