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성지 순례/靑石 전성훈
칠칠치 못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계절은 가을이 깊어지는데 원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비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철없는 아이처럼 오늘도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린다. 비도 적당히 내려야 고맙고 반갑고 멋있고 운치 있게 느껴진다. 쓸데없이 너무 자주 쏟아지는 비는 정떨어져 지겹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묻어난다.
가을 빗속에 떠나는 성지 순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기리는 배론 성지를 찾는다. 배론 성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에 있는 천주교 성지다. 마을의 계곡 지형이 배 밑바닥을 닮은 모습이라 ‘배론(舟論)이라는 이름이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들어 신앙을 지켜온 산골 교우촌의 하나다. 배론 성지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 요셉 신학당 터, 최양업 신부 묘소 등이 있다. 이른바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역사에 알려진 황사영(알레시오)이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에서 지내며 백서를 작성한 곳이다. 백서(帛書)는 비단에 가느다란 붓으로 쓴 편지로, 신유박해(1801년) 과정, 순교자 이야기, 조선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방안 등을 북경 교구장에게 알리는 내용이 적혀있다. 요셉 신학당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학교로 1855년 프랑스 메스트로 신부가 설립, 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되었다가 2003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배론 성지, 최양업 신부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참배객의 마음을 아는지 빗소리도 조용하다. 철도 침목을 깔아놓은 가파른 언덕배기를 한참 올라가야 한다. 물이 흥건히 젖어서 침목이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최양업 신부를 떠올린다. 누군가 조상의 산소도 찾아가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묘소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농담을 건넨다. 너무 복잡하게 이런저런 의미를 두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묘소에는 이미 많은 신자가 모여서 기도를 드린다. 차례가 되어 우산을 쓴 채 묘소 앞에서 주모경을 바친다. 몇 년 전 5월 어느 화창한 봄날에 찾아왔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묘소에 계시는 신부님은 어디로 사목 활동을 나가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최양업 신부 묘소를 왜 다시 찾는지 생각한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인물이 그리워서는 아니다. 신앙의 선조 모습을 통하여 용기와 격려를 얻고 싶어서다.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묻고 문을 두드리고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생각이나 소망 또는 갈망으로 손쉽게 무엇을 찾고 얻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믿음과 구원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주님의 은총과 주님 방식대로, 주님의 말씀과 따사로운 손길이 나에게도 미치리라는 기다림과 믿음뿐이다. 그러한 때가 언제일지는 알 길이 없고 알 수도 없다. 그건 오로지 주님 당신의 몫이리라. 그렇다고 믿는 이의 노력과 소망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고 묵상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믿음을 통하여 주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족, 이웃, 친척, 친구 그리고 스쳐 지나는 사람과 나누는 말과 시선과 행동을 통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숲길을 걸으니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나 홀로 성지 순례 여정이 생각난다. 3월의 매서운 꽃샘추위를 뚫고 명동성당과 종로성당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중림동 약현성당,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 가회동성당을, 봄이 익어가는 5월에는 노고산 성지, 당고개 성지, 새남터 순교 성지를, 때 이른 여름에는 여럿이서 청양 산막골과 다락골 줄 무덤 성지를 찾으며 목숨을 바쳐 순교하신 분들의 발자취를 보고 가슴이 뭉클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배론 성지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며 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비가 내린 탓에 냇가에 흐르는 물도 많고 그 소리도 요란하다. 성당 안에는 많은 신자가 모여있다. 남녀노소 신자마다 드리는 기도의 지향하는 바는 다르더라도 궁극의 목표는 같으리라. (202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