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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과 열매 맺는 삶이 됩시다.(행17:16-34)
2026, 1/25 설교문 (24-34)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7:16-34절 말씀으로“그리스도 안에서 평등과 열매 맺는 삶이 됩시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우리나라 코스피가 5,000을 찍었다고 난리인데, 경제 신문 제목들은‘5000피 돌파 증시 호황에도 역성장한 이유’‘코스피 5000시대, 전무후무한 코스피 어디까지 갈까? 초고속 성장에도 쌓이는 경고신호’‘오천피 새 역사 열었지만 반도체 AI 빼면 신기루’상승에도 아랫목은 냉기’이런 제목들이 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주가 상승은 삼성과 하이닉스, 대만의 TSMC가 미국 엔비디아의 초대박 행진에 편승하면서 주가를 끌어 올렸습니다.
거기다 외국인과 일반인은 빠지고 기관과 연기금이 주가 상승을 끌어올려 그래서 불안합니다. 주가가 폭락하면 연금이 더 빠르게 고갈되겠지요.
또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돈이 주식과 부동산, 금이나 달러 등 실물자산으로 몰려드는데, 이 과정에서 주식과 부동산, 환율과 물가가 가파르게 오릅니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만약 돈 가치가 자고 나면 2배씩 떨어진다고 할 때 사람들은 돈이 휴지가 되니 부동산, 금, 달러나 주식 등을 살 겁니다. 거기에 정부까지 주가 상승을 부채질하니 지금의 주가 상승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지금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대고, 경제성장도 –0.3%’를 기록했으며, 기업의 시설 투자도 –2.8% 하락했고, 환율과 물가상승도 심각하고, 건설 등 밑바닥 경제도 심각해 대기업도 인원을 안 뽑고, 법인카드사용까지 제한하는 상황에서 코스피의 급상승은 맞지 않습니다. 거기다 우리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이탈하려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인류 심판에 대한 근거요 기준입니다.(30-31절)
둘째로,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혈통적 우월성은 없습니다.(26절)
셋째로,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이 기뻐하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32-34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과 열매 맺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인류 심판에 대한 근거요 기준입니다.(30-31절)
본문 30-3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아멘.
사도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멀리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몰려와 방해하고 소동을 일으키자 그곳의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아덴으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인이 산다는 아덴에 우상들이 가득하고, 허탄한 것들을 믿는 광경을 보면서 아덴의 공의회인‘아레오바고’광장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말들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칭 지성인이라는 교만함과 우월감이 충만한 아덴 사람들에게 우상숭배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30절에서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이 몰라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겨도 그냥 넘어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간과하셨다."는 원어적 의미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죄를 눈감아줬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죄를 괘씸하게 생각하지만 자비로운 마음으로 저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고 참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전도자를 통해 들은 후부터는 그 누구라도 회개치 않으면 심판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덴 사람들이 잡신과 우상들을 찾고 섬겼어도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라 간과하셨지만, 지금은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것이죠.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행위를 버리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걸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와 기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와,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당신이 만든 만물 속에 심어두셨습니다(롬1:20).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후부터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살아계심과 뜻과 계획까지 확실하게 알려주셨고, 또 어떻게 구원을 얻을 것인지 그 구원의 길까지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죽음 후에는 부활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우리가 이 땅을 떠나면 영원한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과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복락을 누릴 것도 선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제 때가 되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인데 그것을 우리는‘재림’이라 부릅니다.
이 재림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은 형제들의 몸이 주님처럼 부활하고, 재림 때까지 살아 있던 형제들의 몸은 하늘로 들림 받는 휴거가 일어나게 됩니다.
동시에 이 땅에는 구원받지 못한 인생들의 참혹한 아비규환의 상황들이 벌어질 것인데,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고 하늘로 들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아시고 마음에 용기와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생들은 결단해야 합니다.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누구나 구원받지만, 전도자를 통해 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자들은 당연히 제 갈길로 갈 것입니다. 문제는 복음을 받고도 자기의 생각과 감정으로 하나님을 선택적으로 믿는 자들인데, 이들은 하나님과 계산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 심판의 근거요, 또한 기준이 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 3:16-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로 복음의 핵심이 옮겨간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지금의 삶과 내세의 삶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우리가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간다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감사와 은혜를 붙들고, 그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혈통적 우월성은 없습니다.(26절)
본문 2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아멘.
사도바울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다가 하나님이 하신 일로 넘어갔는데,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한 혈통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이어져 왔고,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을 한 이유가 당시 아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티카(Attic)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바울은 이런 저들을 의식해서 일부러 이 말씀을 선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덴인들은 이 세상 어떤 민족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민족적 우월감이 대단했는데, 이런 우월주의는 유대인들이 더 심각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선민이라 생각해 사람들이 교만이 화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방인들은 지옥의 불소시개 감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만큼 이들의 교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10년 전에 성지순례 갔을 때 머리에 키파를 쓴 유대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층 버튼을 누르지 않아 가이드가 대신 눌러줬습니다. 안식일이라 우리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으니 할례받지 못한 너희들이 누르라는 것입니다.
참 교만한 자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이런 걸 원하실까요?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신 것은 인류 구속사에서 그들을 사용하신 것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유대인들도 함께 들으라고 모든 인류는 한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한 형제라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민족적 우월주의는 비단 아덴이나 유대인만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때 무려 1,100만이란 어마어마한 사람을 죽인 독일의‘게르만민족 우월주의’도 한 몫 했고,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우월주의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없을까요? 우리도 있습니다. 백인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반말부터 하는 사람들도 잠재된 우월주의가 표출된 것입니다.
또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 때 아파트 평수를 고려해 사귀는 것과,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무시하고 홀대하는 것도 우월의식이고, 정치인들의 갑질도 같은 것입니다. 민족적 우월의식이든, 갑질이든 다 같은 우월주의인데, 이런 것은 타락하고 악한 자의 본성으로 그 교만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교만과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시는데,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월의식을 갖고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겠습니까?
만약 신앙인이 그런다면 구원받은 유무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혈통적으로 인종적으로 민족 간에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아담이 지음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고,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라 다 동등하고 평등합니다. 그 누구도 우월의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그 어떤 이유든 사람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역할과 직무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 사장, 부장, 과장 등의 직급이 있고, 그 직급에 따라 역할이 다른 것처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종이나 혈통, 민족에 따라 우월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민족이든 형제든 만나면 서로 돕고 상생해야 합니다. 물론 각 민족의 독특한 문화나 민족적 정체성은 지켜야겠지만, 이것이 다른 민족이나 형제를 배타적으로 대하는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임을 알고 상생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이 기뻐하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32-34절)
본문 32-3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멘.
사도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는데, 대부분 아덴 사람들은 이 부활을 조롱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있었지만 이곳 아덴에서만은 회심한 사람이 몇 명에 불과할 정도로 성과가 미미했습니다.
아덴에서의 전도는 사도바울의 선교에서 가장 적은 결신자를 얻었는데, 이런 결과를 보고 어떤 신학자는 바울의 설교가 사변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아덴의 전도가 실패했다고도 말하지만, 사실 전도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전도는 실패나 성공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듣는 사람의 몫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초월적 영역입니다.
다만 전도자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복음을 전했다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복음을 전했고, 그 말씀을 듣던 최소 4명 이상이 회심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면 됐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선교에 있어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았고, 그걸 내세우거나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영혼들에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설교는 인본주의의 본산인 아덴 사람들에게 맞는 맞춤 설교였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녹아있는 최고의 설교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아멘에서 몇 명의 결신자 밖에 얻지 못한 것은 아멘 사람들의 지적 교만과 마음의 강퍅함 때문이지, 바울의 전도가 잘못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덴에서도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복음을 전하거나 주의 일을 할 때 성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열매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결과에 너무 연연하면 그 결과에 따라 주의 일이나 전도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하나님은 결과나 의도보다는 그 과정을 더 보신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볼 때 결과가 초라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고전 3:6-7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자라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그저 씨앗을 뿌린다는 심정으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씨앗을 뿌리면 됩니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고, 또 열매 맺게 해주신다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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