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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 강가 자매님이 질문이 있다고 하셨어요.
과거에 어떤 목사님이 이 주제를 나누셨는데 그때는 자신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말씀에 대해서 이해를 못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한테 직접 배웠지만
제자들보다도 성령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이 더 위대했다고 그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치셨어요. 그럼 그 말이 맞나요?
저는 그걸 맞냐, 틀리냐를 못해요.
그건 그분이 받은 인사이트니까요.
그것이 좋으면 그분을 따라가면 돼요.
저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도 저를 따라오지 않았어요.
제가 제 친구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 친구들 중에 몇이 목사님이 되었어요.
그때는 제가 성령을 받지 않았을 때에요.
성령으로 배운 것이 없었고 오직 지식으로만 예수님을 알고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성령님이 저에게 임하시고나서는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 있었어요.
제가 예수님이 대해서 얘기하고 보여주고 하는데 제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바로 성령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여러분도 성령님을 가지고 계세요.
여러분 안의 성령님이 이 말씀들을 듣게 하시는 거에요.
왜냐면 우리는 한 성령님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를 쫓아서 오는 것이지요.
마치 제자들처럼 말이에요. 제 학생처럼요.
성령님이 임하고난 후에 제자들은 “나를 죽이세요.. 제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걸 알아요.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가 되세요..” 라고 바뀐 것이에요.
성령이 임하기 전에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성령받기 전에는 저에게 여러분같은 제자들이 없었어요.
누가 제 얘기를 들었겠어요? 교회가면 다 저보다 잘낫지요.
성령을 받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여러분이 저한테 왔어요.
여러분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저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가는 거에요.
성령이 임하면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것 같지만 제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성령님이 하신다구요. 제가 그것을 알겠어요.
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것들이 항상 질문이었어요.
저에게 그런 마음이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제가 그 말씀이 맞다, 안맞다 그걸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고
저의 작은 머리로 이렇게도 생각해 보는 거에요.
제 믿음의 분량이 이만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이건 제 믿음이에요. 만약 여러분이 동의할 수 없다면 저를 따라오지 않으셔도 돼요.
저에게 여러분이 화내실 필요가 없어요. 비판할 것도 없지요.
이건 저의 인사이트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의 인사이트가 있을 거에요.
만약 여러분의 인사이트가 다르다면 얘기해 주세요.
그럴 때마다 질문해 주세요. 함께 질문하고 나눌 때 그것을 통해서 뭔가 배우게 돼요.
맞고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이트에요.
어느 분이 간증을 썼는데 “그 간증 틀렸는데...”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건 그 사람의 간증이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간증이 있어요.
그건 그사람의 것이고, 그형제님의 간증이구요 저는 저의 간증을 가지고 있어요.
자매님의 간증은 자매님의 인사이트구요 저의 간증은 저의 인사이트에요.
만약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Ok..”
나눈 인사이트가 마음에 들면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시면 되는 거에요.
저는 여러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느 누구의 인사이트가 마음에 들면 취하시면 돼요.
여러분의 길을 따르시고 저는 저의 길을 따라가면 되어요.
저의 길이 마음에 들면 저를 따라오시면 돼요.
제가 여러분에게 강권적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제가 가는데 보시기에 “저 DK가 가는 길이 좋아..” 하면서 따라 온 거잖아요?
여러분 때문에 제가 공부한다니까요. 뭘 말해야하나? 하고 생각하게 되요.
전에는 말씀 안주시면 저는 잘 돌아다녔어요.
인제는 월요일마다 이것을 해야하니 인간이라 신경이 쓰인다니까요.
말씀주시면 여기 노트에다 적어놓구요.
전에는 이런 것이 없어서 그냥 “으악~”
이사야 자매님을 보세요. 이사야 자매님도 “으악~”하는데 뭘 적어놓나요?
“으악~”하는데 무얼 적을 생각이 어디 있어요?
저 때가 좋아요. 저는 저때가 그리워 죽겠는데 안되네요..
저는 이사야 자매님처럼 성령에 취해있는 것이 좋아요.
과거에 저는 이사야 자매님처럼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야하니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요.
성령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요.
그러나 항상 성령님이 저에게 하실 말씀을 주셔요.
저도 항상 성령님께 구하고 항상 주의를 집중하게 되요.
그러면 성령님은 저에게 인사이트를 주시고 저는 여러분에게 나누고 있는 거에요.
어떨 때는 제가 잘못 말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그건 잘못됐어요...” 그러면
“Ok,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세요..”
저는 저의 길을 가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완전 인간일 때도 배우고 완전 하나님일 때도 배웠어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가르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가르쳤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가르치셨을 때 제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렸어요.
그때 성령이 함께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제자들은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온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어요.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영적 전쟁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해요.
얼마나 경험해야 하냐구요? 넘칠만큼 성령님을 경험해야 해요.
에스겔 36장 26절을 읽어주시겠어요?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새 마음을 준다고 그랬지요?
성령이 임하는데 돌같은 마음을 제하고 무엇을 준다고 했어요?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고 해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너무너무 딱딱해요.
그런 견고하고 딱딱한 마음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함으로
아주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고 했어요.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가르칠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해요.
성령을 경험하면 여러분의 마음은 너무나도 부드러워지기 때문이에요.
아주 유연해지지요. 정결해지고 또 깨끗해지며 정직해지니까요.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변화될 거에요.
사람들이 봐서 가르치는 사람이 쎄면 잘 안갈려고 해요.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안따라올려고 한다면,
여러분의 나눔을 안들을려고 한다면 그건 여러분의 마음이 아직도 딱딱하기 때문일 거에요.
그 말의 뜻은 어쩌면 아직 성령이 여러분에게 임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어.. 나는 성령을 받았어..” 라고 할지도 몰라요.
제가 과거 친구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나누었어요.
그때 저는 술을 마실 줄도 몰랐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여자친구도 없을 때에요.
그런데도 저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요.
저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도 “아.. 나에게 성령이 임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 생각에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성령이 임해서 그랬겠지요. 그런데 그 성령은 아주 약한 성령이었어요.
정말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했다면 여러분은 아주아주 부드러운 사람이 될 거에요.
그 말의 의미는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에요.
그게 부드러운 마음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따를 거에요.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따라오지 않아요? 그건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에요.
아직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안 계시거나 일 거에요.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누군가가 따랐다는 사실이에요.
그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과거에 성령을 받은 줄 알았어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기도 하지만 제가 예수님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했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줄로 생각했었으니까요.
저는 매주 교회를 갔어요. 여러분도 교회를 가지요.
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가는 거니까요.
“맞아, 맞아.. 성령님이 계시니까 교회가지..
그러니 내가 죽으면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어..” 라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목사님들이 우리에게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니 이제는 하나님 나라, 천국에 속했어요.” 라고
말을 해요. 그러나 지금 저는 “참 안됐다..” 라고 해요.
과거에 저는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목사님을 통해 말씀을 들었어요.
말씀 들을 때 어떤 때는 마음에 터치가 왔어요. 그래서 울 때도 있었지요.
저는 그런 것을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성령을 받고난 후에 보니까 그건 가짜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악한 영들이 그렇게 속인 것이었어요.
어떻게 악한 영들이 저를 속였는지 아세요?
사단은 이미 제가 이렇게 하면 속는 줄 알았어요.
사단은 저에게 “이야, 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너는 매주 교회를 가잖아.. 너는 매일 찬양해..
누군가를 도와주기도 하지.. 그러니 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야...
이정도만 해도 돼... 이렇게 교회에서 가르치는대로 따라가면 천국에 갈 수 있어..
너는 예수 믿는다고 고백했잖아? 예수님이 너를 위해 돌아가셨지..”
“그래, 맞아...” 라고 저는 생각했지요.
사단은 그렇게하면 제가 예수님을 대적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단은 “더 이상하지마.. 그냥 그렇게 있어.. 그래도 천국에 갈 수 있어..” 하고 속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건 정말 가짜였어요. 저는 그렇게 속았어요.
그런데 성령님이 저에게 임하고나서 저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어요.
성령님이 제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여러분이 여기에 오게 된 거에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항상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나?” 하고 친구들에게 물어보세요.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이 보이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만져지니?”
“내게서 예수님이 느껴져?” 이렇게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니면 여러분은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사단은 우리에게 “너는 예수님 같애.. 괜찮아..
너는 매주 교회에 가잖아? 항상 성경 읽고 너는 항상 예수님에 대해서 말을 해..” 하고 속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건 지식일 수 있어요.. 여러분의 태도와 행동을 보세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펴 보세요.
어떻게 사람들을 미워해요? 어떻게 누군가를 비판할 수 있어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상처줄 수 있나요? 이런 것은 가짜 크리스챤의 모습이에요.”
이 모든 것들은 과거 저의 모습이에요. 저의 교회 삶이었어요.
저는 이렇게 사단에게 속고 살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는 거에요.
이것이 영적 전쟁이에요.
사단은 정말 영리해요.
아주 비밀스럽게 사단은 여러분을 속여요.
속인다는 것은 진짜처럼 아주 그럴듯한 것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것은 가짜였어요.
사단은 그렇게 우리를 속여요.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사단은 “그게 맞아.. 그렇게 해..” 하고 말하지요.
그런데 진리가 나타나면 여러분들은 알 거에요.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가짜였구나..”
이것이 저의 간증이에요.
사단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제가 이 축사사역을 할 줄 알았거든요.
여기가지 못오게끔 사단은 “너 예수 잘 믿잖아.. 찬양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설교 들으며 마음에 터치가 되어 은혜 받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너는 죽으면 천국간다고 목사님이 그랬잖아..
성경에 다 있잖아? 그러니 말씀, 말씀해야지..”
성경은 문자가 아니에요. 성경의 문자는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런데 목사님은 저에게 “성경의 말씀은 그냥 문자적인 말씀이에요.” 라고 했어요.
문자적인 말씀일 뿐이라고 하셨어요.
목사님은 저에게 진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르치지 않으셨어요.
지금은 제가 알 수 있어요.
사단은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사단은 “그냥 너는 거기에 머물러 있어.. 그래도 천국에 가..
예수님이 뭐라고 했는지 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어” 라고 말해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아니야, 너는 여기로 와야해. 사단이 속이는 거야.
너는 가짜 크리스챤이야...” 라고 하셨어요.
성령님이 저에게 임했을 때 저는 “맞아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가짜 크리스챤이었어요..”
항상 여러분을 점검하세요.
여러분이 진짜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내 안에 예수가 있어요? 없어요?”
“어떻게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질 수 있어요? 느끼세요?”
이것을 자꾸 옆에 사람한테 질문하시면 다른 사람은 알아요.
여러분과 친한 사람은 할 수 없이 말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떨어진 관계의 사람들은 “예수를 조금 제대로 믿으셔야겠네요..” 할 수 있어요.
저한테 오면 저는 확실하게 얘기해 줄 수 있어요.
저는 목숨을 걸고 얘기해 준다구요.
왜? 사람을 살려야하니까요. 저는 칼을 덴다구요.
여러분이 암에 걸렸다고 얘기하고 칼을 데고 수술해 줄 거에요.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거에요.
저는 영적 의사에요. 그래서 악한 영들을 축사할 거에요.
여러분이 여기에 온 이유이기도 해요.
아까 베드로가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다고 했지요?
세상 악하고 험한 말로 저주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만 그렇게 한 줄 아세요?
베드로만 예수님한테 저주한 것 같아요?
여러분도, 나도 똑같이 하고 있다니까요..
제가 그것을 확실하게 보면서 가요.
“이 길이 그 길이구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보시라구요.
베드로가 그렇게 저주했는데도 그에게는 기가 막힌 것이 하나 있어요.
정말로 잘한 일이 하나 있어요. 기적같은 일이에요.
여러분이 베드로에게 본 받을 점이에요.
이건 여러분이 못해요. 그런데 베드로는 했어요.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내린 것인가요?...
또? 항상 먼저 베드로가 나서서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나로 명하사 물 위를 걷게 하소서..” 하고 먼저 요청했어요.
닭이 울 때 회개한 것이요? 라고 여러 자매님들이 대답했어요.
닭이 우니까 즉시 가서 회개한 것이에요.
여러분, 이건 여러분이 못해요.
어느 누구도 못했어요. 바로 베드로만 했어요.
그는 제자반 반장이었어요.
여러분, 즉시 회개했다는 것이 “아이쿠, 저것이 나한테 부족하구나..”
그래서 제가 누가 여러분을 상처주면 빨리 “하나님, 제가 미워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라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하라고 한 것이 즉시 회개하는 것이에요.
시간이 좀 걸리면 귀신이 들어와버리니까요. 인격이 생겨버려요.
뭐가 잘못되었으면 즉시로! 즉시로 회개해버리시라.
“예수님, 죄송해요.. 그것 안할께요..” 그러면 돼요.
간단해요. 울고불고할 필요도 없어요.
“예수님, 제가 그것 안할께요. 욕지꺼리했는데 그것 잘못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을 보기를 원해요.
제가 죽기 전에 그런 사람을 몇명이나 볼까...
즉시로! “아, 하나님.. 제가 이것 잘못했어요..”
그런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까요...
다 자기가 잘났다고 그러지요.
하나님 위에 올라가서 자기를 판단해서
“아, 나는 잘났어... 저사람이 못한 것이지..” 그러고 다닌다니까요.
제가 보는 관점이에요.
죄를 짓고나서 얼마나 빨리 회개하는가?
여러분은 죄를 짓고 바로 1분 뒤에 회개해요?
“세상에..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이것이
죄였네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바로 1분 안에 회개하는 여러분이세요?
우리 가운데 누가 그렇게 하는 사람 있으세요?
몇분들이 손을 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안에는 많이 있네요.
다른 사람들은 그 1분 가지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한 30분 정도 미워한 다음에 회개해야 속 시원하지요...” 하는 그런 사람들인가요?
여러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잖아요?
여러분이 설교를 많이 들어셨을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있어요. 부활의 소망이 있어요..”
이렇게 많이 들었어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니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요..” 라고
교회를 다니면서 많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그렇게 들었어요.
이건 진리에요. 정말 진리에요. 그런데 저는 좀더 업그레이드할려고 해요.
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더 어떤 것을 원하게 되었어요.
저한테는 그 말이 아직 안맞아요.
저한테는 그 말씀이 이미 지나갔어요.
그건 마더쳐치에서 하는 이야기에요.
아직도 “맞아요, 예수님의 부활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요.”
라고 얘기하나요? 네, 그것도 맞아요.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업그래이드된 인사이트를 나누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사망권세를 이겼거든요. 그래서 우리한테는 소망이 있어요..
그 말이 맞아요? 맞아요? 틀려요? 말씀 자체는 맞아요...
맞지요, 그런데 여러분한테는 안맞아요.
그건 옛날에 중학교 1학년 때 배운 것이에요.
여러분은 대학을 다니거나 벌써 졸업을 했을 거에요.
그러니 여러분의 인사이트는 어떤가요?
여러분은 뭐라고 말할 건가요?
지난 주에 얘기했어요. 우리는 이미 살고 있어요.
우리는 그 소망이 아니라 그 소망이 우리의 삶이 됏버렸어요.
이사야 자매를 보면 알잖아요?
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어요?
어덯게 여기서 이러고 앉아 있어요?
우리는 이미 소망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즐기고 있다니까요.
사망 권세를 이긴 것, 사망 권세를 이긴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미 우리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니까요.
더이상의 소망은 없어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소망을 누리고 즐기며 살고 있어요.
예수님의 부활의 권세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우리의 삶에서 즐기고 있는 거에요.
“어느 날에요? 네, 어느 날에 이루어질 소망이에요..”
소망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거에요.
저에게는 이 소망이 이미 이루어져 지나간 것이 되었어요.
“저 너머에요?” 아니요! 바로 여기에서 누리는 것이에요!!
바로 예수님의 승리는 누리고 즐기는 삶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를 누리며 사망권세의 패잔병들과 싸우며 살고 있다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요, 소망이요..” 라고 얘기해요.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이미 지나갔어요.
소망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를 얘기하는데
우리는 소망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사망권세 이기신 것을
“맞아요, 우리를 보세요. 제가 그 증거에요. 증인이에요.
저는 예수님의 승리를 누리고 있어요..” 라고 해야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지고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요, 소망이요!” 라고 해요.
그러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내게는 소망이 있어, 예수님이 승리하셨지...” 라고
하며 지나가고 있어요.
제가 자꾸 얘기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 소망 안에 들어와서 사시라고 하는 거에요.
물론 아직도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있어요.
제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누가 자꾸 그런 얘기를 하면 이젠 그 다음 이야기를 하세요.
“언제까지 예수님 부활하셨으니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어요.”
언제까지 그렇게 말하다가 천국 맛을 보나요?
제가 자꾸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구요.
천국에 들어와 있는 이야기를 해요.
제가 지금 제 삶이 그러해서 얘기를 하는 거에요.
이것 밖에는 제가 얘기할 것이 없어요.
에베소서 2장 6절에 보면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And God raised us up with Christ and seated us with him in the heavenly realms in Christ Jesus,
이미 안식 가운데 들어가 있다고 하지요.
안식 안에 들어가 있는데 자꾸 소망이 어쩌고...
소망이 있다고 얘기했는데 우리는 소망 안에 들어가서 즐기자구요.
그런데 사단이 그것을 잘못하게 해서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거에요.
이미 하나님께서 다 말씀하셨어요.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나서는 성령님께서 다 가르쳐 주셨어요.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을 다 생각나게 하리라...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내가 너희에게 인간으로서 가르쳐 준 것 너희가 잊어버렸지만
너희에게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때가 들어와..
그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야...”
제가 성령받기 전에 배웠던 것이 의문 투성이었어요.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것들이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푸는 거에요.
성경구절과 똑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여러분이 누리셔야 돼요.
지금 우리 아브라함 형제님같이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띄어서
“아, 나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네! 내가 왜 이걸 못 누리고 있었지?!”
이러면서 가셔야 해요.
저는 자꾸 이걸 보면서 얘기해 주는 것이에요.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나는요, 아직 이모양 이꼴인데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그래요.
그렇지만 승리의 삶을 살아요. 우리 아버지한테, 세이빙 어카운트에 왕창 있는 것 보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뭐가 걱정이에요?
빌립보서 3장 10절 11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10 내가 그리스도오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여러분이 거기를 보시면 바울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해서 이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부활에 어떤 능력이 있어요.
여러분이 여기까지 온 것들이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도 모르게 들어와 있어요.
그냥 일반 은총가 있고 특별 은총이 있다고 했어요.
일반 은총이 뭐에요? 공기, 물, 자연.. 이런 것들이요..
특별 은총은 뭐에요? 어떤 큰 사고나 사건에서 살리신 것..
호다 온 것이요.. 호다 와서 축사 받고 살아난 것이요... 라고 여러 형제, 자매들이 답했어요.
그건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것이구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특별 은총은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은총이에요.
예수를 믿으니 천국의 소망이 내 것이 됐버린 거에요.
이것이 특별한 은총이에요.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다른 일반적인 것들은 그냥 일반 은총이라고 해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부처를 믿는 사람들, 남묘호랑케교, 이슬람, 힌두교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일반적인 은혜를 주셨어요.
숨쉬고 사는 일반적인 은혜는 다 주셨어요. 그걸 다 은혜라고 해요.
특별한 은총은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은혜예요.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요?”
이거에요. 이것이 은혜에요. 특별한 은혜!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내 가족이, 내 친척이, 내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
내가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
“어떻게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셨을까?”
이것이 바로 특별한 은총이라고 하는 거에요.
“어떻게 나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이게 특별 은총이에요. 일반적으로 하는 말이에요.
제가 그것을 성령 받기 전에 배웠어요.
그런데 나중에 성령이 저에게 임하고나서 보니까
“세상에! 이것이 가짜였네!!”
지금은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특별 은총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특별 은총!
전에는 제가 특별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그건 아니에요, 특별 은총이 아니었어요.
성령을 받고 보니까 “이건 진짜 특별 은총이네!”
이런 것이 있는 것을 제가 여러분에게 얘기해 주는 것이예요.
저한테는 그랬어요. 이것을 일반적으로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구박받아요.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얘기하는 것은 성화 단계에요.
처음에 국민학교에 들어가야 학문이라는 것을 배워요.
예수님을 배우게 돼요. 그러니 들어오는 것이 은혜예요.
들어가면서 성경은 계속 성화 단계를 보여주어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된 것이 아니에요.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듯이요.
광야에서 40년을 지나야 해요. 광야에서 배워야만 해요.
그렇다고 다 배운 것이 아니에요.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해요.
건넜다고 다 배웠다구요? 아니에요. 일곱 족속을 몰아내듯 악한 영들과 싸워 이겨야 해요.
여러분 안에 있는, 몸을 공격하고 있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해요.
국민학교에 들어갔어요? 여러분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또 배워야 해요.
중학교 과정을 다 배웠다면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해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다 된 것이 아니지요.
여러분들은 더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배워야 해요.
그렇다고 다 끝난 것도 아니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속에 나가서 직장을 잡아야 해요.
그래야 여러분은 구직하는 과정에서 성공할 수 있는 거에요.
회사에 취직이 되어야 하는 거에요.
이 모든 과정이 예수님을 찾는 과정과도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왔어요.
실제로 현실이에요. 광야 40년을 지났어요.
열심히 배웠어요. 하나님 믿는 것을 배웠고 기적도 체험했어요.
안타깝게도 이게 다가 아니에요.
요단강을 건넜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신대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니까요. 거기에서 전쟁을 해야 돼요.
거기에 있는 일곱 족속을 몰아내야 돼요.
여러분 안에 있는 귀신들과 싸워야 해요.
그게 다가 아니라니까요.
예수를 만나야 돼요!!!
거기서 왜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끌고 오셨나...
구약에는 예수님이 숨겨져 있었어요.
그림자로 숨겨져 있었어요. 그 그림자를 찾아내야 해요.
그게 보물이었어요. 보물은 땅에 어디에 숨겨져 있지 다 보라고 나와 있지 않다니까요.
찾아내야 돼요. 찾은 사람들은 있어요.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 같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그 그림자를 찾았어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다 가르쳐 주셨어요.
“천국이 여기 있으니까 믿으세요..”
“No way!” 하며 그래도 안 믿는다니까요.
발견해서 쥐어주어도 안 믿는 것을 우리가 수태 옆에 있어 본다니까요.
참 이상하지요. 우리가 “예수님이 여기 있어요..” 라고 얘기해요.
“우리가 벌써 알고 있어요. 이것이 예수님이에요. 여기를 보세요..” 하고 그 보물을 보여주어도
그들은 믿지도 않아요. 왜? “이게 그 보물이라구요? 아..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삶이 아니니까 그래요.
그런데 호다 식구가 “이것이 보물이에요..” 하고 말하면 저는 믿어요.
당신이 “이게 보물이에요.. 예수님이에요..” 라고 말한다면
저는 “글쎄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가짜에요..
호다 사람들이 얘기하면 믿겠는데 당신이 얘기하는 예수면 안 믿어요..
당신이 말하는 예수를 믿고 천당간다면 나는 만당을 가요.. 그딴소리 하지 말아요..”
왜? 그 삶을 보니까 아니에요. 그것 했다고 좋아하는 것 보니까 그건 가짜야, 가짜..
그건 가짜 다이아몬드에요. 그런데 호다 식구들은 진짜에요.
저건 아무리 봐도 다른사람하고 다르네요..
저 같으면 그러겠다구요.
여러분의 삶이, 행동이 뭔가를 보여주어야 돼요.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 나와서 이렇게 훈련받고 있다구요.
어떤 사람은 “어? 당신은 호다 기도 모임에 나가네요. 그래서 제가 당신을 믿어요..” 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아, 당신이라면 괜찮아요..”
주님의 기쁨 주희 자매가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가요.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제가 주희에게 간증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여러분들 중에 이미 간증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이미 읽었을지라고 직접 듣게 되면 더 좋겠지요.
주희 자매는 우리보다 더 정직하고 더 깨끗해요.
아주 정결해요. 그래서 저는 주희 자매를 좋아해요.
이렇게 젊고 정직하며 영이 깨끗한 자매가 이곳에서 얘기한다면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이 있을 거에요. 그래서 오늘 그 간증들을 듣기를 원해요.
잊고 있던 것이 있는데 중요한 것이라 나누어요.
쯔보 형제가 한 질문인데 정말 중요한 것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
어제 우리가 나눈 것이에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고 하셨어요.
“다 이루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과 마찬가지인데
“다 이루었다..” 무슨 뜻이에요?
어제 쯔보 형제가 이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어요.
“다 이루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고 하셨는데 무슨 뜻이에요?
“다 이루었다..”는 말에는 뜻이 있어요.
엠마가 “우리의 죄의 값을 다 치루었다..”고 대답해 주었어요.
우리의 죄를 다 끊었다고 하신 거에요. 신학적으로 그렇게 얘기해요.
세미나를 하게 되면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묶여있던 죄의 사슬이 다 끊어졌다고 해요. 이것이 “다 이루었다..”는 의미래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감사해요..” 라고 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 말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죄의 사슬, 사망권세를 끊었다고 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이라고 신학자들이 얘기를 해요.
예수님의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치루었다고 해요.
그래서 죄의 사슬, 사망권세를 깨트렸다고 해요.
죄가 우리를 묶고 있었어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사망 권세를 깨트렸다고 하셨고
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는 거에요.
죄가 우리를 구속했는데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 하시며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 죄의 구속을 다 끊어셨어요.
그런데 지난 부활 주일에 묵상을 하다가
“다 이루었다..” 하시는데 “어? 그게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이 맞아요. 신학적으로 맞아요.
그런데 그 말이 저한테는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았어요.
제 생각에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다 이루었다..” 오직 예수님만 아실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는 거에요.
죄의 사슬, 사망권세를 깨트렸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어.. 그건 맞는데 나한테는 너무 멀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이 그게 맞는지 어떻게 알아요?
예수님이 확실하게 설명도 안하고 가셨는데요.
“다 이루었다..” 하시는데 어제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예수님이 죠앤에게 “죠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어..”
죠앤이 “오, 맞아요.. 다 이루셨지요!” 이건 무얼 말하는 걸까?
예수님이 여러분 모두에게 물어보실 거에요.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대답을 하겠지요?
모든 사람들의 자라온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저에게 오셔서 “헤이, DK.. 다 이루었어..”
“어.. 맞아요, 예수님.. 다 이루셨어요..”
수많은 일들이 있어요. 그런데 다 이루셨대요.
“감사해요, 예수님.. 다 이루셨어요..”
여러분은 뭐라고 하실 거에요.
죠앤에게 예수님이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어? 이게 다 끝났어요? 와아, 예수님 짱!!”
이게 뭘까요? “다 이루었다..” 고 하시는데 뭐라고 대답할 거에요?
쯔보 형제님, 예수님이 형제님 앞에 계시는데 “쯔보, 내가 다 이루었어..”
쯔보 형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 고민하던 것들, 우리는 모르지만 쯔보 형제님만이 아는 문제..
예수님이 “다 이루었어..” 라고 말씀해요. 쯔보 형제는 “어.. 다 이루셨네! 감사해요, 예수님..”
쯔보 형제님은 예수님에게 어떤 것이든지 대답해야 해요.
그게 무엇일까요?
혹시 죠앤 대답할 수 있어요?
“Let's Go Home!”
여러분 모두의 대답이 다를 거에요.
저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용서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요? 그때까지 예수님은 인간이셨으니 인간으로서 보여주실 수 있는
최대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봐요... 라고 희락이가 대답하니
그것은 사역반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라고 하셨어요.
지금 예수님이 바로 이 앞에 오셔서 “희락아, 희락아.. 다 끝났어..”
갑자기 여러분의 목사님이 앞에 오셔서 “고 집사님, 다 끝났어요.. 문 집사님, 다 끝났어요..”
“어? 그게 끝났어요?” 이게 뭘까요?
여러분이 지금 생각할 때 뭔가가 있어야 해요.
“다 끝났어..” “이게 끝났어요? 고마와요, 예수님..”
여러분의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는 거에요.
여러분에게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어요.
어쩌면 지금이 그 힘든 시간 속인지도 모르지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거에요.
이 힘든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이 때문에 두통을 일어나기도 하지요.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되기도 하구요.
그런 상황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 이루었어!.. 다 끝났어!...”
“어? 맞아요! 바로 그 문제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에요.
“어, 내 영주권!” “내 비자 문제! 아.. 예수님, 감사해요!..”
“내가 어제 잠도 못잤지.. 이 불면증을 끝내 주셨네.. 감사해요, 예수님..”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문제가 풀어진 걸 놓고 감사하다고 예수님께 말할 거에요.
어떤 사람은 애들 때문에 힘들었는데 “오! 예수님, 감사해요!”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 는 의미에요.
여러분,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셨어요?
예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문제들에게서 자유하기를 원하세요.
여러분들이 악한 영들과 씨름하는 문제들에게서 완전히 자유하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다 끝냈어!..”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을 괴롭히던 문제들을 생각하지 마세요.
더 이상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을 거에요.
“다 이루었어.. 나를 믿기만 해...
네가 생각하던 문제들, 너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 다 끝냈어..”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것이에요?” 하고 기도하는 자 자매님이 질문했어요.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
어제가 달랐고 오늘이 달랐으며 내일이 다를 거에요.
어느 날 예수님이 오셔서 “다 이루었다..”
“어? 이거 나 문제가 있었는데 다 이루어졌네..”
지난 주에 쯔보가 “다 이루었다..” 질문을 하는데 그것을 주셨어요.
어제 기도하는 자 자매가 “이것 너한테 하는 말이야..”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저에게 전해 주었어요.
설교 전에 본문 말씀이 스크린에 나와 같이 읽는데
주님이 기도하는 자 자매에게 와서 그 말씀을 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너에게 하는 말이야..”
“오, 맞아요.. 예수님...”
바로 이것이 “다 이루었다..” 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에요.
나에게 “다 이루었다..” 하시는 거에요.
“오, 예수님... 정말 감사해요...”
“이제 너 자유야~ 다 이루었어, 너의 문제들은 다 사라졌어..”
“오, 예수님 감사해요..”
이것이 바로 “다 이루었다..” 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고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니까요.
이것이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이에요.
여러분들이 그냥 죄값을 다 치루신 것에 대한 말이에요..라고 한다면 저는 좀 속상해요.
여러분에게 닦친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여러분들에게 “내가 다 이루었어.. 걱정하지마...
너는 오직 나만 바라봐...”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여러분이 바라봐 주길 기다리세요.
지난 주에 쯔보 형제가 “다 이루었다..”는 질문을 얘기했을 때
저한테 직접 예수님이 오셔서 얘기하는 거에요.
“다 이루었어...”
바로 예수님이 코 앞에 와서 얘기하시는 거에요.
“오, 예? 제가 이 문제가 있었는데 다 끝났다구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마음에 평강이 넘쳤어요.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 는 의미에요.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를 거에요.
물론 저 역시도 죄의 사슬, 사망권세를 깨트리셨다는 것에 동의해요.
예수님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셨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저한테는 멀리 느껴졌어요.
여러분과 저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다 이루었어..”
“어? 저의 죄 사슬을 다 끊어셨다구요?”
이런 것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좀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너 이 문제 있었지? 누구랑 힘들었지? 돈 걱정도 했구? 다 끝났어..”
바로 여러분과 직접적인 문제들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런 것에 예수님이 “다 이루었어.. 다 끝냈어..”
지난 주에 주신 인사이트에요.
마음에 들면 취하시고 아니면 놔두세요.
그리고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가면 돼요.
주님의 기쁨 주희 자매님이 나와서 간증을 해 주었어요.
자매님의 간증은 따로 신사도행전에 올라 올 거에요.
간증이 다 끝난 후 오늘은 개인 기도를 하지않고
주님의 기쁨 자매님과 죠애니니더오션 자매님,
주현형제를 순서로 해서 예언훈련을 했어요.
포근하게 감싸는 안개와 같이
주의 성령이 훈련을 하는 우리 위에 임해
함께 하심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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