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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검색 : 정치/외교 1962년 3월 24일 월남동포를 위해 원호기금
박의장, 원호청 보고 받고 지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23일 하오 앞으로 북한에서 넘어오는 동포들을 위하여 정착원호기금을 마련하라고 윤영모 군사원호총차장에게 지시했다.
그는 지난번 순국선열 유가족원호대책에 대해 내각 사무처와 원호청에서 각각 연구토록 지시했었는데 이날 우선 원호청측의 그 대책안을 보고 받은 것이다.
윤차장은 그 보고에서 순국선열유가족의 원호대책으로 매년 약 3억8천만 환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박의장은 원호청은 영구적인 그 대책을 강구할 것이며 그 대책으로는 순국선열유족 외에도 4.19의거 부상학생 및 의거자의 유가족 그리고 앞으로 월남하는 동포들에 대한 정착원호기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의장은 또 지금의 원호청을 군사원호처로 그 기구를 고치는 것도 연구해 보도록 일렀다.
정치/외교 1964년 8월 9일 월남군사 지원 검토설을 부인-청와대 대변인
박상길 청와대 대변인은 8일 정부가 통킹만 사태에 대비 '월남에 대한 군사지원을 논의한바 없으며 다만 의료반의 파견문제만을 논의했었다' 고 말했다.
박대변인은 정부가 월남에 군사지원을 고려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이와 같이 말했다.가족 동반 해운대로 박정희 대통령은 8일 상오 8시 반 KAL기 편으로 가족과 함께 피서를 위해 해운대로 떠났다.
국방 1965년 1월 27일 월남 평화에의 전진적 기여
박정희 대통령은 24일 정부의 월남 파병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담화를 내려 '아세아를 불사를지도 모를 위협에 대해서 목하 월남을 불태우고 있는 하나의 불씨를 미연에 꺼버리는데 협력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최상의 길이라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남의 관여나 도움을 받던 피동적 위치에서 주요국제 문제에 대하여 일단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전진적 자세를 취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하고 월남자유투쟁에 참여하는 것은 '자유세계의 대공방위 전선을 정비 강화하고 자유에 봉사하며 평화에 기여하는 영예로운 일' 이라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5년 4월 27일 월남사태 등 논의
존슨 미대통령의 특사로 26일 내한한 헨리 캐브트 로지씨는 27일 상오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약 한 시간 동안 요담했다.
김 국방장관, 문 외무차관과 브라운 주한미대사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과 로지 특사는 월남 문제와 관련한 한미 두 나라의 공동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 아세아에 있어서 공산침략 위협에 대처 한미 두 나라는 물론 전 자유진영이 일치 단결해야 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박대통령은 로지 특사에 대하여 한국의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장기 계획에 미국의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이에 대하여 로지 특사는 '미국은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박상길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군의 월남증파 문제가 논의되었는지 여부에는 언급을 회피하고 '공동관심사만 논의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고만 발표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박대통령은 로지 특사부처와 오찬을 같이했으며 로지 특사는 이날 하오 2시 반 특별기편으로 홍콩으로 떠났다.
정치/외교 1965년 5월 19일 존슨의 월남정책 찬양
박정희 대통령은 18일 낮 12시 15분 내셔널 프레스 클럽이 주최한 오찬회에 참석 '한미양국은 아세아에 있어서 공산주의 판도의 이 이상 확대를 막아야 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명에 서게되었다' 고 전제하고 '본인은 동남아 지역에서의 공산 침략 저지와 집단 안전보장 문제 그리고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상호 협조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겠다' 고 말하였다.
박대통령은 3백 여명의 외국 기자들이 참석한 이 오찬회에서 20분간의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폭력혁명에 의한 세계지배를 포기할 때까지 힘의 입장에 의한 자유 수호에서 일보도 후퇴할 수 없다' 고 단언하고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정의를 이 지구상에서 구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힘과 힘의 행사가 필요한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박대통령은 특히 '월남 문제는 월남 지역에 국한된 분쟁이 아니다' 라고 못박고 이를 위해 자유진영이 취해야 할 행동은 '지난 한국동란에서 미국과 자유 진영이 보였던 그 뚜렷한 결의와 행동을 다시 한 번 결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며 존슨 대통령의 월남 사태에 대응한 그 확고한 결의와 행동에 대하여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 라고 말하였다.
연설 후 박대통령은 기자들의 몇 가지 질문에 대답했는데 연설의 요지는 별항과 같다.
18일 하오 내셔날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을 마친 뒤 박대통령은 질문에 답변하면서 '현재로서는 동북아 군사문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고 말하고 또 '동남아 외상회담은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으나 아직 실현할 단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타스 통신 보도- 박대통령 방미논평 없이
소련의 타스 통신은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존슨 미대통령의 환영 연설을 아무런 논평 없이 보도했으며 미국 언론기관들을 인용하여 박대통령은 지난 달 존슨 대통령 특사인 헨리 캐보트 로지 씨에게 한국은 2개보병대대를 월남으로 파귀할 용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케네디 묘에 헌화- 잣나무 기념식수
박대통령은 이 두 회담이 끝난 후 하오 3시 앨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고 케네디 대통령 묘와 무명용사 묘에 화환을 증정하고 잣나무로 기념식수를 하였다.
박대통령은 이어 풀브라이트 상원외교 위원장이 동위원회실에서 개최한 티 파티에 참석했다.
정치/외교 1965년 5월 27일 월남 증파 제의
박정희 대통령은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월남에 3만 명 혹은 1개 군단의 한국군 파병을 제의한 것 같다는 추측이 이곳에서 내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제의는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의 파병에 관한 언질을 필요로한데 대해 취해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이 그러한 다수의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하는 언질은 월남에서의 주요 강대국간의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월남전을 에스카레이트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 이외에도 아세아 여러 나라가 보다 많은 군대를 월남에 파견하도록 타국을 설득시키기 위한 수단을 존슨 대통령에게 마련해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외교 1965년 8월 3일 한미양국 대통령 월남 문제 친서교환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은 최근 월남 사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친서를 교환했다고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이 2일 발표하면서 서한 내용을 밝혔다.
박대통령은 7월 29일자 회한에서 최근 주월 군병력을 증강키로 한 존슨 대통령의 월남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한국정부도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월남에 증파하기 위해 늦어도 8월중에는 국회의 승인을 얻게될 것' 이라고 확답했다.
존슨 대통령은 브라운 주한미국대사를 통해 지난 28일에 전달한 7월 25일자 서한에서 현재 월남에 있는 미군병력 8만을 배가 또는 그 이상으로 증가해야 된다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사전 통고하고 그러나 미국정부는 '평화적 해결을 위한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모든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며, 전쟁의 불씨가 아세아 본토에 확대되지 않도록 모든 주의와 자세를 다할 것'을 약속했다.
존슨 대통령은 또 월남평화의 전망도가 미국의 다른 우방들이 미국이 필요로한 노력을 지지, 분담함으로써 높아진다는 소신을 밝히면서 월남의 병력 증파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의 친서요지는 다음과 같다.
존슨 대통령 서한(7월 25일자)
각하도 아시다시피 하노이와 북평정권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이 시기에서는 이 문제를 회담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여러 정부의 거듭된 노력이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전쟁의 불씨가 아세아 본토에 확대되지 않도록 모든 주의와 자제를 다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태 아래 본인은 월남평화의 전망도는 미국과 동일한 목적과 관심을 가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이 필요로 한 노력을 지지, 분담함으로써 높아진다는 본인 개인의 소신을 말씀드립니다. 귀정부는 벌써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귀국의 관심을 표명했으며 이 원조를 증가하여 이것이 전세계 특히 하노이 정권에 대해서 월남에 있어서의 침략 저지와 월남에 있어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적 지원의 결말을 가져오는 명백한 신호가 될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대사에게 이 문제에 대한 협의에 도움이 되도록 지시했습니다.
박대통령 회한(7월 29일)
월남 사태에 대한 각하의 확고한 결의에 대하여 본인은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을 먼저 통보해 드리고자 합니다.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한국정부도 이미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월남에 증파할 계획을 추진 중에 있으며 늦어도 내월 중에는 국회의 승인을 얻게될 것을 확신합니다.
본인은 이 기회에 한국이 잇따라 겪은 한발, 홍수의 두 재난에 있어 그 구호와 복구에 최대한의 협조를 해주신 귀국 대사관, 유솜, 8군 등에 대하여 우리 국민이나 정부는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각하에게 알려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정치/외교 1965년 11월 9일 월남 키 수상 입경
구엔 카오 키 월남수상은 8일 오후 3시 10분 에어베트남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 착, 내한했다. 정일권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내한한 티 수상은 4일 동안 체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고위당국자와 만나 정치경제 군사적 한월간의 여러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키 수상은 부인과 구엔 수코 부수상 겸 국방장관 부처 등 공식 비공식 수행원 53명과 함께 공항에 내려 19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3군의장대를 사열하고 정부요인 군장성, 주한외교사절들의 환영을 받았다.
정총리는 이날 10여년 전 공산침략으로 뼈저린 고난을 겪은 바 있는 까닭에 오늘날의 월남 사태에 대해서 어느 나라보다도 깊은 관심과 동정을 금치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키 수상의 이번 방한이 우리 양국의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협조할 것인가에 대해 협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줄로 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키 수상은 도착 성명에서 '월남전에 파견된 한국군의 어머니와 아내들이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한국군이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공산 침략을 막고 우리의 승리를 다짐해 주는 것' 이라고 감사했다.
키 수상 일행은 오후 4시 조선 호텔에서 여장을 푼 다음 5시에는 정총리 부처를 예방하고 저녁 6시 30분부터는 정총리가 주최하는 워커힐 리셉션에 참석했다.
키 수상은 9일 청와대로 박대통령을 예방한 다음 정총리와 제 1차 회담을 갖고 한월간의 현안을 협의한다.
정치/외교 1966년 1월 13일 월남전 지원을 계속
박정희 대통령은 오는 18일 국회에서 발표할 새해 연두교서에서 '국군 1개 사단병력을 파견한 월남전선이 우리의 휴전선과 직결되어 있는 한국의 제2전선으로 월남전선의 안전과 승리를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지원을 계속할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또 '동남아를 우리의 제 1의 안전국으로 삼아 동남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적극 참여' 할 뜻도 연두교서에 포함돼 있다.
청와대가 작성하여 12일 정부 각 부처와 공화당의 검토를 요청한 대통령 연두교서 4차 초안은 또 시국 근대화 작업을 3단계로 제 3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1976년에 달성할 목표를 정하고 1차 5개년 계획으로 도약 준비, 2차 5개년 계획으로 공업 입국, 3차 5개년 계획으로 대량생산단계를 거쳐 대량 소비단계를 이룩한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경제 정책은 안전의 바탕 위에 성장을 이룩하고 작년에 이어 물가공공요금, 조세부담 등 경제여건과 행위를 점차적으로 현실화하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며 문교사회정책은 교권확립과 밀수, 탈세무제의 3대 악을 근절시키겠다고 밝힐 예정이다.
정치/외교 1966년 2월 24일 월남증파 결정
정부는 1개연대와 1개 사단의 병력을 4월 중순과 7월 두 차례에 나누어 월남에 증파하기로 결정하고, 월말께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또 증파와 관련하여 한국의 방위력을 보강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 일련의 이른바 선행조건에 합의했는데 이와 같은 합의 내용은 한국이 국군의 월남증파에 대해 국회동의서를 얻은 뒤 한미 양국 간에 합의 의사록 또는 교환공문 등 외교문서로 작성, 교환하고 행정조처로 실천에 옮겨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까지 드러난 증파 규모와 그에 따른 한미간의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증파규모
1개연대의 육군병력을 맹호부대의 편제보충으로 4월 중순 파견한다.
1개 사단의 신규 육군병력을 7월 말까지 증파한다.
정부는 이 두 부대의 파병 동의안을 월말께 국회에 제출한다.
주월한국군사령부는 배타적인 작전관리구역을 갖는다.
사전보장
군사적인 면
(1)파월장병의 처우를 전면적으로 약 25% 올린다(이 경우 2등병의 월급은 30달라에서 42달
라∼48달라로 인상)
(2)전사자에 대해서는 사병평균 37만원까지 지급한다.
(3)3개 예비사단을 몇 달 안에 전투사단으로 정비한다.
(4)한국군 장비 현대화를 계획보다 앞당긴다.(구축함 대형LST 등 해군전력을 증강하고 공군장비도 F-86기를 조속히 F5-A 초음속기로 대체한다. 한국 해안에 레이다 장치를 갖추어 간첩의 침투를 막는다.
경제적인 면
(1)군원이관은 한국군이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중단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물자를 조달한다(한국측은 처음 제 2차5개년 계획이 끝나는 71년까지 중단해 줄 것을 요구)
(2)박정희 대통령 방미시 존슨 미대통령과 합의한 1억 5천만 달라의 AID 차관의 대부분을 연내에 사용한다.
(3)미국은 원자재도입을 위한 1천5백만 달라의 신규 원자재 차관을 제공한다.(당초 한국측 3천만달라를 요구)
(4)종합제철공장, 조선공장 발전소, 비료공장 건설, 항만시설 확장 및 기관차 도입 등을 위해 한국이 요청한 약 1억 달라의 차관을 앞으로 사업별로 계속 협의한다.(종합제철공장에 대해서는 미국이 이미 양해했음)
(5)월남에 대한 BA정책을 완화, 약 2백종의 물자 및 용역에 대해서는 한국업자의 참가를 인정한다.
외국구매물품 중 한국 특산품은 한국에서만 판매한다.(이 경우 민간 베이스를 포함한 연간 대월 수출은 약 6천만 달라로 추정됨, 미국 측은 한국의 물자 및 용역조달을 위해 이미 서울에 사무소를 설치했다.)
(6)한국군의 월남증파 경비와 국군의 월남증파로 증액된 국방비는 미국이 부담한다.
정치/외교 1966년 4월 6일 월남증파문제 예의검토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6일 월남증파부대 환영식에 참석코자 서울을 출발하기에 앞서 브라운 주한미국 대사와 이례적으로 2시간에 걸친 회담을 갖고 월남의 정치정세에 대한 한미양국 정부의 의견을 교환했다.
4월 중 1개 부대와 7월 중 1개사단을 월남에 증파하기로 결정한 바 있는 정부당국은 최근의 월남 정국의 혼란이 국군의 파월 목적에 크게 위배된다는 점에서 이를 예의 검토해온 만큼 이와 같은 정부당국의 신중한 태도가 이 자리에서 밝혀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외교 1966년 5월 21일 월남문제 한국과 사전협의
존슨 미국 대통령의 개인 특사로 내한했던 헨리 캐보트 로지 주월미대사는 20일 박정희 대통령 이동원 외무부장관과 각각 회담을 갖고 월남전 처리에 있어 한국과 사전 협의를 하겠다는 l국 정부의 방침을 전달했다. 이날 아침 10시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약 1시간 동안 회담하는 자리에서 로지 대사는 또 월남의 키 수상 정부를 지지하는 미국의 대월정책이 확고부동함을 설명하고 월남의 정치적인 분쟁이 곧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이동원 외무부장관, 미국측에서 부라운 주한대사, 윌리엄 레온 하트 국무성 월남담당관이 참석했다.
회담이 끝난 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박대통령이 로지 대사로부터 현하의 월남 사태에 관하여 보고 받고, 아울러 한미 양국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고만 발표하고 그 밖의 질문에 대해선 일체 대답을 회피했다.
불명예스런 협상은 반대
이 자리에서 한국공군의 파월 등 새로운 증파 요청은 없었으나 중파하기로 된 1개 사단의 한국군을 7월에는 보낸다는 방침을 다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로지 대사는 존슨 대통령의 안부를 구두로 전했을 뿐 친서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이 소식통
은 전했다.
로지 대사는 박대통령을 방문하기에 앞서 9시 30분 외무부로 이동원 외무부장관을 방문하고 월남 사태에 관해 의견을 나누면서 '미국의 대월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월남전 처리에 있어 사전에 한국과 협의하겠다' 고 말했다.
이장관은 '참전국의 자격으로 월남의 평화 협상에 적극 참여하겠다' 고 말하고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협상은 반대한다' 고 한국 정부의 태도를 밝혔다. 이에 대해 로지 대사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본국 정부에 충분히 알리겠으며 평화협상에 베트콩을 참가시키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장관은 또 월남전에 있어서 '미국의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실질적인 전쟁 수행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월남 정책의 일관성 견지하도록 촉구했다고 한다.
이-로지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강영규 아주국장, 장상문 구미국장과 미국 측에서 레온 하트 월남 담당관, 브라운 주한대사, 뉴만 부대사 등이 참석했다.
로지 대사 일행은 이날 낮 12시 30분 특별군용기 편으로 사이공으로 떠났다.
정치/외교 1966년 5월 21일 월남문제 한국과 사전협의
존슨 미국 대통령의 개인 특사로 내한했던 헨리 캐보트 로지 주월미대사는 20일 박정희 대통령 이동원 외무부장관과 각각 회담을 갖고 월남전 처리에 있어 한국과 사전 협의를 하겠다는 l국 정부의 방침을 전달했다. 이날 아침 10시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약 1시간 동안 회담하는 자리에서 로지 대사는 또 월남의 키 수상 정부를 지지하는 미국의 대월정책이 확고부동함을 설명하고 월남의 정치적인 분쟁이 곧 해결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이동원 외무부장관, 미국측에서 부라운 주한대사, 윌리엄 레온 하트 국무성 월남담당관이 참석했다.
회담이 끝난 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박대통령이 로지 대사로부터 현하의 월남 사태에 관하여 보고 받고, 아울러 한미 양국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고만 발표하고 그 밖의 질문에 대해선 일체 대답을 회피했다.
불명예스런 협상은 반대
이 자리에서 한국공군의 파월 등 새로운 증파 요청은 없었으나 중파하기로 된 1개 사단의 한국군을 7월에는 보낸다는 방침을 다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로지 대사는 존슨 대통령의 안부를 구두로 전했을 뿐 친서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로지 대사는 박대통령을 방문하기에 앞서 9시 30분 외무부로 이동원 외무부장관을 방문하고 월남 사태에 관해 의견을 나누면서 '미국의 대월 정책은 변함이 없으며, 월남전 처리에 있어 사전에 한국과 협의하겠다' 고 말했다.
이장관은 '참전국의 자격으로 월남의 평화 협상에 적극 참여하겠다' 고 말하고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협상은 반대한다' 고 한국 정부의 태도를 밝혔다. 이에 대해 로지 대사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본국 정부에 충분히 알리겠으며 평화협상에 베트콩을 참가시키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장관은 또 월남전에 있어서 '미국의 형식적인 노력보다는 실질적인 전쟁 수행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월남 정책의 일관성 견지하도록 촉구했다고 한다.
이-로지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강영규 아주국장, 장상문 구미국장과 미국 측에서 레온 하트 월남 담당관, 브라운 주한대사, 뉴만 부대사 등이 참석했다.
로지 대사 일행은 이날 낮 12시 30분 특별군용기 편으로 사이공으로 떠났다.
정치/외교 1966년 09월 29일 박대통령 월남 방문
박정희 대통령은 오는 10월 18일 마닐라에서 열리는 월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길에 월남을 방문하고 주월한국군을 시찰, 위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통령의 방월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월남을 방문, 티우 월남 국가원수와 만나, 월남 정상회담을 갖고 주월한국군을 시찰위문하게 될 것 같다고 정부 고위소식통이 28일 전했다.
박대통령은 이번 호주와 뉴질랜드는 방문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산업/경제 1966년 12월 22일 월남속의 한국경제
만명선을 육박하는 파월 한국인 기술자들은 월남 속에 한국 경제권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계 회사인 RMK, PA&E, VINNELL, PHILCO, PAGE 등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대림, 현대, 공영, 한진, 통운, 경남, 삼환, 동진 등 많은 회사의 기술자들이 월남 땅에서 벌어들인 돈은 지난 15일 현재 9천 7백만 달러. 주월 경제협조 단장 김좌겸 공사는 '연내 기술고용 목표 인원 1만명선과 외화 획득 목표액 1억 달러선을 무난히 돌파할 것' 으로 내다보았다. 이들이 한국 스스로의 경제자립 발전에 공헌하고 노력하는 실태를 살피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엮어 본다.
우리 기술자들이 동남아 진출의 계기를 얻은 것은 국군파월 이후의 일이었다. 월남 안의 각종 후방군사시설의 건설과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고 있는 RMK, PA&E, PAGE, VINNELL 회사 등에 한국 기술자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작년 5월 발족된 것이 주월 경제협조단. 이때만 해도 월남 정부나 노동단체 등의 적지않은 반발이 있었다.
한국인 기술자 파월이 월남 내 각종 건설사업에 기여하고 상호 기술 협조를 월남인들에게 기술적 지도를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인식시킴으로써 인력 수출의 문호가 열렸다. 주월 경제 협조단은 65년 월남 내 미군건설대행기관인 RMK 회사에 대한 처녀 고용으로 42명을 취
업시켰다. 이들의 기술과 성실성은 높이 평가되어 한국 기술자의 요청이 점진적으로 증가하
게 됐다.
월남은 1평방km당 약 86명(한국 2백80명)이 사는 여유있는 나라.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 연간 5백 5만톤 이상의 쌀과 6만 5천톤 이상의 고무를 생산, 대부분 수출함으로써 1억 달라 가까운 외화를 획득해 왔었다. 그러면 월남이 66년도에는 1억 4천 달러어치의 미국 잉여 농산물 원조를 받고도 3백톤 이상의 쌀을 수입하게 됐다.
베트콩 지배 하에 있고. 전장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으로써 생산의 급격한 저하, 물자유통 질서의 마비 등은 물가와 물자 수급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했다. 54∼65년까지 24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해 온 미국은 올해 이미 6억 달러 가까운 원조를 제공, 40만 이상의 군대를 투입했는데도 월남은 66년도에 2억 5천만 달러의 정부 보유 달러를 써야만 했다.
그 대부분이 생활 필수품을 비롯한 건설용재, 기계 및 부속류, 섬유제품 화공제품 등의 수입에 씌어졌다.
현재 월남 내의 외국인 회사에는 한국인 기술자가 7천명 선을 넘어섰으며 모두 9천 4백 84명이 월남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의 본금은 회사와 직종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숙식비를 제외하고 대부분 3백~6백 달라 -평균 3백달라 이상을 매월 고국에 송금하고 있다. 나트랑 지구 PAGE 회사에서 용접공으로 근무하는 이모(24)시는 '시간의 근무를 줄곧 할 수 있어 한달이면 6백 50달러 쯤 송금한다' 고 말했다.
이들은 사이공을 비롯하여 봉타우, 캄람, 판랑, 나트랑, 다낭, 락기아, 추라이, 퀴논 등 월남의 주요 군사도시엔 뿌리박고 있다. 원칙적으로 미군 부대 영내 거주를 하고 있는데 위험도가 많은 영외 거주를 원하고 있다. 영외거주의 경우, 생활비 2백 50달러를 별도로 받고
사람에 따라 1백~1백50달러 선에서 절약할 수 있기 때문. 인력 진출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 3월 이후부터였으며 5천명을 돌파한 것은 7월부터였으므로 연말을 앞둔 66년 후반기의 외화
획득량은 괄목할 만하다. 돈버는 즐거움 속에 잘 먹으면서도 개운치 않음은 역시 김치, 고추
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기술자들은 말한다.
(1)RMK=한국 기술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RMK는 4개의 합자 회사로서 OICC(주월미해군건설기구)의 유일한 계약자이다. 비행장 건설, 축항공사, 도로공사 등 각종 군사시설을 담당하고 있으며 월남인 약 3만 4천명을 비롯 한국인 2천 3백 6ud 등 모두 4만 3천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재 약 3백 50명의 한국인 기술자를 추가 요청하고 있다.
보수는 최하 2백 25달러, 최고 6백 50달러.
(2)PACE= 56년 이래 한국에서도 공사를 맡았던 회사로서 MACV와 계약하고 있다. 육군의 군사시설 유지보수 및 신규공사를 담당, 현재 월남인 1만 2천명과 한국인 1천 4백 88명
등 모두 1만 5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장차 3천명 내외의 한국 기술자를 추가 고용할 예정이
란다. 보수는 최하 3백 달러, 최고 6백 50달러.
(3)VINNELL=개인 기업체로서 일반 청부업체. 미육군의 각종 장비 수리, 발전선 수리 및 유지, 기타 공사를 맡고 있다. 한국인 1천 5백 27명 등 1천 7백 여명을 고용, 앞으로 1천 4백여명의 한국인을 추가 모집하겠단다. 보수는 숙식비를 제하고 최하 3백 달러 최고 4백 50달러.
(4)PHILCO=FORD 자동차 회사의 자매회사로서 해군 및 해병대와 계약하여 각종 장비의 정비를 담당. 한국인 6백 88명 외에 미국인 2백 50명 등 모두 1천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5)PAGE=미국방성과 직접 계약하여 월남에 20여개 지역에 걸쳐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시설 기타 무전시설의 건설 보수 등을 담당. 미국인 4백 25명, 한국인 1백 25명 등 1천여명을 고용 중. 보수는 최하 3백 달러, 최고 7백 달러.
한진의 1천 88명을 필두로 통운, 동남의 2백 92명, 공영의 1백 34명, 동진의 70명, 현대의 67명, K.B.KIM의 65명, 근해상선의 47명, 대림의 44명, 삼환의 37명, 그 밖에 5명 내외의 군소업체 1백여명 등 수 많은 한국의 업체가 월남에 진출했다. 운수업의 경우 용역작업을 전담하는 만큼 밑천 안들이고 큰 돈번다는 정평이다. 그밖에 세탁업이 돈벌이로 좋단다. 건설업자들도 국내 굴지의 업체는 모두 월남에 발을 딛고 있다.
공사 규모 약 3천호의 캄란 소도시 건설 36개월 공사 계약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사에 한국 업체에 특권이 부여됐다.
이곳에서는 순번제 입찰로 출혈경쟁이 없다.
경협단장 김좌겸 공사는 '67년도에는 금년의 1만명 선에 5천명 정도를 새로이 증가 진출시킬 수 있다면 성공적일 것' 이라고 말했다. 미군 시설 및 후방 건설을 위한 장비들이 대부분이 이미 도입완료되어 있으므로 장비 운전관계 요원은 거의 충원이 되어 있고 또한 미군 시설의 상당한 부분이 완공단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앞으로의 월남 내 기술 인력의 소요는 건설이나, 장비 운전에서 시설 및 장비의 정비, 우지, 보수의 방향으로 옮기지 않는 한 5천명 선도 힘들 것 같다는 견해다. 보다 많은 인력 수출을 위하여 67년엔 군수 후방지원용역단의 진출이 절실하고 그것만이 고용확대의 첩경일 것 같다고 김공사는 말했다.
정치/외교 1967년 7월 8일 평화 올 때까지 월남지원
박대통령, 일지 서면질의 답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이 「명예로운 평화」가 성취될 때까지 대 월남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7일 인용 보도되었다. 박대통령은 일본의 유력지의 하나인 조일신문의 서면질문에 응답 이같이 천명했다. 조일 신문은 박대통령의 성명내용을 7일 보도했다. 지난1일 한국의 제6대 대통령으로서 취임선서를 한 박대통령은 월남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그들(공산주의자)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대통령은 월남에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국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침략음모가 무익한 것임을 깨달을 때까지 군사적 원조와 기타의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와 전체 아시아 번영에 관해 질문을 받은 박대통령은 『양국간의 발전과 번영뿐만 아니라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상호협조에 입각함으로써만 새롭고 번영하는 태평양 공동체의 현실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한일양국간의 국교정상화는 한국의 제1차 경제개발 계획에 크게 기여했다고 지적한 박대통령은 양국간의 경제협력의 강화는 또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안정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박대통령은 또 지금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를 환영한다고 말하고 아시아-태평양국가들은 평등과 상호협조에 입각한 새로운 공동 사회를 향해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치/외교 1967년 10월 12일 월남전보고 정취
박정희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김성은 국방부장관, 임충식 합참의장, 심흥선 함참본부장으로부터 월남전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산업/경제 1968년 8월 20일 월남종전에 대비
박정희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정례수출진흥회의에서 '앞으로 닥쳐올 월남종전에 대비해서 그 대응책을 강구하라' 고 지시했다. 박대통령은 또 국내 무역업자 중 모범업자와 부실업자를 조사하여 다음 회의부터 그 명단을 보고하라고 지시했으며, 한일경제각료회담에서는 실효성 있고 가능한 것부터 해결하라고 당부했다.
그 밖의 지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농기구 등 외국산품의 수입을 금지한 국산품 품질이 나쁘다는데 일정한 기간을 주어 품질을 개량하지 못하면 금수조치를 해제할 것
(2)해외시장과 생산동태에 관해 관계 공무원과 생산업자들이 소상하게 알도록 할 것.
(3)이번 한해를 통해 한국인의 낡고 안이한 사고방식을 개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어려운 일일수록 합리적 해결 방법을 모색해서 꾸준히 노력하는 의지를 기르도록 계몽할 것.
정치/외교 1968년 09월 22일 월남운명은 우리와 직결
[오클랜드시에서 본사 선우연 특파원] 박정희 대통령은 21일 오클랜드의 매킬로이 시장이 베푼 리셉션에서 즉석 연설을 통해 '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은 현재 월남을 적화하려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한국에 마수를 뻗칠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확신하다' 고 말하고 '이러한 정세 판단에 따라 월남의 운명은 바로 한국과 직결되고 있다' 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이것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결국은 뉴질랜드와도 직결되는 문제' 라고 지적하면서 '월남이 공산주의자들 수중에 넘어가면 말레이시아나 태국도 침략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더욱 남하하여 인도네시아에 공산기지가 마련되면 뉴질랜드도 안심할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 방문의 마지막 기착지인 이곳 오클랜드 시청의 리셉션 자리에서 대양주 방문이래 처음으로 준비된 연설문 대신 공식 즉석 연설을 한 박대통령은 '뉴질랜드에 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사회를 후세에까지 유지하려면 그 저해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고 말하면서 '그 저해 요소란 바로 공산주의' 가로 강조했다.
박대통령은 '1950년 한국에 대한 침략 행위를 비롯, 오늘날의 월남전 및 한국전선 일대의 도발 행위를 볼 때, 그들의 침략 의욕이 조금도 감퇴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내일 공동성명 발표
박대통령 내외는 23일 오전 8시 30분 5일간의 뉴질랜드 공식 방문을 마치고 20일의 박-홀리오크 정상회담 및 일련의 각료급 회담의 결과를 담은 공동성명을 바표한 뒤 오클랜드 공항에서 공항행사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 공동 성명은 한국과 뉴질랜드 정부가
(1)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동목표 추구를 위한 전진적인 협력 자세의 필요성
(2)월남의 항구적인 평화달성을 위한 마닐라 참전국 공동선언 정신의 재확인
(3)북괴의 무력 침공재발에 대처한 한국 참전 16개국 선언의 재확인
(4)아스팍의 강화를 통한 지역협력 및 결속체제 확립
(5)축산-어업 분야의 합작투자, 통상확대, 문화 및 기술협력 문제 등에 합의했음을 밝히게 될 것이다.
박대통령 일행은 21일 오전 공로로 북부지방 해밀턴 시에 도착, 차량 편으로 홀리오크 수상의 안내를 받아 존스턴 목장, 코마코라운 치즈공장, 리멜 브러더즈 낙농공장 등을 시찰하고 오후 5시 15분 오클랜드 시에 도착,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2박3일의 마지막 일정을 위한 여장을 풀었다.
박대통령은 일요일인 22일 관광 및 휴식, 농장 및 항만 방문 등 비공식 일정을 보낸다.
정치/외교 1969년 05월 30일 월남 경제개발 적극 지원
한국과 월남은 30일 오후 1시 월남에서의 명예롭고 항구적인 평화 회복과 한국의 전후 복
구 사업에의 적극 참여를 다짐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한다.
티우 월남 대통령의 4일간 공식 방한이 끝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서울과 사이공에서 동시에 발표될 이 공동 성명은 정치, 군사 문제에 대해
(1)마닐라 선언의 재확인
(2)연정반대
(3)침략자 철수를 전제로 한 연합군 철수와,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1)한국의 월남 평정 계획에 적극 참여
(2)경제 개발 계획 수립 지원
(3)메콩 델터 조합개발계획지원
(4)무역에 있어서의 제3국에 비한 우선적 처우 등 주로 한국의 대월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15개의 항목으로 되어있는 이 공동 성명은 우선 마닐라 공동 선언 원칙에 의한 월남에서의 명예로고 항구적인 평화 회복을 다짐하고, 협상을 통한 해결을 추구하되 공산측의 무성의 기만전술에 대비하여 군사적 노력을 병행시킬 것과 필요시의 대응조처에 대한 결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철군 문제에 대해 공동 성명은 침략자 철수, 침수 중단, 폭력 종식을 전제로 연합군이 철수할 것과 이 문제가 월남 및 연합국간의 협의를 거쳐 결정도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은 이어 연리 정부를 포함한 어떠한 정부 형태도 월남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협상을 포함한 중요 문제에 대해 한월 양국은 긴밀히 사전 협의를 할 것과 연합국이 협상에 참여해야 된다는 종래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협력에 대해 한월 양국은 무역확대 및 경제기술 협력 강화에 합의하고, 특히 상호간에 제3국에 비한 우선적 처우를 할 것을 약속, 계속해서 전후 복구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평정 계획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과 월남의 경제개발 계획을 그 수립 단계에서부터 지원한다는 것, 또 메콩 델터 종합 개발계획에도 한국이 지원한다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또 한국이 월남에 종합병원을 건립한다는 것, 가까운 시일 안에 상호간에 민간항로를 개설한다는 것, 연례 경제각료회담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 및 가까운 시일 안에 양국간에 경제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에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외교 1971년 11월 07일 월남평화 다가와
박대통령 담화 십자군정신살려 통일 노력
박정희 대통령은 6일 오는 12월 1일부터 실시되는주월한국군의 제1차 철수에 즈음하여 다
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우리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젊은이들로 평화의 십자군을 편성하여 전화에 싸인 월남땅으로 파견한지 7년이나 됩니다. 돌이켜보면 월남에 대한 공산
침략은 비단 월남의 안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자유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집단 안전보장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수행하기 위
해 월남에 대한 각종지원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남에 하루 속히 평화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시도 우리의 가슴속에서 가신적이 없습니다. 우리 평화의 십자군은 그 동안 여러가지 역경을 이겨나가면서 월남땅에서 평화를 회복하고 자유를 수호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훌륭히 행동으로 시범했으며
그 결과 월남에서는 평정계획과 월남화 계획이 순조로이 진행되고 월남군의 전투력은 착실
히 강화돼 군사정세가 전반적으로 호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제1단계 조처로 오는 12월 초하루부터 제2 해병단을 포함한 약1만명의 주월국군을 철수키로 결정했습니다. 이들 병력은 1972년 6월 30일까지 철수 완료될 것이며 또한 정부는 나머지 병력의 철수 문제도 월남정부 및 기타 참전연합국정부와 협의하여 시행해 나갈 방침입니다. 나는 오늘 주월국군의 제1차 철수계획을 발표하면서 월남땅에도 평화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국민들과 더불어 항구적인 평화가 하루속히 아시아와 세계의 모든 곳에서 확립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 등을 누리려면 고귀한 대가와 희생을 치러여 한다는 6.25 전란의 경험과 월남파병의 교훈을 깊이 명심하여 조국의 안전과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을 더욱더 확실하게 기울여 나갈 것을 모든 국민들에게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그동안 주월국군방병들이 평화와 자유의 수호자로서 맡은바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케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이를 지원해 주신 국민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특히 유가족 여러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는 동시에 유족 여러분의 앞날에 평화와 영광이 영원히 빛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정치/외교 1972년 11월 04일 박대통령, 월남특사접견
박정희 대통령은 3일 오후 김용식 외무부장관 안내로 청와대를 방문한 월남대통령 특사인 팜당람(파리평화회담 월남수석대표)씨를 접견했다. 람특사는 박대통령에게 파리회담의 진전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외교 1972년 11월 28일 월남복구 사업에 참여
수출진흥확대회의 - 한월실무위서 추진 중
정부는 27일 오전 10시 박정희 대통령 주재하에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제10차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고 월남전의 종전에 따른 전후복구사업 참여문제와 10월 유신 경제외교 강화대책 등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식 외무부장관은『미국, 일본과 영, 불, 독 등 월남전후복구사업에 원조제공 또는 진출을 계획중인 국가들과 접촉을 강화하여 우리 나라도 참여 할 수 있도록 교섭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김장관은 특히『미국무성 키신저 보좌관실에서 월남 전역에 대한 전후복구 및 경제부흥을 위한 원조계획을 입안, 하노이 측에 5년간 75억달러 제공을 제시했으며, 구체적인 원조계획을 한국에 통보키로 약속했다.』고 밝히고『우리 나라도 대월복구원조를 제공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장관은『월남복구사업을 위해 지난 24일 외무부,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건설부, 노동청 등 관계부처간에「한월경제협력 실무위원회」를 설치, 제1차 회합을 갖고 작업계획을 협의했으며, 월남정부와는 지난 70년이래 연기중인 제5차 한월각료회담을 조속한 시일안에 개최토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장관은『10월 유신선언 이후 전재외공관을 동원, 강력한 경제외교활동을 벌여 한달동안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속도로건설공사(1천3백68만달라)등 8개국에서 4천85만달러 상당의
국제입찰에서 낙찰을 보았으며, 각국 언론계도「대한경제 통상관계는 한층 활기를 띨 것」
이라는 일반적인 논조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중앙청에 전시된 완구수출품을 돌아보았다.
정치/외교 1972년 12월 09일 월남 비단병원 바자회에
육여사 이불-의자 등 보내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는 오는 16, 17일 이틀동안 월남 사이공에 있는 비단병원에서 열리는 바자회를 위해 누비이불 1백채와 의자받이 50개등을 티우 월남대통령부인에게 기증했다.
육여사의 기증품은 1백20만피아스타에 상당한 물품이다. 티우 대통령부인은 월남의 병상군인, 전쟁고아등을 위해 매년 바자회를 주최하고 있으며 육여사는 지난해에도 월남 바자회를 위해 많은 물품을 보내 왔었다.
정치/외교 1977년 09월 24일 박대통령, 월남 난민에 추석선물
[부산]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신현확 보사부장관을 통해 월남난민보호시설에 수용중인 난민들에게 중추절을 맞이 의류 등 생활필수품을 구입토록 금일봉을 하사했다.
지난 6월 이후 공산 월남을 탈출, 남지나해에서 구조되어 우리 나라에 온 난민들은 4차례에걸쳐 1백 60명이다. 정부는 인도적 입장에서 이들의 입국을 허가 그 동안 부산 인천 광주 등지에 분산수용하여 대한적십자사에서 구호해 오다가 박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총공사비 4천2백만원을 들여 부산시 동래구 재송 등에 현대식 보호시설을 마련해 지난 15일 이곳으로 옮아와 입주케 된 것인데. 이들이 제 3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보호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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