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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문 앞에서 출근 인사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이 애비는 급하게 방을 나와 너를 배웅 나간다. 너는 이미 문밖으로 나갔다.
" 다녀오거라." 하고 부모가 합창을 한다. 네 목소리는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있다. 돌아서서 네가 떠난 빈방을 본다. 간밤에 너는 어김없이 게임으로 보낸 자취를 본다. "일을 하려면 요즘 노트북을 시야해요." 하고 들여 놓은 노트북으로 휴일이면 온종일을 게임으로 보내고 평일마저 한밤에 퇴근을 하고서도 새색시 품에 안듯 껴안고 있구나.
너를 지켜보면서 이젠 말을 않기로 한 것은 네가 이 아비에게 쇄기를 질렀던 다음부터이다. "저도 이제 성년이에요. 제가 알아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알아서 하는 일이 쉬는 날이면 게임만 하고 있구나. 직장 스트레스를 푼다니 더 할 말도 없다.
이제 너는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네 방에는 게임을 하면서 먹은 컵라면 껍질. 퇴근하여 벗어던진 와이셔츠 ,목욕하고 벗어 던진 팬티가 방바닥에 질펀하다. 네가 떠난 빈자리를 보조기에 의지하여 절뚝절뚝 어머니가 챙겨야 한다. 허리를 구부리고 떨어진 속옷을 주울 수 없는 어머니는 효자손을 들고서 줍는다. 아니면 애비가 주워 빨래 통에 넣는다. 네가 있으면 "네 빨랫감을 빨래 통에 넣어라." 하는 말을 이제 하기도 지쳤다.
"우리 아들은 무정한 아들이 아니라 그냥 깜박 잊을 뿐." 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그러려니 믿어 보려고 애를 쓴다. 올해 네 어머니가 다쳤을 때 넌 어쨌냐. 119를 호출하려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 "더 힘들고 급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병원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던 너는 과연 우리 가족보다도 전혀 알지 못하는 남에 대한 따뜻한 배려에 열심이구나. 꼼짝 못하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후송하려고 병원 구급차를 부르려는 네 말에 "그래, 우리 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겠지. " 하고 병원 구급차를 불렀으나 그 병원에는 차가 없었다. 부득이 나는 119를 불러서 꼼짝 못하는 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비는 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병원에 입원하여 아비가 어머니 곁을 밤낮으로 지키는 동안 너는 하루에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 하고 어쩌다 얼굴을 들이밀고 왔다간 나그네처럼 사라졌다. 네가 간 집에서 그 시간에 너는 게임을 하는구나.
어머니 말마따나 자식의 손보다 남편이 낫고, 회사에서 힘든 아이가 어머니의 간병을 하기 힘들다며 어머니는 늘 네 편이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왔다. 집에 있어도 병원에 갈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너는 함께 있을 시간이 없고 아비가 어머니를 데리고 간다. 혼자서 걷지 못하고 서 있기만 할 따름이면서 아픈 곳이 있으니 병원에 가려면 참으로 큰맘 먹고 나선다.
지난 번, 대치동에 있는 비뇨기과를 다녀와서였지. 어머니가 네게 말을 한다. "아버지가 경비하고 싸울 뻔 했단다. 주차를 시켜 주지 않는다고 말다툼을 해서 혼났어." 아들이 말한다. "왜 주차를 못 시키게 하던가요?" 어머니 "그래 연립 주차장인데 차는 마침 한 대도 없기는 했어. 가라는 거야. 손가락 짓을 하면서 나가 라더구나. 네 아버지가 장애자 주차증이 있고 환자가 걷지 못하니 30분만 세우자고 부탁을 해도 막무가내야. 하니까 네 아버지가 경비에게 사람이 누구나 장애자가 될 수 있는 게니 좀 사정하더구나. 그래도 안들어주더구나. '잘 살아 보라'고 네 아버지가 하는 바람이 싸움이 나는 줄 알았어."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불쌍한 경비에게 왜 그러세요. 다른 곳에 가서 주차를 하시지 않고요." 이 애비는 가슴이 막힌다. "아들아, 어떻게 경비가 불쌍하냐. 당당한 직업이고 이 애비도 경비를 하려고 여기 저기 청을 넣고 있단다. 경비는 마땅히 자기 지역을 지켜야겠지. 다른 사람이 와서 차를 세우면 안 돼. 그러나 그 연립의 손님이라면 세우게 할 것이란다. 아니면 꼭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라면 자청하여 주차를 하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인정이 아니냐. 우리가 이런 불행을 겪을 줄 누가 알았냐. 더구나 네 어머니는 남을 위한 배려라면 일등인 사람이 아니냐. " 아들아. 이제 아비도 힘이 빠져 네 어머니를 업고 갈 힘도 없다. 네가 나서면 되련만. 우리가 너의 힘이 필요할 때 너는 늘 멀리 있지 않느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저도 어머니가 장애인이라 늘 마음이 아프다고요."
부모와 자식사이에 대화가 이렇게 끝난다.
어머니가 장애를 가졌다고 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착한 아들과 그 착한 아들을 착하다고 인정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무슨 말을 보태랴. 아내가 나를 부른다. "방을 자꾸 들여다보지 말아요. 일자리 있어서 출퇴근하고, 방에 있는 빨래걸이는 우리가 치면 되지요. 우리 속을 썩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언제 자식에게 효도 바래요? 자기 알지요? 나에겐 자기뿐. 자기에겐 나뿐이란 걸."
"그래 알지." 먼 훗날, 우리 죽어 저승에 있을 때 아들 녀석이 때가 되어 상을 차려 우리를 부르면 그때도 아내는 절뚝절뚝 하며 이 남편을 지팡이 삼아 아들 보러 이승으로 오겠지. 그래 안다. 생각하면 나 또한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얼마나 아버지에게 불면의 밤을 드렸던가. 이 또한 대물림이 아니고 무엇이냐.
아들아. 너는 네 말대로 장애자의 아들이란다. 자랑은 아니나 장애자가 살기 힘든 세상에 목소리 높였다고 아비를 욕하기보다 이렇게 한마디를 해주련. 아버지, 힘내세요. 제가 한 번 어머니를 업고서라도 병원에 모시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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