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May 12th Friday : The 3rd Day Story of 3N4D 0Sketch Journey with Saturday Painter Association Members
Today Sketch Place: 구례 천은사 , 31km, 30여분 걸리는 짧은 거리입니다.
점심은 주차장 부근 한식부페라고 정정호 회장 안내
( 점심 무엇을 먹을까 신경쓰지 않을것 같아 좋네요^^)
My Works :
1. Soft Pasfel on Paper
Size : # 10 P
Object: Around Chununsa Buddhist Temple
시작과 그리기 한시간 까지는 좋왔는뎅~, 그뒤로 헤매다가 미완성으로 마쳐서 개운하지 않았다...
집에서 목욕재개 하고 다시 정 붙히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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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ines :
06:50 : 늦게 취췸해서..알람 3개를 했는데
첫번째 알람에 기상했다..
이불속에 꼼지락하면
의식하지도 못하고 훜쩍~ 한시간이
훅~ 갑니다.
08:00 : 롯데마트에사 첫날 사놓은 것으로
아침 편하게 먹었더 ( 과일 + 빵+ 쥬스 등)
09:00 -0930 : 천은사 도착!
지리산 3대 명찰이 화엄사, 쌍계사 그리고 이곳 천은사라고 하는데.. 내가 처음오는 ,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쉽다..
주차장 여유있게 넓었다.. 사찰앞에 흔히 있는 상가와 기념품 가게가 없다!
주차장에서 바라보이는 일주문부터 그림같이 이쁘고 초파일 전이라 오색 연등이 이쁘게 초록바탕색 속에 있었다!..
사찰속에 들어가니 가게가 있었다.한국화 그리시는 한참 연배 여성 화가님이 커피를 사주셔서 아주 맛있게 마시고 두세분 프로파일용 사진 서비스도 했다..
절은 구경하기에 충분한 멋졌다... 대웅전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가운데 있었다.
행랑채에 젊은 Temple Stay 하러온 여성에게 왜 대웅전이 아니고 극락보전이 있냐고 물었더니.. 다른 보살님 왈 " 아미타불을 모섰다 합니다"
우리가 보통 염불에 "나무아미타불" 할까 그 아미타불 이다..또 가장많이 하는 염불로 " 관세음 보살" 많은데...이유는 관세음보살을 대중 들이 가장좋와하는데 천수 천안으로 중생들에 고통과 번뇌/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하여 인끼 최고에 보살이다..
혹 우스게 소리로 석가모니 부처를 본존불로 있는 대웅전에서 혹시라도 ㅎㅎ 관세음보살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먼... 주인아닌 다른 분을 찾는 모양이 됩니당~ ㅎ
아미타불은 미래보살인데 상세내용 아래에 시간있면 일견 하세요~
천은사가 알려지지 않고 사찰앞에 상가와 식당이 없는 이유를 생각 해보았다.
생각한 결과 : 지리산에 사찰을 간다먼...보통 알려진 화엄사 그리고 쌍계사로 가지 알려지지 않은곳은 방문 우선순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즉 화엄사/ 쌍계사 있으니 이 두 사찰이 강력하게 방문 흡입력이 있어서 인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예: 중국 북경이 워낙 유명해서.. 부근 100km 이내에 명승지는 사람들이 모르거나.. 가지도 않는다, 학자들만 온다고 내가 20여년전 북경 현지 여행사이용 가보았다.
: 산시성에 대동 이란 곳이 그렇다.. 중국 3대 석굴( 대동 석굴이리는 어머어마한 유적지가 있고 , 븍위 시대 수도로 모용씨가 건국, 한족이 아니다.
그리고 쉬안쿵사
Xuan kong si, 悬空寺(현공사)
1400년 전 북위(北魏) 랴오란[了然] 스님이 세웠다. 지면에서 약 50m 높이의 절벽의 움푹하게 들어간 자리에 위치하며, 비바람, 낙석으로 인한 피해를 막고, 근처에 흐르는 강물로 인해 점차 수면이 상승하는 것을 계산하여 만든 것이다.
( 아래 사진 참조) , 한산사 사찰과 철탑도 유명
중국 에 방향으로 오악산라 불리우는 명산이 있는데.. 서악 화산(西岳华山 : 무협지에 나오는 화산파 ㅎㅎ ). 동쪽에 동악(东岳) 타이산(泰山, 태산)
후난성(湖南省)의 남악 헝산(南岳 衡山)이 있고
가운데는 중악 쑹산(中岳嵩山: 네.. 소림사가 있는 숭산.. 유네스코 지정 자연보호 지역)
대동부근에 바로 북악항산(北岳恒山)이 있다.
이런 장소들이 모두 베이징 있어서 잘 가지 않고 알려지지고 않았음..아마 이런 곳들이 중원에 외갓지게 한가운데 있으면 패키지 여행으로 많이들 갈것인데.
( 잠시 일기 기행문이 옆길로 샜당..)
12:00 : 점심 한식부페 13:00 까지..
채소, 나물 중심의 건강식 + 막걸리..보통 산채비밈밥으로 만들어서 회원들이 즐겁게 드신다..
ㅎㅎ 나는 고추장으로 비비지 않고 그냥 먹었다..서양사람 맹키로^^^
- 14:08 : 콘테 outline 마치고 파스텔 색칠하기
시작
- 16:00 까지 완성도 ,한참못하고 ..접었다
- 16:50 천은사에서 님원 숙소로 출발 .
- 17:30 숙소 도착.. 사진 정리하고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산책만 하고 CVS에서 삼각김밥( 명란+ 참치) 컵라면 + 삶은 반숙 달걀 2개( 와우 정말 반숙이었당!!).
- 밤에 김사부 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다스뵈이다도 보다가 잠깜 들어누었는데.. 걍 코 잤다.
일기를. 못써서 오늘 5/13.토요일 구례에서 서울가는 버스에서 씁니다..
(ㅎㅎ 이것 SNS에 올리고 난후 오늘 5/13 이야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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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泉隱寺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덕운선사(德雲禪師)와 인도에서 온 승려 스루가 창건하였고,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졌다고 한다. 그뒤 875년(헌강왕 1)에 보조선사가 이곳에 주석(駐錫)하면서 중축하였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 제일 사찰’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불탄 뒤 중건할 때, 샘에 큰 구렁이가 자꾸 나타나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고 바꾸자 그뒤로 원인 모를 화재와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을 지키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두려워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일주문 현판으로 걸었더니 그뒤로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현재 20여 동의 건물이 있다. 법당인 천은사 극락보전은 다포양식을 갖춘 화려한 건물로,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천은사 극락전 아미타후불탱화(보물)는 18세기 한국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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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阿彌陀佛 :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를 가리키는 신앙대상.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줄여서 미타(彌陀). 아미타불의 신앙을 중심인 교가 정토교(淨土敎)다.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은 처음 인도에서 아미타유스(amita-yus: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無量壽), 아미타브하(amita-bhas:한량없는 광명을 지닌 자, 無量光).8,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졌을 때는 모두가 아미타라고 음사(音寫)됨.
따라서, 아미타는 이 두 가지 원명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중국 및 우리 나라에서는 이 아미타와 병행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는 의역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으로 직시되고 대승불교에 의해서 구원불로서 존숭되었던 때에 출현된 부처로 보고 있다.
그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願)을 세웠다.
그는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다.
그 뒤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淨土)의 대표적인 장소.
그리고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함.
아미타불의 본원은 48대원(大願)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면,
①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불행이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나’와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을 것, 내 국토에 나는 이는 이 생에서 바로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서 바로 부처를 이룰 것, 내 광명은 한량이 없어 적어도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 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또 내 수명은 한량이 없어 백천억 나유타 겁으로도 셀 수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의 목숨이 한량이 없을 것,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내 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가서 나려고 하는 이는 열 번만 내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가서 나게 될 것, 보리심을 내어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발하여 내 국토에 가서 나려는 이는 그가 죽을 때 내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 사람을 영접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어떠한 신앙보다도 이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6, 7세기경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미타신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신라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 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공로자로는 원효(元曉)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토교를 보급하기 위해 신라의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저서들을 남겼다.
미타신앙의 한국적 수용의 한 특성은 선(禪)과 극락정토의 회통적인 종합 노력이다.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과 선이 둘이 아니라는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전통은 원효가 “오직 마음이 정토요, 성품은 아미타불과 같다(唯心淨土同性彌陀).”를 천명한 이래,
지눌(知訥)·보우(普愚)·나옹(懶翁)·기화(己和)·휴정(休靜)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는 대부분 극락전(極樂殿)이라는 법당을 갖추고 그 속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두고 있다.
0相圖) 등이 있다.
현재 아미타불은 불교의 신앙문에서 타력 신앙의 중심 부처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첫댓글 정말 기록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습니다. 어찌 그 옛날의 추억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계시는지. 감탄합니다.
또 다른 하루 사생 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늙으면 과거에 살게되고 기억도 잘한다고 하더이다~~ /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씀!!
유난히 사천왕 인상이 무섭게 느껴지는 천은사 어렸을적 같으면 기겁을하고 도망 갈것 같은 공포적인 사천왕이어습니다. 하지만 우리 토요화가회 회원 무탈하게 보호해 달라고 /동방에 물뿌리고(맑아지고) 서방에 물 뿌리고(청량해지고) 남방에 물뿌리고(정토가되고) 북방에 물 뿌리니...평안해지네~
그래서 우리는 무탈하게 잘 도착
마지막까지 멋진 사진과 함께 올려주신 사생후기 또감사드립니다(♡)
도반님!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