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보내며
2024.9.16
추석 전날 아침입니다.
지금쯤 그리운 분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우리집에도 귀한 손님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딸, 사위, 손녀가 왔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집안에 생기가 돕니다.
며칠 째 바닷가 수영장에도 가고
집안 풀장에서도 깔깔 거리며 노는 모습에
우리 부부도 오랫만에 박장대소를 합니다.
지금 한창 말을 배워 의사표시를 하고
궁금한 것을 계속 물으며 관심을 갖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한번 더", "한번 더" 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달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부모님에게 웃음을 주는
4살~5살 까지가 평생 효도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이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매일 키와 몸무게를 달지만
어른들은 아이가 크지 않고 계속 즐거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제주시에 있는 친할머니에게 갑니다.
그곳까지 외할머니가 차로 동행합니다.
할머니와 헤어진다는 말을 하면
섭섭하다며 울먹울먹 합니다.
그래서 헤어짐의 순간이 늘 힘듭니다.
다행하게도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같은 제주도에 살아서 덜 힘든 여정입니다.
이제 섭섭함을 뒤로하고 그동안 충전된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가족이 다 모여 앉아 송편을 만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차례상에 올라간
홍시와 곶감에 눈독들이던
일도 생각납니다.
사무친 내고향
靑雲. 丁德鉉
아침이면 감나무에 까치가 울고
빨래줄 강남제비 새벽잠을 깨우던
정겨운 내고향
앞산 진달래꽃 활짝 피어나면
동네 아낙들과 산 등넘어 고사리를 꺽고
어머님 싸주신 김밥 한줄
지금이야 잊혀진 세월이지만
먹거리가 시원찬아
고향을 등에 업고 떠난지 수십년
죽마고우 친구들도 서울로 부산으로
어머님 품속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무친 내고향
그리운 마음에
이따금 한번씩 찿아 가 보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랜만이야 반갑다고 잡아본 손길
웬지 지금은
옛날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고향의 산과 들은 그대로인데
인심이 달라진건 왜 일까?
내가 변한건가? 세월 탓 일까?
일년도 아닌 수십년이 지나다보니
그럴만도 하겠지!
그래도 언제나 사무친 내고향
"눈 감으면 고향이요" , "뜨면 타향" 이라는
유행가의 가사도 있듯이, 도대체 고향이 어떤 곳이길래
사람들은 그 정을 못 잊어 하는 것일까요.
이 가을이란 계절에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더욱 고향의 짙은 향수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떨어지는 낙엽도 나무가지의 애절함에 그리움을 그리듯
메마른 가랑잎으로 바람에 일렁이며 속삭이는 울부짖음은
모테의 나무를 더욱 쓸쓸하게 하는가 봅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난 가랑잎이고 보면
타향살이의 애환에 서러움이듯 가랑잎을 밟으면서
고향 어귀에 동구밖을 서성이는 울렁임에 향수로 애가 탑니다.
누구든 고향에 추억어린 기억들로, 이런 추석명절이면
이불을 차내면 감기들라 종일 덮어주시는 어머니와
다리아프다 칭얼대면 무등을 태워주시는 아버지와
타박타박 티각태각 좋아하기도 싸우기도 하던 누나,동생들을
그리워하며 맞이하게 되는 것을...
어머님 사랑속에 우리는 편안했으며,
아버님 든든함에 우리는 자라났으며,
형제들 우애속에 우리는 즐거웠으니,
따뜻한 나의 고향에 나 어릴적 어버이와 형제들이 있습니다.
고향산천을 무상하게 그 세월을 이렇게 그렇게 살아오면서
어버이의 묘소에 통곡하고 불효자의 뉘우침은
형제들의 돈독함을 잃어버리고 내 앞길만 바삐 가던
어버이 정을 못내 울부짖음에 통한의 애곡이 서리운채라
어버이의 정과 형제들의 정들이
향수의 그리움으로 고향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고향에는 친구 동생 형님의 정이 어려있는 곳입니다
나의 그림과 동심의 이야기들 모두가
고향 동산에 꿈이 서리듯 움터있고
멱감으며, 서리하며, 뛰어놀며, 살아 숨쉬었던 지난날들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그 시절을 돌아보며...
봄에는 연분홍빛과 가을엔 노란 미색의 황금 나락의
삶이 숨쉬고 있는 고향으로 단숨에 달려가고 싶습니다.
첫댓글
추석 명절 잘보내시고 계시지요
제주의 추석명절을요
세잎 클로버 님
이런 저런 옛풍경에서
어린시절의 시골집에 풍경입니다
감사합니다.
양떼님 추석 잘 보내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