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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잠언을 주신 것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움으로 첫째로는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둘째로는 복음을 들어내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잠언의 주제는 1장 7절과 9장 10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1장 7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고, 9장 10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셨습니다.
1.사람은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또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되는 까닭입니다.(잠 1:7; 9:10)
근본이라는 말은 기초, 기본, 시작, 이라는 뜻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견고한 집을 지울 수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바람이 불거나, 홍수가 나면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견고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기본입니다.
화장실에 갈 때 줄을 서고, 화장실 문을 노크하고…, 저도 어렸을 때 그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기본이 잘돼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안되었기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따라서 우리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기본을 탄탄케 해줍니다.
이러한 이유로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2.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가?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한다. 무서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순종한다.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많이 기록해 있습니다.
선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고(벧전 3: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살전 5;16-18) 그리고 거룩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 하셨으며(살전 4:3) 에베소서 1장 10절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사람이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마 7:21-23)(고전 13:1-3)
둘째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원하고 또 열심히 사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다 하나님 사랑하죠?
여기에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분 계세요? 없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침, 저녁으로 무릎꿇고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두 손을 번쩍 들고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외칩니까?
그것도 좋은 거겠죠?!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 ?
요한1서 4장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구체적 행위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정의 내리기 힘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을 4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하는 사랑..... ,달라! 달라! 하는 사랑,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르는…, 이런 사랑을 돼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남에게 줄줄을 모르잖아요. 주는 대로 먹고, 또 달라고 하거든요....,
또 먼저 받고 주는 사랑, 이것을 개(犬)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개는 자기를 귀여워 해주는 밥 주는 사람을 따릅니다.
먼저 받고 갚는 사랑, 이것이 두 번째 사랑이에요
세 번째 사랑은 먼저 주고, 받는 사랑…,
사람은 보통 먼저 주고,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응이 없으면 미워하기도 하지면…,
그래도 돼지 사랑이나, 개 사랑보단 낫지요.
가장 차원이 높은 사랑은 주고 또 주는 사랑입니다.
이걸 성경에서는 아가페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줄 압니다.
누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먼저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대가를 바라고 한다면 이것은 인간적인 사랑에 불과 합니다. 또 우리는 사랑하고 싶을 때만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하기 싫어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을 때만 아니라 싫을 때도(미울 때)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이런 사랑을 하셨습니다)(롬 5:8)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가 있느냐?
우리는 누가 조금 자기에 대해서 나쁜 말만해도 속에서 미움이 솟구치는데, 인사를 안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데…, 실제로 그렇잖아요?
우리는 자기에 대한 뒷소문을 많이 듣습니다. 빙빙 돌아 자기한테 들려 올 때면, 속이 뒤집힐 정도로 내용이 바뀌었지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 얘기를 누구한테 들었냐고 살살 물어 보죠. 그래서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알면, "그 사람 육이 연약하니깐 그렇겠지 어떻게 권면 해줄까?" 그런 생각하세요?
그런 분이 계시면 천사예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골탕 먹일까? 복수할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약점을 하나하나 찾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꼭 보복합니다.
바로 이런 육의 본성이 내가 먼저 사랑하지 못하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랑 할 수도 없게 하고, 싫어도 사랑할 수가 없게 합니다.
따라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점에서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형제에게 어떻게 행할 것이냐?
첫째 형제들의 연약함을 담당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가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자기 믿음을 자랑하지 말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난하지 말고, 도리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의 기쁨을 구치말고 그 사람의 기쁨을 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로마서 14장의 말씀을 알아야 하는데, 14장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고기를 못 먹고, 채소만 먹는 사람이 있었고, 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먹지 못하는 사람을 믿음이 약하다고 업신여겼고, 채소만 먹는 사람은 고기 먹는 사람을 정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날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먹는 자도, 자기를 위해서 먹는 자가 없고, 날 중히 여기는 자도 자기를 위해서 중히 여기는 자는 없다. 먹는 자도,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해서 먹고, 먹지 않는 것이요, 또 날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롬 14:1-8)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말씀 하셨어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구원 받은지 오래됐는데도 늘 상 초보의 초보를 얘기하면서 헤매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지지요?
한 번, 두 번, 자세히 가르쳐 주고 권면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집을 부리면서 헤매면 은근히 화가죠. 그런데 문제는 화가 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뒤에 가서 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합니다. "구원이 의심스럽다…" 등
이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시켜 주는 거예요.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장점은 들어내고, 단점은 내가 보충 시켜 줘야 합니다.
영국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장점만 보고, 실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의 약점을 비방하면서 즐기려고 하지말고, 오히려 그 약점을 감당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수 없습니다. 사람은 둘이 합해야 온전하게 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된 사이입니다.(롬 12:5)
그러므로 다른 형제의 단점을, 약점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첫 번째 모습입니다.
둘째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롬 12:10)
누가 먼저 사랑하라고 했습니까? 서로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네가 나를 존경하면 나도 너 존경 해줄게...., 이것은 개 사랑입니다.
너는 나를 존경하기만 해라…, 나만 사랑해라…,하면 이것은 돼지 사랑.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말씀 하셨어요.
이 말씀은 우리가 서로 먼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탈을 쓰고 있고, 사람인 것처럼 말도 하고, 행동하지만 돼지나 개처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나 돼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셋째 서로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2-13)
우리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인 본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작은 손해를 입혀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이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서로 불쌍히 여기며, 그리스도가 용서하신 것 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서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6장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범죄한 일은 구체적인 범법 행위를 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점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잘하려고 하다가 실수도 합니다.
"범죄"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판단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지, 남을 판단(비난, 정죄)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잘못 했을 때에, 판단하고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판단(정죄) 할 권리가 없습니다.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께서 오셔서 각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고전 4:3-5)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꾸 판단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실제로는 사랑의 열매를 얻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방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범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또 그를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아 자기도 동일한 유혹을 받을까, 동일한 잘못을 범할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입이 잠잠해 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되면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나를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가 있습니다. 나를 알게 되면 정말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요 13:34)
서로 사랑하는 것은 누구를 사랑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범죄한 사람을 바로 잡아 주고, 자기를 돌아보고, 그리고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 "짐"이라는 말은 아주 무거운 짐, 곧 한 사람이 지기에는 무척 힘든 짐을 말하는 겁니다.
무거운 짐은 어떻게 지라고 하셨느냐? 함께 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한다, 존경한다, 고 하면서 짐을 함께 져야 할 때가 되면 한발 뺍니다. 그럴 뿐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말의 잔치는 풍성한데 행위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짐을 함께 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는 열매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곧 형제를 사랑할 때 어떤 열매를 얻느냐?
세 가지만 찾아보겠습니다.
잠언 3장 7절 보겠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는 첫 번째 열매는 골수로 윤택케 되는 것입니다.
골수는 생명의 원천을 얘기합니다.
가물게 되면은 땅이 마르고 거북이 등처럼 갈라집니다. 거기엔 생명체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을 주면 생명체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 마음도 가뭄에 갈라진 상태로 될 때가 있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마음이 즐겁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그저 그래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하면 골수로 윤택케 됩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좋은 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좋은 약이 많이 나왔어요. 하지만 죽지 않게 하는 약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죽음이라는 병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어요. 완전하게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습니다.
딱 두 첩이면 되요. 구약(舊約) 한 첩, 신약(新約) 한 첩, 두 첩만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말씀이 양약이 되지 않는 것은 성경을 읽고 연구는 많이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19장 23절 말씀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보약을 먹어야만 건강해지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게 되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경외하는 자는 넉넉하게 지내게 됩니다.
우린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큰 부자이죠. 우리는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가난에 찌든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영적으로 가난하게 삽니다.
잠언 16장 6절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우리는 분명히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자산을 받았으나, 윤택한 생활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어요. 원기 왕성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치 않게 됩니다. 위기를 만나도 부정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죠…, 우리나라 수출이 금년에는 4.5% 감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어요.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를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우리 마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모든 생활에 있어서 부정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부정인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부정적인 것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잠언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인 삶과 평안한 생활을 하도록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기를 먼저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찬미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