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유엔데이, 옛날에는 공휴일로 지켰는데 요즘은 이 날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625전재은 단군 이래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이 나자 이승만이 외교역량을 발휘하여 미국을 움직였고 미국은 유엔을 움직여 유엔군이 참전했습니다.
미국을 중심한 유엔군이 남침세력을 막아냈습니다. 전쟁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국군 13만, 유엔군 4.1만중 미군 3.6만명, 인민군 50만명, 중공군 19만명이 죽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은 상이용사로 살았습니다. 625 전쟁으로 무려 450만명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당하는 환난 가운데 가장 큰 환난이 전쟁입니다.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는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환난을 만납니다. 누구나 힘든 일이 있습니다. 수시로 질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건강할 때는 모르고 지내다가 병이 오면 이 질병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 근래 신학교를 같이 다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신학교 졸업 후에 곧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교장을 하고 은퇴했습니다.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데 알고보니 건강이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리가 아파 힘들기도 하고 천식이 있어서... 시력이 좋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고.. 그 나름 힘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편 57편은 다윗이 환난 중에 지어 불렀던 노래입니다. 당시 사울왕의 폭정에 시달린 많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왔습니다.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희망을 품고 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노래를 만들어 그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입니다.
첫째, 다윗은 주의 날개 아래 보호받기를 노래합니다. (1절)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주의 날개아래 보호해 주시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전쟁터에 심부름을 갔다가 갑자기 거인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골리앗을 쳐부수러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거인이요 갑옷과 투구 칼과 방패 창으로 무장하고 나왔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복장으로 나갔고 그 싸움에서 다윗이 이겼습니다.
어린 소년이 적장 골리앗을 쳐부숨으로 다윗은 국민영웅이 되었습니다. 승전하고 돌아오는 다윗에게 환호하는 백성들을 보고 사울왕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이 당한 환난은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사울을 피해 십 몇 년간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의 사울 왕과 군인들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하여 수시로 군사들이 다윗을 추격했고 다윗은 이 마을 저 마을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아래 보호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합니다.(57:1)
사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멀리 도피하기를 원합니다. 시편 55:6-7절에서 다윗은 ‘비둘기처럼 내게 날개가 있다면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숨고 싶다’ 고 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모압이라는 나라로 갔습니다.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너는 여기 머물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이스라엘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삼상22:3-5)
다윗은 이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이 재앙들이 지나가기까지 피할 것이라고 합니다. 도피의 날개가 아니라 보호의 날개아래 숨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이제 멀리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아래 하나님이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은혜의 날개아래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업어서 보호하시기도 합니다. 팬션을 하는 장로님과 권사님이 한 일주일 전에 아는 도토리를 주우러 갔습니다. 도토리가 많아서 열심히 줍고 있다가 장로님이 실족하여 10m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아 이게 죽는 거구나. 장로님은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10m는 3층집 높이입니다. 거기서 떨어지면 죽거나 중상을 입습니다. 그런데 떨어지고 보니 몸이 멀쩡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7절)
7절에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확정하는 것은 마음을 잡았다, 마음을 바로 잡았다, 마음을 굳세게 했다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굳게 잡았습니다. 하나님만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다윗이 그 마음을 확정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선지자 사무엘이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너는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왕이다. 하나님이 너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마음을 굳세게 했습니다. (삼상16:1-13)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수기 23:19 )
유다왕국이 멸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갔습니다. 다니엘도 그 포로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젊은이 중에 영특한 사람들을 뽑아서 교육을 시켰는데 다니엘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문제는 그 음식 중에 성경에 금지한 음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단1:8) 다니엘의 이 결심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수도 있고 그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말씀에 복종하는 것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것과 같아서 비바람과 홍수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태 7:24) 재난이나 환난에도 넘어지지 않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인생의 고난은 밤과 같습니다. 어두운 밤에 다닐 때 등불이 있으면 길을 잘 갈 수 있습니다. 등불이 없으면 넘어지기도 하고 길을 헤매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셋째,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8절)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깨어나는 것은 각성하는 것, 깨닫는 것입니다. 마치 마취와 같이 몽롱한 상태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내 영광아’ 에서 영광은 영혼으로 번역되는 단어 ‘카보드’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아 깰지어다’ 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내영혼아 깨어나라!’ 무슨 뜻입니까? 자기 자신을 향하여 정신 차려라, 눈을 떠서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라, 내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사울이 아니다, 사울의 군사도 아니다, 사울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자기 집에 와서 예배를 드려 달라고 했습니다. 교회 옆에 미로처럼 생긴 길을 따라 갔더니 초라한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갔더니 나이가 일흔쯤 되어 보이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를 데려간 분은 그의 딸이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분은 서라벌예대를 나와서 1970년에 KBS 에 들어갔는데 임권택, 신구 등과 동기동창이라 했습니다. 얼마 후에 몸이 아파서 방송국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불단을 만들고 30년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몸은 병이 들어 피골이 상접하고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앞으로 교회 다니고 싶다고 해서 영접하는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허원석 이라는 분이 미신의 미몽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내도 교회를 나오고 용산구청 맞은편에 조그만 구멍가게를 얻게 되었는데 장사도 잘 되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얼굴에 살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인간의 형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세례도 받고 집사가 되어서 주일이면 단정하게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영혼이 깨어났던 것입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이것은 비파와 수금의 현을 다시 팽팽하게 조율하여 연주할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깨어난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좀 더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새벽은 밤중, 한낮처럼 시간입니다. 그래서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시간을 깨운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깨운다는 것은 시간이 잠자게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의 날은 밤과 같습니다. 밤이 되면 왜 보이지 않습니까? 캄캄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때때로 캄캄한 밤과 같습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참 빛이신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성령께서 계시면 밝은 눈으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일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하고 놀라고 당황해 합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값진 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은총의 시간이요 축복의 시간입니다. 잠든 내 영혼을 깨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새벽을 깨우는 것입니다.
신앙이 느슨해진 성도들이 있다면, 영적으로 무기력해진 성도들이 있다면, 영적인 잠에 취해 있는 성도들이 있다면, 깨어나야 합니다. 잠자는 내 영혼이 깨어나야 우리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연주가 되고 노래가 됩니다.
우리는 상황을 바꾸려 하지만 하나님은 나 자신이 변해야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수시로 다가오는 죽음의 위험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노래합니다. 내가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흐트러진 자신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했습니다.
다윗은 현실에서 꿈을 잃어버리고 마음에 정처가 없는 이 절망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민 중에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 하리이다.’ 주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고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높아지기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의 손아귀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사울이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에 들어왔지만 다윗을 잡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아래 숨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면 악한자가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