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선엽 6·25 전투복 입은 채 입관…오늘 대전현충원 영면
▷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을, 11시 30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안장식을 각각 주관한다.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역대 참모총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1사단장을 지낸 송영근 예비역 중장이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대전에서 열리는 안장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 사진:> 고(故) 백선엽 장군이 15일 6·25전쟁 당시 전투복을 입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한다.
○··· 영구차는 영결식이 끝난 뒤 아산병원을 출발해 다른 곳을 들르지 않고 대전현충원으로 향할 예정이라고 육군은 전했다 안장식에서는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경북 다부동 전투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백 장군 묘에 허토한다.
◇ 백 장군이 생전 의미 있다고 생각한 다부동 등 6·25 격전지 8곳의 흙을 뿌릴 예정이라고 육군 관계자는 전했다. <△ 사진:> 에서 14일 조문객들이 백 장군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 장군은 15일 6·25전쟁 당시 전투복을 수의로 입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권현구 기자
○··· 안장식에는 유가족 외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성우회 회장단 및 고문단, 역대참모총장, 한미동맹재단, 육군협회 등이 참석한다. 지난 10일 100세 일기로 별세한 백 장군은 불과 33세 나이에 1953년 1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 국군 역사상 최초의 4성 장군이자 6·25 전쟁 영웅이다. 다만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독립군 토벌대로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서 2년 남짓 복무한 이력으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논란이 됐다.
◇ 유족 측에 따르면 백 장군은 입관식에서 6·25전쟁 당시 착용했던 전투복과 같은 모양의 미군 전투복을 수의로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군은 전투복이 없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입었던 군복을 입었다. 유족 측은 골동품 시장에서 1944년 미군 전투복을 직접 구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4분쯤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 공격을 물리치고 북진을 시작할 무렵 1사단장 백선엽. 연합뉴스
○··· 백 장군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국내외에서 추모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동시에 그의 친일 행적 논란이 국립묘지 안장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정쟁의 대상이 됐다. 광복회 대전충남지부 등 시민사회단체는 안장식 당일인 이날도 대전현충원 정문에서 ‘백선엽 장군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반대 시민대회’를 열 예정이다.박세환 기자
◆ 백선엽, 참군인 청빈한 삶?…강남역 수천억대 건물 아들명의 소유
▷ 백인엽과 백희엽까지…백씨 집안 치부사 ‘전쟁영웅’과 ‘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 백수를 넘기고 숨진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 전문부대였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비판에 보수세력들은 ‘전쟁영웅인 백씨가 평생 군인으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본, 'Netizen Photo News' 는 가입 필요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 있음 '한국 네티즌본부'
◇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백씨 삶의 다른 면모들도 있다. 그는 서울 강남역 앞에 2천억원대의 건물을 가족 명의로 소유했던 자산가였지만, 수년에 걸쳐 가족 사이 송사가 벌어지기도 했던 게 대표적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현재 백씨 장남은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덕흥빌딩 소유주다.<△ 사진:>2018년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생일파티 도중 생각에 잠긴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연합뉴스
○··· 지하 5층 지상 16층 규모의 대형 빌딩으로 대지가 853㎡(258평), 건평만 1만1381㎡(3443평)에 이른다. 빌딩 전문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삼성타운이 들어오면서 여긴 부르는 게 값인데 해당 건물은 초역세권이라 평당 5억원은 될 것”이라며 “땅값(2020년 공시지가 683억원) 말고도 건물은 시가로 최소한 2천억~3천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백씨는 장남 명의로 돼 있던 땅에 건물을 올려 1994년 12월 역시 장남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당시 장남 나이는 41살이었다. 백씨의 재산 형성 과정을 추적한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은 “40대 초반 나이에 강남 한복판에 대형 건물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명의신탁에 의한 차명소유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차명 소유는 백씨 가족이 2007~2010년 사이 벌인 재산다툼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2007년 4월 백씨 장녀, 둘째 딸, 둘째 아들 3남매는 장남을 상대로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인용 결정을 받았다. <△ 사진:>5·16 쿠데타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백선엽. 한겨레 자료사진
○··· 장남이 자신 명의의 건물의 매매, 증여, 전세권, 저당권 등의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남매는 이어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등기부상 주인은 실제 주인이 아니니, 실제 주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해달라는 주장이었다. 2008년 8월 서울중앙지법이 3남매의 손을 들어주자 장남은 서울고법에 항소했고, 2010년 1월 다시 3남매가 일부 승소했다.
> ◇ 대법원까지 간 재산다툼 결과, 해당 건물은 장남과 백씨 부인이 절반씩 소유하게 됐다가, 2012년 백씨 부인이 지분을 350억원에 장남에게 매각하면서 지금은 온전히 장남 소유가 됐다. 재산을 장남 명의로 해놓았던 게 사달이 난 셈이다.
○··· 장남을 뺀 3남매는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송과정에서 장남과 척을 진 백선엽은 말년에 아내 노씨와 둘이서 지냈다고 한다. 형제끼리의 재산다툼 외에도 백씨 일가에는 유독 돈과 관련해 입길에 오른 인물들이 여럿이다.백씨의 동생인 백인엽(1923~2013) 전 예비역 중장과 사촌누이인 증권가 큰 손 백희엽씨다.일본 육군 항공소위 출신인 백인엽은 1956년 6군단장 등을 지낼 때 군수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5·16쿠데타 당시 부정축재자 1호로 검거돼 무기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 사실 여기엔 백인엽의 비리와 함께 박정희와의 구원도 일정정도 작용했다. 6군단장 시절, 백인엽은 장병들을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시킨 뒤 당시 부군단장이었던 박정희의 철모를 지휘봉으로 톡톡 치며 “빨갱이 XX”라는 등의 모욕을 준 일이 있었다. 백인엽으로부터의 수모를 참다못한 박정희가 그의 군수비리를 문제제기했고, 이 일로 박정희는 이듬해인 1957년 9월 제7사단장으로 전보조치된다.
◇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부패군인의 대명사였던 백인엽을 처단하고 싶었으나, 1948년 여순사건 뒤 숙군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백인엽의 형 백선엽을 생각해 선처했다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책(<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적었다. 숙군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던 백선엽이 남로당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박정희를 구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 사진:>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덕흥빌딩. 시가로 2천억원이 넘는다. 카카오맵 거리뷰 갈무리
○··· 한편,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12연대 연대장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한 백인엽은 구례지역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과정의 최고책임자였다. 2008년 진실화해위는 백인엽을 직접 조사해, 그가 구례지역 민간인학살사건의 가해책임이 있다고 진실규명한 바 있다. 죽다 살아난 백인엽은 교육자로 변신, 이후 인천지역에 선인학원이라는 학교법인을 설립한다. 형과 자신의 이름을 더해 만든 그 사학재단에서 백인엽이 벌인 비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약 5700명의 학생을 정원 외로 부정입학 또는 편입시키고, 졸업장을 팔아 61억원을 받아 챙겼다.
◇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3월,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건축법과 중기관리법 위반으로 또다시 백인엽이 구속된 이유다. 이후 선인학원에 관선이사로 내려온 이는 형 백선엽이었다. 동생이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를 저지른 곳에 형이 이사로 온 것이다. 앞서 형 백선엽이 강남대로에 건물을 올린 1994년은 선인학원 소유의 인천대 등이 논란 끝에 국공립화되던 때였다<△ 사진:>선인학원 사학비리로 악명을 떨친 백선엽의 동생 백인엽의 육군 중장시절 사진(1956년). 한겨레 자료사진
○··· . 두 형제가 관여한 천문학적인 사학비리의 뒷감당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는 사이, 백선엽은 강남에 대형빌딩을 세운 셈이다.백선엽의 사촌누이인 증권가의 큰손 백희엽씨도 돈으로 한국사회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다. 1975년 중동건설붐을 타고 건설주가 폭등하면서 증권가에 이름을 날리게 된 백씨는 동아건설을 비롯, 해외 건설주를 대량매집해 거액을 벌었다. 백씨가 한창 명성을 날릴 때에는 단순히 어떤 주식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주식이 폭등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5년 사망한 백씨는 40년대 후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고 박용학씨의 부인이기도 했다.
◇ 1995년 사망한 백씨는 40년대 후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고 박용학씨의 부인이기도 했다.천수를 누린 백선엽씨를 마지막으로 치부(致富)의 한 획을 그은 백씨 집안 내력도 한 대가 마무리됐다.
○··· 여전히 백씨가 청빈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세력들은, 미군도 그를 극진히 예우한다며 전쟁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백씨가 군인이었을 때, 미국의 평가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5·16 쿠데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선엽은)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며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한 역사적 기록이 있디. 오승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