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춘화 3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춘화첩이 전해온다. 춘화첩을 18세기에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조선의 독자성을 지키고 있듯이 춘화에도 중국, 일본과는 다른 조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김홍도의 도인이 찍혀 있는 운우도첩은 영, 정조 시대의 춘화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이후에 신윤복의 낙관이 찍혀 있는 ‘건곤일화도첩’은 ‘운우도첩’에 비하여 회화의 밀도나 구성에서 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상적의 제시(題詩)가 적혀 있다. 제시의 내용으로 보아서 당시의 사대부나 중인들이 춘화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춘화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여 차이ㅏ 있다. 중국은 궁중을 배경으로 그려지므로 귀족풍이 강하다. 채색화 위주의 체위 표현에 중점을 두므로 도교의 방중술이 뿌리임을 알 수 있다. 성애 소설의 삽화적 성격이 강하여 인물 묘사는 섬약하여 회화로서의 예술성은 많이 모자란다.
ㅡ일본 춘화는 우끼요에와 결합하여 채색과 인물묘사에 강렬함의 인상을 준다. 과장된 성기와 화려한 의상과 변태적 자세 등이 특징이다. 나름대로 당시의 일본 상류 사회의 성 풍속도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춘화는 배경 묘사가 만다. 숲이나 계곡이 배경으로 그려지므로 서정적 분위기를 띠는 동시에 서정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여러 경물을 같이 표현함으로 상징성을 띠는수가 많다.
,대상 인물은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군이 모두 그려진다. 그 중에도 한량과 기생이 제일 많다. 춘화를 완상하는 계층을 보여주는 지표도 된다. 성희 장면에 이야기를 담는 서사구조를 하고 있다. 사회현상에 대한 풍자적 비평이 많다.
초기에는 특정 상류 계층만이 은밀하게 즐겼으므로 김홍도 같은 유명화가가 직접 그렸다. 후대로 오면서 일반 서민들도 즐기게 되면서 무명 화가도 그렸을 것이므로 그림의 질이 떨어진다. 일제 강점기에도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주로 춘화를 그렸으나 최우석의 춘화도만이 전해오고 있다. ‘어느 호사가의 요청으로 춘화첩을 제작해 준 뒤에 큰 돈을 받아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라는 김은호의 증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린 춘화도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조선시대에도 틀림없이 인물화를 그린 화가들이 돈을 받고 춘화도를 그렸을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영상물에 밀려서 회화 양식의 춘화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만화 형태로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하니 춘화도는 미술사의 어느 시기에도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사에서는 아직까지는 정식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1960년 대 이후로 미술사 영역으로 편입되어서 풍속화 장르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도 풍속화 영역에서 다루면 연구할 거리가 많을 것이다
첫댓글 19세기의 춘화도 3-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춘화첩이 전해내려온다.조선춘화와 중국춘화 일본춘화의 차이점이있다.
중국은 궁중을 배경으로 했으므로 귀족풍이 강하다.일본은 채색과 인물묘사에 중점을 둔다.우리나라는 배경묘사가 많다 숲이나
계곡이 배경이므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광복이후에 영상물에 밀려서 회화양식의 춘화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우리나라미술사에는 정식으로 다루지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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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도 장르, 멀리하고 싶습니다.
건성건성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