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어린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보물을 찾고 있었다. 파리 떼와 온갖 벌레들의 악취 속에서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저 어린 생명들이 지난날 우리들의 모습 같다. 오늘 아침에도 동천 강변에는 누가 몰래 버리고 간 쓰레기에서 악취가 난다. 길 섶 나무사이 곳곳에 먹다 버린 음식과 일회용 쓰레기 들이 뒹굴어 다닌다. 음식 쓰레기통엔 빵 생선 배추 무등 수북이 담겨 있고 통 뚜껑 가엔 오물들이 흩어져 있다. 사람들은 음식 쓰레기를 비닐로 버리면서 손대기 싫어 그대로 통 가에 오물을 흘려 놓기도 하고 아예 비닐체로 넣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오물이 뚜껑에 끼어 문이 닫히지 않아 그 사이로 파리 떼 들이 우글거린다. 2.3일에 한 번 씩 버리는 음식 쓰레기를 항상 통에 물기를 짜서 버리고 통 가쪽에 묻은 오물을 걸레로 깨끗이 닦는 것이 나의 일이다. 몇 번을 걸레로 뚜껑 안까지 닦고 말라붙은 오물들을 지우고 문을 바로 닫고 나면 기분이 참 좋다. 항상 통 위에 걸레를 두고 주위 상항을 붙여 놓았다. 비닐로 담지 말고 용기에 물기를 짜서 버리며 내 자식들을 위해 환경을 깨끗이 하자고 호소하듯 붙여 놓았다.
뜨거운 태양아래 목이 말라 아우성치던 배추들이 어느새 결실을 맺어 온 들판이 탐스럽게 알이 영글었다. 농민들은 타들어가는 생명을 어린 자식처럼 품어 안고 그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키워온 결실이다. 때가 되어 노란 속살이 보일 듯 말듯 사춘기 처녀가슴마냥 자태를 뽐내며 줄지어 주인을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수줍어하며 보는 이들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설렘 같다. 갖은 시련을 겪은 배추는 노란 속살의 고소함을 사람들의 보양으로 온 몸을 다 바친다. 우리 입으로 오기까지 팔십 여덟 번의 손을 거친다는 쌀과 함께 짝지어온 고귀한 양식이다. 그 음식을 먹으며 나는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할까.
어린 시절 한겨울 추위에 동네 처녀들 틈에 끼어 밤에 늦도록 새끼를 꼬고 가마솥에 하얀 쌀밥을 해서 배추김치를 찢어 밥에 걸쳐먹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땅에 묻어 두었던 무를 겨우내 국을 끓여먹고 감기 들어 기침을 할 때마다 무를 먹었다. 약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늘 기침을 심하게 하셔서 약 대신 땅에 묻어둔 무를 깎아서 드시곤 하였다.
시집와서 해마다 백 포기씩 김장을 하여 형제끼리 나누어 먹던 때가 옛날처럼 느껴진다. 가을이면 큰 행사로 하던 일도 핵가족에 가공 식품이 늘어나고부터 배추 무는 천대를 받고 있다. 어느 농민은 융자를 받아 몇 백 평에 배추 무를 심어 알이 차가는 배추를 키우며 희망에 차 있었다. 결실을 맺을 때 쯤 중간 상인에게 좀 싼 값으로 몇 번을 망설이다가 계약을 했다. 그 후 땀 흘린 대가를 받을 날만 기다렸는데 난데없이 계약을 맺은 사람은 소식이 없으니 좌절 속에 빠졌다. 한해 온 정성을 다 쏟은 농부는 실의에 빠져 배추를 갈아엎어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병들어가는 모습에서 가슴이 저려왔다. 하루만 굶어도 살 수 없는 양식과 김치는 우리의 생명줄이다.
세월 따라 가족들 분가하여 제 각기 김장을 한다. 그러나 우리 집은 종가 집을 떠맡아 많은 김치를 담아야 한다. 특히 작은 것은 한에 차지 않고 식구가 많기 때문에 늘 김장은 오십 포기 이상하여 나누어 먹는다. 절이 삭아 한참 맛이 있을 때 ‘이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인사를 한다. 김치가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각광을 받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마치 내가 먹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평생을 먹어도 먹고 싶은 음식을 요즘 아이들은 그 맛을 모른다. 갈수록 서양 음식에 길들여지는 가공 식품과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변하지 않기 위해 어떤 약을 뿌렸는지 정체불명의 음식을 즐겨 먹고 있다. 보기 좋고 입에 길들여지는 가공음식을 먹고 있으니, 이름도 없는 희귀병들이 세상을 침투하고 있다. 그 음식쓰레기가 길가에 곳곳에 굴러다닌다. 신세대 아이들이 우리 땅에서 지은 곡식과 농산물을 모두 다 맛있게 먹고 많은 소비를 시켜야 하는데 아이들은 아예 김치 냄새도 싫어하며 우리 문화와 음식보다 외제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가 걱정스럽다. 음식에 따라 성격도 난폭해 지고 무엇이 참삶인지 일회용을 좋아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어디서 곡식이 어떻게 자라 우리 식당에 까지 왔는지 관심도 없고 눈앞에 보이는 대로 먹고 행동하는 물질 만능 주의 세대들이 늘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일 년 계획을 세워 생명처럼 돌보며 키운 배추를 인권비도 나오지 않을 때 좌절 속에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풍년이 들면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잘 된 농사를 원수처럼 버려야 할 때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 홍수와 가뭄 속에서 가슴조이며 키워 왔던 곡식이 실패로 돌아가는 모습을 내일처럼 아파해야 할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흉년이 들어도 걱정 풍년이 들어도 걱정이다.
시장에 가면 태산같이 쌓여있는 배추에 버리는 시래기들이 많이 있다. 시래기가 쓰레기로 환경오염 까지 걱정해야 된다. 그 쓰레기가 시래기로 둔갑하여 우리 식당에 맛있는 음식으로 먹고 있다. 시장에 가면 시래기를 모아주는 배추 할머니가 있다. 시래기를 푹 삶아서 손으로 찢어 멸치 다시 물에 된장 들깨가루를 풀어 조개와 풋고추 양파를 넣고 끓여 밥에 걸쳐먹으면 어머니의 손맛이 난다. 몸에 좋은 일등 영양소로 맛도 최고의 맛이 난다. 시래기 된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이 맛을 젊은이들이 싫어 하니 단단한 몸매보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비대한 몸이 될 수박에 없다. 우리 땅에서 난 곡식을 모두가 좋아 한다면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밭에서 갈아엎어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 배추가 귀할 때 하우스에서 농사지은 배추를 모두 도둑맞았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다. 아무런 수고도 없이 남의 것을 다 훔쳐가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며 세상을 살아간다. 남들이 수 십 년 공들여 만들어 놓은 물건이나 애써지어 놓은 곡식도 자기 것처럼 훔쳐가는 사람들이 사회를 좌우 지배하고 있다. 사람도 쉽게 만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하루살이 인생이 현실로 다가왔다. 세 사람만 모여도 발밑에 쓰레기가 난무하고, 뜬 구름을 잡으려는 한탕주의들이 명당 복권 앞에서 종일 진을 치고 있다. 차들은 뒤엉켜 교통이 혼잡과 주변은 쓰레기투성이다. 일회용 종이컵, 커피 캔,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이 쓰레기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작은 것 하나부터 질서를 지키며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이 사회가 깨끗해 질 것이라고 생각 해 본다. 거리에 쓰레기가 없어지고 상대방의 소중함과 신뢰로써 진실이 실천하는 사회가 될 때 밝은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우리의 터전을 살리고 평생 먹어야 살 수 있는 양식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땀 흘려 지은곡식을 많이 먹고 소비 시켜야 몸도 마음도 사회도 건강해 질 것이다. 만약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풍년이 와서 애써 가꾸어온 농사를 쓰레기로 뒤엎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꿈이 희망의 나래로 펼쳐지고 우리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복한 시대가 왔으면 간절한 나의 바램이다.